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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화)
Chapter 1 (2)
1주일 후, 데네브는 평상복을 입은 채 제국의 수도 마르티네즈 시내를 걷고 있었다.
그는 윌러비 대령의 말대로 경매장 같은 곳에 가서 무기를 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왠지 죽은 이가 입던 옷을 입으면 원혼이 그에게 저주를 내릴 것 같아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결국 그는 A&G의 광고판을 가진 재단사의 가게에 방문하여 군복 제작을 문의했다.
“정말 잘 오신 것입니다, 데네브 소위님.”
가게의 주인이자 스위첸 지방 출신인 에머리가 줄자로 데네브의 목 둘레를 재며 말했다.
그는 스위첸 지방의 사람들이 대개 그러듯이 인간이 아닌 엘프였다.
“이 근처 재단사들은 저만큼 뛰어난 실력이 없거든요. 게다가 제 아내가 짠 옷감은 그 어떤 상인이 가진 옷감보다 뛰어나질 않습니까. 음, 목은 편안하게끔 여유를 둘까요?”
“웬만하면 그게 좋겠군요, 에머리 씨.”
데네브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어느새 에머리는 어깨 너비를 재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방데라스 공국의 반란에 가장 큰 위훈을 세우신 분이시니 조금 싸게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신 바지도 여기서 주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근위대들은 흰 바지를 입거든요.”
그는 근 며칠 동안 손님이 없어 간만에 찾아온 데네브를 깍듯이 대했으며 어떻게든 물건을 팔기 위해 애를 썼다.
“좋습니다. 바지도 주문하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소위님. 상의는 전체적으로 꽉 끼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물론 어깨에 뽕을 넣어서 어깨 라인이 수평처럼 솟게 해 주고요. 그런 뒤에 상체를 당당하게 펴면 보기가 좋습니다. 그 상태에서 허리 부분이 들어가야 군복의 매력이 잘 드러나거든요. 어차피 군도를 차시려면 허리띠를 매야 하니, 허리 부분은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움직임에 불편하지 않을까요?”
데네브는 머릿속으로 연회에서 멋진 아가씨와 춤을 추는 것을 상상하며 물었다.
“울로 만든 실을 8겹으로 해서 꿰매면 단추가 빠질 일도 없을 것입니다.”
데네브의 말을 못 들었는지, 에머리는 자신만의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물론 단추는 백랍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번쩍이는 은 단추로 하고…… 아, 건너 집에 있는 와일스 씨의 대장간이 단추를 잘 만들어요. 거기는 백랍 따위는 취급도 안 하지요. 은을 8할 정도 넣고 나머지는 강철을 넣어서 단추가 내구성이 좋답니다.”
“잘 알겠습니다, 에머리 씨. 근데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에머리는 그제야 정신을 추스르고 데네브의 물음에 답했다.
“아, 네. 아마도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건 경례를 할 때에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연회에서 춤을 춘다고 해서 허리를 굽힐 일도 없고요. 물론 제 아내가 만든 옷감은 그런 불편조차 눈에 띄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 집 옷감은 신축성이 좋아서 쉽게 늘어나지도 않습니다. 자, 치수는 다 재었습니다.”
말을 마치며 에머리는 줄자를 내려놓았다.
“이제 옷감의 견본을 보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에머리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감색, 흰색, 붉은색의 옷감들을 가지고 왔다.
“근위대의 군복은 대부분 감색을 쓰고, 상체 앞부분은 흰색이지요. 목을 뒤덮는 칼라는 붉은색이고요. 일단 감색 옷감부터 보십시오.”
그는 감색으로 된 옷감을 내밀며 여러 가지를 펼쳐 보았다.
“보통은 통울이지만, 그렇게 하면 표면이 너무 거칠어 보여서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근위대는 궁정에서 시위(侍?)를 많이 서기 때문에 귀족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고급으로 써야 합니다. 보통은 울에다가 40퍼센트 정도 면을 넣은 혼방의 제품을 쓰지요.”
윌러비는 그러면서 다시 옷감 하나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감색의 빛을 매우 부드럽게 나타내어 보기가 좋았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비단이 혼방이 된 것을 쓰는데, 그것은 특히 광택 면에서 우수합니다.”
확실히 조금 반짝이는 듯한 옷감을 보여 주는 에머리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 그러니까, 돈이 남아돌아서 어떻게든 쓰고 싶어서 안달 난 것들은 완전 비단으로 된 옷감으로 제복을 만들지요. 대개 그들은 돈으로 계급을 산 뒤 휴직 신청을 해서 전투에는 한 번도 안 나갔으면서 궁중에서 뽐내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지만요.”
이번에는 완전히 비단으로 된 광택이 우수한 옷감을 보여 주는 에머리였다.
“하지만 데네브 소위님처럼 현명하고 용감하신 분이라면 허울뿐인 비단으로 된 옷보다는 비단과 울의 혼방이 어울리실 것입니다. 물론 가격이 조금 문제이긴 하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싸게 드릴 테니까요.”
비단과 울 혼방의 옷감 가격표를 본 데네브가 얼굴을 찡그리자 에머리는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데네브가 생각에 빠진 듯하자 그의 표정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다.
데네브가 점점 심각한 갈등을 보이자, 결정타를 날리듯 작게 속삭였다.
“제복 안에 입으실 와이셔츠도 싼값에 비단 혼방 원단으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 어떠신지요?”
그제야 데네브의 마음이 움직였다.
“좋습니다, 에머리 씨, 당신의 뜻대로 하시지요. 다른 옷감들도 볼까요?”
소매장도 달아 달라고 주문을 한 데네브는 일주일 뒤 군복을 수령하기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런 뒤 그는 브라우치라는 사람의 가게로 들어가서 견장을 주문했다.
제국 척탄병 소위의 견장은 보통 금사로 만드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은지라 데네브는 대용품인 놋쇠를 사용했다.
하지만 놋쇠는 금처럼 번쩍이질 않아서 데네브는 그 사실을 다른 장교들에게 들킬까 약간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견장을 달 수 있다는 기분 좋은 사실에 나오는 기쁨 때문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덕분에 브라우치도 기분이 좋아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견장 2개를 사려고 하는 데네브를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물론 견장은 2개를 사야 합니다만…… 데네브 씨, 2개씩 견장을 달려면 대위 진급 후 3년 이상 복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답니다.”
“그러면 보통 소위나 중위들은 어쩌지요?”
데네브가 물었다.
“왼쪽 어깨에만 달아야 합니다. 대위가 되면 오른쪽 어깨에 달아야 하고요.”
“그렇군요. 그러면 견장을 1개만 사겠습니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뭘요. 영웅에게 이 정도 설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브라우치는 웃음을 지으며 견장 값으로 은화 2닢을 받았다.
견장 가게를 나온 데네브는 신문을 판매하는 소년에게서 동화 1닢을 주고 신문을 사서 보았다.
마침 사설에서 자신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게 보이자, 데네브는 집중해서 사설을 읽어 내려갔다.
……국왕 폐하의 병세가 나빠지는 틈을 타 반란을 일으키는 속국들. 그리고 혼잡한 왕위 계승 경쟁 속에서 이와 같이 용기있는 자가 나온 건은 분명 신들이 제국을 가호해 준다는 증거이다.
또한 비록 내부가 시끄러워도 제국의 병사들은 침략해 오는 어리석은 자들이 가지지 못한 사자의 심장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을 칭송하는 기사에 기분이 좋아진 데네브였다.
그리고 어느덧 해가 중천에 다다른 것을 확인하고는 식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직 돈이 조금 남아 있어서 비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데네브는 평소엔 얼씬도 하지 않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군에 입대한 뒤 굳다 못해 딱딱해진 건빵과 절임 고기, 상한 듯한 치즈, 제대로 닦지 않아서 똥 냄새가 풀풀 풍기는 창자의 속을 채운 소시지 등을 먹으며 지내 온 그였다.
때문에 전직 궁중 요리사가 개업했다는 레스토랑에 들어오자 기대감에 절로 마음이 부풀었다.
종업원이 권하는 자리에 앉은 데네브는 얼른 스테이크 2인분과 흰 빵, 새우와 대구를 넣고 와인으로 끓인 스튜, 쇠기름으로 만든 체리 푸딩을 주문했다.
“저기…… 혹시 데네브 씨, 아니, 소위님이십니까?”
데네브의 주문을 받고도 우물쭈물 망설이던 종업원이 물었다.
“맞습니다.”
데네브는 신문의 나머지 부분을 읽느라고 정신이 없어 고개도 올리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러자 이내 종업원이 사라지더니, 주방장이자 레스토랑의 주인인 폰치가 불쑥 들어와 악수를 청했다.
영웅을 알아본 듯 사근사근거리며 데네브의 사인을 받은 그는 주문한 것 이상의 요리를 내놓았다.
따뜻한 빵에 부드럽게 녹인 양젖 치즈를 시작으로 2인분을 주문한 스테이크는 3덩이의 고기가 들어 있고, 주문하지도 않은 고급 클라레 와인 한 잔도 나왔다.
그 모든 게 영웅을 위한 서비스였다.
“후추를 쓰지 않고 마늘을 바른 다음 허브와 소금을 가미한 것입니다.”
곁에서 선망에 찬 눈빛으로 데네브를 바라보던 종업원이 말했다.
스테이크의 접시 또한 뜨겁게 달군 접시였다.
데네브는 스테이크를 씹으며 자줏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잔을 쭉 들이켰다.
국물보다는 건더기가 훨씬 많은 스튜에다가 마지막으로는 생크림과 생과일, 시럽을 얹어서 나온 호화 푸딩이 나오자 이미 배가 가득 찼음에도 데네브는 특별히 신경을 써 준 폰치를 위해 그 푸딩을 다 먹어치웠다.
음식을 다 먹은 후 데네브의 배는 터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폰치 씨.”
레스토랑을 나갈 무렵, 데네브는 직접 나와서 계산을 하려는 폰치에게 감사를 표했다.
“뭘요, 제국의 영웅인데요.”
그러면서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원래 가격의 절반만 받았다.
“사실 저희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모든 해산물은 팔라티아 섬에서 공수되어 온 것이었거든요. 한데 반란 때문에 한동안 해산물 공수가 안 되었습니다. 저의 특기가 해산물인데 그 점이 너무 아쉬웠지요. 하지만 이젠 다시 해산물 공수가 잘되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나에게도 은인과 같아요. 반란을 빨리 끝냈으니까요. 만약에 그 공격이 실패로 끝났으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지요.”
멋진 식사, 포만감이 가득한 배, 그리고 적은 지출에 듣기 좋은 찬사까지.
덕분에 데네브의 기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살아남길 잘했어.’
다시 한 번 자신의 결정에 만족한 데네브는 기분 좋게 레스토랑을 나섰다.
무기 상점에 들어간 데네브는 군도 매입을 문의했다.
“이건 어떠십니까?”
무기상인이 군도 하나를 꺼내 데네브에게 넘겼다.
“금도금으로 장식을 한데다가 손잡이는 흑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보석 장식이 되어 있고요. 게다가 클링겐탈제이지요.”
데네브는 군도를 뽑아 보았다.
그러자 시퍼렇게 선 날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날카롭군.”
클링겐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지만, 지나치게 장식을 한 나머지 전투용이 아닌 예식용 같았다.
또한 검신의 폭이 너무 좁고 지나치게 일직선이라서 베기보다는 찌르기에 용이해 보여 군도라기보다는 레이피어에 어울렸다.
찌르기보다는 베는 동작을 많이 연습한 데네브에겐 어울리지 않는 군도였다.
거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너무 비쌌다.
“다른 것으로 하지.”
결국 데네브가 고른 것은 놋쇠로 된 손목 보호대와 나무로 된 손잡이에 당나귀 가죽을 두른, 검은 칠이 된 칼집이 있는 군도였다.
데네브는 그 군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적당히 굽어서 베기와 찌르기 모두 용이해 보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칼등에 들어간 쇠의 두께가 보통 군도의 두 배 가까이 되어 큰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그가 휘두른다면 웬만한 적은 베는 정도가 아니라 댕겅 잘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비싼 칼을 팔지 못해서인지 표정이 밝지 못한 무기상인을 뒤로하고 데네브는 남은 돈을 셈해 보았다.
금화 10닢과 은화 7닢, 동화 4닢.
피스톨을 싸구려로 산다 해도 간당간당한 액수였다.
다행히 군모와 장교의 상징인 목가리개는 육군본부에서 지급해 주기에 그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역시 문제는 군도. 아무리 싸구려라 해도 지나치게 비쌌던 것이다.
때문에 전장에선 장교의 군도가 약탈 대상 1호가 되었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 집안의 사람만이 장교가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데네브는 남은 돈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는 저가용 피스톨과 장화를 구매했는데, 장화는 무두질한 말가죽에 밑창을 무쇠로 징을 박고 에나멜 칠을 해서 눈부시게 광이 났다.
물론 기병 장교를 흠모하는 다른 장교들처럼 박차를 박을 수 없었지만, 천성이 보병 장교인 그에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도…… 다들 박차를 차잖아.”
마침 옆에 지나가던 장교의―보병이 확실했다―장화에 달린 박차를 보고 데네브는 확신했다.
‘나중에 돈을 벌면 좋은 박차를, 그것도 꼭 금도금으로 된 박차를 구해야지!’
필요한 물품을 모두 구한 데네브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여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복귀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는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