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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3화)
Chapter 1 (3)
“어서 오세요.”
여관 주인은 데네브가 들어오자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숙박하시는 것인가요?”
“네, 장기 숙박으로…….”
“아뇨,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갑작스레 자신의 말을 끊는 음성에 데네브가 뒤를 돌아보았다.
기병이었다. 그것도 한쪽 어깨를 걸칠 정도의 작은 자켓에 단추가 많은 제복인 것을 보니, 경기병이었다.
“찾아다니느라 고생했습니다, 소위님.”
“그대는 누군가?”
처음 보는 인상의 병사에게 데네브가 물었다.
“전령입니다, 데네브 소위님. 그리고 전출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뭐?”
데네브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명령서입니다.”
전령은 데네브에게 밀랍 인장으로 봉인된 양피지 봉투를 건넸다.
거기에는 권위적인 왕실의 인장이 박혀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데네브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전령이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음, 맥주랑 비스킷을 조금 주십시오.”
겨우 생각을 정리한 데네브는 바에 앉았다.
센스있는 여관 주인이 종업원을 시켜 편지칼을 건네주자 데네브는 서둘러 봉투를 찢어 안에 있는 편지를 꺼내 보았다.
“주문하신 맥주 나왔습니다.”
그 순간, 종업원이 맥주 한 잔과 비스킷을 가져왔다.
주문한 맥주를 본 데네브는 기분이 팍 상했는데, 거품을 잔뜩 넣어 양을 줄였던 것이다.
그는 씁쓸한 마음에 얼굴을 찡그리며 맥주 한 잔을 쭉 들이켰다.
하지만 맥주는 의외로 시원하고 맛있었다.
다시 어느 정도 만족스런 기분이 된 데네브는 마침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는 매우 깨끗한 필체로 쓰여져 있었다.
데네브 소위께.
제국의 후작이며, 제국에 소속된 모든 군대 또는 새로 창설될 군대의 최고사령관이신 구텐베르크 원수의 명에 따라 근위 제1연대 2대대 3중대 소속의 데네브 소위를 이 편지를 받은 순간부터 근위 제1연대의 특별 편성 중대인 102독립중대의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현재 102독립중대의 위치는 바율스 지방…….
“이런 젠장, 최전방이잖아!”
바율스 지방은 제국의 최대의 위협이 되고 있는 드리지아 왕국과의 접경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바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자, 데네브는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근위대가 최전방으로…… 아니, 것보다 난데없이 새로운 중대를 편성해서 소대장이 되어야 할 내가 중대장이라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진 데네브는 다시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바율스 지방의 성채인 사예르에 주둔하고 있으며, 데네브 소위는 그곳으로 되도록 빨리 이동, 배치를 받아야 할 것이다.
사예르 주둔 시, 새로운 명령을 받을 때까지 대기해야 하며 중대장으로서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을 시엔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 즉시 이행해야 한다.
본 명령서는 구텐베르크 원수의 명령에 따라
근위대 사령관이신 루덴버그 중장의 사령부에서 작성되었음.
“이런 망할…….”
아직 고생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화려한 궁중 연회는 물론이거니와, 아름답게 반짝이는 샹들리에도 볼 수 없고,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춤을 출 수도 없다.
수백 명이나 되는 궁중 요리사들이 만드는 정찬도 못 먹을 것이며, 궁중에서 시위를 설 수도 없고, 국왕 폐하 알현은 물론이거니와, 다시 전쟁의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젠장.”
아직 군복도 못 받았고, 목가리개는 물론이거니와, 군모 또한 못 받았다.
되도록 빨리 배치를 받으려면 재단사에게 돈을 더 주고서라도 서둘러 달라고 부탁해야 하며 연대본부 보급관에 가서 목가리개와 군모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하늘은 지고 있었다.
아무리 서두른다 해도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오른 데네브는 비스킷을 들어 입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비스킷은 땅콩과 아몬드를 넣어서 그런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주인장.”
은화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데네브는 주인을 불렀다.
그리고 접시에 남은 비스킷 가루를 손가락으로 훑어서 조심스럽게 입에 털어 넣었다.
“일단 오늘 하루만 묵어야겠습니다.”
내일 해야 할 일을 결정한 데네브는 마지막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Chapter 2 (1)
재단사에게 부탁하여 이틀 만에 제복을 수령한 데네브의 모습은 걸출한 장교의 그것처럼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프렌치 중대장님.”
데네브는 자신의 임지로 떠나기 전에 3중대장인 프렌치 대위를 찾아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마침 그는 자신의 집무실에 있었는데, 만약에 데네브가 다른 곳으로 배속되지 않았다면 상관이 될 인물이었다.
“이번에 독립 102중대로 배속되는 데네브 소위입니다.”
“아, 그렇군. 찾아와 줘서 반갑네, 데네브 소위.”
40대가 다 되어 가는 프렌치 대위는 데네브처럼 병사 출신으로 공을 세워 장교가 된 케이스였는데, 그 정체는 고양이과 수인족이었다.
그는 190이나 되는 키에 사자와 같은 두상과 기다란 수염을 가진 인물이었다.
또한 애꾸눈과 잘려 나간 한쪽 귀,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자잘한 상처와 가슴에 박힌 5개의 훈장은 그가 전장에서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평민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와 귀족이나 중산층 출신이 주류인 장교 사회의 압박으로 그는 더 이상 진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네 얼굴을 보니 내 밑에 있지 못하게 된 것이 너무 아쉽군. 커피 한잔하겠나?”
“감사합니다.”
“피터!”
프렌치 대위의 부름에 사환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 두 잔, 설탕 두 숟가락. 그대는?”
“저도 그렇게 주십시오.”
“좋아, 두 숟가락으로.”
“알겠습니다, 대위님.”
사환이 나간 후 흡족한 표정을 지은 프렌치 대위는 데네브에게 자리를 권했다.
“내가 가진 커피는 그다지 고급에 속하지 않아. 건식이거든. 아, 점심도 같이 먹겠나? 곧 있으면 점심이지? 어제 사환을 시켜서 노루 고기의 허리 살덩어리를 샀거든. 아끼고 있는 거지만 자네와 같이 용감한 사람과 식사를 할 수만 있다면, 그까짓 것 얼마든지 내놓고 말지.”
그는 데네브가 진심으로 마음에 든 듯한 표정이었다.
장교 사회에서의 식사 초대는 일종의 사교 모임과 같았다.
서로 간에 친목은 물론이거니와, 부하들을 격려하고 상관에게 존경심을 갖는 자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장교들은 항상 사환을 부려 개인적인 식량을 마련해야 하며,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쯤은 동료나 상관들에게 식사 초대를 해야 했다.
마침 30일 시계(30일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 주는 시계)의 초침이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역마차 출발은 2시라 아직 여유가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데네브는 자신을 챙겨주는 프렌치 대위의 친절함에 감복했다.
그사이 사환이 커피를 가져왔는데, 커피의 향은 그의 말대로 그다지 좋지 못했다.
프렌치 대위가 사환에게 점심 식사를 주문하는 것을 마치자 데네브는 자신의 의문을 풀기위해 입을 열었다.
“대위님,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 갑자기 독립중대가 생긴 이유와 그들이 최전방에 배치된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아, 아직 모르고 있었나?”
순간, 그의 하나 남은 눈동자에서 아른거리는 빛이 데네브에게 포착했다.
“그래, 사실 3중대의 소대장 자리 하나가 공석이긴 했어, 베이글스 중위가 장티푸스를 않다가 가 버렸거든. 자네의 자리가 확실했지. 그런데 갑자기 대대장의 사촌이 나타나더군. 본인과 대대장은 키가 180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178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더구만.”
그는 새삼 분노가 이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그는 골수 척탄병들처럼 신장을 중요시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말에 데네브는 프렌치 대위 또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진정한 용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전장의 근처도 가 보지 못한 것들이 꿰차고 있으니……. 정말 제국이 어찌 되려는지…….”
“102독립중대가 어떤 부대인지 알 수 있습니까?”
이야기가 딴 데로 새자 데네브는 다시금 질문했다.
“한마디로, 문제가 있는 병사들이 모인 중대라고 할 수 있다네.”
그의 말에 데네브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여러 인종과 종족들이 섞여 있어 종종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해. 한마디로 군율이 바로 서지 않은 근위대의 수치이기도 하지. 그래서 명목상 중앙군의 외부 배치를 통한 뭐시기 등을 명목으로 궁중에서 쫓아내는 거지. 하여튼 육군본부가 약아 빠진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기병과 기사단을 제외한 근위대 전 연대에서 문제가 있는 병사들을 모아서 명목상으로는 중대이지만, 그 중대 안에 유격병(경보병)과 척탄병들이 섞여 있고, 심지어 일부는 포병이더군. 해서 중대치고는 화력이 막강하지. 중대장이 3파운드 포 2문을 지휘할 수 있다면 믿겨지나? 포병도 아니고, 보병 장교인데 말이야.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102독립중대는 완편 중대가 아니거든.”
“완편 중대도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각 연대들은 자기 병사들을 빼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정말 병신들 중에 상병신들만…… 아, 미안하네. 여튼 문제가 있는 것들만 보냈으니까 대략 숫자가 70여 명 정도밖에 안 될 거야.”
왜 소위인 데네브가 중대장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사항이었다.
“소대장도 한 명밖에 없고, 게다가 그 소대장은 고집 센 스위첸 지방의 여자라네.”
“여성 장교란 말씀이십니까?”
제국에선 여성의 사회 진출을 굳이 막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국의 사람들은 대개 군대엔 여자가 갈 곳이 못 된다는 것이 인식되어 있었다.
“마리라고 불리지. 마리 소위. 자네보다 3년 먼저 임관했네. 그녀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와 프렌치 대위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문이 작게 열리더니, 사환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야?”
“실례합니다, 대위님, 대대장님께서 점심 식사에 초대를…….”
“거절한다고 해. 물론 손님이 있다는 이유로 정중하게 말이야.”
사환이 문을 닫자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프렌치 대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는 대대장을 혐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훌륭한 장교의 표본은 아닐지라도 대단한 것은 맞네. 그녀의 무훈만 봐도…… 이제 겨우 20살밖에 안 됐고, 키도 183이나 되고―3소대로 오는 떨거지보단 한참 크지―일반 병사보다 힘이 더 장사이기도 해. 거기에 얼굴은 스위첸 지방 사람처럼 수려하지 하지만, 내가 말했다시피 그녀는 고집이 세서 명령불복종 사례가 지나치게 많아. 근위대로 오기 전에도 전투에서 제멋대로 행동한 사례가 있어. 물론 몇 개는 정당한 명령불복종이긴 해. 해당 대대장이 마리 소위에게 집무실에서 옷을 벗고 책상 위에 앉아 가랑이를 벌리라고 했거든.”
“세상에.”
대대장이라는 말이라는 부분부터 프렌치 대위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데네브는 국왕을 시위하는 근위대에서 그런 사건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일을 일으키고도 아직 대대장 자리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군요.”
“물론 대다수의 장교들은 그를 대대장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는 기사단 출신이거든. 거기에 대대장의 형이 남작이야. 육군본부의 대다수는 귀족들이잖아? 그러다 보니 그들은 근위대의 위신을 핑계로 이 일을 묻어 두었지. 그리고 마리 소위는 독립중대로 전출시켰고. 나 같았으면 근위대의 위신은 내팽개치고 당장 그 빌어먹을 놈의 모가지를 비틀었을 텐데. 덕분에 신망을 잃은 대대장은 아까처럼 나 같은 ‘하찮은’ 평민 장교에게 식사 초대를 하고 있지. 평소 같았으면 대면하는 것조차 모멸감을 느끼던 놈이 말이야.”
그는 대대장에 대해 계속 험담을 늘어 놓는 게 왠지 좋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그 뒤로는 대대장에 대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데네브의 얼굴에 가까이 대며 작게 말했다.
“물론 이 사실은 비밀이니까, 자네는 절대로 발설하면 안 돼. 알겠나?”
“알겠습니다.”
흡족한 얼굴로 다시 허리를 뒤로 젖혀 등받이에 등을 기댄 프렌치 대위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