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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4화)
Chapter 2 (2)


“그녀가 부당한 명령을 듣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 고집이 너무 세 마치 야생말과 같지. 자네는 그곳으로 간 즉시 그녀를 확실히 제압해야 하네. 어떻게 해서든 제압해야 해. 그래야 중대장으로서 그대의 지휘권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네. 마리 소위는 자기보다 임관이 늦은데다가 같은 소위의 계급장을 가진 자네를 중대장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자네는 중대장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말게. 군대에선 절대로 하극상은 용납 못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겠지? 제국군에서, 그것도 근위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네.”
그의 말이 끝나자 다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사환이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 감자와 베이컨이 담긴 훌륭한 맛이 나는 수프를 가지고 왔다.
프렌치 대위와 데네브는 그제야 말을 멈추고 음식을 먹는 데 집중했다.
그들은 덩치 큰 사람답게 각자 수프를 2그릇씩 먹어치웠다.
그렇게 집무실 책상에서 수프를 다 먹었을 즈음, 사환이 바구니에 부드러운 흰 빵과 하얀 도기에 보기 좋게 담긴 사과 잼을 가지고 나왔다.
“우리 딸이 보내준 사과 쨈이라네.”
잼을 쨈이라 발음하며 프렌치 대위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면서 그는 빵에 잼을 듬뿍 발라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었다.
“귀여운 아이지. 이제 결혼만 하면 딱 좋은데…….”
그 말에 데네브가 맛을 보았는데, 확실히 보기 드물게 맛있는 사과 잼이었다.
그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프렌치 대위의 미소가 더욱 커졌다.
빵도 다 먹어 갈 즈음 드디어 본 요리인 사슴 허리 살코기가 나왔는데, 덩어리 통째로 나온 것이었다.
접시에 고깃국이 흐르는 것이, 정말 맛있어 보였다.
사환이 따로 국물을 모은 육수에 와인과 바질, 마늘을 넣고 조린 소스가 담긴 작은 그릇을 두 사람의 앞에 놓아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훈련이 있기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와인은 줄 수 없네.”
프렌치 대위가 데네브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프렌치 대위는 나이프로 고깃덩어리를 정확히 두 조각으로 나누어 데네브의 그릇에 놓아 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가 너무 커서 데네브는 과연 그것을 다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식으면 맛없네.”
재촉하듯 채근한 프렌치 대위가 먼저 자신의 고기를 잘라서 소스에 찍어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데네브도 따라서 먹었는데, 정말로 고소하고 육즙이 풍부한 사슴 고기였다.
한 번 씹을 때마다 육즙이 터져 버린 과육처럼 번지는 것이, 여태까지 살면서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최고의 맛이었다.
이에 식욕이 왕성해진 데네브는 체면 따윈 버리고 식사에 열중했는데, 이를 지켜본 사환으로서는 기괴한 장면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덩치 큰 남자 두 명이서 자신들의 머리만 한 고기를 거의 코를 박다시피 대고 먹어대는 모습이, 흡사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전설 속의 구울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데네브는 그 고기를 다 먹지 못했는데, 고기가 너무 컸던 탓이다.
프렌치 대위는 자신의 고기를 다 먹고도 데네브가 남긴 고기를 먹은 후 자신의 접시에 남은 국물을 빵으로 훑어서 먹는 등 수인족 특유의 왕성한 식욕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 후식으로 나온 포도 하나를 혼자서 다 먹어치우자 데네브는 속으로 질겁하고 말았다.
데네브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정말 잘 먹었습니다, 대위님. 훌륭한 식사였습니다.”
“잠깐.”
데네브를 불러 세운 프렌치 대위가 서랍 하나를 열더니, 데네브의 주먹만 한 주머니를 꺼냈다.
안에서 금속음이 나는 것으로 보아 돈이 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노잣돈일세.”
“아닙니다. 필요없습니다.”
데네브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사실 그는 군복을 수령하기 전에 역마차 상회에 가서 장거리 역마차를 예약하는 데 돈을 거의 다 써 버리고 말았기에 돈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처음 만난 프렌치 대위에게 돈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제국군의 군법에 따르면, 첫 임관하는 장교에게 한 달치 임금을 미리 내주어야 하는 군법이 있으니 그대로 시행하는 것일세. 받게나. 전부 금화 20개와 은화 10개일세. 사실 자네에게 오늘 중으로 전령을 통해서 보낼 생각이었는데, 자네가 왔으니 직접 주는 것일세.”
예상보다 적은 액수에 데네브는 조금 실망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며 돈을 받았다.
“그리고 이 영수증에 서명하게.”
서명이 끝나자 프렌치 대위는 그 문서를 서랍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뒤 허리띠를 착용하고 벽에 걸려 있던 화려한 군도를 허리띠의 고리에 걸며 곰털 모자를 썼다.
“물론 그 돈은 어린애 용돈처럼 쓰면 안 되네, 데네브 소위. 이제 소위로 임관했으니 소득세를 내고 사환을 고용하여 자네의 식량을 따로 구입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고작 은화 1, 2개만 남을 걸세. 그러면 좋은 여행이 되게나.”
프렌치 대위의 말이 가슴을 후벼 파자 데네브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데네브는 역마차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궁전의 모습을 보았다.
수많은 첨탑들이 빽빽이 솟아오른 궁전은 하늘을 찌를 듯이 뻗어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거기에 첨탑들의 끝은 멀리서 보면 각각 별자리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게 만든 터라 밤에 보면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아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빨리 타쇼, 장교 양반. 갈 길이 멀잖소.”
마부가 재촉하자 데네브는 모자를 벗고―모자가 조금 높았다―마차에 탔다.
짐은 가벼운 옷가방과 식량을 담은 가방밖에 없었다.
그는 2주 가까이 마차를 타야 할 것이다.
데네브는 문득 마차에 타며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황제 폐하께서 분명 나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분명한데, 만약 내가 다른 곳으로 전출된다면 날 부르시지 못할 텐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는 혹시 자신이 착각하지 않았나 의문까지 들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질투심이 많은 장교 사회에 그런 전출은 오직 황제의 명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건데…….’

* * *

바율스 지방의 사예르 성채는 최전선이라는 상황과 알맞지 않게 그렇게 큰 규모의 성채는 아니었다.
많아 봐야 기껏 3천 명의 병사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며 달라지는 전쟁의 양상을 따라 건축된 사예르 성채는 최신 방어 시설이라 할 수 있는 보방식 구조물이었다.
보방식은 대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별 모양으로 보이는데, 기존의 성이나 요새와 다른 점이라면, 성벽이 낮고 두꺼워 적의 마법 공격이나 대포 공격에 방어력을 높을 뿐만 아니라 성루에 대포를 얹어서 포격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성벽 앞에는 깊은 해자와 제방을 쌓아 포탄을 튕겨 내 성벽을 보호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사예르 성채의 주둔 병력은 마르찬 대령의 34연대 1,800명과 근위대 102독립중대 69명이 전부였다.
‘멋있군.’
역마차의 창문을 통해 삼각형 모양의 외곽 보루를 보며 데네브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보루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었고, 성첩의 커다란 총안을 통해 검은 무쇠로 만들어진 96파운드짜리 거대 요새포가 커다란 주둥이를 내밀고 있는데, 방금 기름칠한 듯 번들거렸다.
마차가 성문 앞에 있던―성문은 열려 있었다―위병소에 접근하자 위병이 밖으로 나와 마부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그래서 데네브는 마차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도 마르티네즈에서 왔고, 102독립중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된 데네브 소위다.”
“오, 어서 오십시오.”
위병이 경례를 하였다.
그의 눈동자는 데네브의 왼쪽에 있는 소매장에 고정되어 있었다.
“죄송하지만, 소위님, 요새 안으론 외부 마차를 이동시킬 수 없습니다.”
“알겠네. 사람 좀 불러 주게. 내 짐은 간단하니 한 명만 부르면 족하네.”
“알겠습니다.”
위병이 성문 안으로 들어간 지 2분 만에 건장한 척탄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데네브보다 키가 약간 작았는데, 금방 온 것을 보아 미리 대기하고 있던 듯했다.
“레구스 일병입니다, 소위님. 102독립중대 소속입니다.”
준수해 보이는 그는 흔하지 않는 토끼과 수인족이었는데, 그의 곰털 모자보다 더 기다란 토끼귀를 올려다보며 데네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짐은 뒤쪽에 있다네, 레구스 일병. 내 숙소가 어디고, 중대는 어디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답하고는 얼른 데네브의 짐가방을 들며 앞장섰다.
사예르 성채의 내부는 군인들의 막사 건물과 훈련 시설, 장교와 부사관들의 숙소, 군인 가족의 집들과 병원, 요새 사령관의 사령부 건물 등이 있었는데, 계획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저희 102독립중대는 요새 사령관이신 마르찬 대령의 직접적인 명령을 듣지 않습니다. 하여 그들이 전령을 보낼 때 명령서가 아닌 요청서 형식으로 보낸답니다.”
레구스 일병이 앞서 가면서 말했다.
“부대 주둔지는 어딘가?”
“아, 네. 저희 부대는 성채의 북쪽에 자리 잡고 성채 북문의 위병을 서고 있지요.”
“성문만 맡는단 말인가?”
데네브가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물었다.
“아뇨. 가끔 가다가 정찰을 나가기도 한답니다. 저희 중대는 유격병 놈들도 있다 보니까 그 구실로 정찰을 보낸다니까요.”
유격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몸서리를 일으키며 말하는 것이, 그는 유격병을 지독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척탄병과 유격병은 서로 자기 자신들이 가장 뛰어난 정예 부대라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유격병은 키가 170 이하인 병사들로, 일반 보병들처럼 전열을 이루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2인 1조로 분산 진영을 이루며 싸운다.
그들이 쓰는 총은 활강식 머스킷이 아닌 강선이 파여 있는 머스킷이었다.
이들의 주 임무는 정찰은 물론이거니와 적군의 대열을 무너뜨리는 역할도 했고, 도망치는 적들이 재집결하지 못하게 방해하거나 추격하여 섬멸, 필요에 따라서 적의 장교를 저격하는 임무도 수행하였다.
하지만 근위연대의 유격병들은 아무리 키가 작아도 키가 175 이상 되어야 했기에―보통 연대 수준의 키였다―고집이 더욱 세기도 했다.
자신들은 척탄병에 비해서 키가 꿀릴 게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데네브는 레구스 일병에게 유격병들에 대해서 물어보려다가 이내 포기하였다.
그는 분명 유격병들에 대해 안 좋은 말만 늘어놓을 것이 분명했다.
“이곳입니다.”
북쪽 성문에 도착하자 레구스 일병이 성문의 오른쪽 성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102독립중대는 성벽의 안쪽을 개조해서 만든 2층짜리 건물에서 숙영하고 있었다.
“여기가 숙영지란 말인가?”
데네브는 기가 막혀 입이 딱 벌어졌다.
요새 안에 있는 모든 건물들은 건축가들이 손을 댄 듯 아름답게 지은 건물들이었는데, 근위대 소속의 건물은 이런 데라니, 불합리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훈련은 어디서 하나?”
“저기 공터에서 합니다.”
레구스 일병이 숙영지 앞에 있는 공터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장교 숙소는?”
“그 옆에 있는 오두막 보이시죠? 거기서 생활하시면 됩니다.”
레구스 일병은 오두막이라고 했지만, 회반죽을 바른데다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는, 그럴듯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주둔군 연대 병사들의 건물만도 못한 건물이었다.
“짐을 내 방에 놓아 두게나. 난 숙영 건물 좀 살펴봐야겠군.”
데네브가 숙영 건물을 향해 걸어갈 즈음, 누가 창문을 열더니 오물이 담긴 요강을 밖에다 아무렇게 버렸다.
그 때문인지 공터는 물웅덩이 같은 것이 많았고, 곳곳마다 썩은 악취가 났다.
“지금 뭐 하는 건가?!”
데네브가 소리치자 요강을 든 주범이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리다가 데네브를 보더니 냉큼 창문을 닫아 버렸다.
그의 고함 소리에 북쪽 성문에서 위병 업무를 보고 있던 중사 하나가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