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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5화)
Chapter 2 (3)
“소위님.”
달려온 그는 데네브에게 서둘러 경례를 하였다.
“그대 이름은?”
“알렉스입니다.”
“좋아, 알렉스. 당장 위병 관계자를 빼고 전 중대원을 공터로 집합시키게.”
“102독립중대! 집합!”
데네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렉스 중사가 절도있는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집합시켰다.
곧 숙영지 내부에서 종소리가 울리면서 여러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무슨 일인가 하며 데네브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관심없다는 듯 제 갈 길을 재촉했다.
순식간에 중대원들이 전부 모였는데, 그들은 군복도 제대로 입고 각반과 신발도 깨끗할 뿐만 아니라, 모자도 제대로 쓰고 있었다.
다만 여러 종족이 섞여 있다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인족, 엘프, 심지어 인간들 중에 검은 머리를 가지거나―대부분의 제국민은 갈색 머리였다―금발, 그리고 특이하게 붉은 머리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 병과도 다양해 척탄병, 유격병, 포병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열 명 정도의 공병까지 보였다.
“차려엇!”
데네브의 호령에 병사들이 발뒤꿈치를 부딪치며 차렷 자세를 취했다.
군기가 빠진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너희들의 중대장이 될 데네브 소위다.”
그런 후 데네브는 양피지로 된 자신의 임명장을 읽어 내려갔다.
매우 간단한 취임식이었다.
“부사관은 그대 혼자인가?”
데네브가 병사들을 둘러보며 알렉스 중사에게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마리 소위는?”
“야간 당직을 맡아 지금 취침 중입니다.”
지금 시각은 10시 42분.
기상을 6시에 하니 아직 취침을 한 지 5시간이 채 안 된 것이다.
“좋아, 다들 편히 쉬어. 대기하고 있도록. 그리고 중사는 날 따라오게.”
데네브는 숙영 건물의 1층 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름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그래도 내부는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추었는데, 2층짜리 침대 6대가 눈에 띄었다.
군 규격인 체크 무늬 이불이었다.
하지만 이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임에도 난로는 차가웠고, 그 옆으로 나무나 석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의 건물들의 굴뚝은 연기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보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데네브의 의문을 눈치챈 알렉스 중사가 말했다.
그런데다 복도와 달리 방 안에는 창문이 없어 환기가 안 돼 공기가 눅눅했다.
“식사는 어디서 하는가?”
건물을 다 둘러보았을 즈음 데네브가 물었다.
식당이 안 보였던 것이다.
“성채 전체의 식사를 담당하는 주방이 있습니다. 거기서 수레가 나옵니다.”
“식사량은 제대로 나오는가?”
가끔 가다가 식량을 착복하는 보급관들이 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만족하고 있습니다.”
“좋아.”
겉으로 보면 매우 안 좋아 보였지만, 내부는 그럭저럭 봐줄 만했다.
“중사, 그런데 왜 오물을 창문 밖에다 버리는 것인지 알 수 있나? 지금은 200년 전 시대가 아니야. 하수도도 정비되어 있는데 왜 하수도에서 버리지 않았는지 알고 싶네.”
“그게…… 죄송합니다, 소위님. 병사들이 귀찮아해서요.”
“그렇다면 성문 앞에 있는 해자에 내다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닌가?”
전에 데네브가 있던 요새는 오물을 해자에 버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요새 사령관님의 지침상 해자에 오물을 버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해자에 요새 사령관님께서 아끼시는 수십 마리의 비단잉어가 산다고 하더군요.”
“뭐?”
데네브는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거기에 가끔 가다가 귀부인들과 뱃놀이를 즐기시는데, 오물 냄새가 나면 안 된다고…….”
“허참.”
마르찬 대령의 사치에 데네브는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최전방 요새의 장교가 뱃놀이를 한다?
육군본부가 들으면 기절할 일이었다.
“여튼 이제 공터에 오물을 버리는 것을 금지한다. 조금 힘들더라도 하수도에다 버리도록 해.”
그 순간, 계단에서 발걸음이 들리더니, 레구스 일병의 모습이 나타났다.
“뭔가? 왜 갑자기 위치 이탈을 했지?”
“실례합니다, 소위님. 요새 사령부에서 소위님을 호출하셨습니다. 배치 신고가 아직 안 되었다고 합니다.”
데네브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해 레구스 일병의 목소리는 자연 기어 들어갔다.
“뭐? 배치 신고?”
보통 짐을 풀고 옷매무새를 제대로 잡은 다음에 사령부에 신고하는 것이 제국군의 관례였고, 일이 아무리 일찍 끝나도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사령부에서 준비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상식이었다.
게다가 그는 요새에 들어온 지 20분도 채 안 된 상태였다.
‘뭐, 그딴 놈들이 있어?’
하지만 체면상 데네브는 겉으로 화를 낼 수 없었다.
“좋아, 하사. 병사들을 해산시키고 내가 오는 즉시 오늘 일과 스케줄을 알려 주게.”
“알겠습니다.”
“일병은 길안내를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데네브는 그대로 걸어서 사령부로 이동했다.
사령부의 건물은 3층짜리의 아름다운 건물로, 마치 귀족의 저택과 같은 인상을 주었다.
거기서 그는 2층 대기실 의자에 앉아 5분 정도 기다리다가 부관의 호명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마르찬 대령은 남작의 작위를 받은 귀족 출신이었는데, 대식을 하는 탓에 배도 많이 나왔으며 목살이 두 겹으로 접히고 볼 살도 많아 전체적으로 얼굴이 축 늘어져 보이는 인상의 남자였다.
게다가 그는 대령보다는 남작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했고, 아무런 전공이 없어 가슴에 훈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서 오게, 소위.”
“네, 대령님.”
그는 데네브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신의 집무실 의자에 앉아 코안경을 낀 채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향해 데네브는 그대로 경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르티네즈에서 배치 명령을 받고 배치된 102독립중대의 중대장…….”
“소개는 됐네. 이미 1주일 전에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으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가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장기 척후 임무일세. 내일 아침에 즉시 떠나 주어야겠네.”
“네?”
배치받자마자, 그것도 아직 얼굴 인식도 되지 않은 병사와 장교들을 데리고 척후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됐다.
“대령님, 저는…….”
“남작이라 불러 주게, 소위. 그리고 잔말 말고 실행해 주게나. 그대와 같은 용사라면 충분히 해낼 것일세. 102독립중대가 척후를 나가 있는 동안 우리 연대가 북문의 위병을 맡을 것일세. 오늘 중으로 식량과 보급품을 수령하게.”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요즘 북쪽 국경이 시끄럽다네. 드리지아 왕국의 청년 국왕은 마치 고대의 패왕 다이나트로스인 양 꿈을 꾸는 인물이야. 요즘 들어 국경에서 놈들의 수색대와 보급 마차, 기병들이 발견되기도 한다네. 물론 아직까지 대규모 침공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해야지.”
그리고 이내 그의 시선은 데네브의 소매로 향하였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라 드리지아의 영토에 들어갈 각오를 할 만한 지휘관이 필요해 자네를 부른 것일세. 물론 이 일은 위험이 따르고 지금 명목상으로 드리지아 왕국은 우리와 평화 상태이니까 매우 조심해야 하네. 달리 물어볼 것이 있나?”
“네, 그렇습니다. 대…… 남작님, 작전구역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도를 잘 보게.”
데네브가 책상 가까이 다가가 마르찬 대령의 설명을 들었다.
“이곳을 기점으로 반경 30킬로 이내가 자네의 작전구역이네.”
넓어도 너무 넓은 작전구역이었다.
“이곳 지형은 자네도 보다시피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네. 개활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 하지만 드문드문 개활지가 있어 병력을 숨기기에 안성맞춤이기도 하지. 자네는 적이 집결할 만한 곳을 찾아서 상황 체크를 해야 하네. 그리고 만약에 드리지아 병력을 만나도 절대로 먼저 쏘면 안 되네.”
데네브가 항의하기도 전에 마르찬 대령이 먼저 말을 마쳤다.
“자네가 이 ‘요청’을 들어 줘서 정말 고맙네. 그러면 이만 나가 보게.”
요청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말하는 그의 태도에 데네브는 울컥하는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이건 분명 귀족 놈들이 그를 엿 먹이기 위해 꾸민 계략임이 분명하였다.
운 좋게 살아남아 장교 행세하는 빈털터리 자식이라 욕하며 말이다.
물론 그는 이름뿐인 몰락 귀족 출신에 도박으로 가산을 다 날린 아버지를 5살에, 어머니를 9살에 잃은 불행한 처지였다.
그 덕분에 15살에 사관학교의 시험에 합격을 하고도 돈이 없어 입학을 못했고, 3일 동안 배를 곪던 끝에 16살에 병사로 지원하여 장교가 된 것이었다.
그런 그를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재산을 갖고 있어야 대접해 주는 장교 사회에서 받아 줄 리 만무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저기…… 소위님?”
굳은 표정으로 데네브가 방 밖으로 나오자 레구스 일병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말을 걸었다.
“레구스 일병, 오늘서부터 내 사환이 되어 줄 수 있나?”
사환이 되면 일반 군인 월급은 물론이거니와, 사환으로서의 월급도 받기 때문에 매우 환영받는 자리였다.
“죄송합니다만, 전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소위님.”
레구스 일병이 굽신거리며 말했다.
“전 마리 소위님의 사환이거든요. 대신 공병대 출신의 고든 이병이 요리에 실력이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레스토랑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거든요. 가능시다면 그를 사환으로 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맙네. 그러면 복귀하는 즉시 그를 불러 주게나.”
데네브는 자신의 숙소―의자 하나, 탁상 하나, 침대 하나, 철제 난로가 전부인 작은 방―에 들어가서 그를 만났다.
고든은 금색의 콧수염을 기른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는데, 얼굴은 매우 창백하고 머리는 짧고 단정했다. 눈동자는 청회색으로 맑고 준수해 보였다. 거기에 조금 살이 찌긴 했지만,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다.
“고든 이병입니다, 소위님.”
“그래, 자네가 레구스 일병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사환이 필요하네. 그러니 고든 이병, 나의 사환이 되지 않겠나?”
“영광입니다, 소위님.”
고든 이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나이에 부주방장이면 쓸 만하겠군.’
데네브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에게 돈을 몇 푼 건네주었다.
“한 달에 은화 2개를 보수로 주겠네.”
일반 병사 월급이 한 달에 은화 1개인 걸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저…… 소위님, 돈이 많은데요?”
은화 말고도 동화나 금화가 섞여 있자 고든 이병이 말했다.
“은화 두 개를 빼고, 나머지 돈으로는 식량을 사 오라는 것일세. 마리 소위를 초대해서 대접해 주고, 장기 척후를 나가 있는 동안 밥을 먹으려면 많은 식량이 필요하니까.”
“장기 척후…… 말입니까?”
장기 척후라는 말에 고든 이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게. 젠장, 임관한 지 하루 만에 척후 활동이라니……. 와인도 사 오게나. 싸구려든 뭐든 상관없어. 많은 양을 사 올수록 좋네. 그리고 포트와인은 필수라네. 최소한 4병 이상 사 오게.”
“알겠습니다.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특별히 좋아하시는 것은요?”
“장기 척후이니 숙성 햄 두 덩어리를 사 오게. 한 달간은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야.”
“잘 알겠습니다.”
고든이 경례를 하고 밖으로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