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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6화)
Chapter 2 (4)


데네브는 고든 이병이 뭔가 물어보는 것이겠지 생각을 했지만, 들어온 것은 엘프 여자였다. 그것도 장신의 여성이었다.
금색과 붉은색과 초록색이 섞인 견장을 보니 유격병 견장이었다.
게다가 살이 얼마나 말랐는지 차렷 자세를 취했는데도 가랑이 사이의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마리 소위?”
그녀의 청자색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데네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그렇습니다.”
목소리는 간결했고, 작은 입술은 그 외의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리 소위. 이번 102독립중대의 중대장을 맡게 된 데네브 소위입니다.”
얼른 악수를 한 후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의자에 앉게 해 주고 자신은 침대에 앉았다.
자신이 중대장이긴 하지만 같은 소위였기에 데네브는 존대를 사용했다.
“일찍 일어나실 줄은 몰랐습니다. 야간 당직이라는데 좀 더 주무시지 않고…….”
데네브는 자신 때문에 그녀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못내 미안해졌다.
“아뇨. 중대장님께서 오셨는데 자고 있는 것이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모자를 벗으며 말했다.
모자를 벗은 덕분에 금발머리가 드러났는데, 그녀는 마치 금욕적으로 생활하는 성직자들처럼 머리를 땋은 후 말아서 틀어 올린 스타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마리 소위,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빵으로 간단하게 때웠습니다.”
“빵으로요?”
“네, 그렇습니다.”
데네브는 약간의 무례하더라도 이 여성 소위의 전신을 훑어보았다.
피부는 추운 스위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듯 하얗고 화장은 안 했는데, 얼굴은 대체로 깨끗해서 잡티가 거의 없어―여드름이 조금 보였다―보였다. 턱은 매우 뾰족했으며, 볼 살은 갸름해 그 덕분에 날카로운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청결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세수와 목을 닦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귓바퀴까지 깨끗했다.
며칠간 씻지 않고 분화장을 떡칠해서 향수만 뿌리고 다니는 귀부인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이 사람이 일반 병사보다 장사일 리가 없어. 체구가 너무 가늘잖아.’
“소위…… 중대장님.”
“아, 실례했습니다, 마리 소위님”
데네브는 자신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살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데네브가 명령서를 꺼내 마리 소위에게 보여 주었다.
“장기 척후 임무입니다. 이제 막 임명되었는데 이들을 이끌고 장기 척후를 나가야 하다니…… 나참, 난감하지요.”
“그렇군요.”
그녀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주름이 잡혔다.
“오늘 중으로 모든 준비를 끝낸 다음에 아침에 곧장 출발하라는군요.”
“개새끼들.”
데네브는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아,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그놈들이 여러 가지 곤란하게 만들었거든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하아∼ 일단 준비하도록 하지요. 일단은 소위가 병사들에게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특히 탄약 좀 많이 챙기도록 하지요. 병사들의 훈련 상태를 알아야 하거든요.”
“네.”
말을 마친 그녀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아∼”
그제야 데네브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프렌치 대위가 말한 것처럼 독립중대는 결코 군기가 빠진 부대가 아니었고, 마리 소위는 들었던 대로 고집에 세 보이지 않았다.
사실 데네브는 그녀가 면전에서부터 그를 중대장으로 인정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한데 처음 만나 본 마리 소위에게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이다.
“뭔가 잘못된 건가?”
데네브의 생각으론 프렌치 대위 같은 사람들이 굳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어 보였다.
‘대위님이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게 아닐까?’
그렇게 강직해 보이는 사람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데네브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Chapter 3 (1)


레구스의 추천대로 고든은 매우 훌륭한 사환이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만든 보르시치와 닭고기 꼬치 구이는 매우 환상적인 맛이었다.
거기에 요새 사령부에서 그를 위해 아주 좋은 준마 하나와 수송용 노새 두 마리를 준비해 주었다.
“아주 훌륭해.”
안장도 있고 보급품을 올리기 위한 고리들도 있었다.
척탄병 2명이 탄약 상자를 말과 노새에 걸었다.
박차는 없지만, 줄로 말 머리를 움직이면 어떻게든 조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하나 안타까운 것이, 완편 중대가 아니다 보니 군기를 받을 수 없었고, 여전히 그는 그의 중대 병력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그는 매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리 소위.”
데네브는 마리 소위를 불렀다.
작전을 나가는 이상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부를 때 존칭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의 부름에 마리 소위가 군도를 찬 채 등장했다.
“여기를 기점으로 반경 30킬로미터 이내로 수색을 해야 하는데, 야영지를 이쪽 개활지에다 두는 것이 어떨 듯한가요? 정찰 기점과 가깝고, 옆에 개울가도 있어 식수를 얻을 수 있어서 좋을 듯한데요?”
마리 소위는 지도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중대장님. 땅이 너무 저지대입니다. 게다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우기가 찾아올 때라서요. 하류 쪽보다는 상류 쪽 개활지에 자리를 잡는 것이 좋겠습니다.”
합리적인 반론이라 데네브는 불쾌한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좋아, 그러면 이곳으로 가야겠군.”
“중대장님, 행군 준비를 완료했습니다.”
때마침 알렉스 하사가 보고를 해 왔다.
“좋아, 가지. 마리 소위가 유격병들을 이끌고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나와 척탄병들이 따르고, 그 뒤를 공병들이, 그다음에 포병들이 가는 것으로 하지. 포병들은 대포가 너무 가벼워서 포신과 포가를 분해해서 가져간다는군. 물론 지고 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네.”
마리 소위가 고함을 지르며 유격병들에게 행군을 지시했다.
유격병들은 척탄병들처럼 대오를 이루지 않고 머스킷도 자기들 편히 든 채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임무 특성상 꽤나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들의 숫자는 15명이었다.
말을 탄 데네브를 따라 3열 횡대로 전진하는 척탄병들은 총을 어깨에 메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발을 맞추어 가는 등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숫자는 35명이었다.
또 그 뒤를 도끼를 짊어진 전투공병들이 가죽 앞치마를 흔들거리며 걸었고, 포병들이 분해한 대포를 짊어지고 죽을 상을 쓰며 걸었다.
특히 기다란 포신을 담당한 포병들은 벌써부터 죽을 맛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놋쇠로 된 그 포신의 무게는 무려 100킬로 정도나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3인 1조로 짊어지고 10킬로 이상 행군해야 했다.
“또 척후냐, 102독립중대?!”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보병 하나가 야유를 했다.
그의 동료도 모자를 벗어 흔들며 데네브의 병사들을 마음껏 조롱했다.
그 모습에 데네브는 그들의 지휘관 격인 어린 소위를 노려보았다.
“거기, 입 다물어! 알렉스 중사! 저 자식들, 이름 적어 와!”
데네브의 거친 반응에 어린 소위가 기겁하며 얼른 조치를 취했다.
덩치 큰 사내가―그것도 역전의 용사라 불리는―거대한 준마를 탄 채 노려보는 모습은 매우 무시무시했다.
“우리 중대장 나리, 괜찮은 사람 같지 않나?”
척탄병 하나가 키득거리며 자신의 동료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은 몰라. 나이가 너무 어려.”
그의 동료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데네브에게는 똑똑히 다 들렸다.
‘병사들이 날 시험하는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천천히 몰았다.
“쉿, 조용히해. 소위님께서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알렉스 중사가 병사들에게 훈계를 했다.
그 뒤로 그들은 데네브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서로 다른 잡담으로 들어갔다.
“집에 있는 아내의 편지에서 이번에 집의 창틀을 새로 바꾸었다는데, 바람막이도 있고 매우 아름다운 격자 무늬가 들어간 창틀이라는군.”
“그래? 어느 나무로 쓴 건가? 오크목?”
“단풍나무로 만들었다는군.”
“잘 고른 것이군. 단풍나무의 무늬는 정말 아름답지. 우리 집 대문도 그렇게 되어 있다네.”
“내가 예전에 있던 부대에 있던 보급관 녀석은 매주 지급되는 고기의 3할을 착복해서 따로 파는 녀석이었는데, 난 그 사실을 2년 동안 모르고 있다가 헌병들에게 끌려갈 때 알았다니까. 기요틴에 목이 뎅겅 잘릴 때 얼마나 고소하던지…….”
그렇게 행군을 1킬로미터쯤 하자 숲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때쯤 병사들의 수다는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분께서 내 단화를 보셨을 때 난 이제 내가 죽었구나 생각했지. 정말 무서웠어.”
“복장 검열이 제일 무섭긴 해.”
하지만 그들이 5킬로미터를 행군했을 무렵부터는 말이 점점 없어지더니, 6킬로미터를 주파했을 즈음에는 전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유격병들을 빼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유격병들은 개인 장비와 자신의 휴대 식량을 최대로 넣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반면, 척탄병과 전투공병들은 탄약 상자는 물론이거니와 이동식 천막 등 여러 가지를 같이 짊어지고 가는 덕분에 짐이 더 무거웠다.
포병들은 애초부터 무거웠기에 말이 없었다.
가장 힘든 것이 사환들이었는데, 레구스 일병과 고든 이병은 데네브와 마리의 개인 식량과 술병들을 챙겨야 했기에 그들의 짐이 가장 복잡하면서도 무거웠다.
행군의 지루함을 병사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으로 처리하던 데네브는 심심함에 말을 조금 빠르게 몰아서 마리 소위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관계도 쌓을 겸 말을 걸기로 한 것이다.
“마…….”
순간, 마리 소위의 팔이 뒤로 뻗어지더니, 정지 수신호를 보냈다.
병사들이 행군을 멈추었다.
데네브도 얼른 말에서 내려서 마리 소위에게 다가가려고 하였다.
“저기 누군가가 있다!”
그녀가 가리킨 개활지 중앙에 있던 나무에서는 과연 사복을 입은 이가 뛰쳐나와 반대편 숲 쪽으로 달려갔다.
간첩이 분명했다.
사복을 입은 것도 그렇고, 여긴 아직 제국의 영토인데 제국군을 보고 도망칠 자가 있을 리도 만무한데다가 이 지대 근처에는 민가가 없었다.
“알렉스 중사! 탄약 가방을 풀어!”
데네브는 얼른 달려가 말에 매달린 탄약 가방을 풀었다.
알렉스 중사도 반대편의 탄약 가방을 풀었다.
그사이 유격병들의 총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이랴!”
무장을 갖춘 데네브는 서둘러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사격 중지!”
마리 소위의 고함이 뒤에서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데네브는 군도를 뽑아 칼등을 어깨에 걸치며 오른손의 힘을 아꼈다.
그자가 숲에 들어가면 잡기가 힘들어지기에 데네브는 박차도 없으면서 양발로 말의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순간, 그자의 손이 품속에 들어갔다가 뭔가를 든 채 밖으로 나왔다.
권총이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자 부싯돌이 점화 화약에 불을 붙이며 화염이 났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불발이 난 것이다.
데네브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자는 데네브를 향해 그 권총을 집어 던지고는 다시 품속에서 다른 권총을 꺼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데네브의 말이 그에게 매우 가까이 다가간 뒤였다.
데네브는 그를 제압할 생각으로 권총을 잡은 손을 향해 군도를 휘둘렀다.
“아악!”
그자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손을 감싸 쥐었다.
데네브는 얼른 말 머리를 돌려 놀라서 앞발을 들어 올리는 말을 진정시켰다.
그자의 손목은 잘려 나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데네브는 잘려 나가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쥐고 있는 손과 자신의 피 묻은 군도를 보았다.
적의 손목을 자를 때 손에 전해진 전율이란!!
“항복하라. 양손을 들어 올려.”
흥분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데네브가 말했다.
하지만 그자는 움직일 생각조차 안했다.
“내 말 안 들리나? 양손을…….”
항복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 그자의 남은 손이 다시 품속에 들어가 권총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