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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7화)
Chapter 3 (2)
“너!”
데네브도 서둘러 권총을 꺼내 둘은 마치 결투에 나선 신사처럼 동시에 권총을 쏘았다.
그리고 그자는 가슴에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갔다.
데네브에게 발사된 탄환은 귀를 스치고 지나가 나무에 박히었다.
“와아!”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데네브는 급히 말에서 내려 죽어가는 그자의 품속을 뒤졌다.
품속에서 그는 작은 지도와 수첩, 무기, 나침반, 망원경 등을 찾아냈다.
“다행히 피가 많이 묻지 않았어.”
마리 소위가 다가오자 그가 말했다.
“피에 잉크가 지워지지 않게 해.”
“알겠습니다.”
마리 소위는 기쁨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간첩을 잡았으니 진급은 따 놓은 당상과 다름없을 것이리라.
“자네는 수첩을 봐. 난 지도를 보지.”
“이건 전부 드리지아 언어입니다.”
마리 소위가 말했다.
“확실한가?”
“네, 제가 그들의 말을 조금 할 줄 압니다.”
데네브가 접힌 지도를 펼쳤을 때는 피 묻은 자국이 크게 번져 나가 있었다.
지도는 매우 세세했는데, 일반 길에서부터 숲의 샛길, 동물들이 지나다니는 길까지 설명되어 있었다.
“대단한 녀석들이군.”
거기에 사예르 성채에 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적혀 있어 당혹스러웠다.
방어 구조물부터 외부로는 알려지지 말아야 하는 비밀 통로까지…….
“말을 탈 줄 아는 사람!”
데네브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희끗한 수염을 많이 기른 병사였는데, 그는 흑인이었다.
“이름이?”
“란넬 상병입니다!”
“란넬 상병, 지금 즉시 사령부로 가서 간첩을 잡았다고 보고하게. 이 증거물들을 챙기도록.”
데네브가 란넬 상병에게 지도를 넘기며 말했다.
“이건 일지입니다.”
마리 소위가 란넬 상병에게 수첩을 넘기며 말했다.
“무슨 말이 쓰여 있지?”
“그날그날에 따라 어디를 염탐했는지에 대해서 나왔는데, 우리 요새에 고정간첩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이름의 인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좋아, 고든! 당장 잉크랑 종이, 깃펜을 가지고 와!”
고든이 전해 준 종이를 받아 허벅지에 댄 데네브는 날렵하게 보고서를 적어 나갔다.
요새 사령관이신 마르찬 남작님께.
삼가 급히 아룁니다. 본관은 요새 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척후 임무를 위해 부대를 이동하는 도중 소대장인 마리 소위가 우리의 행군을 숨어서 감시하던…….
그의 필체는 거침없이 나아가 날렵하고 깨끗했지만, 부분부분 맞춤법이 틀려 있었다.
“이걸 당장 마르찬 대령께 전달하게. 내 말을 타고 가라. 새로운 명령을 받을 때까지 여기서 대기할 것이니 답변을 받아 오게.”
“이것으로 공훈을 세울 수 있겠군요.”
마리 소위가 떠나는 란넬 상병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첩자를 죽인 것이 마음에 걸린다.”
데네브는 간첩을 잡았다는 것보다는 그자의 손목을 잘라 버릴 때의 감각을 다시 음미해 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이미 전쟁에 2번 이상 나가 보았고, 마지막 전투는 발레타 성채에서 싸웠다.
그리고 총검으로도 적을 많이 찔러 보았지만, 칼을 휘둘러 잘라 내는 느낌보단 형편없었다.
그 끔찍한 느낌은…… 최악이면서 희열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중대장님.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드리지아가 우릴 공격 준비한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마리 소위는 공훈을 세운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 것 같았다.
“부대, 쉬어.”
데네브는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한 후 전령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리 소위, 저곳에 첩자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그제야 생각이 난 듯 데네브가 물었다.
“갑자기 나무 밑에서 뭔가 반짝이더군요.”
마리 소위가 망원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것은 단안경 형태였는데,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분명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간첩이 큰 실수를 했구만.”
데네브는 웃으면서 그 망원경을 펴서 보았다.
황동으로 된 그것은 구경이 크고 배율도 높았으며, 최신 프리즘 식으로 빛을 잘 끌어모아 시아가 환해서 보기 좋았다.
‘분명 달이 뜬 밤에도 잘 보일 거야.’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이것은 그의 전리품은 아닌 것 같았다.
첩자를 발견한 것은 마리 소위였다.
“이건 당신의 전리품이어야 할 것 같군요.”
데네브가 마리에게 그 망원경을 전해 주며 말했다.
“실례지만, 전 이미 있습니다.”
마리 소위가 개인 가방에서 작은 망원경을 꺼내며 말했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일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게 더 좋은…….”
“아닙니다, 중대장님. 이 전리품은 중대장님께서 가지셔야 좋을 듯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상관이니까요.”
“……좋습니다.”
데네브는 그 망원경을 개인 가방에 넣었다.
그는 사실 망원경도 없는 신세였기에 그녀에게 매우 고맙게 느끼고 있었다.
‘그나저나 사령부에선 우리에게 뭐라고 하려나?’
분명 포상이 있을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훈장이나 상금을 받을 것이다.
거기에 마리 소위는 매우 들뜬 나머지 평소에 하지도 않던 말을 조잘조잘거리며 병사들과 잡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유격병종이지만 모든 병사들과 친한 듯했다.
데네브가 그녀를 오해했던 것이다.
“상금을 받으면 너희에게 각각 맥주를 사도록 하지.”
“정말입니까?”
“그러면 내가 거짓말을 하겠나?”
이에 병사들은 데네브를 보았다.
“좋아, 나도 사도록 하. 물론 상금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병사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모자를 벗고 높이 흔들어댔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사령부에서 돌아오는 전령을 기다리게 되었다.
‘분명 좋은 징조겠지?’
데네브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병사들의 신뢰를 얻어 낸다면 그보다 좋을 게 없지.’
하지만 3시간이 지났는데도 란넬 상병은 돌아오질 않았다.
물건을 싣고 행군을 한데다 데네브가 간첩을 잡느라고 전속력으로 달리긴 했지만, 그 정도로 지치면 준마라 불릴 수가 없을 텐데도 소식이 없었다.
“이상하군요.”
마리 소위가 의아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녀 또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2시간이면 충분히 올 줄 알았는데…….”
“소위님! 저기 옵니다!”
그 순간, 유격병 중 하나가 소리쳤다.
그의 말대로 란넬 상병이 말을 타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왜 이제야 오는 건가?”
데네브는 기쁨에 겨운 얼굴로 그를 맞이하며 물었다.
“그래, 사령부에서 무슨 말을 하던가?”
“네, 그것이…….”
란넬 상병이 말을 똑바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데네브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해 봐.”
“잘 알았으니, 마저 척후 활동을 하라는군요.”
“그리고?”
“없습니다.”
“뭐야, 그러면 그 말밖에 안 했단 말인가?”
오히려 마리 소위가 더 성난 얼굴이었다.
“망할 자식들, 우리의 공을 빼앗을 생각인 게 분명해!”
“소위!”
데네브의 꾸중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사실 항변을 하려고 하였지만, 데네브 역시 분노하는 듯 보였기에 그녀가 혼자 나서는 듯한 모습은 썩 좋지 못했다.
장교로서의 품위 또한 망치는 것이었다.
“사령부가 일단 그런 결단을 내렸다고 해도 우리의 공이 사라지지 않으니까, 일단 사령부의 명령을 따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마리 소위가 아니더라도 병사들도 불만이 생겨났다.
그들의 맥주가 공중으로 붕 떠 버린 것이다.
“다시 행군한다. 중사, 병사들을 인솔해. 오늘 밤까진 목표 지역에 도달해야 한다.”
병사들의 야유 속에 데네브는 알렉스 중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알렉스 중사가 소리를 질러 불만에 찬 병사들을 닦달하며 행군을 준비시켰다.
잔뜩 기대하다가 꺼져 버린 촛불처럼 중대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야영지에 도착하자마자 포병들이 아무렇게나 너부러졌지만 알렉스 중사는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다.
대신 척탄병들을 닦달해서 천막을 치게 하고 저녁 식사를 위한 물을 길러 오게 했다.
전투공병들은 도끼를 지고 땔감으로 쓸 나무를 자르러 갔고, 유격병들은 마리 소위를 따라 짐을 내린 후 주변 지역을 정찰하러 떠났다.
그리고 2명의 사환은 장교들의 천막을 치고 요리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들은 장교들의 식사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식사 또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나쁘지 않아.”
데네브가 고든 이병이 준 배급용 빵을 먹어 보며 말했다.
그는 병사들의 식사를 관리 감독했다.
“오늘 아침에 구운 빵이라서 그런지 전혀 딱딱하지 않고, 아주 좋군. 다만 반죽을 충분히 발효시키지 않아서 물기가 너무 많아. 물론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쉽게 굳지 않아서 먹기 좋을지도 모르지만.”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배급을 할까요?”
“그대로 하게. 다들 많이 지쳤으니 빨리 배급을 하는 것이 나을 거야. 저녁에 주는 고기는 소시지인가?”
“네. 그것도 마늘로 양념이 된 소시지입죠.”
고든 이병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 자네가 잘 알아서 하게. 병사들의 식사를 먼저 준비하고 우리 건 나중에 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레구스 일병!”
고든이 물러난 후 데네브는 레구스 일병을 불렀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오늘 식사를 만들 때 마리 소위의 식량을 쓰지 않도록 하게. 내가 저녁 식사에 초대할 생각이야. 그러니 자네는 병사들의 식사만 신경 쓰면 될 것이네.”
“아, 알겠습니다.”
데네브는 오늘 그녀에게 멋진 식사를 대접할 것이다.
햄도 얇게 썰어서 굽고, 그 기름에 야채와 콩을 볶아서 내놓고, 어제저녁에 산 닭이 아침에 낳은 신선한 달걀로 프라이를 해 주면 씁쓸해진 그녀의 기분이 많이 풀린 것이며 그녀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될 것이다.
거기에 고든이 어디서 와인을 사 왔는지는 몰라도 질 좋은 포트와인을 구했으니 같이 거나하게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취하는 건 무린가?’
데네브는 생각을 정정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천막 안은 매우 비좁았지만, 튼튼한 캔버스 천으로 된 이동식 탁자와 의자, 침대가 있으니 그나마 아늑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고든 이병이 들어와 작은 나무 촛대를 세우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자 천막 안이 어느 정도 환해졌다.
“유격대는 아직 안 온 건가?”
약간 걱정이 된 데네브가 물었다.
1시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질 않은 것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우선 커피를 내 올까요?”
“그래 주게. 설탕은 2스푼이면 족하네.”
고든 이병이 커피를 내 올 무렵, 병사들의 환호성 소리에 데네브는 천막에서 나왔다.
그러자 귀환하는 유격병들의 모습이 보였고, 의기양양한 그들의 손에 꿩이나 메추라기 같은 새들이 잡혀 있었다.
고든 이병과 레구스 일병이 그 새들을 받았다.
그것들은 오늘 병사들의 저녁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