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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8화)
Chapter 3 (3)


“레구스, 이 꿩 2마리는 따로 놔둬. 다치지 않게 두라고. 날개만 맞춰서 날지 못하니까 다리만 묶어 두게.”
강선총을 어깨에 걸머진 채 다가오며 마리 소위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 그런데…….”
“내가 말하지.”
레구스 일병의 말을 자르며 데네브가 나섰다.
“마리 소위…….”
“탄약을 사냥 따위에 낭비했다고 뭐라 하시는 것이면 듣지 않겠습니다.”
“뭐?”
예상도 못한 마리 소위의 엉뚱한 말에 데네브는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그게 아닙니다. 마리 소위, 난 오늘 저녁 식사에 당신을 초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식사 초대요?”
마리 소위는 난생처음 듣는 말인 것처럼 되묻다가 이내 총을 잡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실례했습니다, 중대장님. 전 그런 줄도 모르고…….”
“그래서, 식사 초대는요?”
데네브는 저도 모르게 차가운 말투가 나오자 당혹스러웠다.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일단 커피부터 한잔하시죠.”
둘이 함께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 명의 사환이 왠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까 일은 정말 죄송했습니다. 전 중대장님께서…….”
천막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마리 소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르고 있던 것이니까 괜찮아요.”
데네브가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말했다.
마침 사환이 마리 소위의 양철 잔에 커피를 담아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난 사냥하는 것 가지고 일일이 참견하는 보급관이 아니랍니다. 하하하!”
그가 웃자 마리 소위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녀의 하얀 치아가 촛불을 받아 살짝 반짝이는 듯했다.
“여태까지 뵈었던 다른 중대장들과는 다르군요.”
“당연하지요! 전 그들처럼 앞뒤가 꽉 막혀 무조건 규칙에 따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 성격상 그런 건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런데 마리 소위, 어떻게 그렇게 총을 잘 쏘는 것이지요? 아까 잡은 꿩들은 날개만 맞춰 산 채로 잡았다고요?”
“네.”
칭찬을 받자 마리 소위의 양 볼에 약간의 홍조가 들었다.
데네브의 생각에 그녀는 칭찬에 약한 듯했다.
그 덕분에 여태까지 딱딱했던 인상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천성은 말괄량이 같으리라.
그러나 직책이 장교이다 보니 내색을 못하고 최대한 겉모습을 딱딱하게 굴려는 것이리라.
“사격은 어디서 배우셨나요?”
“저는 오래전에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분께선 사냥을 가시면 1주일 동안 밖에서 생활하셨거든요.”
“탁월한 스승을 두셨군요.”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중대장님, 실은 아까 전에 있은 사령부의 태도 때문에 기분 전환 겸 사냥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정찰 도중 사냥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총소리 때문에 정찰병의 위치가 발각될 수 있는 것이어서 매우 심각한 위험 행위이긴 했다.
하지만 데네브는 오늘은 그녀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괜찮습니다, 마리 소위. 괜찮아요.”
그때, 고든이 들어와 두 사람에게 접시와 나이프, 포크를 가져다주었다.
전부 양철로 된 보급용 식기였다.
그 후 빵이 담긴 바구니와 마멀레이드 잼이 나왔다.
데네브는 이제 이야기의 화제를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실 전 지금 아직도 정신이 없습니다. 임지를 배정받은 지 하루도 안 돼서 척후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전 제 병사들을 모르고 있는 것과 다름없지요. 그것 때문에 소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앞으로 어떤 질문이든 성실하게 답하겠습니다.”
그러더니 마리는 빵 하나를 절반으로 잘라서 마멀레이드 잼을 듬뿍 발라 한입 베어 먹었다.
최대한 예의를 차리며 먹으려는 것 같았지만, 배가 많이 고팠음이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햄 좀 두껍게 썰어. 알겠지?”
고든이 이번에는 치즈를 가지고 들어오자 데네브가 조용히 불러서 그만 들을 수 있게 작게 말했다.
“사실 저희 병사들은 서로가 친하고 매우 성실합니다. 무기 관리도 잘되고 있고요. 사격 실력도 뛰어납니다. 다만 유격병들과 척탄병들이 가끔 가다 말싸움이 나지만, 그럭저럭 서로를 존중해 줍니다.”
마리 소위가 치즈 조각을 포크로 찍어 촛불에 살짝 녹이며 말했다.
“프렌치 대위는 그들이 근위대 각 연대에서 가장 못난 쓰레기들을 모은 거라고 하던데요?”
데네브는 혹시나 밖의 누가 들을까 봐 작게 말했다.
“아, 대위님께서 오해하신 것입니다.”
“그래요?”
“네. 대위님의 중대에서 나온 사람은 저 혼자밖에 없거든요. 대위님은 물론 존경할 위인이지만, 너무 원칙을 따져서 저와 여러 가지로 다툼이 많았습니다. 그 덕에 저도 여기 온 것이지만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데네브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에 대한 사실을 묻어 두려는 것 같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각 연대별로 쫓겨난 병사들은 모두 장교에게 찍힌 자들입니다. 지금 중대장님의 사환으로 있는 고든은 대대장이 말도 안 되는 임금을 주고 사환으로 고용하려고 했거든요. 동화 50개였지요.”
은화 1개는 동화의 100개의 가치가 있으니 데네브가 주는 임금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임금이었다.
“거기에 전령으로 갔던 란넬은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요.”
“다들 말도 안 되는 사연이 있는 것이었군요.”
“그렇지요. 그래 놓고서 그들은 분명 대위님께 문제아들을 모아 둔 것이라고 말한 것이겠죠.”
그제야 데네브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우려와 달리 그의 중대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부대였던 것이다.
“그러면 포병대는? 전투공병도 그런 건가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포병대는 대포째로 쫓아내야 하니 저 말도 안 될 정도로 썩어 빠진 3파운드 포 2개를 주고 내쫓았지요. 전 저걸 쓰느니 차라리 강선총을 쓰겠어요.”
데네브도 한숨을 쉬었다.
3파운드 포는 대포알이 너무나도 작아서 저것을 과연 전투에 써먹을 수 있을지가 벌써부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초구 속도가 빠르고 활강인 데도 불구하고 곧은 포물선을 그리며 700미터까지 날아가니, 잘하면 써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전히 암담하긴 했지만.
“그런 혐오스러운 것에 비해서 저희 강선총은…….”
그 순간, 고든이 프라이팬째로 들고 들어왔다.
프라이펜에는 4개의 뚜껍고 넓적한 햄 조각과 햄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기름에 달걀 프라이 2개가 들어 있었다.
고든은 그것을 접시에 옮기기 전에 햄 기름이 달걀에 고루 스며들도록 이리저리 기울였다.
“그만하고 그냥 내 와.”
더는 참을 수 없는 향긋한 냄새에 데네브는 그만 말을 툭 내뱉고 말았다.
이에 고든이 먼저 데네브의 접시에 햄 조각을 담아 준 후 그 위에 달걀을 올렸다.
“달걀을 드실 때 노른자가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반숙입니다.”
“고맙네. 아, 그리고 와인 좀 내 와.”
데네브가 계란과 햄을 받은 후 말했다.
고든이 이번에는 마리의 접시에 음식을 덜어 주며 말을 꺼냈다.
“훈제 햄이 아니라 절여서 숙성시킨 것이라 계란과 함께 드시는 것이 알맞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마리 소위도 잔뜩 기대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빵을 썰어서 거기에 햄과 계란을 올린 후 베어 먹었다.
그것이 정말 맛있어 보여 데네브도 따라 했는데, 아직 뜨거웠던 햄과 계란 덕분에 그 맛은 아주 기가 막혔다.
“읍!”
마리 소위가 실수로 건드리는 바람에 터진 노른자가 접시에 흘러내렸다.
다행히 옷에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둘은 음식을 먹어대느라 잠시 동안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고든이 가져온 와인은 달콤하고 도수가 약간 있어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없애는 데 아주 좋았다.
그런 후 햄 기름에 볶은 야채와 병사들이 먹는 소시지를 삶아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요리가 나왔다.
“아주 훌륭해.”
소시지와 토마토를 먹으며 데네브가 고든을 연신 칭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네브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아직 배가 고팠다.
그때, 마리 소위가 말했다.
“저녁은 정말 잘 먹었습니다, 중대장님. 근데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술 한잔 어떠십니까?”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생글생글 웃었다.
“술 한잔요?”
“마침 고향의 어머니께서 능금주와 칼바도스를 보냈거든요.”
“능금주? 칼바도스요?”
그것은 데네브가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네, 능금주는 사과를 포도처럼 으깨서 만든 건데, 일종의 스파클링 와인이지요. 그것을 증류해서 만든 게 칼바도스인데, 일종의 브랜디입니다.”
데네브는 이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거기에 마침 병사들이 구운 꿩 한 마리와 메추라기 두 마리를 보내 왔다.
데네브는 빵을 넓게 자른 뒤 고기들을 그 위에 올려 고깃기름이 빵에 스며들게 하는 귀족 같은 사치를 누렸다.
귀족들은 빵을 이렇게 접시 대용으로 쓰다가 고기만 먹고 남은 빵을 농노들에게 하사품으로 주었던 것이다.
마리와 같이 잔을 건배하면서 데네브는 그녀와 완벽하게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함께한 식사를 통해 많은 것을 알았고, 많은 오해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능금주의 맛은 톡 쏘는 느낌이라 매우 기분이 좋았다.
물론 알콜이 별로 없어 조금 약하다 싶었지만, 칼바도스는 그런 데네브의 아쉬운 마음을 충분히 충족시켰다.
거기에 꿩과 메추라기 덕분에 배도 채우자 그의 기분은 최고조로 이르렀다.
사실 알고 보니 마리 또한 음식이 부족했던 듯했다.
술에 취한 둘은 어느새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제국군의 군가 중 하나인 ‘힘내라 젊은이여, 이것이 영광의 길이다’를 5절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렀다.
마리는 가벼운 접촉은 그다지 상관 안 하는 털털한 성격이라서 오히려 그녀가 어깨동무를 먼저 했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레구스에게 업혀 자신의 천막으로 가는 동안에도 계속 군가를 불렀다.
“장화도 벗기고 양발도 벗겨 줘. 이대로는 잘 수 없잖아.”
그녀가 무사히 천막에 옮겨지는지 지켜보던 데네브에게 마리 소위가 꼬인 발음으로 툭, 내뱉었다.
완벽하게 취한 나머지 그녀는 데네브도 못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말대로 장화와 양말을 벗긴 뒤 담요를 덮어 주었다.
어느새 그녀는 잠이 들어 있었다.
잠이 든 마리 소위를 한 번 살펴본 데네브는 풀린 단추를 다시 채우고 최대한 정신을 또렷이 한 후 알렉스 중사를 불렀다.
회중시계를 보니 시간이 10시였다.
“중사, 불침번으로 4명을 세우고, 1시간 간격으로 교대하게. 나도 불침번을 서겠네, 4시쯤에…….”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중대장님.”
알렉스 중사가 말리며 데네브에게 숙면을 권했다.
사실 그는 그렇게 술을 마셔 놓고도 똑바로 말을 하고 제대로 서 있는 데네브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좋아, 그러면 내일 기상은 7시일세. 한 시간 연장하도록 하지. 다들 피곤해 보이니까.”
알렉스 중사의 배려 덕분에 데네브는 편히 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