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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마스터 5권(125화)
Part 11. 마지막 스토커(3)
“이곳에 공국을 세우게 되는군그래.”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숲과 대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로 퀘스트 성공의 보상으로 5개국으로부터 받은 땅이다.
5개국이 모두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반경 1천 킬로 미터가량의 땅이다.
여기서부터 나라를 세우고 내가 왕이 된다. 무척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만큼 보람 있고 재미있기도 할 것이다……라고 생각은 한다만 재경이의 일이 해결된 지금, 나는 게임 폐인에서 벗어나 정상인의 삶에 충실해야 하니…….
“오빠, 생각을 바꾸시면 안 돼요? 내가 공왕비가 되어서 내조 잘할 테니 멋지게 공국을 한 번 다스려 봐요, 네?”
세영이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자 세일, 세이, 세삼, 세사도 동의하는 듯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소용없다고.
세상일이란 게 시작한 게 있으면 끝날 때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나 몰라라 하고 떠나 버린다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면…….
“내 후계자를 정하겠다!”
“후계자요?”
“그래, 후계자. 후계자를 정해서 내 모든 것을 물려주도록 하겠어. 그래서 그가 공국을 세워서 잘 다스려 나가면 될 거 아니냐?”
“…….”
내 말에 세영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짜식,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 함께는 싫다는 거군. 고맙긴 하다만…….
근데 세영이를 제외한 다른 녀석들은 일제히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 후계자가 자신이 아닐까 하는 표정들이군.
나는 스윽 주위를 둘러보았다.
파티원들을 위시해서 제자들, 그리고 아직도 안 가고 있는 미라쥬 길드원들 일부가―이 인간들은 도대체 뭣 때문에 아직도 안 돌아가고 이곳에서 버티면서 밥을 축내는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기대에 들뜬 표정을 하고 있구먼.
이 중에 한 녀석을 골라서 물려주긴 해야 하는데…… 골치 아프군.
아무한테나 선뜻 주자니 아까운 생각이 들고 말이지.
현재 내가 끝내주는 직장에 다니지만 않는다면 계속 게임하면서 돈 좀 벌어 보겠구먼…….
내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나타났다.
저 굵은 다리통에 저 짧은 치마는…….
엽기 엘프녀 코스프레 중인 황 과장이로군.
근데 왜 나타난 거지?
설마 내가 게임을 접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나타난 건가?
“우영 님, 오랜만입니다.”
“황 과장님도 여전히 수고가 많으시군요. 변함없이 인상적이시고 말입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혀 칭찬으로 드린 말씀이 아닌데…….”
“…….”
“헤헤, 농담입니다, 농담. 어쨌거나 무슨 일로 나타나신 겁니까? 뭐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내 말에 황 과장은 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파티원들과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리를 좀 옮겼으면 합니다. 우영 님과 단둘이서만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죠.”
“알겠습니다…….”
“자, 이곳이면 괜찮겠죠?”
“좋네요.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근처의 절벽 위에 얹혀 있는 흔들바위 위에서 우리 둘은 대화를 시작했다.
“회사에서 내려온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제가 재경이를 구해 낸 걸 아는가 보죠?”
“네……. 어저께 확인했습니다. 우영 님도 참……. 저한테라도 말씀 좀 해 주시지 않구요.”
“잠깐 깜박했습니다.”
난 전혀 안 미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사실 왁슨이 재경이를 찾는 데 도움을 준 것도 별로 없으니까.
좌우간 황 과장은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회장님께서 우영 님한테 치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정말 애쓰셨다고요.”
순간 내 얼굴에는 비웃음이 그려졌다.
치하라는 말 자체가 못마땅했으니까 말이지.
그런 내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황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우영 님의 형님 가족이 겪은 그동안의 고통에 대한 보상은 안 되겠죠. 그건 우리도 압니다.”
“…….”
“그리고 우영 님께서는 이 게임을 접으실 거죠?”
“그럴려고 여기 온 겁니다. 이 일대가 내가 공국을 세울 땅이라서요.”
“후계자를 정해서 다 물려주시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내 말에 황 과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이케루스의 질서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가 있으니까요.”
후계자한테 공국과 내 모든 것을 물려주는 게 안 된다고?
이거 난감하네.
“정말 안 됩니까?”
“정히 물려주고 싶다면 NPC한테 물려주세요. 유저는 안 됩니다.”
“…….”
유저는 안 되고 NPC는 가능하다고?
“왜 그런고 하니, 지금 우영 님이 그동안 게임하면서 이룬 것들이 너무 엄청나거든요. 돈으로 따져도 굉장한 액수고……. 그걸 유저한테 넘겨주게 되면 이건 상당한 문제가 됩니다.”
이해가 되는군.
돈 문제니까 아무래도 여러 가지 말썽이 생길 수가 있겠지.
하지만 NPC가 후계자가 되면 그럴 문제가 없다는 거군.
NPC가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가지더라도 그걸 가지고 질투하거나 시비를 걸 사람은 없으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NPC를 후계자로 정해서 다 물려주시면 우영 님께도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우영 님이 NPC한테 물려주는 그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해서 우리 왁슨이 우영 님 통장에 넣어 드릴 겁니다.”
허거거걱!
이게 정말일까? 근데 엄청난 그 돈이 엄청날 텐데…….
“개인한테야 천문학적인 액수겠죠. 아마 우영 님이 평생 일을 안 해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로요. 하지만 우리같이 큰 회사한테야 푼돈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영 님은 그걸 받으실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고맙군요.”
“뭘요. 어쨌거나 그럼 얘기는 다 잘되었으니 저는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는 게임 속에서 더 뵐 일이 없을 테니 아쉽네요.”
“저두요. 황 과장님의 그 각선미를 다시 감상 못하게 된다 생각하니 슬픕니다.”
“입에 침이나 좀 바르시죠.”
“헤헤헤…….”
나와 황 과장은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파티원들이 있는 데로 돌아왔다.
“NPC만 된다라…….”
“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세영이가 궁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나는 세일, 세이, 세삼, 세사 형제를 보았다. 사실 세일이한테 다 물려주려고 마음먹었는데……. 근데 유저는 안 된다니 어쩔 수 없군.
그렇다고 여기 있는 NPC 중에 후계자를 정하긴 싫다.
그렇다면…….
난 세영이를 돌아보았다.
“비기닝 시티에 들러야겠다.”
“그곳엔 왜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거긴 왜 가요?”
“그 결정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비기닝 시티에 도착해서 미라쥬 길드의 건물 앞에 선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윽고 결심을 하고는 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 우영. 어서 와!”
이사도라가 반색하면서 나를 맞았다.
“말할 게 있어서 왔는데…….”
“중요한 건가 보지?”
“매우 중요한 일이야.”
“…….”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자 이사도라도 말없이 나를 마주 보았다.
난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좀 오랫동안 다른 대륙으로 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아주 오랫동안 못 돌아올 거 같거든.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얻은 지위와 모든 재산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가려고 하거든.”
“다른 대륙으로 간다고?”
예상했던 대로 이사도라는 내가 멀리 떠난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사도라의 두 손을 먼저 잡으면서 그녀를 진정시키는 동작을 취했다.
이러지 않으면 자칫 칼이라도 빼서 날 절단 내려고 할지 모르니까…….
“이사도라! 이사도라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줄 거지?”
“응? 으응…….”
선수를 쳐서, 내가 돌아올 거라는 걸 강력히 암시하자 그녀는 당황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일단 고비는 넘긴 것 같군.
“하지만 나…… 우영한테 그거 물려받기 싫어. 난 그런 거 받으려고 우영과 함께 있고 싶어 한 건 절대로 아니니까.”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사도라가 말하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한테 물려줄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다른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이라고?”
이사도라는 조금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자신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싶은 표정이군.
하지만 그럴 사람이 있지.
아주 유력한 사람이 말이지.
욕심도 없고 때 묻지 않은 심성의 소유자가 말이다.
물론 유저가 아니고 NPC이고 말이지.
나는 손가락으로 방 한쪽의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누워 있는 바로 저 애! 내 모든 것을 물려받을 후계자는…….”
결국 그것으로 모든 건 다 잘되었다.
이사도라는 충분히 납득했고 애기의 후견인으로 공국과 영토 재산을 잘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실을 세영이와 네 형제, 제자들과 파티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말해 주었다.
“말했던 대로 난 이곳을 떠나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다. 니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각자 알아서 해라. 내가 없어도 니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게임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
내 말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란슬링과 왕싸가지 다쓰까지도 말이지.
세영이는 내가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군.
난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고는 등을 돌렸다.
길진 않았지만 언제까지라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너희들과 내 손에 스러져 간 녀석들을 포함해서 이케루스란 게임 속에서 접한 모든 존재들을 말이지.
<『스토킹 마스터』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