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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5화)
Chapter 7 (5)


훌륭하게 적들을 처리한 아군의 제2진은 거의 전사자 없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후퇴해 들어왔다.
대대 군악대에서 ‘트리켄이여, 굴복하라’라는 군가가 연주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나팔 소리도 났다.
그 군가는 200년 전에 만들어진 군가였는데, 당시 제국의 황제였던 라인하르트 1세가 바율스 지방을 평정하면서 당시 드리지아의 국왕이었던 트리켄을 무릎 꿇리고 절을 하게 만들어 항복 문서에 서명하게 만든, 일종의 라인하르트 1세의 칭송과 드리지아 인을 조롱하는 군가였다.
“앞에 총! 총검 앞으로!”
십자창을 든 어떤 중사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 창은 총검전에 특화된 창으로, 2.5미터의 길이에 십자가 모양의 창날은 머스킷을 옆으로 쳐 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적을 쉽게 찔러 죽이게 고안된 것이었다.
데네브의 대대가 다시 전방으로 갈 즈음에는 적의 연대는 완전히 박살이 난 나머지 1개 대대 병력을 제외하고 전부 완전히 패주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지?’
데네브의 대대 또한 절반 가까이 죽었기에 5개였던 중대가 지금은 3개 정도의 중대밖에 안 남았다.
그때, 북소리의 템포가 빨라졌다.
대대장은 그대로 총검전을 감행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들도 마찬가지였다.
적들 역시 총검을 끼운 채 달려들었다.
마리 중위가 맡은 80명의 임시 편성 소대가 데네브의 본대를 앞질러 나갔다.
그녀는 이미 군도를 뽑았으며, 그녀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다리가 서로 교차하는 것이 보였다.
“호오.”
십자창을 든 중사의 시선은 마리 중위의 엉덩이쯤에 향하고 있었다.
군에서 입는 바지는 꽉 조일 정도로 입어야 해서 신체가 그대로 드러났는데, 마리 중위의 바지 또한 그런 바지였다.
“중사.”
“죄송합니다, 대위님.”
하지만 중사 말고도 다른 병사들의 시선도 마리 중위의 엉덩이로 향하고 있었다.
데네브는 중사뿐만 아니라 병사들 역시 딴생각을 하는 여유를 부릴 정도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후위대에는 무기상인이나 매춘부들이 없었다.
프라우셔 중장의 본대가 떠나면서 같이 떠나 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군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지, 위험한 전장에 나갈 생각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전장에 나가는 남성의 성욕은 생존하려는 욕구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에 분명 병사들은 살아남는다면 술과 여자를 찾을 것이다.
술에 취해 성욕을 풀면서 전쟁에서 잃은 동료들에 대한 슬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때만큼은 장교들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병사들은 위험했다.
병사들은 교육수준이 낮아 윤리 의식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제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을 병사 출신인 데네브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는 자비로 공부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리 중위는 뭐, 장교이니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데네브는 분명 마리 중위를 노리는 병사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기우라고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병사로 있을 때도 간간이 여성 장교를 겁탈한 병사들이 총살당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는 것을 봐서 이들 중에도 몇 명이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진격하던 적들의 전열에서 후방에 있던 병사 몇몇이 등을 돌려 이탈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적의 부사관들이 그 비겁자들의 등 뒤에 총을 쏘거나 베어 죽였지만, 그 모습을 본 적병들은 동요을 일으켰고, 한순간 적들의 돌격은 중지되었다.
“달려라! 전군! 돌격 앞으로!”
“와아아아아!!”
병사들이 총대를 바로 잡고 달려들었다.
당연히 마리 중위의 소대가 먼저 적과 부딪쳤고,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추하게도 그대로 점프해서 상대편 장교의 면상에 발차기를 가해서 제압했다.
적 장교는 발차기가 날아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대로 맞아 쓰러졌고, 장교가 있던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마리 중위는 닥치는 대로 적들을 베고 찔렀다.
데네브는 이제 마리 중위를 보는 것을 그만두고 앞을 보았다.
어느새 적들의 1열은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제사격을 가해 아군의 돌격을 막아 볼 생각인 듯했다.
그 순간, 데네브의 오른편에 있던 고든 이병이 권총을 쏘았고, 적의 장교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도살자처럼 도끼를 높이 들어 앞으로 달려갔다.
장교를 잃은 드리지아 병사들을 적 부사관이 통제하려는 찰나에 아군 병사들과 부딪쳤고 고든 이병은 적들을 향해 난폭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근접전에서는 기다란 총검을 끼운 머스킷보다 손잡이는 짧은 도끼가 더욱 위력적이었다.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총검을 끝을 군도의 옆면으로 쳐 낸 후 데네브는 총검의 주인의 목을 베었다.
이번에는 적의 목뼈가 드러날 정도로 정확하게 경동맥을 베어 냈다.
데네브의 오른편에 있던 다른 적병이 개머리판으로 자신의 어깨를 쳐 내자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적병의 총검을 다시 군도로 쳐 내 옆구리 옆의 땅에 박히게 만들었고, 얼른 군도로 상대편을 찔렀다.
하지만 군도는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가질 못했다.
가슴을 찌른답시고 군도를 세워서 찔렀는데, 적의 가슴뼈에 막혀 내장을 건들지 못한 것이었다.
적의 가슴을 찌를 때는 칼을 옆으로 눕힌 상태에서 찌르는 게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인데, 급한 마음에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적병에게 치명상을 입힐 순 없었지만, 찔렸다는 고통에 놀란 적병이 머스킷을 버린 채 뒤로 넘어가 버렸고, 그 불쌍한 적병에게 3개의 총검이 들어갔다가 붉은색으로 변해서 나왔다.
“젠장! 빌어먹을.”
데네브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나서 모자를 바로 썼을 즈음엔 적들은 등을 돌려 도망친 뒤였다.
“소대, 사격 준비!”
데네브의 명령에 병사들이 도열하여 사격 자세를 취했다.
“조준……!”
마리 중위의 소대가 먼저 일제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반수밖에 총이 발사되지 않았는데, 격렬한 전투로 인해 대다수가 뇌관화약을 흘린 탓이었다.
그 덕분에 마리 중위의 고성이 오갔다.
“발사!”
반면, 데네브의 소대는 화약을 잘 관리했는지 대부분 총을 발사할 수 있었고, 적들은 근접전을 벌였을 때보다 더 많이 죽어 나갔다.
“좋아.”
그때, 대대본부 쪽에서 집결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제 슬슬 본진으로 회군하려는 모양이었다.
“중대별로 모여!”
마리 중위의 소대 또한 다시 데네브의 휘하로 복귀했다,
“잘 싸웠어.”
데네브가 마리 중위를 칭찬하며 그의 뒤에 서게 했다.
“대위님, 전방에 적 기사대가…….”
“음?”
데네브는 얼른 망원경을 꺼내서 보았다.
마리 중위의 말대로 적의 갑옷을 입은 기사대가 검을 뽑아 방추형 진영을 이룬 채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대본부는 등을 돌리지 않은 채 계속 뒤로 걸으라는 신호를 보내 왔다.
“아, 대위님, 아군의 용기병들이…….”
“오!”
아군의 용기병들이 카빈 총을 들고 대대를 향해 달려드는 적 기사대의 오른쪽, 가장 두꺼운 옆구리 쪽으로 돌격했다.
갑옷을 입은 기사대에 비해 몸놀림이 가벼운 용기병대는 유연하게 움직였고, 적의 기사대는 말 머리를 돌릴 새도 없이 옆구리에서 용기병들의 사격을 당했다.
강철판이 뚫리는 소리가 마구 터져 나오며 적의 기사들은 낙마하거나 말이 쓰러지면서 방추형 진영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용기병들은 현명하게도 그대로 기사대에 돌격을 가하지 않았다.
칼을 마주 대며 싸우는 것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에 비해 불리했다.
하여 그들은 말 머리를 왼쪽으로 돌려 적 기사대의 후미를 지나 왼편에서 다시금 공격을 가했다.
무기를 대부분 오른손에 들고 싸우는지라 반격을 어렵게 하면서 아군을 유리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결과는 드리지아 기사들의 완패였다.
기사들은 패주했으며 용기병들은 적 기사대의 군기를 빼앗아 마치 개선하는 것처럼 위용을 갖춘 채 본대로 복귀했다.
“와아!”
그 멋진 장면을 본 병사들은 모자를 총검 위에 걸어 높이 들어 올렸다.
이는 적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복수를 위해 불을 뿜은 적 포병대의 탄환은 대부분 크게 빗나갔다.
실로 눈부시게 빛나는 승리였다.
이날 전투로 데네브가 속한 2연대는 적의 대대 깃발 5개와 중대 깃발 21개를 탈취했으며, 잃은 군기는 하나도 없었다.
또한 용기병대도 적의 기사대 깃발을 탈취하는 전공을 얻어 냈다.
적 포병대는 침묵했으며, 결국 살아남은 소수의 병사만이 자신들의 진지로 물러났다.
드리지아 군의 피해는 기사대는 물론이고, 2연대와 싸운 적들의 연대는 완전 해체된 것과 다름없었다.
드리지아 군의 연대에 속한 대대의 숫자가 6개였던 반면, 아군의 2연대는 고작 4개였다.
대부분의 대대 규모가 600명 정도라고 가정한다면 2,400명 대 3,600명이 싸워서 이긴 것이었다.
물론 데네브의 대대는 총원 600명 중 3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바람에 완편 대대가 될 수 없어 예비대로 편입됐다.
아군 총 사상자는 400명이었다. 반면, 적들의 피해는 깃발의 개수로 따져서 대략 2,000명으로 추산되었다.
단지 깃발을 빼앗은 것만으로 그에 속한 병사들이 전원 전사했을 리는 만무했기에 확실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는 전사에 기록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특히 적은 병력으로 적을 이기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것이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건배!”
데네브가 속한 3대대의 대대장이 병사들에게 스타우트―독한 흑맥주 중 하나―를 하사했다.
데네브는 넓적한 나무 잔에 거품은 최소한으로 줄여 따르고는 마리 중위와 건배를 하고 그것을 단번에 들이켰지만, 다 마시지는 못했다.
대대장이 현명하게도 맥주통을 바닥에 묻어서 보관해서 맥주는 차고 맛이 좋았다.
두 사람은 병사들과 감히 같이 식사를 할 수 없었기에 둘만이 천막에 앉아 맥주잔을 기울었다.
3대대의 대대장은 둘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려고 하였지만 정작 본인이 패로우 대령에게 식사 초대를 당하는 바람에 미안하다 말하고 패로우 대령의 막사로 가 버렸다.
마침 그때, 사환인 고든 이병이 저민 마늘 양념 소시지에 으깬 감자를 가지고 왔다.
감자는 버터와 소금으로 짭짤하게 간이 되어 있었다.
“승리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마리 중위는 입술 위에 거품을 묻힌 채 말했다.
데네브와 다르게 그녀는 거품이 많은 상태의 흑맥주를 들이켜길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마시면 입천장이 간지러워서 기분이 더 좋거든요.”
데네브가 이유를 묻자 그녀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단순하게 데네브와 술을 기울이기 위해 앉은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 데네브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사실 그녀가 데네브보다 강하지만, 그래도 지원군 하나쯤 있으면 좋다―있는 것이었다.
맥주 배급을 받을 때 그녀를 굶주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병사들이 데네브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 중에 장교들까지도 있었다.
사환인 고든까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서 그는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그리고 두 사람이 모르게 데네브와 마리 중위가 있는 천막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옆에 피 묻은 도끼를 내려놓은 채 자신의 감자와 소시지와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는 일부러 씻지를 않았는데, 그 덕분에 그의 가죽 앞치마와 수염, 얼굴에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더욱 무시무시해 보였다.
‘이 여자는 자기가 지금 얼마나 곤란한 상태인지 아는 걸까?’
데네브는 기분 좋게 맥주를 들이켜는 마리 중위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세수밖에 못해 땀에 절은 냄새가 나서 데네브는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그녀의 체취가 맡아졌고, 그것이 자신의 자제력을 시험하게 만드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다행히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고 밤은 마무리되었다.
데네브와 마리 중위는 간격을 둔 채 따로 담요를 덮고 잤으며 그들의 천막에 기웃거리는 병사나 사관은 없었다.
사실 그들이 자는 사이에 접근하는 병사 몇몇이 있었는데, 용케도 자고 있지 않던 고든 이병이 피 묻은 도끼를 만지작거리며 으르렁거리자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고든 이병의 모습은 마치 도살자와 같았다.


<『임페리얼 가드』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