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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4화)
Chapter 7 (4)


시간이 지날수록 장교들도 지친 나머지 하나둘 자리에 앉았지만, 데네브는 담벼락에 기대는 것으로 족하며 계속 적진을 살폈다.
지루하면서도 긴장이 풀리는 일이었다.
적에게 무슨 동태가 보일지 걱정하는 것도 왠지 기우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적들은 대포를 포진지 뒤쪽으로 두고 있었고, 기병들은 말에서 내려 있었으며, 병사들은 앉아 있었다.
“점심이 다 되어 가는데, 식사를 하도록 할까요?”
마리 중위가 물었다.
데네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 하지만 술 배급은 금지한다.”
그렇게 해서 병사들에게 각자 빵이 돌아갈 무렵이었다.
데네브의 시야에 적의 포진지에 있던 포구가 앞으로 향하면서 포문이 열리는 것이 들어왔다.
“적의 공격이다!”
적의 진영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1초 만에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후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것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의외로 빨리 들켰군.”
패로우 대령은 적의 포연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젠장!”
흙더미가 튀어 오르면서 흙이 떨어지자 병사가 얼른 빵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입에 쑤셔 넣었다.
“모두 담장 밑으로!”
담장 뒤쪽은 어느 정도 파여 있어서 그곳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데네브는 장교이기 때문에 담장 안으로 못 들어가고 여전히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폈다.
후방에서 쉬고 있던 포병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대포를 향해 달려갔다.
그 순간, 적의 연대 급 병력이 정면으로 걸어 나왔다.
적들 중 한 장교가 군도를 뽑아 앞으로 쭉 뻗자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번쩍였다.
다행히 그들의 틈에 마법사는 섞여 있지 않는 듯했다.
아군의 포병대가 진격해 오는 적을 조준해서 대포를 날렸다.
포환이 지나가면서 2열 횡대로 도열한 적병들의 다리를 나무젓가락인 양 간단하게 부러뜨리며 지나갔다.
붉은 제복을 입은 드리지아 왕국의 병사들이 군기를 휘날리며 전진해 오는 모습은 마치 붉은 담벼락이 밀고 내려오는 것 같아 무시무시하기까지 했다.
그때, 패로우 대령이 있는 사령부에서 나팔 신호가 울려 퍼졌다.
“2연대, 적 정면의 적을 향해 돌격!”
마리 중위가 신호를 해석하며 말했다.
데네브가 속한 2연대는 후위대의 절반 이상 되는 병력이었다.
“아마 패로우 대령은 적들에게 병사들의 숫자가 적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패로우 대령은 이미 4사단의 사단 깃발을 모조품으로 만들어 달고 있었기에 그런 예상이 든 것이었다.
데네브가 속한 대대가 선봉에 서서 움직이자 그 뒤를 다른 대대가 따랐다.
모든 대대는 대대별로 집결하여 곧 3열 횡대의 진영을 갖추었다.
“총검 장착! 군장을 풀어!”
데네브는 군도를 뽑아 든 뒤 대대장이 있는 부대 중앙 쪽을 보았다.
“제3대대! 앞으로 전! 진!”
대대장이 군도를 앞으로 쭉 뻗자 북소리가 울렸다.
데네브 또한 군도를 앞으로 뻗어 휘하의 병사들이 제대로 줄을 맞추어 앞으로 나가는지 확인했다.
그런 뒤 그는 뒤에 선 마리 중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리 중위, 뒤에…….”
“예?”
마리 중위가 뒤를 쳐다본 사이에 데네브가 그녀의 모자를 빼앗아 썼다.
“무슨……?”
“명색에 맨 앞에 서는 지휘관인데 모자가 없는 게 허전하잖아.”
그는 웃으며 다시 앞을 보았다.
마리 중위는 뭐라 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데네브는 전투에 투입되기 전에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어서 좋았다.
“왼발! 왼발!”
왼편에 있던 중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왼발! 왼발! 왼발! 왼발!”
그 말에 데네브 역시 저도 모르게 발을 맞추게 되었고, 그의 중대원들 또한 발을 맞추어 걷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데네브 또한 그쪽 중대장처럼 왼발, 왼발 말하며 앞으로 걸었다.
양 진영의 연대 병력들은 점점 그 거리가 가까워져 갔다.
데네브의 귀에 적들의 북소리 템포가 들려왔고, 아군의 북소리 또한 적의 북소리에 소리가 묻힐까 봐 더욱 크게 울려댔다.
이에 적들의 북소리도 점점 커지더니 조금 더 가까워지자 아예 적과 아군 군악대는 같은 템포 속도로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같을 발걸음으로 걷는 양측 진영의 병사들의 행동은 전쟁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바람의 불어오면서 화약 연기가 아군 부대 쪽으로 불어오자 데네브는 눈이 따끔거렸다.
화약연기에 염분과 유황 성분이 섞여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어느새 적들과의 거리가 100미터로 가까워졌다.
‘돌격명령은 아직인가?’
데네브는 적들이 총을 쏠까 두려웠다.
“중위, 꼭 내 뒤에 있게.”
데네브가 고개를 돌려 마리 중위에게 말했다.
데네브의 넓은 어깨 덕분에 마리 중위는 적의 시야로부터 완벽하게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적들의 곡사포가 데네브의 중대 사이에 떨어지면서 폭발로 인해 5명이나 죽어 나갔다.
“정렬!”
“병사들 간격을 줄여!”
부사관들이 급히 움직이면서 병사들을 재차 정렬시켰다.
이제 양쪽 진영 사이의 간격은 50미터까지 가까워졌다.
아직 총검을 끼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로 가까워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데네브에게 위험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즈음이 되어서야 적의 병력이 걷는 것을 멈추었다.
또한 적들의 1열이 앉으려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군의 병사들 몇몇이 걸어가면서 머스킷을 쏘았다.
“사격 금지! 총대를 잡고 총검을 앞세워 적들을 도륙하라!”
흑색화약은 눈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돌격을 할 시 금물이었다.
총을 쏘며 돌격을 한다는 것은 눈 밑에 양파를 둔 채 싸우겠다고 선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총검 앞으로!”
요란한 대포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렸기에 그들은 소리를 질러야 했다.
적들의 총구가 아군을 향해 겨누어졌다.
“대대, 계속 앞으로 전진!”
‘그냥 돌격 명령을 내리라고!’
데네브는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적들에게서 수백 발의 총소리가 났다. 일제사격을 가한 것이었다.
데네브의 중대를 포함 대대 병력의 1열이 거의 다 쓰러졌다. 하지만 데네브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고, 마리 중위도 무사했다.
다만 데네브의 오른쪽에 서 있던 기수가 총알을 3방이나 맞고는 쓰러졌다.
“하사, 깃발을 맡게.”
“알겠습니다.”
데네브의 곁에 있던 하사가 자신의 머스킷을 버리고 깃발을 들었다.
“돌격!!”
마침내 대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모든 사관들이 같은 소리를 제창하며 달려 나갔다.
“돌격!”
데네브 또한 달려 나갔는데, 키가 큰 그답게 다른 병사들과 달리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병사들을 앞질러 나갔다.
그러자 적 병사들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명을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병사들의 사기가 꺾이면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군중심리와 같은 단순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적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몇몇 뒤처진 인물들은 총검에 의해 응징당했지만, 죽은 아군에 비해 적의 피해는 미미했다.
“분대!”
마리 중위의 외침에 10명의 병사가 순식간에 도열하였다.
“사격 준비, 발사!”
이런 방식으로 적들의 등에 총을 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장교들도 그런 방식으로 적들을 처리했다.
머스킷의 명중률은 매우 좋지 않았지만, 집단으로 화망을 형성해 발사하면 그나마 효과적으로 적을 죽일 수 있었다.
“집결! 집결!”
적의 장교 하나가 병사들을 불러 세웠다.
“총검 장…….”
데네브는 그 장교가 말을 맺기도 전에 달려들었다.
적병들은 구심점을 잃은 채 싸우게 되었지만, 아군은 제대로 전열을 짜고 달려들었다.
그 결과는 일방적인 아군의 승리였다.
적병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최소한 2개의 총검이 찔려서 쓰러졌다.
적병은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아군의 총검을 자신의 총검술을 활용해 막아 내거나 옆으로 쳐 내도 같이 어깨를 붙이고 있는 다른 아군의 총검을 막을 순 없었다.
데네브가 달려든 장교는 겨우 2, 3번 칼을 마주치고는 베인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하지만 경동맥 따위는 건들지 않았다. 아주 살짝 베인 것이다.
데네브는 죽을까 봐 울먹이며 질식사라도 할 듯이 목을 꽉 부여잡는 그를 뛰어넘어 휘하 병사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느새 적 병사들과의 거리는 너무 많이 떨어졌고, 적들의 제2진, 즉 후방에 있던 다른 대대 병력들이 전열을 짜고 자신들을 향해 걸어왔다.
“우리들도 물러나지.”
마리 중위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마침 대대장도 후퇴 명령을 내렸다.
여태까지는 병사들은 적병들을 추격하느라 각 중대들이 제대로 된 연계를 할 수 없었다.
“나머지는 후방에 있는 아군에게 맡기자고.”
아군의 제2진에 있던 병력의 대대장은 현명하게도 대대를 소대별로 나누어 집결하게 하여 간격을 만들어 데네브가 속한 3대대 병사들이 쉽게 후방으로 빠질 수 있게 해 주었다.
반면 드리지아 군의 대대 병력들은 전열이 꽉 막혀 있어 병사들이 서로 비집고 들어가는 바람에 전열이 삽시간에 무너졌다.
“지금이다! 속보로 전진!”
아군의 후속 대대 병사들이 달려가 최대한 사거리를 줄인 후 적이 전열을 정비하려는 즈음에 집단 사격을 가했고, 그 효과는 배가되었다.
적병들이 서로 얽혀 있어 도망치려는 자와 전진하려는 자들이 무더기로 쓰러졌고, 적의 한 중대는 중대 자체가 전멸했다.
또한 기수가 쓰러지면서 깃발이 거칠게 펄럭이며 땅으로 추락했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적의 대대장과 기수가 있던 자리에 다시 아군의 곡사포탄이 작렬하여 폭발했다.
데네브가 3개의 후속 대대 병사들을 지나치고 나서야 대대본부에서 집결 명령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대대본부에서는 즉시 부대를 재편했고, 장교가 죽은 타 중대 병사들은 곧장 데네브의 중대로 편입됐다.
이게 바로 문명화된 나라의 전쟁이었다.
200년이나 300년 전처럼 무작정 말을 탄 기사가 갑옷과 마갑으로 무장한 채 돌격하고 병사들이 그 뒤를 따라 싸우면 어떻게든 되던 시대는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현대의 전쟁에선 더 이상 개인의 무용 따윈 중요하지 않았으며, 어느 쪽이 전열을 완벽하게 정비하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되었다.
마법의 시대는 오래전에 지났고, 검의 시대도 지났으며, 이젠 총검과 화약의 시대가 온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데네브는 신규 편입된 중대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졌다.
“마리 중위, 중대를 반으로 나누어야겠어.”
데네브는 후퇴하는 아군을 살피며 그렇게 말했다.
새로 편성된 그의 중대는 180명으로, 기존의 중대 병력 120명을 상회했다.
“머스킷 장전! 장전! 머스킷 장전!”
포탄 하나가 지나가면서 어린 사관의 왼팔이 잘려 나갔다.
그는 전쟁에 처음 참가한 17살짜리 사관이었다.
“고든! 저 녀석을 도와줘!”
고든 이병이 쓰러진 사관을 부축하여 미리 준비한 압박붕대로 응급조치하고 부축하여 후방으로 데리고 갔다.
“대대! 다시 전진!”
데네브가 속한 대대가 다시금 전진을 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