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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3화)
Chapter 7 (3)


회의가 끝난 후 데네브와 마리 중위는 그날 저녁에 패로우 대령에게 초대되어 사예르 성채에서 있던 일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데네브는 패로우 대령이 권한 와인을 마시며 그때의 전투를 군대 특유의 비속어를 써 가며 세세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패로우 대령과 친밀감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놈들도 훈련을 많이 받았군.”
패로우 대령이 넓적한 빵에 염소 치즈와 건포도, 땅콩과 아몬드 가루를 뿌린 후 꿀을 발라 먹었다.
덕분에 그의 콧수염에 땅콩 가루가 조금 묻었다.
“10년 전만 해도 드리지아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은 왕국이었는데, 이젠 사정이 너무나도 변했어. 군대도 강력해졌고, 유능한 장군들도 많이 출세했고 말이야. 반면, 우린 10년 전과 다를 바가 없어.”
“이번 전쟁에서 그 청년 국왕의 목적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데네브가 물었다.
“아마 옛 땅을 찾겠다는 것이겠지. 200년 전까지만 해도 바율스 지방은 드리지아의 땅이었으니까.”
패로우 대령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지만, 사실 이는 심각한 문제였다.
바율스 지방은 제국의 국토의 8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고, 북쪽 지방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방대한 땅이었다.
“200년 전까지 자기 땅이었다고는 해도 이제 와서 찾는 것은 조금 모순이군요. 무려 2세기나 지난 일을 가지고 지금 따지는 건 억지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마리 중위가 말했다.
“것보다 난 이 아이스 와인―겨울철에 얼은 포도를 수확해서 만든 달콤한 와인―을 마실 수 없을까 봐 걱정이지. 아이스 와인은 바율스 지방의 명물이거든. 제군들, 건배하지. 아이스 와인을 위해.”
“하하하! 그렇군요.”
데네브는 웃으며 잔에 술을 따랐고, 세 사람은 아이스 와인으로 건배를 했다.
알콜과 맛좋은 단백질, 지방을 섭취하면서 세 사람의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
“사실 이 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난 드리지아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네. 드리지아는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춥고 습하며 햇빛이 잘 스미지 못하는 땅이거든.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저주받은 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들이 가길 꺼려했고 문명의 해택을 받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땅이기도 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몬스터 토벌을 한 땅이기도 하고.”
“바율스 지방도 사실 추운 편 아닌가요? 혹한기에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아주 추운 땅이라고 들었는데요?”
마리 중위가 물었다.
“그래도 그것은 그들에겐 따뜻한 곳이네, 중위. 내가 드리지아 주재 대사의 무관 자격으로 그곳에 갔을 때, 어떨 때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었네. 그 무렵에는 절대로 밖에 나가면 안 되고, 옷을 최대한 입고 이불을 뒤집어쓴 다음 벽난로의 옆을 지키고 있었지.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얼어붙어 버렸거든. 밖에 20분 이상 있는 사람은 얼어 죽을 정도였어. 그 상태에서 눈보라가 치면…… 드리지아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는군.”
“그런데도 왜 그들은 그런 곳에서 사는 것이죠?”
데네브가 물었다.
“살 곳이 없는 것이지. 그전까지만 해도 드리지아는 약소국 중에 하나였으니까. 다른 이유도 있긴 한데, 그리지아는 추운 날만 그렇지 따뜻한 날에는 들판에 풀이 많이 자라니까 목축업이 성행한다네. 살찐 소와 양, 가죽, 뿔 제품은 드리지아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하지. 드리지아제 모직물이나 소가죽 신발은 제국 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을 정도로 최고급이기도 하고. 덕분에 그놈들은 일반 국민도 일요일만큼은 고기를 먹는다는군.”
“대단하군요. 고기를 먹는단 말입니까?”
레기움 제국의 군인―장교를 제외한―들은 매주 3킬로그램의 고기를 배급받게 되어 있다.
이는 매우 많은 양이기도 했는데, 군인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런 것일 뿐, 레기움 제국의 제국민들은 고기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귀한 식품이었다.
그렇기에 몰락 귀족으로서 군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고기를 먹어 본 적이 거의 없는 데네브가 놀랄 만도 했던 것이다.
“그래도 본인은 따뜻한 곳이 좋네. 고기라는 것은 많이 먹으면 안 좋은 거니까. 건강을 생각하자고. 제군들, 건강을 위해.”
“건강을 위해.”
세 사람은 다시 건배를 하고 술을 마셨다.
“많이들 먹게. 내일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물론 그대들이 직업을 군인으로 선택한 이상 숙명으로 받아들여야겠지만.”
그 순간, 패로우 대령의 사환이 만찬의 절정이 되는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양의 갈비를 양념에 재워 구운 요리였다.
하지만 데네브는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왼손은 아직 깁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주변인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른손으로 직접 그것을 들어 입으로 고기를 뜯어 먹었다.
“뼈에 붙은 고기는 말랑말랑하고,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녹아 흐르지.”
패로우 대령은 나이프로 고기의 살을 발라 내며 말했다.
“자, 봐봐. 마치 여자의 속옷을 벗겨 내듯이 부드럽게…….”
하지만 그는 말을 더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녀의 손님 중에 여자가 있다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
“실례했네.”
그는 부끄러움에 헛기침을 했다.
“괜찮습니다, 대령님. 군대라는 곳은 원래 여자가 들어오기 힘든 곳이니까요.”
마리 중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
“군에 입대했을 때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땐 같은 생도가 저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려고까지 했답니다.”
그 순간, 데네브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감히…….”
“그게 사실인가?”
패로우 대령이 물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대위님.”
마리 중위는 데네브를 도로 앉혔다.
“이미 지난 일입니다, 대령님. 물론 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댄 녀석은 제가 때려눕혔습니다. 무슨 백작가의 삼남이라고 하던 거 같던데, 덕분에 그 뒤로 코가 납작해져 버렸지요.”
“하하하! 그래, 마리 중위 그대는 일반 사내들 따위보다 훨씬 뛰어난 여장부군.”
패로우 대령이 새로운 와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사환을 불러 귀에 대고 뭐라고 작게 말했다.
“자, 그러면 마리 중위의 무용을 위해 이 포트와인을 마시도록 하지. 이제 사환이 후식을 가져올 것이네.”
사환이 가져온 것은 포도 푸딩이었는데, 보랏빛을 띤 희멀건 푸딩 위에 건포도와 시럽을 뿌려 장식한, 매우 맛있는 푸딩이었다.
패로우 대령은 푸딩 위에 포트와인을 뿌려 촉촉하게 만들어서 먹었고, 그것을 본 데네브와 마리 중위 또한 따라 했는데, 그 맛은 데네브가 여태까지 먹어 본 푸딩 중 가장 기가 막힌 것이었다.
마리 중위 또한 따로 칭찬할 정도로 아주 훌륭한 맛이었다.
“내일을 위해.”
“내일을 위해.”
세 사람은 다시 건배를 하였고, 그때쯤엔 술에 취해 노래를 불렀다.
주로 군가를 불렀는데, 패로우 대령은 테너의 목소리를 잘 내었기에 마리 중위는 소프라노, 데네브는 바렌토의 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거, 내가 너무 마셨군.”
패로우 대령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환이 얼른 그를 부축했다.
“제군들, 마지막으로 건배를 하지. 제국을 위해!”
“제국을 위해!”
건배를 하고 마실 즈음 패로우 대령과 마리 중위는 뒤로 넘어가 버렸다.
술에 취한 데네브는 그들을 보며 킬킬거리며 비웃었다.
마리 중위는 뒤로 넘어가 버린 상태에서 상의 단추를 네 개나 풀어 버렸다.
몸이 빨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니야. 내가 옮기도록 하지.”
데네브는 자신을 도와주려는 고든 이병을 제지하고는 마리 중위를 끌고 자신들의 천막으로 비틀거리며 움직였다.
마리 중위의 견식에 달려 있는 도금된 장식용 추가 서로 부딪치며 청량한 종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불안한지 고든은 데네브의 뒤를 따라와 둘이 넘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다.
데네브는 그렇게 천막으로 그녀를 옮겼는데, 그만 침대 위에 그대로 같이 넘어지고 말았다.
술에 취한 나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조금 정신을 들 무렵, 데네브는 자신이 마리 중위의 가슴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일어나려고 하였지만, 마리 중위의 팔이 그런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계속 안 하고 뭐 해요?”
그녀의 왼손이 멀쩡한 데네브의 오른손을 잡아 풀어진 제복의 가슴속으로 넣게 했다.
순간, 데네브의 손에 부드러운 것이 잡혔다.
“그때 그놈은 싫었지만, 대위님은 괜찮아요.”
술에 취한 데네브의 머리는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고, 마치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난데없는 소동에 고든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지만, 그만 그들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고든은 말없이 천막의 입구를 닫아 준 후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갔지만,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데네브는 말없이 저 너머로 도열한 적들의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
드리지아 왕국군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전투 준비를 끝낸 상태였고, 이젠 누가 먼저 대포를 쏘느냐가 관건이었다.
데네브가 속한 연대의 병력들은 그들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할 무렵 고생해서 진지공사를 한 덕분에 단 하루 만에 보호물을 만드는 기염을 토해 냈다.
한데 데네브가 더욱 놀란 것은 아침 점호와 함께 식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이 서로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로웠던 것이다.
슬슬 적의 2개 대대 급 병력들이 늘어서서 총검을 장착하는 것이 데네브의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돌격을 할 요량인 듯싶었다.
“전령을 보내게.”
패로우 대령이 명령을 내렸다.
“네!”
용기병 5명이 백기를 휘날리며 앞으로 나아갔지만, 데네브의 머릿속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부끄러워했다.
상의의 단추는 모두 풀려 있고 바지는 반만 내려가 있는 남녀가 서로 껴안은 채 이불도 덮지 않고 잠이 든 모습은 정말로 세기말의 추태를 보는 듯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자신했는데 3일 만에 또 일어나다니.’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그는 일기에 이 일을 적지도 않았다.
오늘 있을 전투는 제국의 앞날을 결정지을 만큼 중대한 사안인데, 정력을 여자에게 쏟아부은 것은 대단히 잘못한 일이었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마리 중위 또한 부끄러운지 다리를 배배 꼰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 또한 절대로 원했던 동침이 아니었다.
그녀는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흔히 말하는 술로 인한 기억상실로 치부했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도중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군대 내에서 왜 교제를 금지하는지 알 것 같군.’
데네브는 흰 깃발을 들고 가는 기병들과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오는 적의 기병들을 보는 척했지만 여전히 생각은 딴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부터 마리 중위와는 술을 마시면 안 되겠군.’
데네브가 마리 중위를 힐끗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더욱 숙였다.
사실 그녀만의 잘못이 아니라 둘 모두의 잘못이었지만, 마리 중위는 무조건 자신의 잘못인 것마냥 행동했다.
물론 이 사태를 전부 알고 있는 고든 이병은 멀찍이 뒤에 서서 그 둘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기병들이 적의 기병들과 접촉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윽고 적 기병의 안내를 받으며 적진을 향해 들어갔고, 한 30분이 지난 후에 적 병사들이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이다.”
데네브의 중대 휘하의 소년 장교 하나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1대대 쉬어.”
베르크의 명령에 병사들이 자리에 주저앉았지만, 장교들은 체면상의 이유와 적진을 계속 살펴야 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적진에 들어간 기병 중 하나가 돌아왔다.
“휴전 교섭에 응하겠다 하였고, 우리의 특명 전권 대사를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전권 대사는 언제 오기로 했다고 말했나?”
패로우 대령이 물었다.
“하루 이상은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적들의 사령관은?”
“드리지아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입니다.”
“걸려들었군, 역시 어린놈은 안 돼. 겨우 이 정도의 함정에 잘도 걸려들다니.”
패로우 대령은 무릎을 탁 치며 좋아했다.
“내 예상이 맞았어. 저 청년 국왕 놈은 영웅적인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놈이 분명해. 틀림없이 명예롭게 적들의 항복을 얻어내 땅을 빼앗을 환상에 빠져 있을 거야. 좋아, 이대로 시간을 끈다.”
“하지만 청년 국왕은 둘째치더라도 같이 보좌하고 있던 코크레인 후작은 저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분명 얼마 안 가서 저들이 공격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가. 어쨌든 좋아.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