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임페리얼 가드 1권 (22화)
Chapter 7 (2)


한편, 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하게 왔다.
“비가 빨리 그쳐야 할 텐데요.”
마리 중위가 말했다.
그녀는 셔츠와 편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용케도 여분의 옷이 있던 듯했다.
“레구스 일병이 챙겨 둔 옷입니다. 그렇게 급한 상황에서 언제 소지품을 챙겨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는 내 옆에 있었는데. 복부와 가슴에 5발의 총알이 박혔습니다. 횡경막이 손상되었고, 폐와 간에 총알이 박혀 죽어 가는 그의 옆에 그저 있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피를 머금은 상태에서 자신은 고아로 자라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대에 들어왔는데, 군대에 들어오길 잘했다고 말하더군요.”
“그 친구, 좋은 녀석이었지. 착하고 사환으로서 일처리도 세심했어.”
데네브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위선과 다름없었다.
사실 데네브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절 사모했다는군요.”
데네브가 고개를 들어 마리 중위를 보았다.
“전 모르고 있었지만요. 하지만 감히 장교에게, 그것도 고용주를 사모하는 것은 말도 안 됐기에 계속 마음 한편에 간직하며 살아왔다는군요.”
“그래서 뭐라고 답했나?”
“날 사모해 주는 마음을 지금이라도 감사히 받겠다고 답했습니다. 덕분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 후 두 사람은 말없이 화로를 보다가 데네브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데네브는 힘든 하루를 넘기며 목숨을 보존한 채 편히 잘 수 있었다.
“푹 주무십시오.”
마리 중위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귓가를 스쳐 갔다.
“그래.”

사단 본대는 다음 날 점심 무렵에 도착했다.
제4사단 사령관인 프라우셔 중장은 남작의 작위를 받은 귀족이었다.
비록 전쟁 경험은 별로 없었지만 국경 근처에 주든 상비군인 4사단의 사령관답게 항상 훈련을 한 덕분에 근육진 몸매를 소유한 남자였다.
아니, 그의 군복이 최대한 줄인 것이기에 근육이 돋보여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거기에 그는 짙은 눈썹에 작지만 강렬한 안광을 발하는 눈, 잘 정리된 콧수염 등으로 인해 생각이 많고 단호한 인상을 주었다.
“음, 나머지 병력은 아직 안 온 건가?”
마치 흰색으로 물들인 것처럼 순백의 백마에서 내리며 그가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패로우 대령이 물었다.
“1만과 각각 5천씩 병력을 3갈래로 나누어서 여기서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네. 5천 병력들이 먼저 출발했으니 먼저 도착해야 정상이 아닌가.”
대군이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군인 말고도 보급품을 이끌 짐마차 또는 군마, 즉 가축을 먹일 풀은 짐으로 가지고 가면 가축이 더 필요해져 비효율적이기에 대부분 근처의 풀을 조달했다.
군대의 규모가 클수록 선발대에서 먼저 행군길의 풀을 다 먹어 버려 후발대의 가축은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대군이라도 한 곳의 길을 통해서 진군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머지 2개 부대는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까?”
패로우 대령이 물었다.
“아직 연락을 해 보진 않았네. 하지만 이젠 해야겠지.”
프라우셔 중장은 패로우 대령의 뒤에 서 있던 데네브와 마리 중위를 보고는 눈짓으로 누군지 물었다.
“아, 사예르 성채에 주둔했던 데네브 대위입니다.”
“‘주둔했던’인가……?”
패로우의 소개에 그는 신경질적으로 돌멩이를 발로 찼다.
“젠장, 늦었군.”
“다시 되찾으면 됩니다, 중장님. 하지만 어제저녁에 보낸 척후의 보고로는 이미 적의 부대가 이쪽으로 진군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아, 그럼 나머지 부대가 오길 기다려야겠군. 우선 대포를 전방에 배치하도록 하지. 1만의 병력으론 전쟁을 제대로 할 수도 없으니까.”
‘제대로 할 수 없다…… 인가?’
데네브는 단번에 프라우셔 중장이 마음에 안 들어졌다.
그의 말투는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대전쟁을 원하는 것 같았다.
아니, 혹시 모를 일이었다. 그는 이날을 위해 여태까지 준비해 온 것일지도.
“데네브 대위, 그대는 4사단 2연대 3대대 1중대를 임시로 맡아 주게. 마침 공석이었어. 그 중대장이 이질이 도져 가지고 전투 수행이 불가능해졌거든. 그러니 그 중대를 맡아 주게. 물론 자네의 부하 장교도 그 중대에 배속될 것 일세. 그녀를 임시 부관으로 명하겠네.”
데네브는 프라우셔 중장의 말이 너무 들뜬 듯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데네브는 경례를 하고 물러났다.
“부관이 되어 버렸군요. 보급 장교에게 견식을 받아야겠습니다.”
마리 중위가 데네브의 뒤에서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귀찮게 되었군.”
데네브는 뒷머리를 긁었고, 마리 중위는 웃었다.
“마리 중위,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이건 저의 뜻이 아닙니다, 대위님. 그냥 우연찮게도 그리된 것이지요.”
그녀는 어제의 우울했던 일을 모두 잊은 듯 윙크를 날리고는 보급장교를 찾아갔다.
“허참.”
기가 막히지는 않았지만, 당혹스럽긴 했다.

데네브는 사단장인 프라우셔 중장이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유능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4사단의 군기는 완벽했고, 훈련도 강도 높게 받은 것이 분명했다.
중대의 사열을 받았을 때 보니 신발이 더러운 병사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어제까지 행군해 온 것 같지 않은 병사들이었다.
또한 그들의 얼굴에서는 일절 피곤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데네브가 근위 척탄병의 상징인 흑곰 털모자를 잃어버려 병사들에 비해서 복장 불량인 상태였다.
“전투는 예상보다 빨리 진행될 거야.”
그는 중대 소속 어린 사관들과 부사관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드리지아의 군대는 눈앞까지 진군해서 숙영지를 만들었다.
서로 간에 대포 사정거리까지 들어와 숙영을 하고 있었고, 각 진영의 공병과 포병들은 대포 진지를 만드느라 분주했다.
“적 병력이 대략 1만 5천으로 판명되었다.”
지휘관 회의에서 프라우셔 중장이 말했다.
“멍청하게도 놈들이 성채를 버리고 나와 주었으니 우리는 그들의 뜻대로 쳐부숴 주어야 생각한다. 거기에 우리의 병력은 2만이니 숫자로 놈들을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나머지 1만의 병력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공세를 가하지 않고 적의 도발에 반응하지 말고 방어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각 지휘관들은 적의 도발에 응하지 말고 접근만 허용하지 않게 하라. 여기 있는 데네브 대위의 말에 따르면, 적들은 마법사들까지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기 있는 베르크 대령에게 맡기도록 하지. 베르크 대령을 포함해 기사대대의 몇몇 장교들이 기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 예전부터 마법사의 천적은 기사이니 이들을 믿도록.”
그날 점심이 되어도 나머지 1만 병력들은 소식이 없었다.

그날 저녁, 1만 병력의 행방을 찾아 나선 척후가 그들이 패주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뭐라고? 분견대가 전부 패주했다?”
프라우셔 중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각각 5천씩 따로 진군했던 분견대들의 소재를 알아냈는데, 1만 명 규모의 적의 분대에 박살 났다고 합니다. 그들은 첫 번째 분견대를 박살 낸 후, 두 번째 분견대의 배후를 공격해서 이 역시 패주시켰습니다.”
얼굴에서 진땀을 흘리며 척후병이 보고했다.
“그들은 어디 있나?”
“저희가 출발했던 티톨 시로 패주해서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놈들의 분견대가 티톨 시로 진군 중입니다. 그리고 티톨 시에서 중장님께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프라우셔 중장은 허탈감에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준비해 왔건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박살 난 것이었다.
이미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또한 티톨 시는 바율스 지방의 수도와 같은 행정 중심지인지라 그곳을 잃는다면 바율스 지방 전체를 다 잃는 것과 다름없었다.
“젠장, 병력을 지금 와서 물릴 수도 없고…….”
지금 당장 정면에 적의 1만 5천 병력이 있는데 후퇴한다는 것은 적에게 등을 보이는 것과 같았다.
“후위대를 최소한 남기고 최대한 많은 병력을 끌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프라우셔 중장의 참모 장교가 말했다.
“그러면 그대가 그 후위대의 지휘관으로 남겠나?”
프라우셔 중장의 말에 참모 장교는 고개를 숙였다.
분명 후위대는 전멸하거나 포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중장님, 그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패로우 대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자네가?”
“네. 저의 용기병대를 포함 후위대 병력을 3천만 남겨 주십시오. 대포 또한 10문만 남겨 주시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7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적의 분견대를 박살 내신 후에 전 병력을 모아 놈들을 박살 내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쯤에는 스위첸 지방에서도 원군이 올 것입니다.”
“적들의 추격을 피하려면 최대한 하루는 버텨야 한다. 할 수 있겠나?”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근거로?”
“방법이 있습니다.”
프라우셔 중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좋아. 패로우 대령, 그러면 그대의 요구대로 후위대 병력을 주겠네.”

데네브는 과연 패로우 대령이 살아남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자신이 속한 연대가 후위대에 편입되어 버린 것이었다.
‘남 목숨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 목숨 먼저 걱정해야겠군.’
그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자신의 중대를 향해 걸어갔다.
중대원들도 진지공사에 동원해야 했다.
적의 마법사 화력이 극심하기 때문에 병사들 또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진지공사를 시켜야 한 것이다.
보병들의 보호물은 일종의 담벼락으로, 나무로 만든 기둥에 판자를 붙인 후 그 앞을 흙으로 채운 형태였다.
단면도를 보면 전체적으로 직삼각형 같은 그 진지는 적의 대포 공격을 튕겨 낼 수 있게 고안된 것이라서 적 마법사의 화력을 어느 정도 방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데네브의 중대원들은, 아니, 후위대 인원 전체는 그 진지공사를 다음 날 새벽까지 할 것이다.
철수 준비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적에게 들키게 하지 않기 위해서 천막은 그대로 두고 가야 했으며, 그것도 야간에 불도 켜지 않은 채 가야 했다.
후위대를 지휘하는 패로우 대령은 호위로 기병 10명을 빼곤 용기병들의 지휘권을 부관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그는 지휘관 회의에서 중대장 급 이상의 모든 장교들을 모아 그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내일 오전쯤에 적에게 전령을 보내 종전 협상을 위해 하루 정도 임시 휴전을 원한다고 전하게.”
“네?”
“적을 속이는 작전이다. 그러면 놈들은 상황 파악을 위해 최소한 반나절은 허비하게 될 것이야.”
“그렇군요.”
장교들은 그제야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목표는 적들을 최대한 이곳에 묶어 두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쉽게 버릴 이유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장교들은 모두 그 사실을 숙지해야 하며, 병사들과 자신의 목숨을 헛되이 버리지 마라. 알겠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