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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1화)
Chapter 6 (4)
“젠장! 후퇴! 후퇴!”
배킨스 중령은 황급히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지만, 그 자신 또한 달려드는 말의 발에 치여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가 마디마디마다 뼈가 부러져 피투성이 곤죽이 되었다.
드리지아 기병대 또한 레기움 제국 기병대의 출현에 말 머리를 돌려 다시 도망쳤다.
“레기움 제국군 제4사단 소속 42기마연대 연대장, 패로우 대령이다. 귀관의 관등성명을 말하라.”
멋진 흑말을 탄 용기병 대령이 데네브의 옆에 멈추었다.
말이 멈추면서 용맹을 뽐내듯 거친 투레질을 하였다.
Chapter 7 (1)
“그래, 그렇게 된 것이었군.”
숙영지에 도착해 지금까지의 일을 데네브의 입을 통해서 들은 패로우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기병대 사이에서 유행 중인 옆머리를 땋고 뒷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고대 기병대 특유의 머리 스타일이었다.
멋진 콧수염을 기른 그는 언뜻 보면 기병대라기보다는 멋진 신사로 보였다.
또한 그는 전쟁의 공으로 훈작을 받은 성공한 군인의 표본이기도 했다.
“그래도 연대 깃발을 사수한 그대들의 공이 매우 크다. 이 공훈은 곧장 마르티네즈에 전하고 상문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
상문이라면 황제에게 직접 공훈이 보고된다는, 가문의 영광이랄 수 있는 대단한 명예였다.
“가, 감사합니다.”
데네브와 마리 중위, 그리고 어린 소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소위는 바지에 실례를 했기에 그것을 들킬까 봐 제복 상의를 벗어 팔뚝에 걸치고 있었는데, 혹시나 겁먹은 죄로 공훈이 취소될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훈장을 받겠군, 대위.”
패로우 대령은 데네브의 어깨에 손을 올려 주었다.
“처음으로 받는 훈장이니 2급 무공훈장을 받겠어. 하지만 2급 무공훈장을 받기에는 그대들의 공이 너무 크기에 1급 무공훈장까지 올릴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도록 하지.”
“정말 감사합니다, 대령님.”
데네브는 감격한 나머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용맹한 군인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지. 반면 비겁한 겁쟁이는 그에 따른 처벌이 있어야 하고.”
마침 그들이 있는 천막으로 몇몇 장교들이 팔이 묶인 채 병사들에 의해 끌려 들어왔다.
그들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는데, 제복은 이리저리 베여 있고, 단추는 물론 견장까지 뜯겨 나가 있었으며, 얼굴 또한 여기저기 맞은 듯, 부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너희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대령님, 저희는 단지 구원병을 청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말했다.
그는 다름 아닌, 데네브에게 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엘프 기사 장교였다.
“그래? 구원병?”
패로우 대령이 성큼 걸어가더니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단 한 번만 때린 것이 아니라 3연속으로 때렸는데,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이빨이 하나 빠져나갔다.
“근데 구원병을 청하는 전령이 고급 장교들로만 이루어진 채 왔단 말이지? 그것도 성채에 남아 있던 휘하의 병사들을 버리고 말이지? 거참, 대단하군. 반데라스 소령, 아주 대단해. 그대는 쿨로덴 자작가의 장남이라고 들었는데, 자작가의 명예는 물론이거니와 작위를 회수당할 정도의 큰 반역을 저질렀구만. 북문이 뚫렸으면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든가 병사들을 인솔해서 후퇴 작전을 세웠어야지. 명색의 기사라라는 작자가 저 혼자 살기 위해 장교들과 모의해서 도망치다니, 지금 그대들 때문에 몇 명이 죽었는 줄 알고 그리 떠드는 건가?”
그의 목소리는 매우 조용했지만 잔인했다.
따가운 질책에 장교들은 고개를 숙였지만, 그들을 내려다보는 패로우 대령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견장까지 뜯어서 도망치다니, 장교의 수치다. 부관!”
그의 뒤에 조용히 있던 부관이 동그란 안경알을 반짝이며 한 걸음 걸어나와 서류를 꺼내서 낭독했다.
“전시 간이 군사재판법에 의거해 병사들을 버리고 도주한 반데라스 소령 외 6명은 군사재판에 회부, 군법 제4조 1항에 의거해 사형을 언도한다. 이 전시 간이 군사재판법은 재판 대상자의 상관이 사망 시 효력이 발휘된다. 또는 반역죄를 저질렀을 경우와 병사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는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효력이 발휘되며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을 때도 발휘된다.”
“대령님!”
“끌고 가!”
병사들이 그들을 끌고 나가자 패로우 대령도 밖으로 나갔다.
데네브 또한 구경을 하기 위해 나갔다.
이미 병사들은 4각으로 도열하고 있었으며 부사관들은 권총을 장전 중이었다.
“무릎 꿇게 해.”
대위의 계급장을 단 장교가 명령하자 병사들이 반데라스 소령들의 관절을 발로 차서 억지로 무릎을 꿇게 만들고는 고개를 강제로 숙이게 만들었다.
“살려 주십시오! 대령님!”
“저희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에른스트 중령 때문입니다!”
반데라스 소령의 말에 패로우 대령이 다가와서 군도의 끝으로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무슨 말이지?”
“에른스트 중령은 간첩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에게 동조한 기사들을 이끌고 연대장님을 죽이고 북문을 열고 도개교를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문은 너무 쉽게 뚫리고 만 것입니다!”
데네브는 그 말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에른스트 중령, 그자가 간첩이었다고?
“대위님.”
“가만히 있어.”
마리 중위를 데네브가 제지했다.
“그래? 에른스트 중령이 간첩이었단 말이지?”
패로우 대령은 군도를 거두었다.
“그렇습니다!”
“근데 그게 네놈이 저지른 반역죄와 무슨 상관이지?”
“네?”
“그자가 간첩이었으면 그자를 죽이거나 생포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그자가 간첩이든 말든 네놈이 도망친 죄와 무슨 상관이지? 반데라스 소령, 그대의 기사도는 전부 어디에 가 버린 거지? 왜 이리 비겁한가? 이 자식부터 집행해. 더러운 입에서 더 이상 말이 안 나오고 똥밖에 모르는 뇌수가 햇빛을 보게 해 주자고.”
부사관이 권총의 콕을 뒤로 당기자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총구가 반데라스 소령의 뒤통수를 조준했다.
“잠깐……!”
틱, 거리며 부싯돌이 부딪쳤지만, 불이 붙지는 않았다.
“아마도 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불발이 난 것이었다.
이에 장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목을 베도록. 대위, 전투공병 중 하나가 살아 있던 것 같은데, 그에게 명령을 하게.”
“알겠습니다.”
데네브의 눈짓에 마리 중위가 전투공병을 부르러 갔다.
그리고 그녀가 데리고 온 것은 그의 사환인 고든 일병이었다.
“살아남은 공병은 저 혼자뿐입니다, 대위님.”
얼결에 끌려온 고든이 상황을 살피고는 확고한 태도로 말했다.
“그리고 기꺼이 저희를 버린 놈들의 목을 베겠습니다.”
“좋아.”
데네브보다 오히려 패로우 대령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의 목을 베게, 일병.”
“맡겨만 주십시오.”
고든 일병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자신의 전투용 도끼를 들었다.
“세상에!”
“안 돼!”
장교들이 몸부림을 쳤지만, 병사들이 그들의 등을 발로 꾹 누르는 바람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굳이 목을 칠 필요는 없다. 머리를 박살 내든 뭐든 일단 죽여라.”
패로우 대령의 말은 더없이 냉혹했다.
“알겠습니다.”
고든 이병이 도끼를 높이 들고 반데라스 소령의 목을 쳤다.
하지만 목은 쉽게 잘려 나가지 않았고, 고든은 끔찍한 비병을 지르는 그를 내버려 둔 채 그대로 다음 사람을 노렸다.
‘고든, 저 망할 자식이 일부러 저렇게 하는군.’
데네브는 고든이 고의로 도끼를 약하게 내려치는 것을 눈치챘지만, 굳이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패로우 대령이 가만히 있는데 그가 나설 순 없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목이 잘린 장교는 운이 좋았다.
목이 단번에 동강 난 것이었다.
병사들은 이미 그들의 구속을 해방했고, 그들은 목이 반쯤 잘린 상태에서 비명을 지르거나 숨을 껄떡거리며 몸부림 치다가 죽었다.
그때, 멀리서 적의 부상병들의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반역자들의 최후다.”
패로우 대령은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을 절대로 비겁하게 행동하지 않기를 빈다. 이만 해산해도 좋다.”
병사들이 해산한 후 패로우 대령은 데네브와 마리 중위를 다시 자신의 천막에 불렀다.
“적들의 인원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있겠나?”
그가 물었다.
“최소한 여단 정도의 병력이었습니다.”
“그래? 그 정도면 한 개 사단 정도 되겠군. 우린 지금 제4사단병력이 움직이고 있으니 어느 정도 맞상대해 싸울 수는 있을 거야.”
“사단 본대는 언제쯤 도착합니까?”
마리 중위가 물었다.
“아마 내일쯤이면 도착할 것이다. 그대들의 배치 문제는 그때쯤 생각해 보도록 하지.”
마침 그때, 패로우 대령의 사환이 삶은 달걀과 베이컨, 브랜디를 가지고 왔다.
“춥지? 사환에게 음식을 가져오도록 하게 했는데. 비를 맞으며 고생을 했으니, 기력 회복을 하는 덴 이것들이 그만이지. 자네 부하들에게도 식사를 대접하라 일러 두었으니 걱정 말고 들게나.”
“감사합니다.”
데네브는 삶은 계란을 하나 집어 들었다.
마침 제복이 물에 젖어 있어서 온몸이 무겁고 춥기까지 했던 것이다.
패로우의 사환이 브랜디에 살짝 물을 타 주었고 데네브는 그것을 한입에 삼켰다.
식도가 화끈거리면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이만 쉬게나.”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패로우 대령은 자신의 천막을 선뜻 데네브와 마리 중위에게 내주었다.
데네브는 담요를 바닥에 깔고 앉아 장화를 벗고는 안에 고인 탁한 검은 물을 쏟아 냈다.
그와 함께 발 냄새가 진동하자 그는 씻기 위해 비누를 찾다가 그제야 개인 소지품은 다 버린 채 왔다는 사실을 깨달고는 낙담했다.
그때, 데네브의 사환인 고든 이병이 어딘가에서 비누를 구해 왔다.
“장교분들게 빌렸습니다.”
“저도 쓸 수 있을까요?”
마리 중위가 물었고, 데네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을 데워 오겠습니다.”
고든 이병은 자신 역시 피곤할 텐데도 직업정신이 투철했다.
그의 얼굴빛은 매우 어두웠다.
피곤한 것 말고도 그를 추천해 준 친한 친우이자 마리 중위의 사환인 레구스 일병이 전사했기에 그는 마리 중위의 수발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데네브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야전인 탓에 결국 제대로 된 목욕을 할 수 없었다.
데네브는 발과 얼굴, 목에 비누칠을 한 다음 데운 물을 머금은 수건으로 비눗기를 닦아 내었다.
아쉽지만 머리는 감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몸을 씻은 데네브는 속옷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옷을 벗어서 천막에 줄지어 걸어 놓았다.
그리고는 여분이 옷이 없어 데네브는 기다란 수건을 허리춤에 감아서 최소한의 부위를 가렸다.
그때 다시 고든 이병이 숯불이 용암처럼 활활 타오르는 화로를 가지고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패로우 대령께서 주신 것입니다. 어찌나 감사하든지…….”
그는 말끝을 흐린 채 밖으로 나갔다.
데네브는 화로의 옆에 앉아 몸을 녹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