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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페리얼 가드 1권 (20화)
Chapter 6 (3)
“적과의 거리 70미터!”
그때, 거리 측정기를 가진 장교가 보고했다.
“1열 장전 멀었나?”
강선총의 특성상 1열의 전체가 장전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적과의 거리 60미터!”
“빨리빨리 장전해!”
마리 중위가 소리쳤다.
그녀는 대견하게도 벌써 장전을 끝마치고 권총마저 장전하고 있었다.
“거리 50미터!”
‘대충 20에서 30미터 사이에서 쏴야지.’
데네브의 속이 타들어 가는 사이에 배킨스 중령은 오른팔의 총상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가며 작전을 끝마쳤다.
그는 이미 전령을 보내 좌우에 있는 각각 한 개 중대 병력들을 이용해 적의 측면을 감쌀 생각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중요했다.
“1열 장전 완료!”
마리 중위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실상은 아직 장전이 끝난 것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조바심이 거짓 보고를 하게 만든 것이다.
“좋아.”
적과의 거리는 이제 40미터쯤이었다.
“1열, 발사!”
이번에도 가히 위력적인 명중률에 드리지아 203보병대대 중앙에 있던 병사들의 전열에 구멍이 생기자, 배킨스 중령은 얼른 좌우에 있는 병력을 중앙으로 옮겨야 했다.
‘저놈들, 대체 무슨 총을 저리 잘 쏘는 거야?’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강선총에 대해 염두를 하고 있지 않았다.
“2열, 발사!”
“대대, 정지!”
레기움 제국군 진영의 2열에서 총성이 날 즈음, 배킨스 중령은 어쩔 수 없이 35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대 병력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애초 그의 작전대로 좌우에 있던 병력이 레기움 제국군을 압박하기 위해 측면 포위에 들어갔다.
“조준!”
“3열 조준! 발사!”
확실히 이번만큼은 드리지아 병력이 별로 안 쓰러졌다.
“대기!”
배킨스 중령은 사격 명령을 내리려다가 말았다.
적의 사격 때문에 총연이 짙게 깔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괜히 사격했다가는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대부분의 총알은 빗나가게 될 것이기에 그는 총연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연기 속에서 간간이 적의 총격이 이어졌지만 조금 있으면 대대 병력의 멋있는 사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순간, 배킨스 중령의 모자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어?”
하루 종일 우중충했던 하늘이 이제야 비를 쏟아붓는 것이었다.
“젠장, 이러다 화약이 젖겠군.”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는 불발률이 너무 높아서 멋진 사격을 구경할 수 없었다.
“사격!”
그는 화약이 젖기 전에 발사 명령을 내렸다.
비록 연기 속이었지만, 600여 명이 3면에서 발사하는 사격은 엄청난 위력을 보여 주었다.
데네브는 머리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사실 그의 모자가 총알에 맞으면서 벗겨진 것이었다.
그와 함께 볼에 총알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피가 흘러나왔다.
“다치셨습니까?”
마리 중위가 피를 흘리는 데네브의 모습에 걱정스레 물어 왔다.
한데 그녀는 놀랍게도 그 사격 속에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아니야, 난 괜찮아. 1열을 지휘해.”
“1열의 병력들은 전멸했습니다.”
“모두?”
“네.”
1열에 있던 유격병들, 울리비 상병을 포함 102독립중대 소속 유격병들은 전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한가하게 애도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적이 좌우에서 우리의 측면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데네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천천히 물러나.”
어린 드럼수가 북을 두드렸다.
하지만 드럼의 템포에 맞추어 움직이는 병사는 거의 없었다.
“전열 고수! 대오를 갖춰라!”
데네브가 소리를 질러 병사들을 통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고 난 후의 상황은 심각했다.
병력의 절반이 쓰러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옆에 서 있던 전우가 쓰러진 채 입에서 피를 왈칵 쏟으며 죽어가는 것을 본 병사들로서는 패닉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흘러나온 피가 빗물로 인해 번지면서 큼지막한 피 웅덩이를 만들었고, 부상자들은 신음 소리를 내며 죽어 갔다.
“돌격 명령을 내릴까요?”
배킨스 중령의 부관이 물었다.
전열은 이미 붕괴되었고, 남은 적들은 너무나도 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아니야.”
그의 시선이 데네브가 가진 연대기에 고정되었다.
괜히 돌격했다가 성난 병사들의 손에 깃발이 찢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말하는 부관의 목소리에서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는데, 부관이 이 정도라면 나머지 병사들은 어쩔지는 빤한 스토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보다 너무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물론 그 피해의 책임은 대대장인 배킨스 중령의 문제였지만, 그는 자신의 군 복무 역사상 가장 큰 노획물에 정신이 사로잡혀 그 책임감을 가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오히려 그의 머릿속은 노획물을 어떻게 온전하게 가져갈지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다 레기움 제국군의 연대 깃발은 이미 자신들의 총격에 군데군데 구멍이 난 상태였기에 그는 더 이상 노획물이 상처를 입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저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방금 우리의 일제사격에 절반 가까이가 죽어 나갔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지휘관이라면 항복을 받아들이겠지.”
말을 하는 배킨스 중령의 시선은 여전히 연대 깃발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데 그 순간, 부관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대대장님, 뒤에 기병대가!”
“뭐?”
그는 얼른 망원경을 꺼내 뒤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아까 전에 도망쳤던 베른트문트의 기병대가 칼을 내뺀 체 돌격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개자식들이 감히 내 먹이를 가로채려고 하는 건가? 감히?! 자존심도 없는 승냥이 같으니! 게으른 돼지 같으니! 더럽고 남색 짓거리나 하는 녀석들! 보병, 돌격 준비!”
“끝났군요.”
전의를 상실한 듯한 말과 달리 마리 중위는 비가 오는데도 새로운 탄약을 권총에 장전하였다.
아니, 분명 그녀는 태연하게 장전을 하려고 했지만,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데네브에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아, 그다지 좋은 인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죽는다니 좀 더 살고 싶군.”
데네브는 그런 그녀의 떨림을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 또한 벌렁거리며 뛰었고, 겉으로 표연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 두려움은 결사대에 지원했던 그때처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속이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에 그는 비참함을 느꼈다.
‘젠장, 마지막까지 감정을 겉으로 내색할 수 없다니, 장교도 무척이나 짜증나는 직업이군.’
“저, 저흰 이제 죽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어린 드럼수의 표정을 거의 울 것 같았다.
아니,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검댕이와 피가 묻은 더러운 얼굴을 닦아 내려가며 흰 빛줄기를 만들어 냈다.
“우린 몰라도 넌 괜찮을 거다.”
데네브는 그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등을 두드려 주었다.
“항복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살아남은 소위가 말했다.
사실 데네브도 생각한 방법이지만, 그 불명예스러운 말을 직접 차마 꺼낼 수 없던 차에 소위가 말을 한 것이었다.
“분명 명예로운 항복이 될 것입니다.”
“그…….”
데네브는 동의를 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안 돼, 그럴 순 없어.”
마리 중위가 말했다. 그녀의 이제 다리까지 공포로 심히 떨리는 상태였다.
“적에게 항복하는 게 무슨 명예가 보장된단 말인가. 이대로 싸우다 죽어야 명예가 보장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어린 소위는 지지 않고 마리 중위와 눈을 마주친 채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이미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했고, 절반이나 되는 병력들이 죽어 나갔으며, 화약마저 젖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들이 명예를 저버렸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보다는 병사들의 목숨을 생각해야 합니다.”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데네브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저들은 우리의 항복을 받아 줄 생각이 없는 듯하군.”
약삭빠른 병사 하나가 몰래 도망쳐 항복하려는 것을 드리지아 병사들이 총검으로 마구 찔러 죽였다.
병사는 손을 뻗어 저항하지 않음을 알렸지만, 총검 하나가 그의 손을 뚫고 심장을 찌르자 고통에 부르르 떨다가 이내 경련을 멈추었다.
“저런 더러운 야만인들.”
소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데네브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한가하게 남문에 있다가 갑자기 400명이나 되는 인물들을 지휘하게 되고, 또 도망치면서 방진을 짜는 등 너무 긴박했던 상황의 연속이라 생각할 틈이 없었기에 그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몰랐다.
때문에 그에겐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빗물이 머리에 스며들자 머리카락들이 굵게 뭉쳐 붓처럼 되어 물방울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군복은 물에 푹 젖어 착 달라붙었는데, 따뜻하기까지 해서 불쾌했다.
몸속에선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 머리가 살짝 어지럽게 만들었고, 깁스를 한 붕대는 푹 젖어 감염이 의심되었다.
“중대장님, 어떻게 하지요?”
마리 중위가 물었다.
하지만 데네브는 답할 수 없었다.
이미 병사들 몇몇은 도주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미쳐 버린 듯 무릎을 꿇고 앉아 히히 웃고 있었고, 몇몇은 울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불안한 표정으로 데네브를 바라보았다.
“와아아!”
그 순간, 드리지아의 보병들이 그들을 향해 총검을 들이밀고 돌격해 들어왔다.
바닥이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기병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그들은 뒤쪽에 있는 숲에서 튀어 나온 것이었다.
데네브는 막상 죽음이 다가오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여태까지 멋있게 싸우다 죽는 것을 생각해 왔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지금껏 함께했던 용기는 이미 짐 싸고 떠난 느낌이었다.
데네브는 자신이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해 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목숨을 구걸하고 싶었다.
가지고 있던 연대 깃발도 내던지고 싶어졌다.
적들은 가장 먼저 자신에게 늑대 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찔러 숨이 멎기도 전에 배를 가르고 창자를 총검으로 마디마디 나눌 것이다.
“다 끝장이야!”
소위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파묻은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가랑이가 짙게 젖어 있고 더운 김이 피어나는 것을 보아 그는 크게 실례를 한 것 같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붉은 제복을 입은 드리지아 병사 하나가 데네브를 찌르기 위해 총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뒤쪽에 있던 기병들이 짧은 기병총(카빈)을 꺼내 발사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쓰러진 것은 데네브가 아닌 붉은 제복을 입은 드리지아 병사였다.
“돌격!”
이어 들려온 명령은 드리지아의 말이 아닌 레기움 제국의 언어였다.
그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기병들은 기병총을 집어넣고 기병도를 꺼냈다.
“아군이다!”
마리 중위가 기쁨에 양손을 들었다.
그런 그녀를 피하면서 기병들은 드리지아 병사들을 향해 나아갔다.
군마에 부딪친 적병 하나가 멀리 튕겨 나갔지만, 곧 군마의 말발굽에 밞혀 온몸이 으깨졌다.
그와 동시에 기병들은 손목의 피로는 덜 주면서 적을 쉽게 벨 수 있게 고안된 굽은 기병도를 내려치며 적들을 죽여 나갔다.
“아악!”
어깨부터 가슴까지 큼지막하게 자상을 입은 병사 하나가 몸부림치며 고통을 표출했다.
하지만 그는 군마의 말발굽에 으깨진 전우보다 더욱 불우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상은 그리 쉬운 죽음을 보장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치료해 주거나 목숨을 거둬 주기 전에는 오랫동안 고통과 갈증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과다출혈이나 감염으로 죽을 것이다.
“사, 살았어.”
어린 소위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