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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의 괴 1권 ― 정환



불사의 괴 1권(1화)
제1장 인연(因緣)(1)


내가 세상에 던져진 것은 불과 열 살 때이다. 오랜 가뭄으로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던 부모가 그만 세상과 이별을 한 그 순간이다.
“수강아…… 너만은 오래 살아야 한다. 이 어미가 네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어린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내 어미의 말이 지금도 날 구속하고 있다.
“오래 살아야 한다. 오래 살아야 한다.”
이 말만을 나도 모르게 되뇌이게 된다.
살아남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 아직 어리기만 한데. 죽은 부모가 그립기보단 원망스럽다.
태어나 단 한 번도 배불리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아비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곳 노가장의 소작농으로 일해 왔다.
노가장에서 하인들과 총관이 다녀갈 때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애달파하셨다. 어미 또한 그들을 붙잡고 사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우리 가족은 물과 나무뿌리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난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먹을 만한 것은 무엇이든 캐 먹어야 했다. 푸성귀 한 상을 차려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한참 자랄 시기에 제대로 먹지 못한 내가 비쩍 마르고, 며칠씩 씻지도 못한 행색이 되어 버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 푼만 줍쇼.”
“어르신 한 푼만 주세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부모를 잃은 내가 살아갈 방법은 구걸뿐이었다. 마른 몸매에 지저분한 내 모습을 보곤 불쌍하다며 돈을 던져 주거나 밥을 사 주는 이들이 가끔은 있었기에, 살기 위해 난 더더욱 구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너 이 새끼, 여기서 구걸하지 말랬지. 다시 한 번 걸리면 죽인다 했어, 안 했어.”
한 무리 거지 떼들이 어른 키만큼 큰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는 모습이 두렵지 않다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구걸을 하지 않으면 난…… 죽을 수밖에 없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게요.”
“미친놈. 벌써 내가 그 말을 들은 것이 세 번째가 넘거든. 불쌍한 놈 같아서 한두 번 봐주었더니, 감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이놈, 어디 한번 죽어 봐라.”
몸을 피할 틈도 없었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몸을 움츠린 것이 다이다.
“악! 살려 주세요. 엉엉…… 제발 살려 주세요.”
아무리 사정을 해도 저들의 손과 발은 내 몸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짜로 다시는 안 올게요. 다시는…….”
하지만 이제는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이대로 가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머리에서 피가 나는지 눈앞을 가렸다. 그리곤 아무런 기억이 없다.

“쯧쯧, 어떤 놈들이 이 어린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누.”
“죽은 것 같은데, 관아에 신고해야 하지 않겠소.”
“형씨, 모르는 소리 마시오. 지금 이놈처럼 죽어 나가는 녀석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아는감. 마을 밖에만 나가도 거리에 차이는 것이 바로 죽기 직전의 시체요, 시체. 그러니 관아에서 나올 것 같소? 오히려 무슨 봉변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오. 저 건너편 노가장 창고에는 곡식이 썩어 나가는 판국에, 누군 한 끼조차 못 먹어 굶어 죽고 있으니, 원.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무어라 떠드는 말소리가 들렸다.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든 살아야 한다. 어미가 그랬다. 오래오래 살라고.
나는 온힘을 다해 일어서 보려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어, 아직 살아 있네.”
“어디 봅시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는 것을 느꼈다.
“미약하나마 숨이 붙어 있군요. 잠시 자리를 옮겨야겠습니다. 좀 비켜 주세요”

“주인장, 빈 방 하나 내주시게.”
“저기 나으리, 그 아이를 저희 객잔에 들여놓으시면…….”
“뭐라? 네 이놈! 사람이 죽어 가는데, 네놈 눈에는 이 아이의 더러움이 보인단 말이냐! 치도곤을 당하기 전에 어서 방으로 안내하거라!”
객잔의 주인인 곽추는 깜짝 놀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목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검이었다.
‘무림인이구나. 내가 어쩌자고…….’
“어이쿠, 나으리. 제발 살려 주십시오. 말씀하시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제발…….”
“잠시라도 늦어져서 이 아이가 죽는다면, 내 너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서 빈 방으로 안내하거라.”
“네, 네, 이리로 오십시오.”

“휴, 일단 맥은 살려 놓았지만, 제대로 먹지를 못해 회복을 장담할 수가 없구나”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부모의 품에서 어리광을 부릴 나이에 세상을 떠돈 삶의 흔적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광대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고, 두 눈은 움푹 패인 것이 곧 죽을 듯한 몰골이었다.
“갈 길이 촉박한데, 큰일이구나. 지금쯤 사부님과 사형들은 태산에 거의 당도하였을 것인데……. 그렇다고 이 아이를 그냥 두고 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니…….”
며칠 아이를 위해 이곳에 남아야 한다는 도덕적 의제는 북궁명의 발을 묶어 두기에 충분했다. 무(武)를 숭상하나, 정이 많고 유학적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그를 두고 친우들은 다정유사(多情儒士)라 불렀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無惻隱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했거늘, 지금의 난 이 아이의 처지를 외면하고 사람이 아닌 길로 가려 고민하고 있구나. 일단은 이 아이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나야겠다.’

* * *

“엄마…… 엄마…….”
아이는 자주 엄마를 찾는다.
북궁명과 상처입고 쓰러진 왕수강이 이곳 열래객잔에 머문 지 벌써 이틀이 지났지만, 아이의 상태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대부분 치료된 상태였지만, 영양 상태가 몹시 좋지 못했다.
이에 북궁명은 온몸을 조심스레 추궁과혈(推宮過穴)해 보고, 가지고 있던 호심단을 복용시켰지만, 그럼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고통스러워하고, 애타게 부모를 찾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호전되지 않으니, 큰일이구나. 사부님께 배운 대로 이 아이를 치료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유명한 의원에게 보여야 할 것 같구나.’
매일 자신의 진기를 소모해 가면 치료를 거듭한 결과, 아이의 죽음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처치를 하기에는 그의 의학적 소양이 많이 부족했다. 급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늦게라도 의원을 불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게 주인장. 이 근방에 의방이 있는가? ”
“의방이라면 저 아래 한 군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신통치는 않습니다. 뭐, 저희 같은 서민들이나 찾는 그런 곳이거든요. 윗분들은 여기서 하루 정도 떨어진 소요의방에서 치료를 받으십니다. 그곳은 도가의방(道家醫方)이라는 곳인데, 꽤 유명합니다.”
“아, 이곳에도 소요의방에서 운영하는 지점이 있단 말인가?”
“그건 아니지만, 소요의방에서 수학하신 의원님이 세우신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습니다. 거기서 유명한 분이셨다고 하더군요.”
“음……. 아무래도 지금 떠나야 할 테니 주인장에게 부탁 좀 해야겠소. 아이를 싣고 갈 마차나 수레를 구할 수 있겠소? 돈은 넉넉히 주리다.”
“나가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넉넉히 준다 했으니 조금 남겨 먹어도 상관없겠군. 아니야. 혹시 속인 것을 알면…….’
잠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곽추는 며칠 전 보았던 검을 생각하자 오금이 저렸다. 무림인들이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한테서 돈을 남겨 먹으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꼼짝없이 죽는 신세가 될 것이다.
아쉽기는 했지만 포기하기로 결심하자 곽추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가벼워졌다.

“대협, 마침 약초를 배달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수레가 있더군요. 그래서 이리 오라 했습니다. 수고비는 개원통보(開元通寶) 다섯 냥입니다.”
개원통보는 당나라 초기부터 사용된 주화로, 수많은 문물들이 실크로드를 타고 당나라로 유입되었을 때 화폐로서 널리 유통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음인 비전과 함께 상인들의 조합인 행이 생겨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 있네. 아무래도 중간에 쉬지 않고 가야 할 듯하니, 나머진 건량을 좀 부탁하겠네.”
“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 *

덜컹거리는 충격이 오갈 때마다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정신을 차릴 때가 된 듯한데, 그 원인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더 이상 악화가 되지 않도록 기를 조금 보충해 주는 정도뿐이었다.
길거리에는 많은 유민들이 나와 있었다.
당태조 이래 벌써 백 년. 권문세가들은 자신의 공을 내세워 영지를 봉토받아 대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며, 그 자손들은 과거보다는 음서라는 제도로 나라의 관리가 되었다.
한마디로 있는 집 자식은 언제라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제도가 합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림뿐만 아니라 무림 문파 중 일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 가문들은 특별히 나라에 반역을 꾀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면 그대로 유지되었다. 무려 백 년을…….
‘나라를 새로 세운 지 백 년. 하지만 백성들의 고통은 여전하구나. 나라를 올바르게 운영하겠다는 자들이, 없는 이들을 수탈하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기꺼이 하니, 어찌 백성들이 삶을 영유할 수 있단 말인가. 부자는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또 그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누어 줌이 정당한 일일진대, 정녕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구나.’
그랬다. 수많은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식을 내다 팔고, 소유하고 있는 땅을 지방 토호들에게 받치고 소작농이 되었다. 먹고살기 위한 방편이라 하지만, 만약 나라에서 올바른 법률을 제정하고, 그것을 강제할 수단을 강구하였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생각일 따름이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가문부터 그러했다. 지금 당장 주어진 해택을 거두어들인다면, 아마도 큰 반발을 할 것이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가진 자뿐이지, 결코 일반 백성을 위해 나누어지진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북궁명은 누군가 자신을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드는 게냐? 내가 보이느냐?”
“네. 누구……신지……?”
왕수강은 초점이 없는 시선으로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 목이 말라요. 물…… 좀…… 주세요.”
“여기 있다. 천천히 조금씩 마시거라. 탈이 날 수 있으니.”
허겁지겁 물을 마시려는 아이를 제지하며 말했다.
“아직 일어나지 말거라. 몸이 온전치 못하니,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
“윽! 너무 아파요.”
“쯧, 누워 있으라니까. 고집이 세구나.”
억지로 일어나 앉으려는 아이를 눕히며 혀를 찼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그래, 어찌 된 일이냐? 무슨 일로 그렇게 상처를 입은 것이냐?”
“전 단지 배가 너무 고팠을 뿐인데…….”
아이는 횡설수설하며 대꾸했다.
“배가 고픈 것과 네가 이렇게 된 게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냐? 혹여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걸린 것이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전 도둑질하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구……걸을 하였던 것뿐이라고요. 절대로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아이는 혼미한 가운데서도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구걸을 했는데, 맞아 죽을 뻔했다라…….”
어렴풋이 짐작이 되었다. 필시 다른 거지 떼에게 맞았으리라. 사는 것이 이리도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런, 네 이름조차 아직 모르고 있구나. 이름이 어찌 되느냐?”
“수강이에요. 왕수강.”
눈물이 맺혔다. 꿈속에서 엄마가 일어나라고 수없이 그를 깨웠지만, 왕수강은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그냥 자고 싶다고 투정 부리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어미는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했다.
“수강아, 약속하지 않았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겠다고. 이 어미에게 약속하지 않았니?”
“엄마. 나 조금만 더 자면 안 될까? 지금 너무 편하고 좋단 말이야.”
“수강아, 안 돼. 지금 잠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한단다. 어서 일어나거라. 어미와의 약속을 잊으면 안 된다. 제발. 어서 일어나거라.”
“나…… 싫은데……. 알았어. 약속이니까.”
조금 전 꿈속에서 어미와 한 대화이다.
수강은 생생하게 기억되는 꿈이 현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살아 있는 것일까? 분명 자신의 손으로 묻어 드렸는데…….
갑작스런 아이의 눈물에 북궁명은 당황했다.
“울지 말거라. 사내대장부가 함부로 눈물을 보이느냐.”
“네.”
얼른 눈물을 지우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몸이 많이 힘들 테니, 좀 더 누워 자거라. 내가 도착하면 깨워 주마.”
그렇지 않아도 피곤이 몰려왔다.
왕수강은 그 말을 듣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이젠 누군가 깨워 줄 사람이 있으니 편히 자야겠다는 잠재의식이 그를 잠으로 불러들인 것처럼 그렇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