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전진신검 1권


1화


서장



남송말,
무림에서 천하제일인이었던 왕중양(王重陽)은 뛰어난 무공 이외에도 유불선의 교리를 깊이 채득하고 있었다.
그는 참선을 거듭한 끝에 큰 깨달음을 얻어 전진교(全眞敎)를 창교한 후 금나라의 탄압으로 혼란과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뒤 왕중양은 전진칠자(全眞七者)라 불리게 되는 제자를 얻어 이들과 함께 천하를 돌며 협과 의를 행하고 포교 활동을 해 전진교는 천하제일문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
전진교의 총본산은 종남산에 있었는데 중양궁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전진칠자의 셋째이자 제사대 장교였던 유처현(劉處玄)이 물러나게 된다.
전진칠자의 넷째인 장춘 진인(長春眞人) 구처기(丘處機)가 제오대 장교에 오르는데 그는 좀 더 많은 포교를 위해 연경으로 본산을 이동한다.
그러나 전진칠자의 여섯째인 학대통(?大通)은 속세에 지나치게 가까우면 세속에 물들어 종내에는 교리의 변질이 생길 수 있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구처기는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학대통은 그를 떠나 화산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행을 거듭했다.
학대통은 말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음으로 새로운 문파를 개파했는데, 그곳이 바로 화산파로 훗날 구대문파란 이름으로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게 된다.
구처기에 의해 연경으로 이전 후 전진교는 교세를 크게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무공은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으며, 죽기 얼마 전 학대통의 걱정대로 교리가 다음 대의 제자들에게 변질되어 전해졌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구처기는 중양궁터에 서고를 만들고 그곳으로 전진교의 모든 책자에 대해 필사본을 작성 후 원본은 중양궁터 서고로 옮기게 했다.
또한 제자들의 무공에 대한 자질도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교리의 변질 속에 세속에 물든 제자들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한 구처기는 왕중양의 완전한 무공을 전하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해 이는 원본인 채로 중양궁터 서고로 이전시켰다.
중양궁터의 서고는 제자 중 가장 전진교의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서지추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했다.
전진교의 원류를 지키고 전할 수 있도록 한 일을 마치고 반년도 되지 않아 구처기는 죽었으며 그의 제자 윤지평이 육대 장교로 이어진다.
이 시기 전진교는 교리의 변질이 있었음에도 백성들과 조정의 지지를 받으며 도교의 총본산으로 인정받으며 더욱 크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교단의 발전 속에 구처기의 예상대로 강력했던 무공은 잊혀져 갔고, 교리도 변질되며 세속화함으로써 제칠대 장교인 이지상을 마지막으로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들어 버렸다.
그 후 전진교는 도교의 총본산이란 칭호도, 천하제일문이란 칭호도 잃어버렸고, 사람들의 뇌리에서조차 사라져 버렸다.
전진교 창교 후 불과 칠십여 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1. 세상속으로



봉두난발에 수염도 덥수룩하고 옷은 다 해져서 걸레보다도 못한 걸 걸친 괴인은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응시했다.
한참을 응시하던 괴인은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뽑아낸 후 검집을 한쪽에 던져 버린 후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후우…….”
긴 숨을 내쉰 괴인의 검이 한순간 밝은 청광을 발하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낮지만 심장을 울리는 검명을 토해 내자 괴인의 수염이 실룩거렸다. 아마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앗!”
짧은 기합성과 함께 검이 움직이자 거대한 바위를 관통하며 지나갔다.
찌이잉!
검이 바위를 관통하며 살짝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검은 처음 속도 그대로 걸리는 느낌 없이 바위에 긴 사선 자국을 남기고 빠져나왔다.
괴인은 사선으로 벤 그 자세 그대로 잠시 서 있었다.
바위를 빠른 속도로 베어서 잠시나마 붙어 있다 떨어져 내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어릴적 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무림의 최강 고수들이 이렇게 했었고, 이제 자신도 그런 고수가 되었으니 분명 그리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곧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럼 자신은 자세를 풀고 일어나 앙천광소를 터뜨리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
바위는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괴인은 슬며시 한손을 내밀어 바위를 툭 치고는 재빨리 원래 자세를 취했다.
“…….”
바위는 미동도 없었다. 다시 좀 전처럼 바위를 툭치고 자세 잡기를 서너 번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괴인은 완전히 자세를 풀고 왼손에 역검으로 든 후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바위를 바라봤다.
그러다 오른손을 내밀어 떨어져 내려야 할 부분에 가져다 댄 후 슬쩍 밀어 보았다.
“…….”
괴인은 다시 수염이 가득한 턱을 매만지다 바위에 온몸의 체중을 다 실어, 심지어 내력까지 사용해 가며 밀어냈다.
“끄으으으으……. 아아아아!!!”
콰드득!
발이 땅에 박혀들 정도로 힘껏 밀었음에도 바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괴인은 손을 떼어내 뒤로 살짝 뺐다.
괴인의 장에 푸른색의 기운이 일렁거리는 순간 섬전처럼 내뻗었다.
쾅!
굉음과 함께 장에 부딪친 면이 박살이 났고 바위에 거미줄 같은 금이 쩍쩍 갔다.
하지만 바위는 여전히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괴인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댔다.
그러고는 다시 바위를 두어 차례 밀어 보고는 한 발짝 물러나 바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뒤 괴인의 몸이 조금씩 부들거리는가 듯싶더니 검을 던져 버리고는 양쪽 머리를 쥐어뜯듯 잡아채며 고함을 질러댔다.
“으아아악!!! 이런 빌어먹을 사부 같으니라고오오오!!!”
사방이 병풍처럼 막힌 협곡엔 괴인의 고함 소리가 굴절되며 쩌렁거렸다.
하지만 온갖 진법으로 둘러싸인 탓에 그 소리는 안타깝게도 협곡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았다.

협곡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멍을 막고 있는 바위에 대한 해체 작업을 시작한 지 어언 보름.
작업은 도무지 끝이 없었다. 너무 큰 바위를 굴려 떨어뜨린 결과 주변 동굴을 무너뜨려 버린 듯싶었다.
그 결과 이 크고 두꺼운 바위를 완전히 잘라 내도 꿈쩍도 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방법은 바위를 아주 잘게 난도질해서 조금씩 뜯어내는 것뿐이었고, 그 짓거리를 벌써 보름째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나가면 반드시 이 원한은 갚고 말 테다. 사문의 사명을 이행할 하나밖에 없는 제자를 이곳에서 늙어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이딴 바위를 굴려 막는 건 뭐냔 말이야.”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상당히 젊은 목소리였다.
괴인은 시종일관 투덜거리며 바위를 자르고 빼내고를 계속했다.
우웅! 찡! 쿵!
검명과 함께 바위가 잘라지고 한아름 정도의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웃차!”
괴인은 그것을 집어서 좀 멀리까지 들고 간 후 집어 던졌다.
쿠쿵!
“아이고 삭신이야. 이러다 허리 나가겠네. 남자는 허리가 생명이라는데…….”
그렇게 말한 괴인이 자리에 그대로 대자로 뻗은 후 호리병처럼 보이는 절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은 여전히 푸른 것이 너무나 맑아 보였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이 답답한 곳을 벗어나지 못함에 화가 뻗친 괴인은 튕기듯 일어나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죽어어어!!!”
미친놈처럼 달려간 괴인은 바위의 반 장 앞에서 왼발로 진각을 밟으며 쌍장에 온 내력을 담아 뿜어냈다.
텅! 콰콰쾅!!!
쌍장에서 뿜어진 청광의 장력이 바위를 강타하자 엄청난 굉음과 장력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바위의 겉면이 꽤나 많이 파괴되었지만 여전히 큰 변화는 없었다.
괴인은 이 한 방에 상당한 내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바위는 여전히 구멍을 막은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고 괴인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올해 안에 나갈 수는 있을라나…….”
괴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바위가 깨지며 떨어진 작은 조각을 주워 휙 집어 던졌다.
탁!
작은 돌 조각이 바위에 맞고 튀어나와 땅을 구르며 소리가 났다.
쿠르릉…….
“응?”
돌 조각 구르는 소리가 너무 육중했다. 그리고 진동마저 느껴졌다.
괴인은 그 돌 조각을 조심스럽게 들어 살펴보다 다시 바위에 살짝 던져 보았다.
탁! 쿠르릉…….
괴인은 이 놀라운 괴사에 돌 조각을 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팍!
바위가 살짝 깨지는 소리와 함께 돌가루가 흩날렸다.
“응?”
조금전 돌 조각이 부딪쳤던 곳에 큰 금이 가 있는 게 보였다. 괴인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엉덩이를 약간 들어 금이 간 부분에 얼굴을 들이대는 순간…….
쩍! 쩌적! 팍!
금이 하나둘 가더니 그 수가 조금씩 늘어났고 먼지가 조금씩 일었다.
“어? 어어…….”
괴인이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위 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그러자 천천히 늘어나던 금이 뚝 멈추고 낮게 울리던 소리도 멈추었다.
괴인은 잠시 바라보고 있다 아무런 변화가 없자 몸을 바로하더니 털털거렸다.
“이놈의 바위마저 날 약올리나…….”
괴인이 신경질적으로 바위를 툭 찼다.
쩍!!!
“헛!”
단 한 번에 금이 온 바위에 나타났고 먼지가 확 일었다. 그리고 그 금은 입구 쪽 벽면에도 동시에 나타났다.
괴인은 그 때문에 본능적으로 슬슬 뒤로 서너 발 물러섰다.
다시 정적…….
“아하하…… 설마 아니겠지…….”
잠시 멈췄던 괴인은 그렇게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두어 발자국 물러났을까, 순간 협곡을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쿠르르릉!
“으아악!”

* * *

종남파 제자 둘은 진동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종남산에서 보기 힘든 바위 지형의 산면 한쪽이 무너져 내린 걸 보고 둘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략 십오 년 전에도 갑자기 무너져 내렸던 전력이 있던 지역이다 보니 혹시 지진이나 큰일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종남산은 예로부터 명승 고적이 많이 있었고, 사찰이나 도관도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또한 중원 각지에서 이곳을 유람하기 위해 오는 이들도 많아 만약 천재지변이 생길 경우 이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거참 다른 데는 멀쩡한데 왜 여기만 자꾸 무너지는 거야. 무너질 이유가 전혀 없구만.”
“종남산의 신선이 방귀라도 뀌었나 보죠 뭐.”
주변을 자세히 살핀 후 이유를 찾지 못한 둘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본파로 돌아가려 했다.
툭. 투툭…….
돌아서던 두 사람은 돌이 조금씩 떨어져 내리는 소리에 돌아봤다. 혹시 또다시 무너지는 것인가 해서 잔뜩 긴장한 채 말이다.
투툭……. 투툭……. 투두두두둑!
무너진 곳의 한쪽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이내 아래쪽으로 확 쏟아져 내렸다.
두 사람은 크게 무너지면 휘말려 들 수도 있었기에 재빨리 뒤로 훌쩍 물러났다.
“에퉤퉤…… 입에 흙 들어갔다. 젠장할…….”
뜻밖에도 뻥뚫린 구멍에서 거친 욕설이 들리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봉두난발에 거지 꼴을 한 사내가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이 기억하기에 이 지형 어디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사람이(솔직히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다만 말을 하고 옷 비슷한걸 입고 있기에 사람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기어 나오자 일단 검을 뽑아 들고 경계를 했다.
봉두난발의 사람 같은 괴인은 완전히 나올 때까지 쉬지 않고 투덜거려 댔다. 그리고는 완전히 나오자 머리에 희뿌옇게 내려앉은 먼지를 먼저 털어 내고 옷도 탁탁 털어 댔다.
“콜록콜록……. 아 진짜……. 켁켁…….”
괴인 주변에 안개가 낀 게 아닐까 싶을 정도 먼지가 일었고 괴인은 그 연기에 연신 켁켁거렸다.
그렇게 꽤 황당하게 출현한 괴인은 먼지를 다 털어 낸 후 종남파의 두 명을 확인하고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종남파의 두 제자는 괴인이 뚫어지게 바라보자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나이가 좀 더 있어 보이는 사내가 입을 열었다.
“뉘시오?”
사내의 물음에도 괴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았고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가오지 말고 거기서 말하시오. 도대체 뉘시기에 거기서 튀어나온 게요?”
사내가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제야 괴인은 움직임을 멈추고 대답했다.
“혹시 반위 사형하고 국진 사형 아니시오?”
괴인의 말에 두 사내, 반위와 국진은 흠칫하며 말했다.
“어? 우릴 아시오?”
“우하하하! 나요, 나. 단연경(端淵慶)입니다.”
“단연경?”
반위가 단연경이란 이름을 되뇌이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