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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삼인방의 이 신속 정확하고 고강한 무공을 지닌 무림인의 일반적 행동에서 벗어난 대응에 단연경은 일단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진 않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방 현령 말을 듣고 호기심에 꼭 얼굴을 보고 싶었소. 하지만 그냥 오면 왠지 보여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 수를 생각한 게요. 그게 전부 다요. 정말이외다. 이 남궁운의 명예를 걸고 보증하오.”
방 현령이란 말이 나오자 단연경은 조금 더 들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의 집 담을 넘은 놈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그딴 걸 건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방 현령은 면사를 하고 있었다지만 회주의 얼굴을 대략이나마 봤어. 그런데 무슨 호기심이 생긴다는 거냐? 왜 얼마나 흉한 얼굴인지 궁금했냐?”
“그럴 리가 있겠소? 그저 면사를 하고 있어 다는 못 봤지만 드러난 부분을 통해 얼굴에 화상이 심하게 있단 소리를 들었는데 목소리와 몸매가 기가 막히다고 하더이다. 그 때문에 호기심이 생긴 거요.”
“왜 얼굴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보고 싶었나? 너 변태야?”
움찔.
단연경의 말에 남궁운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설마 친인들 이외의 사람에게조차 이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 그건 아니고…….”
남궁운이 말을 살짝 더듬자 단연경의 살기가 다시 강해졌다.
“맞구만. 너 변태 맞네. 핵심을 찔려서, 그래서 말을 더듬는 거잖아. 안 그래, 이 변태 자식아?”
움찔.
연속적인 말에 남궁운은 연신 움찔거렸다. 하지만 여기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자신은 변태로 낙인 찍힐 뿐이었다.
“아니오. 그게 아니고, 후우…….”
심호흡을 짧게 한 후 말을 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사실 조금만 생각하면 이상한 점을 금방 알 수 있소.”
“뭐가?”
“얼굴 피부가 일그러질 정도로 화상을 크게 입었다는 건 어찌 되었든 화기에 얼굴이 완전히 노출되었단 것이오. 그 정도면 얇은 눈거풀로 보호되는 연약한 눈도 상하게 마련이오. 절대로 반짝거리는 깨끗한 눈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단 의미요. 그리고 목소리도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화기에 노출되면 입안부터 시작해 기도와 폐까지 즉각 손상되게 되어 있소. 그런데 그런 것도 없으니, 당연히 이상하지 않소.”
어설프고 시덥잖은 짓을 해서 좀 우습게 봤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얘기하자 단연경은 앞으로 더욱 조심을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아울러 청호장이란 곳이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분명 변장한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고 꼭 한 번 실물을 보고 싶었소.”
남궁운의 말에 단연경이 코웃음쳤다.
“흥, 대화가 아니고 사람 보러 왔다고 하네. 그 검은 속셈이 드러났구만.”
남궁운은 아차 싶어 급히 말했다.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거요. 다만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우리 청호장에서 보자고 하면 본색을 드러내지도 않을 것 같고, 재수 없으면 아예 만나 주지도 않을까 해서 그런 것뿐이외다.”
남궁운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본 것이었다.
예사란 자매는 스스로의 힘을 키우기 이전까지는 세상에 크게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진시황릉 지도 사건이 가라앉기는 했지만 그래도 파리 떼가 꼬일 가능성이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었고, 백운곡으로 의심되는 자들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도 미지수였다.
거기에 예사란 자매의 미모와 재능은 금화장이 위치했던 하남성에서 자자했었다. 당연히 그녀들의 본모습이 알려지면 이곳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예사란 자매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본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오밤중에 월담하고 힘없는 아녀자들이 자고 있는 방에 침입을 해? 남자는 기본적으로 검은 짐승이다. 만약 내가 그때 안 나타났으면 무슨 짓을 했을지 어떻게 장담하냐?”
단연경이 버럭거리며 금방에라도 주먹질을 할 것 같자 남궁운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을 거요. 남자가 기본적으로 검은 짐승이란 건 인정하지만 우린 그리하기 힘든 사람들이외다.”
남궁운의 말에 단연경은 피식 웃었다.
“설마 니들 고자야? 아님 니들끼리 서로 탐닉하는 남색 변태냐?”
삼인방의 얼굴색이 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남궁효와 양조위는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변했고 남궁운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아니고, 청호장은 안휘성 남구…… 흡!”
“장주님!”
“형님!”
남궁효와 양조위가 번개 같은 동작으로 남궁운의 입을 틀어막았다. 공공연한 비밀이라도 어쨌든 비밀은 비밀이다.
더군다나 이런 상황에서 진짜 정체를 밝혀 봤자 세가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남궁운이 숨이 막힌 듯 버둥거리자 단연경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며 두 사람을 제지하고 나섰다.
도대체가 일반적인 모습하고는 너무 동떨어진 삼인방이었다.
“떨어져, 떨어져. 너희들 지금 심문받고 있는 거야. 설마 잊은 거냐? 어쭈, 안 떨어져? 그냥 다시 타작할까?”
단연경의 협박에 남궁효와 양조위는 눈빛을 교환했다. 이대로 말했다가는 가문의 명예와 자신들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그렇다고 버티기엔 목숨이 아까웠다. 이만한 일로 맞아 죽기엔 아까웠다.
두 사람이 슬며시 손을 풀자 남궁운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 노무 자식들! 날 죽이려 한 게냐?”
남궁운이 울컥하자 이번에도 단연경이 나섰다.
“그냥 그대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살아남아 봤자 죽을 때까지 맞을 수도 있을 테니까.”
단연경의 말에 남궁운은 무릎을 꿇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말 다했냐? 맞아 죽을 각오된 거야?”
“아니외다.”
남궁운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당당한 표정을 짓더니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야, 너희들도 그냥 의자에 앉어. 이만하면 사과는 할 만큼 했다.”
“형님! 미쳤어요?”
“장주!”
남궁효와 양조위가 뜨악해서 전음으로 소리쳤다. 남궁운은 귀가 쩌렁거리자 눈살을 찌푸렸다.
“귀청 떨어지겠다 이것들아! 조용히 하고 이 형님 말 들어!”
한편 남궁운이 태도를 바꾸자 단연경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로는 예수란과 쌍벽을 이루는 남궁운이었다.
단연경은 잠시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있다 이내 얼굴을 굳혔다.
“죽고 싶나?”
“세상천지에 죽고 싶어 하는 놈이 몇이나 되겠냐? 당연히 살고 싶지. 분명히 말하지만 월담해 방에 들어간 것까지는 잘못을 인정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댓가로 이렇게 두들겨 맞았고, 또 진심으로 사과도 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대화만 하려 했다는 건 분명 진실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믿든 안 믿든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해야지. 안 그래?”
“혀, 형님…….”
단연경과 삼인방의 실력 차는 확실했다. 물론 본신 무공을 최대한으로 펼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승패를 뒤집긴 힘들었다.
그런 남자를 상대로 똥배짱을 튕기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진실을 말해도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고 또 상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짱 꽝 아닌가.
아차 하는 순간 정말 세상 하직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려대로 단연경의 얼굴이 확 굳어지는 게 보였다.
남궁운의 행동에 단연경은 굳은 얼굴로 있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도 진실을 말하는데 아무도 믿어 주지 않자 이런 식의 막 나가는 방법을 써 본 적이 꽤 있었기에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진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뻔뻔함과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왠지 굉장히 정겹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두기엔 남궁운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다.
“너 몇 살인데 말이 그 모양이야?”
“너보다 많다!”
남궁운의 말에 단연경이 눈을 부라리자 그는 약간은 비굴함을 담은 미소를 보이며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라고 평소엔 말했겠지만, 지금 그러면 좋지 않겠지? 하하. 서른셋.”
단연경은 그 진위를 가리기 위해 날카롭게 바라보다 시선을 풀며 말했다.
“나랑 동갑이구만. 좋아.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볼까?”
단연경이 날카로운 살기를 거두며 말하자 남궁운은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하며 아주 작은 미소를 날렸다.
“봤냐?”
계속해서 급변하는 분위기에 남궁효와 양조위는 눈치를 슬슬 보며 의자에 앉았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단연경이 입을 열었다.
“아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궁금하네?”
그 말에 남궁효와 양조위의 고개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 남궁운에게 향했다. 조금 전처럼 발작은 못 했지만 제발 말하지 말라는 염원을 잔뜩 담아 바라봤다.
그러나 그들의 부담스런 시선 따윈 남궁운에겐 전혀 지장이 안 되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청호장은 안휘성의 남궁세가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말하려 했지.”
쿠쿵!
남궁효와 양조위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기분을 느꼈다.
안휘성의 남궁세가. 무림에서 알아주는 명문 중의 명문으로 구대문파의 대표가 무당과 소림이라면 오대세가의 대표는 남궁세가라 일컬어질 정도로 대단한 가문이다.
협의를 실천하는 정도무림 가문으로 합법적 사업을 영위하고 여기에서 상당한 수입 얻어 살림을 꾸려 간다.
하지만 다른 거대 문파나 세가들도 마찬가지지만 그 사업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꽤 많다.
합법적 사업에서 얻는 수입이 적지는 않지만 무림에서의 활동 자체는 순수 소비 활동으로 거대 문파일수록 소비 액수는 굉장한 수준이었다.
아껴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있다 보니 그러기가 만만치가 않다. 거기다 생활 자체도 굉장히 사치스럽다 보니 자주 자금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도무림의 많은 문파들, 특히 거대 문파들은 모두 비합법적인 뒷세계 사업을 영위하며 여기서 자금을 충당한다.
뒷세계 사업은 합법적인 사업보다 비용은 적게 들고 수입은 훨씬 높다. 이렇다 보니 거대 문파들 총수입의 평균 사 할은 이 뒷세계 사업에서 흘러나온다.
협의를 위해 협의에서 벗어난 사업을 한다는 건 웃기는 일이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상호 간에 암묵적 비밀로 지키며 쉬쉬하며 지내고 가끔 이게 드러나면 화살받이용으로 몇 명을 내밀어 단독 범행으로 몰아 처벌 후 넘어간다.
어쨌든 공공연한 비밀로 절대 입밖으로는 이런 부분을 꺼내지 않는데 남궁운이 생판 남에게 아주 당당하게 말해 버린 것이다.
이걸 빌미로 단연경이 세가에 협박을 하거나 혹은 그냥 사방에 떠벌리고 다니면 곤란했다.
남궁세가가 받을 타격은 얼마 안 되겠지만 삼인방은 세가 내에서 매장될 가능성이 높았다. 어쩌면 남궁세가 족보에서 그들 이름을 파 버릴 수도 있었다.
“안휘성의 남궁세가? 혹시 무림에서 오대세가의 수장격이라는 그 남궁세가를 말함인가?”
“당연하지. 이 근처에서 남궁세가란 이름을 쓸 수 있는 곳이 거기 말고 다른 곳이 있을 수 없잖아. 그걸 확인하는 순간 본가에서 사람을 보내 호전적 협상을 통해 못 쓰게 하니까.”
“하긴…….”
단연경이 의외로 담담하게 나오자 남궁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놀라나?”
“그 대단한 남궁세가의 비밀 사업체란 소리는 좀 놀랍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뜨악하고 반응할 이유는 없잖아. 우리가 그 집에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또 그 집에서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으니 말이야. 안 그래?”
“뭐 그렇긴 하지만…….”
단연경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다른 말을 할 건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좀 아쉬웠다.
“그러고 보니 남궁운도 그렇고 양조위도 그렇고, 이름이 낯설지가 않군. 입에 착착 감기는데…….”
대략 반 각가량을 단연경이 고민하며 쉽게 생각해 내지 못하자 남궁운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야 원, 강호 활동 접은 게 삼 년 정도 됐다지만 그래도 이름 꽤나 날렸는데 너무하네. 남궁세가의 신성이라 칭해지며 신룡검협(新龍劍俠)이라 불리던 사람이 바로 나야.”
남궁운의 다소 퉁명스런 말에 단연경은 그제야 생각난다는 듯 오른 주먹으로 왼 손바닥을 내려쳤다.
“아하! 신룡검협 남궁운. 칠룡삼봉 중 현우 놈하고 수위를 다툰다는 그 사내? 그럼 저 녀석이 용을 감싸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는 구름인 운검(雲劍) 양조위였구만.”
“참 빨리도 알아차린다.”
가시 돋힌 어투였지만 단연경은 이미 기분이 좋아진 탓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하하! 어쩐지 정이 가더라니.”
단연경이 웃는 얼굴로 중얼거리다 재차 물었다.
“현우를 아나?”
“현우? 종남파의 곽현우, 그 녀석을 말하는 건가?”
“맞아.”
“알지. 그냥 조금 아는 게 아니고 아주 잘 알지. 아마 무림에서 나만큼 그 녀석을 잘 아는 놈은 없을 걸? 너도 현우를 아나?”
남궁운이 묻자 단연경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알지. 나 역시 그놈을 아주 잘 알지. 그런데 그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나 보구만. 어쩐지 현우 놈에 대해 써 놓은 부분 필체가 좀 부들거린 것처럼 보이더니 이래서였구만. 어려선 나랑 사고치고 세상에 내보내 놨더니 딱 제 놈하고 똑같은 놈하고 사귀어서 절친이라 했으니. 진짜 유유상종이로구만. 큭큭큭!”


<『전진신검』 제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