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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 만남
1. 검은 고양이
2. 고양이, 제안하다
3. 마나를 느껴라
4. 견습 마녀와 훈련
5. 견습 마녀, 과외 선생이 되다
6. 견습 마녀와 사역마
7. 견습 마녀와 하늘에서 내려온 소녀
8. 견습 마녀와 꿈
9. 견습 마녀와 과거


/(1)/


프롤로그 ― 만남


맞기에도 그렇고, 우산을 쓰기에도 애매한 비가 어둠 사이로 보슬보슬 내렸다. 한 청년이 검은 우산을 쓴 채 빗길을 걷고 있었다.
차도엔 많은 차들이 지나 다녔고, 좁지 않은 인도 역시 적지 않은 이들이 걸어 다녔다.
연인이거나 혹은 친구.
비가 오지만 다음 날이 휴일이라는 사실에 들뜬 기분이 묻어나는 그들의 목소리는 조금 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런 이들을 피해 청년은 조심스럽게 골목길로 들어섰다. 대인기피증 따위는 없었다. 단지 우산을 쓴 이들 사이를 지나는 것이 쉽지가 않았기에 골목으로 들어선 것뿐이었다.
조용히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청년은 돌연 어둠에 묻혀 있는 골목 한쪽을 잠시 바라봤다. 하지만 곧 걸음을 옮겼다.
점점 빨라지는 청년의 걸음.
누군가가 쫓아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청년이 향하는 곳이 그의 집이 있는 방향도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자신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군데군데 물이 적지 않게 고여 있었지만 그런 웅덩이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도착한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양쪽으로 집이 있지만 아무도 없는 것인지 불은 꺼져 있었다.
가로등 불빛 한 점조차 비치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의 끝. 그곳에는 한 쌍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절대 사람의 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청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청년이 천천히 보석처럼 빛나는 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눈동자의 높이를 보면 분명 작은 동물일 테지만 그것(?)은 청년이 접근함에도 도망을 치지 않았다.
어둠에 동화된 청년의 눈이 가까워진 동물이 무엇인지 마침내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은 고양이였다.
어둠에 익숙해져 어느 정도 시력이 돌아온 청년은 그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허리에 커다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어디서 어떻게 다친 것인지는 몰라도 상당량의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 역시.
아플 것이 분명하지만 검은 고양이의 눈은 흔들림 없이 청년을 바라봤다.
움찔.
가만히 죽어가는 것 같은 검은 고양이를 바라보던 청년의 몸이 작게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이내 천천히 고양이에게 손을 뻗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돌아보지도 않았을 상처 입은 검은 고양이에게 자신이 왜 손을 뻗으려 하는지 청년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또한 이 만남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변화 역시도.
그것이 어떤 변화일지는 지금 이 순간에는 전혀 모른 채 단지 무엇인지 모를 힘에 끌려 잠깐의 변덕으로 고양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뻗었다고, 그 순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1. 검은 고양이


딸랑딸랑.
노릇노릇 익어 가는 하늘색을 바탕으로 사랑동물병원에 손님이 찾아왔다. 방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카운터를 보는 여인이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아!”
동물병원을 찾은 준혁은 카운터에 있는 여성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며 다가갔다.
“저…… 어제 밤늦게 고양이를 맡겼는데…….”
상당히 긴 앞머리와 굵고 검은 뿔테 안경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준혁은 자연스럽게 카운터를 보고 있는 여인에게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저기, 손님, 그, 그게…….”
조심스럽게 카운터의 여성에게 자신이 맡긴 고양이의 안부를 묻는 준혁이었지만, 카운터의 여성은 뜻밖에도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들도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제 맡기신 고양이가 없어졌어요.”
“예?”
놀라거나 되묻는 행동은 잘 하지 않는 준혁이었지만 카운터 여성의 난데없는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행하고 말았다.
“핑계는 아니지만, 정말로 저희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분명 어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잠이 드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에 안전한 곳에 넣어 놨는데 오늘 아침에 와 보니 고양이가 사라져 있었어요.”
“…….”
긴 머리카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눈동자로는 그의 기분이 어떤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단지 자신이 준혁의 입장이라면 자신들을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감시 카메라로 녹화한 게 있어요. 동물병원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 앞문과 뒷문 모두 들어오는 사람들까지 찍어 놓은 것이요. 하지만 그 누구도 고양이를 데리고 가지는 않았어요. 그건 저희들도 마찬가지고요.”
“…….”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카운터 여성의 말에 준혁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하얀 가운을 입은 여성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아, 어제 그 손님이군요. 잠시 따라오시겠습니까?”
“예.”
어제 자신이 밤늦게 찾아왔음에도 고양이를 돌봐준 수의사의 말에 준혁은 군말없이 그녀를 뒤따랐다.
“커피와 녹차가 있는데,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녹차로 주세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수의사는 접대실 한쪽에 있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일회용 팩으로 간단하게 녹차를 타고는 준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녹차를 건넨 수의사는 준혁의 앞에 마주 앉았다.
“일단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깊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수의사의 모습에 준혁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마주 고개를 숙였다.
“믿기지는 않으시겠지만, 정말로 저희들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몇 번이고 감시 카메라로 확인을 해 봤지만 누군가가 고양이를 가지고 나간 모습은 전혀 찍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고양이가 혼자 탈출을 했다는 것 역시 불가능한 일입니다. 분명 밖에서 문을 잠가 놓았기에 누군가가 밖에서 열어 주지 않고는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네.”
“원하신다면 감시 카메라로 녹화한 모든 것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솔직히 저도 주운 고양이라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의사가 듣기에 준혁의 목소리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아쉬움이 강하게 느껴졌다.
“저, 그럼 치료 비용은 어떻게?”
직접 생활비를 마련하여 살아가는 준혁에게 있어 계획 외의 지출은 상당히 큰 타격이 될 수가 있었다. 거기에 어제 한 수술은 힐끗 살펴보기에도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처럼 보였다.
“물론 받지 않겠습니다. 저희들의 불찰로 인해 고양이가 사라진 것이니까요. 아니, 저희가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 그러실 것까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 역시 그냥 주워 온 고양이라서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떻게 보상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값나가는 물건이나 돈을 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준혁은 부담스러운 마음에 거부했다.
공짜로 무언가가 생기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살짝 소심한 성격인 탓에 자신도 모르게 거절한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다 하여도 꼭 보상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희 병원에 있어 신뢰를 지키지 못한 데 관한 일이니까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순간, 경솔하게 보상을 포기했다는 마음에 아쉬워하던 준혁은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자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앞머리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에 어색한 연기 실력이었음에도 의사가 눈치채지는 못했다.
뜻밖의 일로 소득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준혁이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힐끔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적지 않은 짐을 힘겹게 들고 거리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딱히 무겁지는 않지만 부피가 큰 터라 들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준혁은 아슬아슬하게 짐을 들고 결국 집에 도착했다.

“끙, 다 왔다.”
집에 도착한 준혁은 양손에 든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그중 케이지를 꺼내 문을 열어 주었다.
“자, 나오렴.”
동물병원에서 보답이랍시고 받아 온 것을 꺼내는 준혁의 손길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오늘부터 같이 동거를 하게 될 존재이니 말이다.
조심스러운 준혁의 손길을 따라서 새하얗고 동글동글해 보이는 몰티즈 종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잉.
처음 보는 장소가 불안한지 강아지는 제자리에서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곧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준혁의 손길에 그의 손을 핥기 시작했다.
“돈으로 줄 줄 알았는데.”
동물병원 원장에게 듣기로는 상당한 값어치를 하는 혈통이 좋은 강아지라 했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준혁에게 있어 귀여운 강아지보다는 돈이 더 요긴했다.
그러나 딱히 거절을 하지 못하고 받아 온 것은 강아지의 주인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다.
사랑동물병원에서 교배를 통해 태어난 강아지였지만 주인이 어미 개마저도 찾아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직접 찾아간 적도 있지만 이사를 갔다는 말에 결국 사랑동물병원에서 돌보고 있던 것이었다.
거기에 오늘 받아 온 강아지의 어미는 벌써 입양이 된 상태였다. 교육을 잘 받은 상태였기에 쉽게 입양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태어난 지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는 그렇지 않았다.
“너는 그래도 어머니의 모습이라도 봤으니 좋겠다.”
끄응.
돌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강아지를 준혁은 꾸준히 쓰다듬었다. 평소라면 몰랐겠지만, 강아지의 사정을 듣고 난 뒤 조금 생각하게 된 것이 있었다.
귀엽다는 이유 때문에 부모들과 찢겨져 입양당하는 동물들이 상당히 불쌍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러나 곧 그런 생각은 지워야 했다.
슈우우우.
“윽!”
불안한 듯 주변을 둘러보던 강아지가 망설임없이 그 자리에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 * *

“오셨어요?”
“그래, 오늘도 수고했다. 확실히 네가 가장 성실하게 일한단 말이야.”
“어차피 같은 시간 일하는 건데요. 제 돈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요.”
평일 오후 7시에서 새벽 1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의 주인이 오자 준혁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반겼다.
“하하, 가능하면 계속 시키고 싶은데 학교도 다녀야 하니 아쉽구나. 자, 이거라도 하나 마셔라.”
“고맙습니다.”
피로 회복제용으로 만들어진 음료를 받아 든 준혁이 서둘러 자신의 짐을 챙겼다.
“그보다 최근에 많이 밝아진 것 같다? 서둘러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채, 챙겨야 할 것이 있어서요.”
“그래? 아, 가기 전에 이건 보너스다.”
“예?”
시급제로 일하는 자신에게 보너스를 주는 사장의 행동에 준혁이 잠시 멈칫거렸다.
“용돈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장의 시선에 준혁은 잠시 머뭇거렸다. 솔직히 자신이 근무하는 지금의 시간 파트도 사장과의 면접을 통해서 바꾼 것이었다.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로서는 너무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알바를 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랬기에 항시 자신을 생각해 주는 사장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가끔 저런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현실을 생각해 보면 담담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하하하, 예의 하나는 칼 같다니까. 그래, 더 늦기 전에 가 봐. 밤길 조심하고.”
“저 같은 사람에게 뭐 뜯어 먹을 것이 있다고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그래, 내일 보자.”
준혁은 다시금 깊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나선 준혁이 향하는 방향은 집이 아니었다.
바로 사랑동물병원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나마 집과 사랑동물병원이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여기요.”
사랑동물병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편의점에 들어선 준혁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강아지가 되어 버린 백이를 받아 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백이를 입양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사랑동물병원에서 돌봐 주겠다고 하여 키우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는 터라 24시간 내내 열려 있는 근처의 편의점을 이용하게 된 것이었다.
준혁을 보자 백이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같이 지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오들도 정말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