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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마법전서 1권
/(2)/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를 한 준혁이 조심스럽게 백이를 품에 안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이제는 조금 바뀐 귀갓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생각에 앙증맞은 백이를 몇 번이고 쓰다듬는 준혁이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길을 걷던 준혁은 얌전히 품속에 있던 백이가 바동거리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며 진정시켰다.
왕왕!
한쪽을 보며 짖기 시작하는 백이를 진정시키며 준혁은 백이가 짖는 곳을 바라봤다.
“어? 저 고양이는…….”
백이가 갑자기 짖어댄 이유는 어둠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 고양이는 전에 자신이 사랑동물병원에 맡겼던 바로 그 고양이였다.
뭐라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전의 그 고양이라고 느꼈기에 준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어둠과 동화되어 잘 보이지 않는 검은 고양이의 허리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에 살핀 상처가 심각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그 고양이가 아닌가?”
느낌은 분명 그때의 그 고양이었는데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준혁은 이상함을 느꼈다.
얼마 전에 자신이 주운 고양이는 털이 짧은데다 깊은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다. 한데 당연히 수술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눈앞의 고양이에게선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흉터가 없네?”
준혁은 처음 확신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흉터가 없자 자신이 봤던 고양이가 아닐 거라 생각하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내일 수업이 일찍 있기에 서둘러 수면을 취해야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준혁의 품에 안긴 백이는 쉬지 않고 연신 짖어댔다. 의아한 마음에 뒤를 돌아본 준혁은 검은 고양이가 계속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묘한 불안감.
다른 색도 아닌 검은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었고,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밤거리였기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준혁은 빠르게 달려 집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평소엔 조금 답답한 느낌을 주는 비좁은 원룸이었지만, 방 안에 들어오자 제대로 된 안도감을 느끼는 준혁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준혁은 어두운 방의 불을 켜려 했다. 아침에 씻기는 하지만 저녁에도 씻고 자는 그의 습관으로 인해 서였다.
집의 위치가 그다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주변의 불빛이 밝지 않아 불을 켜지 않고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불을 켜려던 준혁의 몸이 돌연 동작을 멈추었다.
창문에서 한 쌍의 초록색의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잠시 멈추었던 준혁이 황급히 방 안의 불을 켰다.
으르릉.
바짝 경계하고 있던 백이가 불이 켜지자 낮게 으르렁거렸다. 작게 열린 창문을 뒤로한 채 검은 고양이가 창틀에서 가만히 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켜졌지만 더욱 빛나는 것 같은 초록빛 눈동자와 윤기가 흐르는 것 같은 검은 털, 유연한 곡선의 늘씬한 몸매는 동물에 대해 잘 모르는 그로서도 예쁜 고양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분명 문을 잠그고 나간 것 같은데?”
어두웠을 때 느꼈던 위협적인 느낌이 불을 켜는 것만으로 사라지자 준혁은 조심스럽게 이상한 점을 찾아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준혁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법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들리냥?
자신의 귀로 들려와서는 안 될 것 같은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2. 고양이, 제안하다
준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집이라 시끄러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돌연 자신의 귀로 들리는 조금은 독특한 말투와 목소리.
―들리나 보다냥.
“환청이 들릴 정도로 무리한 적은 없는데…….”
이제껏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지만 피로가 쌓여 환청이 들린다고 생각한 준혁이었다. 준혁은 작게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예쁘게 보여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긴 했으나 여전히 조금 두려운 느낌을 주는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믿기지 않는 일을 겪음으로 인해 고양이에 관한 겁이 사라진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조금 멍한 느낌의 준혁이었다.
―드디어 만났다냥.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준혁은 애써 무시하고는 고양이를 살짝 밀어서 밖으로 쫓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고양이는 준혁의 손길을 피해 방 안으로 내려앉았다.
―꿈도 아니고, 환청도 아니다냥.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냥. 내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냥.
방을 기웃거리며 마치 사람같이 행동하는 검은 고양이의 행동과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금 겁을 먹은 준혁이 벽의 한쪽 구석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겁먹을 필요 없다냥. 이 조그마한 몸을 두려워하다니. 쯧쯧, 그것보다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우유 한 잔 안 내주는 거냥.
“우유는 없는데…….”
여전히 겁은 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의 말에 대답을 해 버렸다.
―깨끗한 물이라도 달라냥. 여기는 깨끗한 물도 없어서 아무거나 마시기 힘들다냥.
“알겠으니 일단 저쪽에 얌전히 앉아 있어. 그보다…… 진짜로 네가 말하는 거 맞지? 누가 뒤에서 몰래 말하는 것은 아니지?”
일단은 검은 고양이에게 말을 걸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인지 방 안의 구석구석을 곁눈질로 살폈다.
혹시 소형 카메라나 스피커 같은 것이 달려 있나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을 잘 믿지 못하는구냥.
“고양이가 말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접시에 생수를 따라 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준혁이 물을 할짝거리는 고양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였음에도 두려움을 느낀 것은 아주 잠시였다. 지금은 두려움보다 묘한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고작 물 한 모금 얻어먹는데 뭐 그리 눈치를 주는 거다냥.
“그럼 이 조그마한 방에서 어디다가 시선을 두라고? 주객전도라고.”
준혁이 툴툴거렸지만 그에 대한 검은 고양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끼잉.
돌연 백이가 바동거리며 준혁의 품에서 벗어나 고양이의 앞에 놓인 물 접시를 같이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물 한 방울까지 빼앗아 먹는 야박한 차원이다냥.
고양이가 샐쭉한 시선으로 백이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미 목은 충분히 축인 상태였는지 얌전히 원룸의 한쪽에 있는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 준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는 내가 두렵지 않느냥?
“그, 그런가?”
준혁은 자신의 심장 부위에 손을 갖다 대는 둥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에 허둥댔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냥. 늦었지만 네가 나에게 겁을 먹지 않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다냥.
“뭐가 당연해…….”
말을 하면서도 준혁은 고양이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작은 고양이라서?
절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두려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단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도 동류라는 느낌이 들었다.
끼잉, 왕.
고양이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은 준혁은 돌연 책상 위에 있는 고양이를 보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면 안 돼.”
잠시 바동거리는 백이였지만 곧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안 것인지 얌전히 준혁의 손길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가 나를 노려보다니, 웃기지도 않구냥.
“그보다…… 이거, 꿈은 정말 아니겠지?”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어 보는 준혁을 보며 검은 고양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작은 고양이 하나 못 믿는 소심한 인간이다냥. 그냥 믿어 보거라냥.
“알겠어, 믿을게. 믿는다고 치고, 나 내일 학교를 가야 하거든? 물 먹으려고 내 집에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맹해 보이던 것과는 다르게 전혀 눈치가 없지는 않구냥.
“제비처럼 박씨라도 물어다 줄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냥. 그보다 전에 날 도와준 것은 정말로 고맙다냥.
“뭐, 별로……. 내 돈이 나간 것도 아닌데 뭘.”
―아니다. 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다냥. 정말 다행히도 네가 그곳을 지나가서 다행이었다냥.
“다른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지나갔다면 더 잘해 줬을 거야.”
―그건 아닐 거다냥. 그곳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냥. 다행히도 너는 내 목소리를 들었기에 그곳으로 왔던 거다냥.
“그게 무슨?”
―거짓말이라는 게 너무 얼굴에 드러난다냥. 너는 분명 그때 들었을 거다냥. 내 목소리를 말이다냥. 도와달라는 목소리를냥.
검은 고양이의 말에 준혁이 검은 고양이를 노려봤다. 검은 고양이의 말에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그때 자신이 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님에도 한참 돌아 그곳으로 갔는지는 몰랐다.
무언가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은 다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 앞에 서 있던 기억밖에는.
―아무튼, 그런 것은 어찌 돼도 좋다냥. 날 구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우선 할 일이 있어서 너를 찾아왔다냥.
“……뭔데, 그 할 일이라는 건?”
굳이 자신에게 그런 사실을 밝히는 고양이의 말에 준혁이 다시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놈의 의심병은냥……. 나는 네게 제안을 하기 위해서 왔다냥.
“제안?”
더욱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준혁. 그러나 고양이는 동그란 두 눈으로 준혁의 살짝 흔들리는 눈을 직시했다.
―마녀가 되지 않겠냥?
“마, 마녀?”
―그렇다냥. 마녀 말이다냥.
“…….”
―…….
“진심으로? 그 마법을 쓰는 마녀? 매부리코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마녀?”
―대충 알고는 있구냥. 여기에는 기사나 마법이 없어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냥.
“기사, 마법…… 꿈이라면 빨리 깨야 할 텐데. 이러다 지각할 수도 있고.”
준혁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침대에 누웠다.
―못 믿겠냥?
“으헉!”
목소리야 그렇다 쳐도 책상에 있던 검은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자 준혁이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혁이 갑작스레 일어나자 품에 안겨 있던 백이 역시 감았던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이내 하품을 하고는 다시 준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조심하라냥!
돌연 벌떡 일어나는 준혁으로 인해 고양이가 놀라 허공으로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귀, 귀신 고양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귀신 취급 하는 꼴이다냥. 정말 못됐다냥. 못 믿겠으면 날 만져 보라냥.
고양이의 허락이 있었지만 준혁은 살짝 겁을 먹은 것인지 고양이를 만지지는 못했다. 다시금 책상 위로 돌아가 있는 고양이는 분명히 방금 전까지 자신의 눈앞에 떠 있었다.
준혁이 알고 있는 한 절대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는 자신의 눈앞에 떠 있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발판을 딛고 선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귀로 울리듯 들려오는 고양이의 목소리.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현실과 대면한 상태에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귀신이 아닐 리가 없잖아!”
―정말로 못 믿는구냥. 그럼 어떻게 하면 믿겠냥?
“그,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후우,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냥. 내일 일이 있다고 했으니 일단은 자라냥. 자고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다면 날 믿어 주라냥.
“이, 일단은 그렇게 할게.”
신뢰가 전혀 되지 않는 준혁은 조금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이미 시간은 새벽 3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것이 놀라운 심정이었다.
‘일어나면 피곤하겠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한 준혁은 몸이 편안해지자 더없이 무겁게 내려오는 눈을 감았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하루라 생각하며.
방금 전의 일이 현실로 닥쳐올 것이라는 것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것도 이 순간만큼은 전혀 예상조차 못했다.
단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 뿐이었다.
/(2)/
아르바이트생에게 인사를 한 준혁이 조심스럽게 백이를 품에 안고는 편의점을 나섰다. 이제는 조금 바뀐 귀갓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는 생각에 앙증맞은 백이를 몇 번이고 쓰다듬는 준혁이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길을 걷던 준혁은 얌전히 품속에 있던 백이가 바동거리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며 진정시켰다.
왕왕!
한쪽을 보며 짖기 시작하는 백이를 진정시키며 준혁은 백이가 짖는 곳을 바라봤다.
“어? 저 고양이는…….”
백이가 갑자기 짖어댄 이유는 어둠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그 고양이는 전에 자신이 사랑동물병원에 맡겼던 바로 그 고양이였다.
뭐라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전의 그 고양이라고 느꼈기에 준혁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어둠과 동화되어 잘 보이지 않는 검은 고양이의 허리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에 살핀 상처가 심각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그 고양이가 아닌가?”
느낌은 분명 그때의 그 고양이었는데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준혁은 이상함을 느꼈다.
얼마 전에 자신이 주운 고양이는 털이 짧은데다 깊은 상처까지 입은 상태였다. 한데 당연히 수술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눈앞의 고양이에게선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흉터가 없네?”
준혁은 처음 확신했던 생각과는 다르게 흉터가 없자 자신이 봤던 고양이가 아닐 거라 생각하고는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내일 수업이 일찍 있기에 서둘러 수면을 취해야 지장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준혁의 품에 안긴 백이는 쉬지 않고 연신 짖어댔다. 의아한 마음에 뒤를 돌아본 준혁은 검은 고양이가 계속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묘한 불안감.
다른 색도 아닌 검은색의 털을 가진 고양이었고, 사람이 없는 어두운 밤거리였기에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준혁은 빠르게 달려 집에 도착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평소엔 조금 답답한 느낌을 주는 비좁은 원룸이었지만, 방 안에 들어오자 제대로 된 안도감을 느끼는 준혁이었다.
집으로 들어온 준혁은 어두운 방의 불을 켜려 했다. 아침에 씻기는 하지만 저녁에도 씻고 자는 그의 습관으로 인해 서였다.
집의 위치가 그다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주변의 불빛이 밝지 않아 불을 켜지 않고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하지만 불을 켜려던 준혁의 몸이 돌연 동작을 멈추었다.
창문에서 한 쌍의 초록색의 눈동자가 보석처럼 빛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
잠시 멈추었던 준혁이 황급히 방 안의 불을 켰다.
으르릉.
바짝 경계하고 있던 백이가 불이 켜지자 낮게 으르렁거렸다. 작게 열린 창문을 뒤로한 채 검은 고양이가 창틀에서 가만히 준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켜졌지만 더욱 빛나는 것 같은 초록빛 눈동자와 윤기가 흐르는 것 같은 검은 털, 유연한 곡선의 늘씬한 몸매는 동물에 대해 잘 모르는 그로서도 예쁜 고양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다.
“분명 문을 잠그고 나간 것 같은데?”
어두웠을 때 느꼈던 위협적인 느낌이 불을 켜는 것만으로 사라지자 준혁은 조심스럽게 이상한 점을 찾아내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순간, 준혁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법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들리냥?
자신의 귀로 들려와서는 안 될 것 같은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2. 고양이, 제안하다
준혁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집이라 시끄러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돌연 자신의 귀로 들리는 조금은 독특한 말투와 목소리.
―들리나 보다냥.
“환청이 들릴 정도로 무리한 적은 없는데…….”
이제껏 단 한 번도 경험한 적은 없지만 피로가 쌓여 환청이 들린다고 생각한 준혁이었다. 준혁은 작게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예쁘게 보여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긴 했으나 여전히 조금 두려운 느낌을 주는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믿기지 않는 일을 겪음으로 인해 고양이에 관한 겁이 사라진 것이었다. 솔직히 지금 상황이 현실인지 아닌지 조금 멍한 느낌의 준혁이었다.
―드디어 만났다냥.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준혁은 애써 무시하고는 고양이를 살짝 밀어서 밖으로 쫓아내려 하였다. 그러나 고양이는 준혁의 손길을 피해 방 안으로 내려앉았다.
―꿈도 아니고, 환청도 아니다냥.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냥. 내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냥.
방을 기웃거리며 마치 사람같이 행동하는 검은 고양이의 행동과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금 겁을 먹은 준혁이 벽의 한쪽 구석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겁먹을 필요 없다냥. 이 조그마한 몸을 두려워하다니. 쯧쯧, 그것보다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우유 한 잔 안 내주는 거냥.
“우유는 없는데…….”
여전히 겁은 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의 말에 대답을 해 버렸다.
―깨끗한 물이라도 달라냥. 여기는 깨끗한 물도 없어서 아무거나 마시기 힘들다냥.
“알겠으니 일단 저쪽에 얌전히 앉아 있어. 그보다…… 진짜로 네가 말하는 거 맞지? 누가 뒤에서 몰래 말하는 것은 아니지?”
일단은 검은 고양이에게 말을 걸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인지 방 안의 구석구석을 곁눈질로 살폈다.
혹시 소형 카메라나 스피커 같은 것이 달려 있나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을 잘 믿지 못하는구냥.
“고양이가 말하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접시에 생수를 따라 주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준혁이 물을 할짝거리는 고양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였음에도 두려움을 느낀 것은 아주 잠시였다. 지금은 두려움보다 묘한 호기심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고작 물 한 모금 얻어먹는데 뭐 그리 눈치를 주는 거다냥.
“그럼 이 조그마한 방에서 어디다가 시선을 두라고? 주객전도라고.”
준혁이 툴툴거렸지만 그에 대한 검은 고양이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끼잉.
돌연 백이가 바동거리며 준혁의 품에서 벗어나 고양이의 앞에 놓인 물 접시를 같이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물 한 방울까지 빼앗아 먹는 야박한 차원이다냥.
고양이가 샐쭉한 시선으로 백이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미 목은 충분히 축인 상태였는지 얌전히 원룸의 한쪽에 있는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 준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는 내가 두렵지 않느냥?
“그, 그런가?”
준혁은 자신의 심장 부위에 손을 갖다 대는 둥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시선에 허둥댔다.
―겁먹을 필요는 없다냥. 늦었지만 네가 나에게 겁을 먹지 않는 것은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다냥.
“뭐가 당연해…….”
말을 하면서도 준혁은 고양이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작은 고양이라서?
절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두려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단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도 동류라는 느낌이 들었다.
끼잉, 왕.
고양이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은 준혁은 돌연 책상 위에 있는 고양이를 보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백이를 안아 들었다.
“그러면 안 돼.”
잠시 바동거리는 백이였지만 곧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안 것인지 얌전히 준혁의 손길을 느끼며 몸을 웅크렸다.
―이제 막 태어난 핏덩이가 나를 노려보다니, 웃기지도 않구냥.
“그보다…… 이거, 꿈은 정말 아니겠지?”
자신의 볼을 살짝 꼬집어 보는 준혁을 보며 검은 고양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작은 고양이 하나 못 믿는 소심한 인간이다냥. 그냥 믿어 보거라냥.
“알겠어, 믿을게. 믿는다고 치고, 나 내일 학교를 가야 하거든? 물 먹으려고 내 집에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맹해 보이던 것과는 다르게 전혀 눈치가 없지는 않구냥.
“제비처럼 박씨라도 물어다 줄려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냥. 그보다 전에 날 도와준 것은 정말로 고맙다냥.
“뭐, 별로……. 내 돈이 나간 것도 아닌데 뭘.”
―아니다. 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다냥. 정말 다행히도 네가 그곳을 지나가서 다행이었다냥.
“다른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지나갔다면 더 잘해 줬을 거야.”
―그건 아닐 거다냥. 그곳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냥. 다행히도 너는 내 목소리를 들었기에 그곳으로 왔던 거다냥.
“그게 무슨?”
―거짓말이라는 게 너무 얼굴에 드러난다냥. 너는 분명 그때 들었을 거다냥. 내 목소리를 말이다냥. 도와달라는 목소리를냥.
검은 고양이의 말에 준혁이 검은 고양이를 노려봤다. 검은 고양이의 말에 확신이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직히 그때 자신이 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아님에도 한참 돌아 그곳으로 갔는지는 몰랐다.
무언가를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지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은 다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 앞에 서 있던 기억밖에는.
―아무튼, 그런 것은 어찌 돼도 좋다냥. 날 구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우선 할 일이 있어서 너를 찾아왔다냥.
“……뭔데, 그 할 일이라는 건?”
굳이 자신에게 그런 사실을 밝히는 고양이의 말에 준혁이 다시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놈의 의심병은냥……. 나는 네게 제안을 하기 위해서 왔다냥.
“제안?”
더욱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준혁. 그러나 고양이는 동그란 두 눈으로 준혁의 살짝 흔들리는 눈을 직시했다.
―마녀가 되지 않겠냥?
“마, 마녀?”
―그렇다냥. 마녀 말이다냥.
“…….”
―…….
“진심으로? 그 마법을 쓰는 마녀? 매부리코에 챙이 긴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마녀?”
―대충 알고는 있구냥. 여기에는 기사나 마법이 없어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냥.
“기사, 마법…… 꿈이라면 빨리 깨야 할 텐데. 이러다 지각할 수도 있고.”
준혁이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침대에 누웠다.
―못 믿겠냥?
“으헉!”
목소리야 그렇다 쳐도 책상에 있던 검은 고양이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자 준혁이 화들짝 놀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준혁이 갑작스레 일어나자 품에 안겨 있던 백이 역시 감았던 눈을 뜨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나 이내 하품을 하고는 다시 준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조심하라냥!
돌연 벌떡 일어나는 준혁으로 인해 고양이가 놀라 허공으로 다시 한 번 뛰어올랐다.
“귀, 귀신 고양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귀신 취급 하는 꼴이다냥. 정말 못됐다냥. 못 믿겠으면 날 만져 보라냥.
고양이의 허락이 있었지만 준혁은 살짝 겁을 먹은 것인지 고양이를 만지지는 못했다. 다시금 책상 위로 돌아가 있는 고양이는 분명히 방금 전까지 자신의 눈앞에 떠 있었다.
준혁이 알고 있는 한 절대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검은 고양이는 자신의 눈앞에 떠 있었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발판을 딛고 선 것처럼 말이다. 거기에 자신의 귀로 울리듯 들려오는 고양이의 목소리.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현실과 대면한 상태에 드는 생각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귀신이 아닐 리가 없잖아!”
―정말로 못 믿는구냥. 그럼 어떻게 하면 믿겠냥?
“그,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후우,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냥. 내일 일이 있다고 했으니 일단은 자라냥. 자고 눈을 떴을 때 내가 있다면 날 믿어 주라냥.
“이, 일단은 그렇게 할게.”
신뢰가 전혀 되지 않는 준혁은 조금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이미 시간은 새벽 3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것이 놀라운 심정이었다.
‘일어나면 피곤하겠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이 전부 꿈이라고 생각한 준혁은 몸이 편안해지자 더없이 무겁게 내려오는 눈을 감았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하루라 생각하며.
방금 전의 일이 현실로 닥쳐올 것이라는 것도,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것도 이 순간만큼은 전혀 예상조차 못했다.
단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