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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
이견대인(利見大人)



명부마도 1권(1화)
작가 서문


세상에는 정말 많은 즐거움이 있지만, 저의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생각에 비해 변변찮은 글 실력 탓에 매번 좌절하곤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또 하나의 글을 써 내었으니 모쪼록 즐겁게 보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못된 저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시는 도검 형님, 우각 형님, 서현 형님, 훈영 형님, 프로즌 형님, 태규 형님, 백연 형님, 지혁 형님, 자우 형님, 동재 형님, 이그 형님, 우현 형님, 그리고 정우, 항상 고마운 마음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 글을 책으로 엮어 주시는 출판사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항상 마감을 어겨서 죄송스럽기 그지없네요.
마지막으로 든든한 후원자이신 부모님과 독자 제현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글쟁이 서문, 이만 마칠까 합니다.

舌舞팽타준 배상


서장 마도천하


마도군림 혈세천하(魔道君臨 血洗天下).
창궐한 마도의 앞을 막을 수 있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오파일방이라 불리는 명문정파는 마도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강호의 노고수들은 마도종주의 가공할 무공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혈향을 흩뿌리며 육 척 혈도를 휘두르는 마도종주를 강호인들은 명부마도(冥府魔刀)라 불렀고, 그의 뜻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마도의 휘하로 하나 둘 흡수되어 갔다.
하지만 정작 그 명부마도 혁련호(赫連虎)가 마도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형님, 드디어 소림까지 마도의 발아래 무릎 꿇었습니다!”
만마전(萬魔殿) 내부에 갓 도착한 마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자신의 의형제 대양마두(大洋魔頭)가 기쁜 소식을 전해 왔음에도 마도종주 혁련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십육 인의 마두들이 일제히 마도종주의 눈치를 살폈다.
“투항한 백오십 무승들의 목을 모조리 베었습니다, 형님!”
“대양마두께선 언제까지 종주를 형님이라 부르실 생각이오?”
“따지는 것도 많수! 기쁜 소식을 전하는데 꼭 그리 꼬치꼬치 따져야겠소?”
마두들 중 일인이 핀잔을 주듯 말하자, 대양마두가 눈을 부라리며 버럭 외쳤다.
“누가 죽이라 하였느냐.”
험상궂은 분위기가 형성된 가운데, 마도종주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양마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혁련호를 바라보았다.
“형님께서 직접 베고 싶으셨습니까? 흐흐,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저항할 정파 놈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후우…….”
자신의 심중도 읽지 못하고 속을 뒤집어 놓는 아우의 목소리에 결국 혁련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은 생각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형님! 아, 아니, 종주! 오늘은 그 기념으로 아미파에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구니 계집들 엉덩이나 두드리면서 말입니다!”
“호! 가끔은 쓸 만한 소리도 할 줄 아는군.”
“크하하!”
대양마두의 목소리에 다른 마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내 대전 안이 떠들썩해졌다.
“돌아가고 싶군. 처음으로…….”
질펀한 농담을 주고받는 마두들을 바라보며 혁련호의 입에서 신음과 같은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이내 상석에서 몸을 돌린 혁련호의 신형이 점점 멀어져 갔음에도 마두들의 떠들썩한 외침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

“내가 꿈꾸던 강호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강호의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만마전.
그 최상층에 선 혁련호의 입에서 자책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저 강호를 자유로이 노닐고 싶을 뿐이었는데, 어찌 세상은 나를 마도라 칭하였는가.”
십만 마도인들을 이끄는 마도종주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혁련호의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세상은 그를 마도라 불렀고, 그렇기에 그는 마도가 되었다. 위선에 가득 찬 정파보다는 자유분방한 마도가 차라리 낫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오였다.
마도는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었다.
무질서! 무규칙!
그들은 그저 세상을 어지럽히기만 하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수하들의 손속은 날이 갈수록 잔인해졌고, 만마전에서 내려다보이는 강호조차도 황폐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백성들은 항상 공포에 떨었고, 수하들은 그것이 자신의 뜻이라 외치며 강호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다. 처음으로, 자유롭고 싶던 그때로…….”
만마전 아래로 시선을 돌린 그의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황폐하게 변한 산과 들.
비탄에 빠진 백성들과 마인들의 발아래 치욕적으로 생을 이어가는 정사의 무인들.
그 모든 것이 그가 알던, 그가 원했던 강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코 현세에 강림해서는 안 되는 지옥, 그것과 다름없는 처참한 살풍경이었다.
“안 돼! 이대로는 안 된다. 마도천하는 도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
과거를 추억하던 혁련호는 마침내 확신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미래를 바꾸기로.
굳은 결심을 한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만마전의 최하층.
먼 과거부터 전해져 온 마교의 서고였다.
그 위에 지어진 만마전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마인들을 위한 비술과 무공, 그리고 현존해서는 안 되는 온갖 사술과 주술이 난무하는 곳.
‘이곳으로 들어가도 되는 것인가. 나는 과연 옳은 결정을…….’
막상 그곳으로 향하는 입구에 서자, 결심이 흔들렸다.
혁련호는 한참이나 그렇게 지하로 향하는 문 앞에 서서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를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형님! 아니, 종주! 지금 아미파로 출발할 건데 정말 함께 가지 않을 거요?”
“……그래, 들어가자.”
그래,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사는 것보다는 저 심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마(戰魔)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흔들리던 결심이 일시에 확고해졌다.
뚜벅, 뚜벅.
주먹을 움켜쥔 그의 신형이 지하의 대서고(書庫) 안으로 사라져 갔다.
서고의 구석구석을 뒤져서라도 기필코 과거로 회귀(回歸)하리라 다짐하면서…….


제1장 회귀하다(1)


쓰러질 듯 보이는 허름한 판잣집.
덩그러니 놓인 침상 위로 소년이 죽은 듯 잠에 빠져 있었다.
후우웅!
소년의 숨소리만 간간히 들리던 집 안으로 작은 바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무 벽으로 붉은빛이 번져 나가나 싶더니 희미한 붉은 구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후웅, 후웅.
붉은 구체는 방 안 이곳저곳을 맴돌다 이윽고 소년의 머리 위에서 멈추었다.
소년의 숨소리는 여전히 작고 느렸다.
구체는 소년의 입으로 천천히 스며들더니 들이쉬는 숨결을 따라 그의 몸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쩌엉!
소년의 몸 전체를 붉은 섬광이 휘어 감았다. 소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크으…….”
소년의 몸을 감싸 안았던 붉은빛이 천천히 그의 몸 전체로 스며들었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던 소년은 천천히 눈을 뜨고는 주위를 살폈다.
멍하던 소년의 눈빛에 이채가 가득 어렸다.
주위를 둘러보던 소년은 불현듯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아직 주름도 잡히지 않은 말끔한 얼굴과 채 영글지 않은 탄탄한 몸.
고개를 들자 추레하기 그지없는 주위의 풍경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그제서야 소년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성공인가…….”
자칫하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금단의 마공.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수련에 매진했다.
꼬박 십 년이 걸렸다.
마도천하를 이루지 않기 위해 천마의 마공이 아닌 정도의 절대무공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리고 돌아왔다.
“그래, 돌아왔다. 강호여, 혁련호가 돌아왔다!”
희열에 찬 혁련호의 외침이 뜨겁게 퍼져 나갔다.

혁련호는 먼저 날짜를 확인했다.
판잣집에 표시한 날짜는 분명 그가 과거로 돌아왔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열여섯의 봄.
그가 천마의 기연을 얻었던 해이자, 강호로 출행했던 해다.
혁련호는 천마의 진전을 잇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니, 익힐 필요가 없었다. 모든 무공의 구결이 머릿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전에 가졌던 막대한 내공도 이혼술과 함께 혼 속에 봉인되어 따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내공이 혼에 봉인되어 있어도, 이미 구결을 익히고 있어도 절대로 사용하지 않으리라 혁련호는 다짐했다.
그가 천마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이 강호에 알려지는 순간, 그는 다시 마인으로 낙인찍힐 것이 분명했으니까.
대신 마교의 서고에서 공부했던 정도의 무공을 익힐 작정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정도의 무인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혁련호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정파의 무인들은 규율과 관습을 중요시 여기고 협에 목숨을 건다.
타협할 줄 모르는 외골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사도의 무인이 될 것인가?
사도는 자유분방하나 절제할 줄을 모른다. 스스로가 만족하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멈출 줄 모르는 무인이 되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정사 모두에 버림 받은 무질서하고 무규칙한 마도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길을 걸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어째서 내가 이 세 가지 길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단 말인가. 사내라면 응당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 법! 나는 정, 사, 마를 모두 내 안에 담아 대인(大人)이 되겠다!”
혁련호는 주먹을 쥐어 들었다.
대인!
단지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뛰고 피가 끓었다.
“좋다! 대인이 되겠다. 대인천하를 이루겠다!”
결심을 굳힌 혁련호는 득달같이 신형을 내달렸다.
젊음 때문일까. 무공을 익히지 않았음에도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전신의 세맥은 화기를 멀리한 덕에 조금도 막히지 않았고, 비록 왜소한 체구였지만 사지육신에 힘이 넘쳤으며, 정신 또한 또렷하게 맑았다.
“하아, 하아……. 그래, 이거면 충분하겠지?”
막사산(莫邪山)을 타고 넘어 도착한 곳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 앞.
이 벽조목(霹棗木)은 앞으로 그의 도가 될 터였다.
날이 서 있는 도를 쥐어서는 안 되었다. 그의 혼에 봉인되어 있는 마공이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야, 쓸 만하군!”
반쯤 꺾인 굵은 나뭇가지를 움켜쥔 혁련호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도 깨부술 정도로 단단한 나무이니 무기로 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게다가 혁련호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무인에게는 날이 있고 없음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목도라 하여도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좋아, 내일부터 당장 수련을 시작하는 거다.”
나뭇가지를 질질 끌며 집으로 돌아가는 혁련호의 얼굴은 새로운 무공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