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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버닝 (1화)
프롤로그
쿵!
문이 열리자마자 그대로 벽으로 밀어붙여진 여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 따윈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듯 그대로 여자의 입술을 헤집기 시작했다. 핥고 깨물어 기어이 여자의 입술을 열어 작은 혀를 잡아채 숨 막히게 빨아댄다. 맞닿은 심장이 주체할 수 없게 뛰고 있었다. 그 탓에 귀는 귀대로 얼얼하고, 입술은 입술대로 얼얼했다.
“잠……깐! 하아. 하아.”
여자가 남자를 밀쳐내고 남자의 가슴에 두 손을 얹은 채 숨을 고른다. 하지만 남자는 그 잠깐도 참지 못한다. 여자를 안아 올린 남자는 곧장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밀치듯 여자를 침대 위에 던져 버린 남자는 곧장 여자 위로 덮쳐왔다.
알싸한 담배 냄새와 시원한 스킨향이 코끝에 와 닿았다. 여자는 차라리 눈을 감아 버렸다. 겁이 났다. 술기운을 빌려 남자를 유혹했던 사람치곤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으로 여자는 남자에게 짓눌렸다. 뜨거운 남자의 몸이 기대오자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렸다. 톡톡 단추가 풀리는 그 소리가 귓가에 댕댕 울렸다. 몸을 움츠렸나 보다. 남자가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나지막이 여자를 어르기 시작했다.
“쉬이…… 괜찮아.”
남자의 혀끝이 귓불에 닿았다 떨어졌다. 후우. 여자에게서 의도하지 않은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남자의 입술이 귓불에서 목덜미까지 느릿하게 움직였다. 심장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여자는 당장 죽을 것만 같아졌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 여자를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다.
“아흣!”
벌어진 앞섶으로 남자의 혀가 촉촉하게 길을 내고 들어오자, 여자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 순간, 남자는 그대로 아찔하게 솟은 핑크빛 유두를 단숨에 베어 물었다.
“아!”
절로 날카로운 신음이 터졌다. 그 소리에 남자는 작전을 바꾸는 것 같았다. 부드럽게 혀끝으로 살살 어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자의 손이 다른 쪽 가슴을 망설임 없이 움켜쥐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움켜쥔 것과는 다르게 남자는 딱딱하게 솟은 유두를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살살 쓸어내리기를 반복했다.
여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가 없어졌는지 연방 몸을 뒤틀었다.
“왜……. 너무, 예민하잖아…….”
남자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생각하기에 그의 입술이 편편한 자신의 아랫배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찰나 같았다.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제발…….”
여자는 자신이 애원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얗게 맨몸이 되어 버린 것도, 자신의 몸을 만지는 그의 몸 역시 그렇다는 것도 그녀는 느끼지 못할 만큼 떨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저 이 순간을 견디기 힘들다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애원하지 마. 미치겠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니까.”
거친 중얼거림과 함께 남자의 손이 여자의 다리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질끈 감겼던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낯선 이물감. 그래서 다리를 바짝 모았다. 하지만 이내 남자의 완력으로 그녀의 몸은 다시금 활짝 열리고 말았다.
남자는 서슴없다. 정말로 서슴없이 자신의 손가락으로 여자의 몸에 길을 냈다. 여자는 점점 더 숨을 헐떡거렸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남자가 손가락을 빼내곤 여자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더 이상 힘들겠어, 나도.”
남자가 여자에게로 들이닥쳤다.
“아, 아!”
여자의 입에선 고통스럽게 신음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질끈 깨문 입술이 어쩌질 못하고 벌어졌다.
남자의 눈이 짙어졌다. 하지만 멈추기엔 늦어 버렸고, 멈추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남자는 최대한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여자는 몸을 비틀며 흐느꼈다.
“괜찮아. 쉬이…….”
남자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흐느끼는 여자의 얼굴에 자잘한 키스를 흩뿌렸다. 연방 괜찮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남자는 움직임이 점점 더 격렬해지자 결국 말을 멈췄다.
거친 숨결이 넘나들고, 뜨거운 열기가 너울거렸다. 고통에 익숙해지려는 찰나, 여자에게 미세한 떨림과 함께 환희가 찾아들기 시작했다.
여자의 가는 허리가 남자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었다. 습한 열기가 객실을 가득 채워 버렸다. 여자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 소리 역시 그러했고, 남자의 거친 숨소리 섞인 탄성이 그러했다.
“윽!”
깊은 움직임 끝에 남자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의 손가락이 남자의 등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남자는 눈물 맺힌 여자의 눈꺼풀에 가만히 입술을 대었다. 그리고는 조그만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미안…….”
그리고는 다시금 입을 맞춘다.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 처음인…….”
“무거워.”
남자의 말을 자르고 여자가 한숨을 섞어 토해냈다.
“싫은데.”
남자는 정말 그러기 싫은 듯 아주 천천히 그녀에게서 빠져나왔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였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그의 입가엔 장난스러운 미소가 머금어진 상태였다.
흐읍!
남자가 완전하게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그 순간, 여자는 잠깐동안 숨을 멈추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훗.”
남자가 작은 소리로 웃으며 여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남자는 조심스럽게 여자의 곁으로 누웠다. 그리곤 여자의 벗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여자의 몸이―그리고 자신의 몸 역시―땀으로 끈적이고 있었지만, 그는 안은 팔을, 지분거리는 손을 절대로 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었다. 행위가 끝나면 늘 샤워를 하고 잠에 빠지는 남자였다. 한데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대로 느끼고 싶었다. 여자의 심장 뛰는 소리를. 달달한 향이 나는 것만 같은 여자의 숨소리를. 따뜻한 여자의 체온을.
여운.
그렇다. 여자가 준 이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남자는.
남자는 그 밤, 여자를 깔끔하게 먹어치웠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그렇게 여자의 몸 구석구석을 알아내고, 또 철저하게 소유했다. 어슴푸레한 새벽녘, 여자가 조용히 그가 잠든 침실을 벗어나는 것도 모르고 남자는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 하루는 사라졌다.
1장 (1)
정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무대 위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서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서한이 자신의 재즈클럽 burning에서 일한 지 벌써 일 년.
하지만 저 여자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신경을 긁었던 적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녀는 늘 제 할 일을 실수 없이 해냈고, 단 한 번의 지각도, 결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요 사이 서한은 자신의 신경을 묘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일주일 전 있었던 일이 마치 꿈인 양, 저 여자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그렇다. 그의 신경을 부단히도 자극하고 있는 그것은 바로 저 여자의 그러한 태도였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출근을 해서 자신과 마주치면 작게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하고, 자신의 타임이 되면 노래를 부르고, 지금처럼 피아노 연주를 한다. 그러다 퇴근시간이 되면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과 다른 직원들을 향해 예의 그렇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사라지는 것이다.
빌어먹을.
어이없게도 그날 그렇게 절박하게 자신에게 안겼던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참 묘해. 그렇지 않아?”
언제 왔는지 모르게 태란이 그의 곁에 서서 물었다.
“아주 뻑이 가게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여주게 늘씬한 것도 아니야. 근데 시선이 가. 여자도 그런데 남자는 오죽하겠나, 그 생각이 들어. 서한 씨 보면은.”
찌푸려졌던 미간이 눈에 띄게 더 구겨졌다.
“마티니 한 잔, 수인 씨.”
제 말에 정혁의 기분이 더 나빠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란은 스툴에 앉으며 수인을 향해 빙글 웃었다.
“안 바쁘면 앉지?”
하지만 태란이 그러거나 말거나 정혁은 쌩하니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쟤 왜 저래요?”
태란의 물음에 재하와 수인이 멀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뭔가 요 며칠 사장이 좀 이상하긴 했다. 잔뜩 날이 서서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것이다.
잔을 닦던 재하의 시선이 무대에서 막 인사를 하고 내려오는 서한에게로 꽂혔다.
‘재밌는 일이 생기려나?’
피식.
“서한 씨, 안녕!”
“오셨어요?”
“어째, 우리 서한 씨는 나날이 예뻐지네?”
“바쁘셨나 봐요.”
“좀. 나 보고 싶었어?”
성격 참 좋은 사람. 그래서 부럽지만…… 부러운 만큼 또 부담스럽기도 했다. 어색하게 웃었던가 보다. 흠흠, 헛기침과 함께 태란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 저 녀석하고 시답지 않은 얘기나 좀 할까 싶어서. 전시회 땜에 머리가 좀 복잡하거든. 그런데 저러고 들어가 버리네? 서한 씨가 한잔할래? 아참, 서한 씨 일할 땐 안 마신다 그랬지? 미안, 까먹었어.”
“아뇨. 괜찮아요.”
살짝 입술을 늘이며 서한이 답했다.
예의바른 아가씨. 태란이 피식 웃었다. 맘에 드는 사람인데 선뜻 친해지기가 어렵다. 제 주위에 한 뼘 정도 테를 두른 채 다가가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맘만 먹으면 그 누구와도 융화가 되던 자신을 맨 처음으로 고개를 저으며 주저앉게 만든 이가 바로 앞의 서한이었다. 그래서 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 뵐게요. 수고들 해.”
역시나 깍듯하게 인사를 해 온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여지를 주지 않는단 말이지.
“퇴근?”
“네.”
그렇다면 또 원하는 대로 해 줄밖에 도리는 없다.
“조심히 들어가.”
태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서한이 다시 한 번 고개를 까딱이고는 직원실로 쏙 들어간다.
“여자를 짝사랑한 적은 없는데.”
입술을 삐죽 내밀며 태란이 중얼거렸다.
“좀 풀어져도 좋으련만. 왜 저렇게 어려워, 대체.”
태란의 말에 동의하는 듯 칵테일을 만들던 재하가 닫힌 직원실 문을 쳐다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누나 매력이에요.”
그때, 수인이 툭 하고 던진다.
“뭐, 또 그런가?”
태란이 그 말에 볼을 긁적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 ♠ ♠
“후우.”
나오는 이 또 한숨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만둘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하면서도 선뜻 그러지 못하는 건 그만큼 놓치기 싫은 자리기 때문이었다. 무시하려 애쓰는 중에도 당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따가운 그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려 버릴 수 없는 건 아마도 자신이 아직 그만큼 단단하지 못한 탓일 테다.
그래도 일단 오늘 하루는 넘겼으니 다행이다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