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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우리 집 도롱이
1화
프롤로그
교원은 늘 그런 집을 꿈꾸었다.
작은 정원이 있고 꽃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 작은 테이블을 놓고 혼자 차를 마시면 딱 좋을 정도의 테라스가 있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락방이 있는 집.
하지만 교원이 꿈꾸는 그런 조건들을 모두 갖춘 집은 찾기 힘들었다. 정원과 꽃나무가 있지만 테라스와 다락방이 없거나, 테라스는 있지만 정원이나 꽃나무, 혹은 다락방이 없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락방은 있지만 정원이나 꽃나무, 테라스가 없었다.
그래서 교원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일이 년을 살다가 다시 이사를 가고는 했다. 오죽하면 그의 친구인 박건호가 종종 교원에게 이 기회에 <이사 전문 민교원>이라는 명함을 하나 파 가지고 다니라고 했을까.
“완벽해.”
하지만 이제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던 교원도 정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는 흡족하게 미소를 머금고 차에서 내렸다. 큼직한 선글라스 안에 감춰진 눈매는 보이지 않았지만, 날렵한 입매가 위로 올라간 것만 봐도 그가 제법 만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용한 것까지 딱 마음에 드는군.”
교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주위는 조용한 정도를 넘어서 적막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은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내, 아니, 읍내에만 나가려고 해도 한 시간은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작업을 하는 교원에게 있어서 그런 것 따위는 문제될 게 없었다.
민교원, 31세, 공식적으로는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박건호 외엔 없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얼굴 없는 작곡가’로 유명한 ‘다락’이 바로 그였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OST 쪽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흘러나오지 않은 탓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롱하는 말들도 종종 나오고는 했다.
잘난 체하는 거냐. 앨범 한 장이라도 더 팔려는 수작이다. 그런 걸 상업적인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하는 거다. 얼마나 못생겨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거냐. 뭐,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말들 중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교원은 그저 얼굴을 드러내 놓고 작업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을 뿐이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그의 외모는 객관적인 표준을 놓고 볼 때 최상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웬만한 남자 배우들을 능가하는 외모라고 해야 할까.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들이나 툭하면 받던 기획사 명함들이 그의 외모를 증명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당사자인 민교원은 그런 외모조차도 성가시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귀찮아…….”
잠시 흡족하게 웃던 교원이 갑자기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박건호는 종종 그를 <이사 전문 민교원> 말고도 다른 별명으로 부르고는 했는데, 바로 그 별명은 ‘집늘보’였다. 집늘보라는 별명답게 교원은 금세 이삿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귀찮아진 것이다. 포장이사를 했으니 그다지 정리할 건 없지만.
그래도 일단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니까.
‘뭐, 그래도 이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감수해야지.’
교원은 다시 집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정원과 꽃나무, 테라스, 그리고 다락방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집을 갖게 되었으니 이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교원은 슬슬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친구인 박건호였다.
“어.”
― 이사는 잘 했냐?
“그럭저럭. 짐 들어갔어.”
― 하여간 성격도 희한하다니까. 차라리 그냥 땅 사서 네 입맛대로 집을 짓지 그랬냐. 너무 멀어서 이제는 자주 가 볼 수도 없잖아.
“오지 마. 귀찮아.”
교원은 건호의 말에 냉큼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장점도 있었다. 툭하면 술 사 가지고 찾아오던 박건호가 자주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 교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는데 건호의 목소리가 다시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 이 새끼는 계집애도 아니면서 되게 튕긴다니까. 인마, 너 외로울까 봐 이 형님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찾아가 줬더니 말이야.
“같이 술 먹어 줄 사람이 없어서 왔던 것뿐이잖아.”
술 먹으면 개 되는 박‘견’호 선생. 교원이 중얼거리자 휴대폰 너머에서 곧바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교원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전화를 끊어 버린 뒤, 전원까지 껐다.
아마도 그 성격에 지금쯤 쳐들어오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페이 닥터 신세에 자기 마음대로 조기 퇴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교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시원스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년 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반대로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교원은 한창 이삿짐을 정리 중인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뭐야? 아저씨, 누구예요? 누군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요?”
등 뒤에서 누군가가 톡 쏘듯이 말을 걸었다. 이건 또 뭐야. 누가 할 소리를……. 교원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저씨 누구냐고요. 집주인은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 몸집보다도 더 클 것 같은 가방을 하나 옆에 내려놓은 채 자그마한 여자가 교원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대꾸했다. 교원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각각 찔러 넣은 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겨드랑이 근처에 닿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는 작았다.
“백오십?”
“대체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 예?”
여자가 잔뜩 흥분한 듯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목소리를 높이다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하며 되물었다. 교원이 방금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키 말이야. 백오십은 돼?”
교원은 턱을 긁적이며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발끈해서 주먹을 꽉 쥐더니 외쳤다.
“됩니다! 되거든요! 백오십 넘거든요! 백오십일, 아니, 백오십이…….”
이…… 이쩜오 정도는 될 텐데……. 여자가 말을 하다 말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듯 말끝을 흐리며 웅얼거렸다. 교원은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백사십구쩜오, 라고 하면 믿겠는데…….”
“아니, 남의 키는 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저씨, 대체 누구예요?”
“나? 이 집 주인.”
교원은 다시 여자를 향해 대꾸했다. 그러자 여자가 입을 딱 벌리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하하, 하고 웃고는 양손을 옆구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어쩐지 생긴 것부터 뺀질거린다 했어.”
“뭐라고?”
“이거 사기꾼이로구만? 어?”
경찰, 그래! 경찰을 불러야지……. 집주인이 뻔히 미국에 나가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누구한테 사기를 치려고……. 여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112를 누르려는 순간, 교원이 먼저 여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넌 누구야?”
“저요? 여기, 전세 계약한 사람인데요?”
“뭐?”
……전세 계약? 교원은 순간, 골치 아픈 일에 엮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그러니까…….
“너, 누구랑 계약했어?”
“예?”
“여기 주인이랑 직접 전세 계약을 했냐고.”
“아니, 주인이랑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대리인이라는 사람이랑 했다고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여기…… 여기 어디에 넣어 놨는데.”
여자는 교원이 잡고 있던 손목을 빼고는 옆에 있던 커다란 가방을 열고 뒤적였다. 교원은 여자가 하는 행동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선글라스를 다시 벗었다.
“자, 봐요! 여기, 계약서 있잖아요!”
“…….”
여자는 교원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전세 계약서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흐음,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놨군. 하긴 이까짓 계약서 종이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수백 장, 수천 장은 뽑고도 남지. 프린터 잉크만 충분하다면 말이야.
교원이 계약서 내용을 훑어보다가 아랫부분을 보고는 다시 여자를 보았다.
“네 이름이 류별이야?”
“예.”
“이름이 유별나네.”
“이 아저씨가 진짜! 저랑 말장난해요?”
여자가 발끈하며 말을 이으려는 순간, 교원이 손짓으로 가로막고 입을 열었다.
“말장난은 됐고…….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이 집 주인이야.”
“아니, 또 누구한테 사기를 치려고…….”
“사기는 내가 친 게 아니라 너한테 이 계약서를 넘긴 사람이 친 것 같은데?”
“……예?”
“내가 이 집 주인이라고. 이미 이전등기까지 다 끝내서 소유권 넘겨받은 이 집 주인이 바로 나야. 그래서 지금 이사 들어온 거고.”
“뭐, 뭐라고…….”
여자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교원에게 달려들었다. 교원은 자신에게 쓰러질 듯 달려드는 여자를 피하려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여자는 교원의 셔츠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죠? 지금 저한테 거짓말한 거죠? 장난한 거죠? 그렇죠?”
“…….”
“아저씨, 제발 그렇다고 해 줘요!”
“…….”
교원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질 듯 매달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기껏 해 봤자 스무 살? 아니면 스물하나 혹은 둘 정도나 되었을까. 아무래도 어린애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전세 사기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무심코 계약서를 보았다.
……잠깐.
“너, 스물넷이야?”
“예?”
“스물네 살이나 먹었냐고.”
“그런데요?”
그게 뭐 문제가 되는 건가요? 여자는 눈을 깜빡이며 웅얼거렸다. 교원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다가 버럭 화를 냈다.
“스물넷이나 먹고도 사기를 당하냐? 어? 너 바보야? 머리는 장식품이야? 목 위에 돌 하나 큼직한 거 달고 다니느라고 고생했겠네. 아예 그냥 떼어 놓고 살지 그래?”
교원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서 여자를 향해 독설을 마구 퍼부어 댔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그의 독설을 접하고 나면 몇 달 정도는 그와 마주치기조차 꺼려 할 정도였다. 그런 독설을 바로 앞에서 받아 낸 여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왜 저한테 뭐라고 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사기당했잖아!”
“사기를 당해도 제가 당했지, 아저씨가 당했어요? 그리고 사기를 친 사람이 나쁜 것이지, 제가 나쁜 게 아니잖아요! 스물넷이 왜요! 스물네 살은 사기당하면 안 된대요? 어…… 어엉.”
그런 법이 어디 있다고. 어엉. 엉엉. 여자는 마치 어린애처럼 두 발을 뻗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교원은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치밀었던 화가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미치겠네……. 교원이 인상을 쓰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사기였다. 그것도 어린애한테 치는 사기. 스물이든 스물하나든 스물넷이든 어린 건 마찬가지였다. 스물네 살이나 먹은 게 아니라 스물넷밖에 안 먹은 것이었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다가 여자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야. 류별.”
“엉엉.”
“야, 별똥.”
“뭐라고요?”
“별이라는 이름이 아깝잖아. 사기나 당하고 돌아다니는데.”
교원이 피식거리며 말하자 여자, 류별이 발끈하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교원은 그런 별을 잠시 쳐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 줘?”
“예?”
“싫으면 말고.”
언제 내밀었냐 싶게 교원이 손을 다시 뒤로 물리더니 상큼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별은 그런 교원의 태도에 황당해져서 입을 벌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생긴 건 멀쩡, 아니, 뺀질거리게 생겨서…….
“성격 되게 더러우신가 봐요, 아저씨.”
“뭐?”
“사기당한 사람 놀리는 게 재미있어요?”
별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다시 일어섰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그녀는 지금 이대로 세상이 끝나 버렸으면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별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열여섯 살 때였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시급도 절반 가까이 깎이면서 돈을 벌었다. 반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학원에 다니거나 해외여행을 갈 때, 별은 동네 빵집이나 치킨집에서 일을 했다.
그때는 오직 미성년자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꿨었다. 최저임금제의 보호를 받으며 제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별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 스무 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녀는 당당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미성년자 시절에는 근처에도 못 가 봤던 호프집이나 피씨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대학생의 특권인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강의가 있는 시간만 제외하면 정말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만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덕분에 등록금 걱정을 덜었지만,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해야 했기에 틈날 때마다 공부도 해야만 했다. 그러니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더 바쁘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살면서 모은 전 재산인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세 사기라는 이름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별은 다시 울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앞에 있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주인이라는 남자는 성격이 괴팍한 듯했다. 내가 사기당했지, 자기가 사기당했나. 왜 화를 내는 거야? 졸지에 목 위에 쓸모없는 돌 하나를 달고 사는 괴물이 된 류별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툭 떨어뜨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세요.”
“뭘?”
“계약서요. 그거 아저씨 것도 아닌데 왜 가지고 있어요? 빨리 주세요.”
“어차피 쓰레기밖에 더 돼? 이걸 가져서 뭐하려고?”
“깔고 앉으려고요.”
“뭐?”
“당장 갈 곳도 없는데 깔고 앉기라도 해야죠.”
별이 울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교원은 눈앞의 자그마한 여자를 잠시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갈 곳이 없어? 부모님은?”
“누구나 부모님이 계실 거라는 편견…… 그 편견 좀 버리면 안 돼요?”
“뭐?”
“항상 사람들은 그래요. 부모님은? 부모님한테 연락해라. 부모님 모시고 와라. 대체 그런 편견은 누가 심어 놓은 거야.”
부모님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별이 투덜대는 걸 보면서 교원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니까 부모가 없다는 말인 것 같은데 말이지.
1화
프롤로그
교원은 늘 그런 집을 꿈꾸었다.
작은 정원이 있고 꽃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 작은 테이블을 놓고 혼자 차를 마시면 딱 좋을 정도의 테라스가 있는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락방이 있는 집.
하지만 교원이 꿈꾸는 그런 조건들을 모두 갖춘 집은 찾기 힘들었다. 정원과 꽃나무가 있지만 테라스와 다락방이 없거나, 테라스는 있지만 정원이나 꽃나무, 혹은 다락방이 없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락방은 있지만 정원이나 꽃나무, 테라스가 없었다.
그래서 교원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며 일이 년을 살다가 다시 이사를 가고는 했다. 오죽하면 그의 친구인 박건호가 종종 교원에게 이 기회에 <이사 전문 민교원>이라는 명함을 하나 파 가지고 다니라고 했을까.
“완벽해.”
하지만 이제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던 교원도 정착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는 흡족하게 미소를 머금고 차에서 내렸다. 큼직한 선글라스 안에 감춰진 눈매는 보이지 않았지만, 날렵한 입매가 위로 올라간 것만 봐도 그가 제법 만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용한 것까지 딱 마음에 드는군.”
교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듯 주위는 조용한 정도를 넘어서 적막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은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내, 아니, 읍내에만 나가려고 해도 한 시간은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작업을 하는 교원에게 있어서 그런 것 따위는 문제될 게 없었다.
민교원, 31세, 공식적으로는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박건호 외엔 없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는 ‘얼굴 없는 작곡가’로 유명한 ‘다락’이 바로 그였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OST 쪽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흘러나오지 않은 탓에 사람들 사이에서는 조롱하는 말들도 종종 나오고는 했다.
잘난 체하는 거냐. 앨범 한 장이라도 더 팔려는 수작이다. 그런 걸 상업적인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하는 거다. 얼마나 못생겨서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거냐. 뭐,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그런 말들 중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교원은 그저 얼굴을 드러내 놓고 작업하는 게 번거롭고 귀찮을 뿐이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그의 외모는 객관적인 표준을 놓고 볼 때 최상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웬만한 남자 배우들을 능가하는 외모라고 해야 할까.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들이나 툭하면 받던 기획사 명함들이 그의 외모를 증명해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당사자인 민교원은 그런 외모조차도 성가시다고 느끼기는 하지만.
“귀찮아…….”
잠시 흡족하게 웃던 교원이 갑자기 어깨를 늘어뜨리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박건호는 종종 그를 <이사 전문 민교원> 말고도 다른 별명으로 부르고는 했는데, 바로 그 별명은 ‘집늘보’였다. 집늘보라는 별명답게 교원은 금세 이삿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귀찮아진 것이다. 포장이사를 했으니 그다지 정리할 건 없지만.
그래도 일단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니까.
‘뭐, 그래도 이 집으로 이사를 했으니 감수해야지.’
교원은 다시 집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정원과 꽃나무, 테라스, 그리고 다락방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집을 갖게 되었으니 이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해야 할 문제였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교원은 슬슬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친구인 박건호였다.
“어.”
― 이사는 잘 했냐?
“그럭저럭. 짐 들어갔어.”
― 하여간 성격도 희한하다니까. 차라리 그냥 땅 사서 네 입맛대로 집을 짓지 그랬냐. 너무 멀어서 이제는 자주 가 볼 수도 없잖아.
“오지 마. 귀찮아.”
교원은 건호의 말에 냉큼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장점도 있었다. 툭하면 술 사 가지고 찾아오던 박건호가 자주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 교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는데 건호의 목소리가 다시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왔다.
― 이 새끼는 계집애도 아니면서 되게 튕긴다니까. 인마, 너 외로울까 봐 이 형님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찾아가 줬더니 말이야.
“같이 술 먹어 줄 사람이 없어서 왔던 것뿐이잖아.”
술 먹으면 개 되는 박‘견’호 선생. 교원이 중얼거리자 휴대폰 너머에서 곧바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교원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전화를 끊어 버린 뒤, 전원까지 껐다.
아마도 그 성격에 지금쯤 쳐들어오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페이 닥터 신세에 자기 마음대로 조기 퇴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교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시원스러운 눈매가 인상적인 미남형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보면 소년 같은 이미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반대로 성숙한 남자의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교원은 한창 이삿짐을 정리 중인 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 뭐야? 아저씨, 누구예요? 누군데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요?”
등 뒤에서 누군가가 톡 쏘듯이 말을 걸었다. 이건 또 뭐야. 누가 할 소리를……. 교원은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지?”
“아저씨 누구냐고요. 집주인은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 몸집보다도 더 클 것 같은 가방을 하나 옆에 내려놓은 채 자그마한 여자가 교원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대꾸했다. 교원은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각각 찔러 넣은 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겨드랑이 근처에 닿을까 싶을 정도로 여자는 작았다.
“백오십?”
“대체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 예?”
여자가 잔뜩 흥분한 듯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목소리를 높이다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하며 되물었다. 교원이 방금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키 말이야. 백오십은 돼?”
교원은 턱을 긁적이며 여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발끈해서 주먹을 꽉 쥐더니 외쳤다.
“됩니다! 되거든요! 백오십 넘거든요! 백오십일, 아니, 백오십이…….”
이…… 이쩜오 정도는 될 텐데……. 여자가 말을 하다 말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듯 말끝을 흐리며 웅얼거렸다. 교원은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백사십구쩜오, 라고 하면 믿겠는데…….”
“아니, 남의 키는 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아저씨, 대체 누구예요?”
“나? 이 집 주인.”
교원은 다시 여자를 향해 대꾸했다. 그러자 여자가 입을 딱 벌리더니 기가 막힌다는 듯 하하, 하고 웃고는 양손을 옆구리에 얹고 말을 이었다.
“어쩐지 생긴 것부터 뺀질거린다 했어.”
“뭐라고?”
“이거 사기꾼이로구만? 어?”
경찰, 그래! 경찰을 불러야지……. 집주인이 뻔히 미국에 나가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누구한테 사기를 치려고……. 여자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112를 누르려는 순간, 교원이 먼저 여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너야말로 뭐하는 거야? 넌 누구야?”
“저요? 여기, 전세 계약한 사람인데요?”
“뭐?”
……전세 계약? 교원은 순간, 골치 아픈 일에 엮였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그러니까…….
“너, 누구랑 계약했어?”
“예?”
“여기 주인이랑 직접 전세 계약을 했냐고.”
“아니, 주인이랑 직접 한 건 아니지만……. 대리인이라는 사람이랑 했다고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여기…… 여기 어디에 넣어 놨는데.”
여자는 교원이 잡고 있던 손목을 빼고는 옆에 있던 커다란 가방을 열고 뒤적였다. 교원은 여자가 하는 행동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선글라스를 다시 벗었다.
“자, 봐요! 여기, 계약서 있잖아요!”
“…….”
여자는 교원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전세 계약서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내밀었다.
……흐음, 그럴 듯하게 만들어 놨군. 하긴 이까짓 계약서 종이 정도야 마음만 먹으면 수백 장, 수천 장은 뽑고도 남지. 프린터 잉크만 충분하다면 말이야.
교원이 계약서 내용을 훑어보다가 아랫부분을 보고는 다시 여자를 보았다.
“네 이름이 류별이야?”
“예.”
“이름이 유별나네.”
“이 아저씨가 진짜! 저랑 말장난해요?”
여자가 발끈하며 말을 이으려는 순간, 교원이 손짓으로 가로막고 입을 열었다.
“말장난은 됐고…….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이 집 주인이야.”
“아니, 또 누구한테 사기를 치려고…….”
“사기는 내가 친 게 아니라 너한테 이 계약서를 넘긴 사람이 친 것 같은데?”
“……예?”
“내가 이 집 주인이라고. 이미 이전등기까지 다 끝내서 소유권 넘겨받은 이 집 주인이 바로 나야. 그래서 지금 이사 들어온 거고.”
“뭐, 뭐라고…….”
여자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교원에게 달려들었다. 교원은 자신에게 쓰러질 듯 달려드는 여자를 피하려다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여자는 교원의 셔츠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죠? 지금 저한테 거짓말한 거죠? 장난한 거죠? 그렇죠?”
“…….”
“아저씨, 제발 그렇다고 해 줘요!”
“…….”
교원은 자신의 옷을 붙잡고 늘어질 듯 매달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기껏 해 봤자 스무 살? 아니면 스물하나 혹은 둘 정도나 되었을까. 아무래도 어린애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전세 사기에 걸려든 모양이었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무심코 계약서를 보았다.
……잠깐.
“너, 스물넷이야?”
“예?”
“스물네 살이나 먹었냐고.”
“그런데요?”
그게 뭐 문제가 되는 건가요? 여자는 눈을 깜빡이며 웅얼거렸다. 교원은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다가 버럭 화를 냈다.
“스물넷이나 먹고도 사기를 당하냐? 어? 너 바보야? 머리는 장식품이야? 목 위에 돌 하나 큼직한 거 달고 다니느라고 고생했겠네. 아예 그냥 떼어 놓고 살지 그래?”
교원은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서 여자를 향해 독설을 마구 퍼부어 댔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그의 독설을 접하고 나면 몇 달 정도는 그와 마주치기조차 꺼려 할 정도였다. 그런 독설을 바로 앞에서 받아 낸 여자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왜 저한테 뭐라고 해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사기당했잖아!”
“사기를 당해도 제가 당했지, 아저씨가 당했어요? 그리고 사기를 친 사람이 나쁜 것이지, 제가 나쁜 게 아니잖아요! 스물넷이 왜요! 스물네 살은 사기당하면 안 된대요? 어…… 어엉.”
그런 법이 어디 있다고. 어엉. 엉엉. 여자는 마치 어린애처럼 두 발을 뻗은 채 울음을 터뜨렸다. 교원은 여자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치밀었던 화가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미치겠네……. 교원이 인상을 쓰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사기였다. 그것도 어린애한테 치는 사기. 스물이든 스물하나든 스물넷이든 어린 건 마찬가지였다. 스물네 살이나 먹은 게 아니라 스물넷밖에 안 먹은 것이었다. 교원은 한숨을 내쉬다가 여자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야. 류별.”
“엉엉.”
“야, 별똥.”
“뭐라고요?”
“별이라는 이름이 아깝잖아. 사기나 당하고 돌아다니는데.”
교원이 피식거리며 말하자 여자, 류별이 발끈하며 입술을 앙다물었다. 교원은 그런 별을 잠시 쳐다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 줘?”
“예?”
“싫으면 말고.”
언제 내밀었냐 싶게 교원이 손을 다시 뒤로 물리더니 상큼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별은 그런 교원의 태도에 황당해져서 입을 벌린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생긴 건 멀쩡, 아니, 뺀질거리게 생겨서…….
“성격 되게 더러우신가 봐요, 아저씨.”
“뭐?”
“사기당한 사람 놀리는 게 재미있어요?”
별은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다시 일어섰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그녀는 지금 이대로 세상이 끝나 버렸으면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별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열여섯 살 때였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남들보다 시급도 절반 가까이 깎이면서 돈을 벌었다. 반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학원에 다니거나 해외여행을 갈 때, 별은 동네 빵집이나 치킨집에서 일을 했다.
그때는 오직 미성년자에서 벗어나기만을 꿈꿨었다. 최저임금제의 보호를 받으며 제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별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간 뒤에 스무 살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녀는 당당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미성년자 시절에는 근처에도 못 가 봤던 호프집이나 피씨방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대학생의 특권인 과외 아르바이트도 했다.
강의가 있는 시간만 제외하면 정말 미친 듯이 아르바이트만 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한 덕분에 등록금 걱정을 덜었지만,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해야 했기에 틈날 때마다 공부도 해야만 했다. 그러니 남들의 두 배, 세 배는 더 바쁘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살면서 모은 전 재산인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세 사기라는 이름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별은 다시 울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앞에 있는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주인이라는 남자는 성격이 괴팍한 듯했다. 내가 사기당했지, 자기가 사기당했나. 왜 화를 내는 거야? 졸지에 목 위에 쓸모없는 돌 하나를 달고 사는 괴물이 된 류별은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툭 떨어뜨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주세요.”
“뭘?”
“계약서요. 그거 아저씨 것도 아닌데 왜 가지고 있어요? 빨리 주세요.”
“어차피 쓰레기밖에 더 돼? 이걸 가져서 뭐하려고?”
“깔고 앉으려고요.”
“뭐?”
“당장 갈 곳도 없는데 깔고 앉기라도 해야죠.”
별이 울음을 참으며 대꾸했다. 교원은 눈앞의 자그마한 여자를 잠시 보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아서 기분이 찝찝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갈 곳이 없어? 부모님은?”
“누구나 부모님이 계실 거라는 편견…… 그 편견 좀 버리면 안 돼요?”
“뭐?”
“항상 사람들은 그래요. 부모님은? 부모님한테 연락해라. 부모님 모시고 와라. 대체 그런 편견은 누가 심어 놓은 거야.”
부모님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별이 투덜대는 걸 보면서 교원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니까 부모가 없다는 말인 것 같은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