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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도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갈무리하였다.
“8년간 친형제처럼 곁을 지켰던 놈이 실은 처음부터 가장하고 이궁에 숨어든 밀정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마주 보고 있던 도운의 눈빛에 살기가 서렸다. 지난 8년 동안 도운에게서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살기였다.
“네가, 나를 죽이려 하느냐?”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단휘가 하문하였다.
“이미 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구태여 되묻다니, 사형답지 않으십니다.”
허공에서 마주친 도운의 시선은 찰나의 흔들림조차 없었다. 이미 결의를 마친 사람의 눈빛이었다.
단휘는 설핏 웃으며 하문했다.
“고작 너희 둘이서 이 몸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둘은 아니지만 설령 겨우 둘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사료됩니다.”
도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에 장식되어 있는 도검 쪽으로 다가갔다.
단휘는 도운이 등을 돌리자마자 제 목 언저리에 들이대어 있던 칼날을 손등으로 쳐 냈다. 칼이 적의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단휘가 놈의 손목을 잡아 아래로 끌어당기며 몸을 일으켰다. 적은 속절없이 끌려가다가 반대쪽 품에서 다른 단도를 꺼냈다.
“으윽!”
단도는 순식간에 단휘의 등을 깊게 찔렀다.
팔까지 전부 무뎌지는 감각에 단휘가 미간을 찡그렸지만, 곧 발을 치켜 올려 적의 손목을 다시 치고 다른 쪽 팔꿈치로 놈의 급소를 내려쳤다.
쿵.
적이 쓰러진 순간, 바닥의 울림이 갑자기 머릿속까지 전해져 왔다. 심지가 뜨겁게 녹아내리듯 불타는 기분이 든 동시에 눈앞이 명멸했다. 마치 새까만 밤길을 헤매듯 시야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하, 윽.”
“약 기운이 참으로 잘 돌지 않습니까? 독은 잔에 미리 발라 두었습니다. 서해국에만 서식하는 뱀의 독이라, 일찍이 접해 본 적이 없으실 겁니다.”
비틀거리던 단휘는 가까스로 탁상을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큭큭, 꽤 볼만한 모습입니다.”
도운은 발로 가볍게 툭 단휘의 팔을 쳤다.
동시에 중심을 잃은 단휘가 바닥에 쓰러져 맹인처럼 앞을 더듬었다.
“비렁뱅이 몇 거둬서 가르치는 정도로 수란 상단이 저질러 온 모든 악행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너희 가문의 피가 흐르는 자들은 저승에 가도 결코 안식을 취하지 못할 것이다!”
도운은 가까이 다가와 도검으로 이미 상처가 난 단휘의 등을 쑤셨다.
“으윽! 하, 네가! 네가, 왜, 왜…….”
“지난 8년간 오늘만을 기다렸다. 그간의 은혜를 생각해서 내 손으로 널 죽이진 않겠다. 어차피 오늘 밤이 가기 전에 너는 죽을 것이다. 너는 단둘이서 가능하냐고 물었지? 잘 생각해 보아라. 이 넓은 세상에 너희 상단을 원망하는 자들이 고작 두 사람뿐일 리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도운은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등불을 발로 찬 후 방에서 도망쳤다.
혼자 남은 단휘는 시꺼멓게 변한 눈앞에서 무언가 빛나는 느낌을 받았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유일한 빛을 향해 단휘는 계속 손을 뻗어 갔다. 그러나 희망처럼 보이던 불빛이 실은 화염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아악!”
금방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도망쳐야 했지만 방향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불길 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다. 우선 일어나야만 했으나 이미 단휘의 손과 발은 뻣뻣하게 굳어 가고 있었다.
“하아, 하, 정말, 그 계집, 어떻게…….”
투둑, 투둑,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쿠쿵!
위쪽에서 무언가가 내려앉을 기세로 큰 소리가 났다. 바로, 단휘의 위에서.
그 순간, 천장을 받치고 있던 서까래가 아래에 있던 단휘를 덮쳤다.
“으헉!”
등에 떨어진 서까래로부터 옷에 불이 옮겨 붙었다.
도망칠 수 없다면 발버둥이라도 쳐야 하는데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점점 의식이 흐릿해져 갔고 몸은 축 늘어졌다.
쾅!
그때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동시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울렸다.
“도련님, 도련님!”
차가운 물이 전신에 뿌려지고, 머잖아 등을 짓누르던 감각이 사라졌다. 아직 시야는 탁했지만 목소리만으로 대강은 상대를 알 수 있었다.
“흐윽, 늦어서 송구합니다! 도련님이시라면 어느 정도는 버티실 줄 알고.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아까 명령하신 대로 미리 부하들을 불러들이긴 했으나, 생각보다 적들이 많아 바로 오지 못했습니다. 하오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도운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습니다. 한로가 직접 쫓고 있습니다. 죽여서라도 데려올 것이니 부디…….”
크게 외치는 소리가 점차 웅얼대는 것처럼 들리더니 이내 그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곧 단휘는 의식을 잃었다.

사흘 후.
내내 사경을 헤맨 단휘는 옹지감과 여러 의원의 극진한 간병 속에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옹지감은 눈을 뜬 단휘를 보자마자 다행이라며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고 울었다. 온몸을 마비시키는 독만으로도 위험한데, 열상에 출혈까지 있어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의원이 경고한 모양이었다.
“흐윽,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도련님!”
“일단, 살았구나.”
손가락이 움직여졌다. 앞도 흐리지 않았고 소리도 제대로 들렸다. 어떻게든 살아남긴 한 모양이었다. 단휘는 옆으로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키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구토가 치솟아 올랐다.
“우윽!”
놀란 옹지감이 황급히 단휘가 다치지 않은 부분의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의원부터 데려오겠습니다. 다들 후주님께서 깨어나셨다는 전갈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볼 부상이 아니었다.
이제껏 살면서 느껴 본 어떤 통증도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등의 살갗이 다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마치 몸이 통증을 통해 말하는 것만 같았다. 네가 당한 일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아픔이 머릿속에 경고를 심어 놓는다.
“도운은, 하윽, 도운은 어찌 되었지?”
“한로가 놈의 오른팔을 잘라 끌고 왔습니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생포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팔 외에 다른 곳도 출혈이 많았지만 의원들이 겨우 시료해서 숨만 붙여 놓은 상태입니다.”
옹지감의 말을 다 들은 단휘가 조용히 읊조렸다.
“직접 봐야겠다.”
“도운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옹지감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어, 송구하오나 도운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여 직접 보시면 괜히…….”
단휘는 옹지감의 말을 무시하고 일어섰으나 곧 휘청거리며 벽에 어깨를 기댔다.
“으윽!”
“도련님!”
옹지감은 얼른 단휘를 부축하였다.
“도련님의 은혜를 배신한 배은망덕한 놈입니다! 어디가 곱다고 직접 누추한 옥사까지 가려 하십니까! 여기로 끌고 오도록 명령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누워 계십시오! 이렇게 움직이실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아, 됐다.”
단휘가 제 어깨를 잡고 있던 옹지감의 손을 밀쳐냈다.
“직접, 봐야만 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휘가 겪어 온 배신과 위험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수란의 후주라는 명성이 둘러싼 높은 담장은 탐스러운 과실이 숨겨진 곳간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달콤한 꿀을 탐하는 벌처럼 늘 단휘의 곁을 맴돌았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언제든 드러낼 발톱을 숨긴 채.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단휘도 알고 있었다.
하나 어찌 선뜻 믿을 수 있을까.
그 유순하고 착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그를 죽이려 들었다는 사실을. 우습게도 단휘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전신을 울리는 통증도 단휘를 이 지독한 꿈에서 깨우지는 못하였다.
그러니 보아야 했다. 그 모든 일들이 정말로 벌어졌었는지, 그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하였다.
이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나기 위하여.

옥사로 온 단휘는 도운을 발견하였다.
말끔하던 도포는 온통 피에 물들어 검붉은 빛이 되었고, 총명하던 눈빛에는 절망만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 8년간 가장 가까이 두었던 사내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만약 옥사에 다른 죄인들이 더 투옥되어 있었다면, 단휘는 도운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너는 물러나 있어라.”
“하오나…….”
“명령이다.”
망설이던 옹지감은 결국 자리를 비켰다.
단휘는 창살 앞으로 다가가 한참 동안 도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기를 잃은 도운은 마치 산송장 같았다. 단휘의 시선은 잠시간 오른팔이 있었어야 할 텅 빈 소매에 머물러 있었다.
참으로 재주가 많던 손이었다.
붓을 쥐여 주면 곧잘 훌륭한 필체로 글을 써 내고, 도기를 쥐여 주면 향긋한 차를 끓여 내던. 단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검을 들고 휘둘러 주던, 언제든 기꺼이 그를 향해 내밀어 주던 그런 손이었었다.
“왜 반항하였느냐.”
하문하는 단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참 비를 맞고 온 사람처럼 기운 없는 목소리였다.
“얌전히 끌려왔다면 팔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
“언제부터 이런 짓을 계획하였느냐. 처음부터였느냐? 아니면 날 노리는 다른 놈들에게 회유라도 된 것이냐?”
“…….”
침묵,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지자 옥사의 창살을 잡은 단휘의 손이 주르르 미끄러졌다.
힘없이 차가운 바닥에 무너진 단휘는 옥사 안에 가둬진 짐승과 두 눈을 마주하였다.
“내게 말하여라. 전부 털어놓아라.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내게 말하여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다. 그자들이 누구이건, 내가 모든 힘을 다해 막아 주겠다. 내가, 이 일을 전부 덮겠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내게…….”
“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옥사 안을 울렸다.
“네가 막겠다고? 네가 막을 수 있겠느냐? 나 같은 자는 지천에 깔렸다. 그들 중 누구건, 기회만 준다면 네 목을 얻기 위해 나와 같은 짓을 불사할 것이다. 알겠느냐?”
메아리치는 도운의 목소리가 단휘의 머리와 가슴을 칼날보다도 아프게 쑤셔 댔다.
“평생 두려움에 떨며 살아라! 네 등을 누구에게도 편히 맡기지 못한 채! 모두를 의심하고 원망해라! 너는, 마땅히 그리 살아야만 한다. 네가 누리던 모든 호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얻은 것이니, 그래야만 세상이 공평하지 않겠…… 우윽!”
저주의 말을 내뱉던 도운이 피를 토해 냈다.
“커헉, 허억.”
주르르.
지저분한 피가 흘러내려 옥사 바닥을 더럽혔다.
이미 도운의 몸은 가망이 없었다. 누구보다도 도운 스스로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도운은 고통을 모르는 사람처럼 기쁘게 웃고 있었다.
“하아, 이제, 내가 이리 말하지 않아도 너는 그런 삶을 살게 되겠구나. 하하하하!”
“그런 삶이라…….”
도운을 바라보던 단휘의 눈빛이 침잠하였다.
이제 형제 놀이는 끝났다.
지독한 꿈과 함께.

옥사를 나온 단휘는 눈치만 살피고 있던 옹지감에게 명령하였다.
“그만 도운을 죽여라.”
“하오나 아직…….”
“고문해도 아무것도 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시간 낭비 할 필요가 있겠느냐.”
더 이상 어떤 감정도 남지 않은 목소리에 옹지감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 명령하겠습니다요.”
“전에 알아보라던 것은 어찌 되었느냐?”
“한로가 그 아이를 유곽에 넘긴 상인을 찾아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고향에 있는 어미가 심하게 앓아 여기저기 돈을 빌려다가 병구완을 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결국 변제를 못 해서 노비로 팔려 왔다 하더군요. 아이를 판 사람은 제 아비라 합니다만, 주변에 망나니로 소문이 자자하답니다.”
죽어 가는 어미와 친딸을 노비로 팔아 버린 아비라.
누구라도 절망할 법한 상황이었다. 하나, 그녀는 결의에 차 있었다. 그 입술이 뱉어 내는 허무맹랑한 말마저 단휘가 외면하지 못하도록 만들 만큼.
“최대한 부하들을 풀어 알아보긴 했습니다만, 도운은 물론이고 저희와 척을 진 다른 어떤 상단과의 접점도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지내던 곳 자체도 워낙에 벽촌이라 말이지요. 일부러 찾아가기도 어려운 곳입니다.”
단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면 계집애는 도운을 처음 본 자리에서 그따위 말을 지껄였다는 뜻인가.
“어미는 아직 살아 있느냐?”
“이름은 오연이라 합니다. 의원의 말에 의하면 숙환이 가볍지 않은 데다 누워만 있어 욕창까지 생겼는데, 수군이라는 곳이 약재는 구하기 어렵고 유능한 의원도 없어 내진조차 쉽지 않은 상황인 듯합니다. 머잖아 죽겠지요.”
단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이때 옹지감은 처음으로 단휘가 아버지인 서노타 행수를 빼닮았다고 느꼈다.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이궁을 정리하고 바로 유곽에서 사 왔습니다. 거기 주인장 말이 아직 손님은 받지 않았다고 하지만, 모를 일이지요.”
“직접 가겠다.”
“어디를요? 설마 그 아이에게 말씀이십니까?”
한시도 지체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단휘는 저를 부르는 옹지감을 두고 아이가 있다는 처소로 향하였다.

*

단휘는 손수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어둡고 지저분한 방에서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얌전히 서 있었다.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단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용케 살아남은 모양이네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계집애의 얼굴과 목, 그리고 손목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곳곳이 온통 멍으로 가득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없던 상처였다.
아이는 재빨리 손으로 제 뺨과 목을 감쌌다.
“이제 절 여기서 떠나게 해 주세요.”
“아직 더 할 말이 남지 않았느냐?”
“아뇨, 없어요.”
단호하다 못해 매몰차기까지 한 대답이었다.
“나는 네가 도운의 배신을 예측한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야겠다.”
“우리의 약조에 그런 내용은 없었어요. 저는 당신의 목숨을 살렸고, 당신은 대가로 절 놔주기만 하면 돼요.”
숨을 쉴 때마다 통증이 퍼졌지만 단휘는 내색하지 않고 계집애를 몰아붙였다.
“대답해. 말하지 않는다면 넌 살아서 여길 나가지 못할 것이다.”
계집애의 낯빛이 퍼렇게 질렸다.
마치 처음 만났던 찰나의 순간처럼, 못 볼 것이라도 보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며 눈치를 살피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저, 그저 보았을 뿐이에요. 그뿐입니다.”
“보았다?”
“하, 하오면 이만 가겠어요.”
계집애는 단휘의 시선을 피하며 계속 도망치려고만 들었다. 뭔가를 감추는 태도가 단휘를 더 집요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미처 모른 채.
“아직 몸이 다 낫지도 않았는데 서두르는 이유라도 있느냐?”
“무슨 상관이지요?”
“네가 고향에 숨넘어가는 어미라도 두고 온 사람처럼 보여서.”
비웃음과 함께 여유롭게 던진 대답에 계집애가 숨을 삼켰다.
저리 순진해서야. 정곡을 찔렸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것을 보니, 지금까지 내뱉은 말들도 거짓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 보았다는 뜻이다. 지난 8년간 도운에게서 단휘는 보지 못했던 ‘어떤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