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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마도 1권(25화)
제14장 마도(魔刀), 일어서다(1)
지옥도의 중심에서 혈도(血刀)를 든 독고유만이 의연하게 걷고 있었다. 그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이 엉망진창으로 찢겨져 나간 시신들을 훑어보았다.
샤르륵!
독고유의 시선이 한곳에 멈추었다. 배가 으깨진 시신이다. 독고유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다시 붉은빛으로 변하자, 허리까지 늘어진 머리칼이 천천히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의 도에 붉은 기운이 넘실넘실 피어올랐다.
“네놈이 온 곳을 말해라.”
푸우욱!
독고유가 나지막이 말하며 시신의 복부에 도를 내리찍었다. 붉은 기운이 일시에 시신의 몸속으로 빨려 들었다.
“크, 크으으…….”
그 순간, 시신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시신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몸속에 남아 있는 피가 목구멍으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푸화악!
시체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핏물이 치솟아 올랐다.
볼에 튄 살 조각을 스윽 닦아 내며 독고유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터져 나간 핏물이 글자의 형상을 띄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은첩(隱疊)
“은첩문인가…….”
독고유의 눈동자가 다시 검은빛으로 되돌아왔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뒤로 돌아갔다.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진효린과 눈이 마주쳤다.
“천마(天魔)……혈도(血刀)……?”
진효린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명 천마의 전기에서 읽은 기억이 있었다. 천마가 혈도를 쥐었을 때는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고.
“지금의 나는 대인이 아니오.”
독고유의 검은 눈동자에서 붉은 파도가 순간 일렁였다.
“그래도 함께하겠소?”
“…….”
진효린의 눈빛이 평소의 침착한 그것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독고유의 손에 쥐어진 혈도를 바라보다 독고유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대인께서 어떤 행동을 하신다 해도, 어떤 모습이라 해도 저에게는 대인이십니다.”
진효린이 빙긋 웃자, 독고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잠깐뿐일 거요.”
파스슷!
독고유의 적의(赤衣)에서 붉은 기운이 꿈틀거렸다.
“내가 마도를 쥐고 있는 것은…….”
혈도를 움켜쥔 독고유의 등을 바라보는 진효린의 눈빛이 여느 때보다 크게 떨렸다.
의연한 듯 행동했지만, 가슴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
‘대인…….’
발걸음을 옮기는 독고유를 바라보는 진효린의 눈가에 눈물이 이슬처럼 맺혔다.
호남(湖南) 천자산(天子山).
강호 이대 살수 집단인 은첩문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다.
살문과 마찬가지로 은첩문 또한 본거지를 은밀히 감춰 두고 있었다.
강호 전체에 퍼진 크고 작은 지부들에서도 지부장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은첩문의 본거지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높고 낮은 산들 가운데 우뚝 솟은 석산(石山).
그 내부에 은첩문 문주와 오백 정예 살수들이 의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문주.”
석실의 가장 깊은 곳, 조그맣게 만들어진 창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전부인 그 안에서 나지막한 울림이 일었다.
목소리가 아닌 내공으로 울리는 기이한 목소리.
한 줄기 빛 아래 앉아 있던 흑발 사내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그가 바로 은첩문의 문주이자 특급살수인 무흔살(無痕殺) 월곡(月谷)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매끄러운 빛이 흘렀다.
그의 눈빛을 받은 어둠 속의 사내가 다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입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가로 보냈던 일급살수 삼백오십이 모두 죽었습니다.”
꿈틀!
문주의 오른팔이자 은첩문의 특급살수인 묵연(默淵)은 문주의 눈동자가 꿈틀거리자,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하오문 문주에게 삼백오십이 죽다니…….”
“하오문이라 해도 일문의 문주, 그 힘을 얕본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목표는?”
“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생존해 후미에 남아 있던 살수들의 연락도 끊어졌습니다.”
“묵연, 정예 살수 일백과 일급살수 이백을 주마.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의 목을 가져와라.”
“존명.”
고개를 숙인 묵연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월곡의 시선이 빛이 들어오는 창문으로 향했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의뢰에 실패한다면 내 손으로 의뢰인을 처리할 수밖에 없겠군.”
그의 입이 나지막이 달싹인 순간, 암실 안으로 새어 들어오던 빛이 일시에 증발하듯 사라졌다.
휘오오오!
뇌전을 흩뿌리는 먹구름 아래로 붉은 용이 질주하고 있었다.
전신에서 붉은 기운을 흩뿌리는 독고유와 그의 손을 부여잡은 진효린.
독고유의 붉은 눈동자에는 더 이상 온유하고 여유로운 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치기만 해도 터져 나갈 것 같은 활화산의 기세다.
그의 손을 붙잡은 진효린의 안색도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고통스러웠다. 숨을 쉬는 것조차 이 위압감 앞에서는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한마디도 입을 떼지 않았다.
독고유의 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단 한 번도 자신이 천마의 무공을 익혔음을 밝히지 않았고, 또한 사용하지도 않았던 독고유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해 두었던 마의 힘을 일깨울 정도로 주합의 죽음은 그에게 큰 고통이었으리라.
“후우우…….”
붉은 기운에 휩싸인 채 신형을 날리던 독고유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효린의 고개가 그에게로 돌아갔다.
독고유의 기세가 일순간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에 보이는 천자산과 그 아래의 땅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 나오는 검은 인영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크크크큭…….”
멈춰 선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독고유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느새 손에 쥐어진 혈도의 검면이 그의 웃음소리에 맞추어 흉물스럽게 꿈틀거렸다.
“대인…….”
진효린이 독고유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강대한 기운에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어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시오. 곧 말해 주겠소.”
그런 그녀의 손을 독고유가 천천히 밀쳐 냈다.
“대인…….”
창백한 안색이 되어 털썩 주저앉은 진효린이 그를 불렀지만, 독고유는 묵묵부답이었다.
그저 붉게 변한 눈동자로 그녀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빙긋 웃으며 신형을 날렸을 따름이다.
타타탓!
사방으로 신형을 날리던 살수들은 붉은 기운을 흩뿌리는 사내가 치솟아 오르자, 자동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진영을 짰다.
암연진(暗煙陣).
그 진영의 중심에 선 것은 묵연.
그의 새까만 눈동자는 독고유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한눈에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살수들이 본인의 목숨을 버리며 진효린에게 뿌려 놓은 추종향(追從香)의 냄새가 이 사내에서도 희미하게 난다.
하오문주가 아닌, 신원을 알 수 없었던 사내임에 분명했다.
‘강하다!’
하지만 그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가 만나 본 그 누구보다, 심지어 문주보다 압도적인 공포심을 그에게 심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일렁이던 붉은 기운이 폭발하듯 타오르자 묵연의 눈동자가 삽시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인위적으로 감정을 지운 듯한 차가운 눈동자.
‘암연진의 범위 안에 들어온 이상, 네가 무림제일인이라 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스파팟!
붉은 기운을 향해 달음질치는 묵연과 살수들의 몸에서 희뿌연 연기가 뭉실뭉실 새어 나오고 있었다.
독고유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살수들을 내려 보았다.
몸에서 새까만 연기를 흩뿌리며 달려드는 삼백 기의 살수들.
‘암연진인가.’
독고유의 붉은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시야를 흐리고 상대를 마비시키는 독연을 뿜으며 달려드는 살수들.
이전의 그였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고작 그따위 사술로 나의 마도를 잠재울 수 있겠느냐!”
콰오오!
혈도가 울음을 토해 냈다. 검 끝에 맺힌 도기가 꿈틀대며 혈광을 흩뿌렸다.
독고유의 신형이 혈광을 흩뿌리며 묵연에게로 휘몰아쳤다.
혈도의 끝에서 혈풍이 휘몰아쳐 묵연을 집어삼켰다.
파스슷!
혈풍에 휩쓸린 묵연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순간 혈풍을 피해 낸 이십여 살수들이 일제히 단도를 앞세워 독고유의 전신을 찔러 들어왔다.
독고유의 붉은 눈이 삽시에 사방을 훑었다.
어느새 혈도가 꿈틀대며 도신을 뒤틀어 올렸다.
콰르르륵!
혈풍이 삽시에 독고유의 좌측에서 달려들던 살수들의 몸을 집어삼켰다.
“……!”
묵연의 눈이 부릅떠졌다.
혈풍에 휩쓸린 살수들의 몸이 뼛조각까지 산산이 갈리며 혈풍의 안에 휩쓸려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혈풍의 붉은빛이 더욱 짙어졌다.
주위를 압도하는 기세도 더욱 강렬해졌고, 주위에 선 이들의 시야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혈마조(血魔爪)!”
“뭣이!”
혈풍에 휩싸인 독고유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묵연은 저도 모르게 경악성을 터뜨렸다.
다시는 강호에 나올 수 없는 마도의 무공!
콰롸롸롸!
급류가 몰아치듯 붉은 도기가 사방을 빽빽이 휘어 감았다.
독연을 흩뿌리는 살수들이 몸을 피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벌써 피를 가득 머금은 도기들은 그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그들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 놓고 있었다.
‘이럴 수가…….’
전신이 갈가리 찢겨지면서 묵연은 불신의 눈빛으로 독고유를 바라보았다.
단순한 마공이 아닌, 천마의 마공……!
‘문주, 도망……치십시오. 이자는…… 천마…….’
묵연은 채 생각을 마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툭!
묵연의 잘린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뒤이어 독고유의 신형도 사뿐히 땅으로 착지했다.
솨아아아아!
혈풍이 허공을 떠돌다 서서히 사라져 가자, 그 아래로 혈우(血雨)가 쏟아져 내렸다.
꿈틀대는 혈도를 움켜쥔 독고유의 혈안이 천자산으로 향했다.
“죽어서도 후회하게 해 주마. 마도의 잠을 깨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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