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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상강호 1
풍상강호 1권 (1화)
1장 양유가 광억을 만나다 (1)
배가 고프다.
지난 삼 년간 양유에게 가장 익숙했으나 도무지 적응 안 되는 감각이었다.
쓰라린 공복감,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 다리에 힘이 풀리고 머리는 어질어질,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러나 더 괴로운 것은 추위였다.
비단옷에 솜을 품고 다녀도 추운 엄동설한인데 거적때기라고 하기도 민망한, 살을 가린 곳보다 내놓은 곳이 더 많은 천 쪼가리만 걸치고 있으니 한기가 온몸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손이 곱아 펴지지 않았고 발에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양유는 얼어붙은 입술을 열어 양손에 호호 입김을 불었다.
딱딱하게 굳은 양 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 봐야 손이 풀리는 것은 잠깐, 다시 굳어 버리지만 앞으로를 위해서는 계속 풀어 줘야 했다.
양유는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며 길 건너 만두 가게를 주시하고 있었다.
작은 가게 앞 가판대에는 만두 통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다.
내용물이 식지 않도록 통마다 덮어 놓은 면포 틈 사이로 김이 살금살금 스며 나오고 있었다.
저 안에 있는 것들을 집어서 입안에 욱여넣을 수 있다면…….
양유의 눈에 불이 켜지고 주먹 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이로 만두피를 찢어 내고 야채와 고기가 잘 버무려진 만두소를 목구멍에다 처넣고 싶었다.
이틀 굶은 양유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땡전 한 푼 없었고 가판대 앞에 앉아서 만두를 지키고 있는 장씨는 덩치가 크고 성질도 더러웠다.
몰래 집어먹다 잡히면 흠씬 두들겨 맞고 가게 앞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양유는 침만 꼴깍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약 반 시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장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잠깐 안쪽 사정을 보러 간 것인가 알 수 없어서 이때다 싶으면서도 한 번 참았다.
다행히 양유가 바라던 대로 장씨는 좀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호재가 또 겹쳤는데 거리에는 행인이 거의 없었고 웬 늙은이 혼자 비척비척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양유는 순간 추위도 배고픔도 잊었다.
오로지 만두만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가게 앞에 와 있었다.
양유는 통 속으로 양손을 뻗어 만두 두 개를 집어들었다.
막 찐 만두라 따끈따끈이 아니라 뜨거운 수준이었으나 손은 얼어 있었고 기쁨이 또 온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느꼈다.
양손에 든 만두를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면서도 가게 안을 보며 장씨의 동정을 살폈다.
세 차례, 모두 삼이는 여섯 개의 만두를 훔치고 흘끔 장씨를 보니 장씨도 이쪽을 보는 것이 아닌가?
“이 쥐새끼 같은 놈!”
다혈질의 장씨는 우선 소리부터 질렀다.
만두를 더 가져갈 수 있을까 미련이 생겼으나 양유는 즉시 도망쳐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냅다 달렸다.
“이 더러운 거지 새끼가! 거기 안 서?”
뒤에서 장씨의 고함이 천둥처럼 울렸다.
서란다고 서면 세상에 포두나 추쇄꾼들이 왜 존재하겠는가?
일갈에서 진심 어린 분노가 느껴지니 오히려 양유의 발만 빨라졌다.
장씨는 둔중한 몸매의 소유자치고는 상당히 잘 달렸다.
이 의외의 기민함이 장씨 만두 가게를 동네 거지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철옹성으로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양유도 달음질에는 자신이 있었고 눈치 빠르게 도주한 터라 이미 거리가 많이 벌어져 있었으며,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에 고도의 흥분 상태로 정신없이 달렸기 때문에 곧 장씨를 따돌릴 수 있었다.
양유는 꼬리를 잘라 냈음을 확인하고는 멈춰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허파가 벌떡벌떡 발작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가슴을 두드렸다.
허억허억 거친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좀 진정되자 양유는 곧장 만두를 꺼냈다.
손때가 묻어 흰 만두피가 꾀죄죄해졌으나 개의치 않고 입에다 쑤셔 넣었다.
입은 작은데 만두는 크니 턱을 움직이기도 어려웠지만 곧 기름기가 퍼져서 씹기 수월해졌다.
만두를 다 짓뭉개지자 꿀꺽 삼켰다.
허기진 위장은 이어 두 번째 만두를 갈구하며 펄떡거렸다.
양유는 하나를 더 꺼내 허겁지겁 먹었다.
그래도 양이 차지 않았다.
다시 만두에 손이 갔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절제하여 그만두었다.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였다.
만두 네 개면 이틀은 너끈히 버틸 수 있다.
양유는 손가락에 남은 만두의 흔적을 쪽쪽 빠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식사를 마쳤는데 양유의 앞을 가로막는 무리가 나타났다.
양유 또래의 어린 거지 셋이었다.
그들의 얼굴도 양유만큼이나 더럽고 옷차림도 거지 같은 게 틀에서 찍어 낸 듯 비슷했다.
항상 자기가 얻은 음식을 빼앗아 가는 승냥이 같은 놈들이었다.
양유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으나, 놈들은 양유를 둘러싸고 어깨를 붙잡았다.
“얘 입가 번들거리는 거 봐. 좋은 걸 처먹었나 본데?”
“정말이잖아? 아니, 거지 주제에 입에 침도 아니고 기름을 처바르고 다녀?”
“어쭈? 왜 말이 없어? 우리 말이 말 같지 않냐?”
셋은 차례로 말했다.
양유는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말이 없긴. 너넨 중간에 말 끊는 거 싫어하잖아. 그래서 잠자코 듣고 있었지.”
셋은 서로 수군거렸다.
말 끊으면 끊는다고 시비 걸고 가만 있으면 말 씹는다고 시비 거는 전법인데 어떻게 이 녀석이 우리 속을 알고 넉살 좋게 받는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했다.
그럼 이제 어쩌지? 하고 한 놈이 말하자 다른 녀석이 핀잔을 주었다.
“어쩌긴 그냥 두들겨 패면 되지.”
“그래, 그래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해.”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쑥덕공론을 하는 것을 보며 양유는 멍청한 놈들이라고 속으로 비웃었으나 머릿수가 밀리니 어쩔 수 있나.
웃는 낯으로 가만히 듣고만 있다 말했다.
“잠깐, 잠깐. 왜 굳이 날 때려눕히려 해? 사해는 동도라 하지 않았어. 거기다 우리는 같이 빌어먹는 처지인데 서로 도와야지. 내가 마침 만두 네 개가 있는데 나눠 먹으면 되겠네.”
“사해 뭐?”
세 거지는 무식하기가 양유보다 더해 어디서 주워들은 문자를 쓰자 머리를 갸우뚱거렸으나 뒷말은 알아들었다.
“이 새끼가 이제 좀 정신을 차린 모양인데? 먼저 바치겠다고 하고 말야.”
“그러게 우리 가르침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좋아 좋아. 알았으니 일단 만두부터 내놔 봐.”
셋은 사이좋게 손을 내밀었다.
양유는 계속 실실 쪼개며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만두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자, 받아.”
왼손바닥 위에 만두 하나가 올라왔다.
거지들은 침을 삼켰다.
정말 맛좋아 보인다.
한 놈이 얼른 와서 채 갔다.
다른 녀석들도 기대 가득해서 양유를 보고 있었다.
양유는 오른손도 빼냈다.
그러나 이번에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주먹만 한 돌멩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이 새끼들아!”
양유는 날카로운 돌끝으로 왼쪽 놈을 찍었다.
그리고 엇 하고 오른쪽 놈이 뒤로 물러서자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수평으로 휘둘렀다.
한 놈은 키가 작은 탓에 이마에 박혔고 다른 녀석은 훌쩍 커서 콧잔등에 맞았다.
거지 두 놈의 얼굴에서 피가 퐁퐁 솟아나왔다.
둘은 어이쿠 신음하며 자빠져 데굴데굴 굴렀다.
“이 새끼가!”
만두에 코를 박고 있던 놈이 동료들이 당한 것을 보고 양유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양유는 이미 그걸 다 생각해 둬서 일찌감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돌멩이를 힘껏 던져 녀석의 머리통에 명중시켰다.
“악!”
녀석은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지만, 피는 분출되지 않아서 완전히 제압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양유는 돌멩이를 주워다 꽉 쥐고 녀석의 아구창을 날려 버렸다.
“제, 제발 용서해 줘…….”
세 거지는 피를 보자 혼비백산하여 전의를 잃어버리고 선처를 호소했다.
몰려다닐 줄만 알았지 근성도 없는 놈들이었다.
한바탕 싸울 각오를 했었는데 돌에 좀 찍혔다고 꼬리를 말다니 고작 이런 놈들한테 뜯기고 다닌 자신이 한심했다.
그래서 양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간 쌓인 한을 풀기 위해 놈들을 두들겼다.
“이 더러운 후레자식들! 너희들한테 뺏긴 내 양식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거지면 거지답게 빌어먹으란 말야! 남의 것 강도질하지 말고!”
돌멩이로 또 찍지는 않았으나 쥐고 때렸기 때문에 아이의 조그만 주먹이라 해도 위력이 상당했다.
모두 얼굴이 퉁퉁 붓고 그 아래로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양유는 아직 화가 덜 풀려서 나동그라진 놈들에게 발길질을 해 댔다.
“헉, 헉, 맛이 어떠냐! 너희들이 나한테 다구리 놓았을 때, 이렇게 상황이 역전될 줄 상상이나 해 봤겠냐? 하지만 난 내내 그 생각만 하고 있었다.”
양유는 정말 마음껏 때렸다.
지쳐서 더 이상 때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서야 멈추고는 헉헉 대며 주저앉았다.
“제길, 배 다 꺼졌네.”
어쩔 수 없지, 비상 상황이다.
양유는 만두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격렬하게 움직였기 때문인지 만두는 찌그러져 있었다.
“어린 놈이 과하게 잔혹하군.”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양유는 뒤를 돌아보았다.
웬 노인네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다른 어른들이었으면 곧장 도망칠 텐데 늙은이니 뭔 일이 있겠냐 싶었고 진이 다 빠진 상태여서 그냥 가만히 대꾸했다.
“어린놈이 누구의 보호도 못 받고 유리걸식하고 다니는 현실이 잔혹한 거지. 노인네가 뭘 모르네.”
노인은 빙긋 웃었다.
“당돌하기까지 하군. 이런 성격이 자칫 독이 될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얌전히 받아들이기만 하는 놈보다야 낫겠지.”
뭐라는 거야? 양유는 이 노인이 살짝 맛이 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