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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피림의 레이디 1권 13화


부인의 얼굴은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이다는 어머니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불안했다. 곧 부인의 대답이 들렸다.
“그래.”
이다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빈 복도에 혼자 선 채, 그녀는 긴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을 하듯 잠시 그러고 서 있던 이다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멜로디아를 불러들였다.
“어머니께는 안정이 필요해.”
정원에서 오래 일한 탓인지 멜로디아의 얼굴이 발갛게 익어 있었다. 정원 일에 익숙하지 않아 손이며 다리도 엉망으로 긁힌 채였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선 멜로디아의 초라한 모습을 보자, 이다는 가슴에서 기묘한 우월감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는 평생을 본인보다 천한 여자들에게 지고 살았지만, 자기만은 그러지 않을 작정이었으니.
“어머니가 곧 널 찾으실 거야. 그러면 넌 휴가를 다녀왔다고 말해. 어머니 곁에서 떨어지지 말고 어머니를 돌봐. 혹시라도 다시 상태가 나빠지시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멜로디아는 고개를 들었다. 파란 눈. 냉막한 표정.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진 데가 있었다. 이다는 지지 않으려고 그 얼굴을 마주 보았다. 멜로디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다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네.”
한마디 항변도, 비난도, 원망도 없었다. 멜로디아는 자기에게 폭력을 가한 아가씨의 행태를 또 한 번 묵인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이다는 자존심이 상했다. 적막과 침묵으로 자기를 보호하며, 멜로디아는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이다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 순간조차도 멜로디아는 아름다웠다. 적어도 이다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여전히 서 있는 태가 반듯했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멜로디아 특유의 차분함이 깃들어 있었다. 분명 자기가 이겼는데도 이다는 조바심이 났다. 멜로디아의 여전한 모습은 이다에게 알 수 없는 수치심을 선사했다.
디아누와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을 하지 못한 건,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다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는 멜로디아를 지켜보았다. 멜로디아도 이다가 자길 보고 있단 걸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남작 부인이 깨어났다고 한다.
마침내.
그러나 기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은인이 정신을 차렸다는데 왜 기쁘지 않을까. 멜로디아는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인 줄 알면서도, 억지로 기뻐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은 언 호수처럼 잠잠했다.
멜로디아는 그날 밤 아르디온에게 이다의 지시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르디온의 반응 역시 멜로디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인께 드리고 싶다며 외출할 때마다 그녀의 선물을 챙기던 동생도, 그리 기쁜 얼굴은 아니었다.
“누나, 조심해.”
동생은 그저 엉망이 된 멜로디아의 손을 붙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멜로디아는 다시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몇몇 하녀들이 슬슬 말을 붙여오기도 했으나, 멜로디아는 냉랭한 태도로 모두의 관심과 속모를 호의를 내쳤다.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부인은 주로 자리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용인들의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멜로디아.”
부인은 반가운 얼굴로 멜로디아를 맞았다. 병자의 미소 띤 얼굴을 보자, 멜로디아는 마음이 녹는 것을 느꼈다. 전해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부인과 마주하니 조금 기뻤다. 마음 붙일 곳이 없는 저택에서, 오직 부인만이 자기 편이 되어 주었다.
“부인. 너무 걱정했어요.”
멜로디아는 부인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앙상하게 마른 손이었다. 그때 부인이 물었다.
“너 손이 왜 이러니?”
부인이 화들짝 놀라며 멜로디아의 손등을 살폈다. 멜로디아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동생이랑 휴가를 갔다가…… 숙소 근처에서 길을 잃어서, 좀 다쳤어요.”
“길을 잃었는데 왜 손이 이렇게…… 어디 숲에라도 갔던 거니?”
부인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해 주었다. 멜로디아는 그저 그렇다며 잔잔히 웃었다. 여기서 이다와 디아누 얘기를 꺼낼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오래전처럼 느껴지는 언젠가의 티타임을 기억한다. 멜로디아와 언쟁을 하던 이다가 찻잔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부인에게 그게 멜로디아의 실수라고 말했다. 그때 부인은 그 말을 믿는 양 멜로디아에게 수습을 맡기고 차를 마셨다. 그 후, 부인은 멜로디아를 따로 불러 넌지시 이다가 부족하니 네가 많이 도와주라는 말을 건넸다.
그때의 그, 발밑이 푹 꺼지는 듯한 느낌.
차라리 완전히 오해받았다면 그렇게 비참하진 않았으리라. 그토록 아껴 주어도 남은 남인 것이다. 자기 딸의 자존심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 일 이후 멜로디아는 부인도 완전히 믿진 않았다. 자기도 몰랐는데, 지금 순간 부인에게 이다의 온갖 행태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걸 보니 줄곧 그랬던 모양이다.
마음이 이렇게 닫히기 쉬운 거구나.
혼자 생각하고, 멜로디아는 부인에게 차를 가져다주었다.
“그러고 보니 샤론도 안 보이더구나.”
“아.”
멜로디아는 대답하지 못하고 굳어졌다.
“이다에게 묻는다는 걸 깜빡했어. 샤론은 어디 있니?”
“샤론은 일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멜로디아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데,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편지한다고 했으니 소식을 알 수 있겠죠.”
“그래……. 그렇구나.”
“샤론도 부인을 많이 걱정했어요.”
샤론은 비참하게 쫓겨났다.
유배자도 아닌 그녀는 아가씨의 약혼자를 유혹했다는 누명을 쓰고 저택 밖으로 나가야 했다. 샤론이 쫓겨날 때 멜로디아는 샤론이 울부짖었던 정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야 샤론이 떠났음을 알았다. 다른 하녀들이 수군대는 소릴 엿듣기론, 그녀는 아주 약간의 여비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길거리에 내팽개쳐졌다고 한다.
그러니 샤론은 부인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멜로디아는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착한 아이였지. 떠나게 돼서 네가 섭섭했겠구나.”
사려 깊은 부인을 보며 멜로디아는 괜찮다고 미소만 지었다.
부인이 차를 다 마신 걸 확인한 뒤, 멜로디아는 찻잔과 주전자를 치웠다. 관절 빠진 인형처럼 늘어져 있던 샤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제 다시는 샤론을 볼 수 없으리라.
창밖에서 사람들이 나무에 쌓인 눈을 털어 내는 게 보였다. 이제야 겨울의 시작이었다.

멜로디아와 아르디온은 묵묵히 일했다. 불평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도 없었다. 두 사람은 고립되었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자의가 개입되었다. 이다는 멜로디아를 쳐다보지 않았다.
멜로디아는 저 멀리서 디아누의 그림자만 보여도 소스라치게 놀라 걸음을 돌렸다. 디아누는 더 이상 멜로디아에게 접근하려 들지 않았다. 샤론이 그렇게 된 이후 하녀들도 알아서 그를 피했다. 이다의 감시도 한층 삼엄해져서 사용인들은 마침내 서로를 감시하기에 이르렀다.
부인의 몸은 더디게 나아졌다.
“피곤하구나.”
정원을 걷다 말고 부인이 한숨처럼 말했다. 곁에서 부인을 부축하던 멜로디아는 의자가 놓인 곳으로 부인을 이끌었다. 부인은 앉은 채로 숨을 가다듬었다. 오래 쓰러져 있던 탓인지 움직이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부인은 한동안 쉬다가 이만 돌아가자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 일도 안 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점심을 먹은 후, 부인이 창밖을 내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만 나가 볼까 싶었던 멜로디아가 잠시 멈추었다. 부인은 혼잣말처럼, 그러나 누군가 들어 주길 바라는 듯 조금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눈 떴는데 겨울이 와 있으니, 봄이 영영 안 올 것 같기도 하구나.”
“마음이 허하셔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거예요. 제가 책이라도 갖다 드릴까요?”
멜로디아는 다감하게 물었다. 이다와 마주치는 일이 적어지고 부인과 가까이 있게 되자, 엉망이 되었던 마음이 조금 나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멜로디아는 부인이 서둘러 건강해지길 바랐다.
“아니……. 책은 됐어. 그보다 멜로디아.”
“네, 부인.”
“네가 이다 일을 도와주고 있니? 편지는 누가 관리하지?”
멜로디아는 말문이 막혔다. 이다는 저택 모든 일에서 멜로디아를 배제시켰다. 그 경위를 설명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가씨께서 부인의 건강에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 전 당분간 부인 곁에만 있을 거예요. 편지도 꽤 오래전부터 아가씨가 관리하셨어요.”
“그래, 그렇구나.”
부인은 피로가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는 부인이 왜 이렇게 우편물에 신경을 쓰는지 몰랐다. 그러나 이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다가 저택과 영지를 돌보기 시작했을 때, 멜로디아에게 편지 관리를 맡겼다. 그때 멜로디아는 종종 자금이 떨어졌으니 돈을 보내라는 남작의 편지나 남작이 저택 앞으로 달아 둔 외상값을 청구하는 편지 같은 걸 보곤 했다. 멜로디아는 모르는 척 그것들을 이다에게 건넸고 이다는 보자마자 그것들을 벽난로에 던져 버렸다. 그러고선 차가운 얼굴로 앞으로 이따위 것들은 가져오지도 말고 태워 버리라고 했던 것이다.
부인은 그런 편지들을 숨기고 싶었으리라. 하녀에게도, 물론 딸에게도. 멜로디아는 안타까웠지만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큰일 없이 이 겨울이 가길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행운은 이번에도 멜로디아의 편이 아니었다. 물론, 남작 부인이나 이다의 편도 아니었다.
한겨울의 소동은 난데없이 나타난 심부름꾼 때문에 시작되었다.
“누구라고?”
건성으로 보고를 받던 이다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일거리에 고정하고 있던 시선도 확 올라왔다. 보고하러 온 하인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반복했다.
“남작님이 보내신 심부름꾼이라고 합니다.”
불행한 점은 그때 남작 부인이 이다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 안색이 많이 나아진 그녀는 이다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도와준다고는 해도 아직 미숙한 부분을 보완해 준다든가 이런저런 충고를 해 준다든가 하는 일이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던 부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로 왔다는데?”
“남작님의 편지를 전하러 왔다고 합니다.”
“두고 가라고 해.”
이다는 그걸 다시 불쏘시개로 쓰겠다고 결심하며 지시했다. 하지만 하인은 난색을 표했다.
“부인을 뵙고 답장을 받아 가기 전엔 돌아갈 수 없답니다.”
“헛소리 말라고 하고, 내쫓아 버려.”
이다는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간신히 참고 내뱉었다. 하인이 난처한 얼굴로 물러나려는데 부인이 끼어들었다.
“들여보내라. 얘길 듣겠어.”
“어머니, 그럴 필요 없어요! 어차피…….”
이다는 또 돈 얘기일 거예요, 라는 말을 삼켰다. 하인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사용인들이 트리톤의 험난한 가족사를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모든 치부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하인이 나간 사이, 이다는 맹렬한 기세로 어머니에게 대들었다.
“어머니가 매번 그런 태도를 보이니까 아버지가 계속 그러는 거예요. 와서 뭐라고 하든, 편지에 뭐라고 썼든, 굶어 죽겠다고 해도 돈을 보내면 안 되는 거잖아요. 돈이 있으니까 계속 밖으로만 나도는 거라고요!”
“이다, 그만해라.”
부인은 지친 낯으로 그렇게만 말했다. 또 엉뚱한 소리. 이다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어떻든 그 사람은 네 아버지야.”
“아버지가 아버지 같아야 말이죠. 수도 사교계까지 문란한 걸로 이름을 날리는 아버지를 제가 어떻게 존경하겠어요!”
부인은 아예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이다는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다는 도저히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지 말라고 하면 뚜렷한 이유도 대지 않고 거절하고, 언젠가는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란 소리까지 들었다.
결국 부인은 아버지의 편지를 받아 보고, 돈을 준비해 심부름꾼의 손에 들려 보냈다. 그러는 동안 이다와 부인 사이에는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이다는 침묵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부인은 그 시위를 무시했다.
이다는 납득할 수 없었다.
자길 버린 남편을 외면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어머니는 정숙한 여자였다. 이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밖으로 떠돌았던 그 세월 동안 어머니에겐 정부 하나 없었다. 자기를 내팽개친 남편을 위해 정절을 지키는가. 아니면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가. 어느 쪽이든 미련한 짓이 아닌가……. 이다는 안색이 창백해진 어머니를 보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아버지를 포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직까지도.
그러나 부인 자신을 위해서는, 일찍 포기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연민이든 정이든 부인은 남편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남편의 편지와 남편의 존재는 여전히 부인을 괴롭혔다.
“멜로디아…….”
그날 밤 부인은 두통을 호소하며 멜로디아를 불렀다. 방에서 쉬다가 부인의 부름에 달려온 멜로디아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침대에 걸터앉은 부인을 불안스레 바라보았다. 마음이 이상하게 떨려 왔다.
“이거 받아라.”
부인이 멜로디아에게 작은 은색 열쇠를 건네주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열쇠를 받는 순간, 멜로디아는 그게 서랍 열쇠라는 걸 기억해 냈다. 몇 달 전, 자기가 직접 부인 머리맡에서 훔치고 다시 갖다 놓은 그 열쇠였다.
“부인, 이러지 마세요.”
멜로디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좋아지셨는데 이러시면 안 돼요. 제가 아가씨를 불러올까요? 두 분이서 차라도 한잔하시거나, 내일 외출을 하시면 훨씬…….”
“이다는 이해 못 해. 너도 마찬가지고.”
부인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멜로디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그 눈이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약은 없어요.”
멜로디아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부인은 다시 쓰러지면 안 된다.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다시 쓰러졌을 때 이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제가 다 버렸어요.”
“버렸다고?”
부인이 그렇게 되묻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흥분 상태였다. 부인이 멜로디아의 양어깨를 잡고 앞뒤로 거세게 흔들었다. 그러면서 고함을 질렀다.
“왜! 그걸 왜! 그게 없으면 못 자, 잘 수가 없어! 그 약을 먹어야 돼. 그 약! 약이 필요해, 약! 가져와, 당장 의원을 불러, 지금 바로 그 약을 가져오라고 해!”
멜로디아는 넋이 빠진 채 부인을 보기만 했다. 한 번도 부인이 이렇게까지 흥분한 걸 본 적이 없었다. 부인은 이제껏 사용인들에게 목소리조차 높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돌변한 모습에 멜로디아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금세 사용인들이 달려왔다. 그러더니 곧 이다까지 나타났다. 부인은 멜로디아를 밀치고 침대 기둥에 매달린 채 헐떡였다. 이다가 다급하게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 대체 왜……. 다 나가, 당장 다!”
사용인들의 눈이 신경 쓰여 이다는 거칠게 소리쳤다. 그러나 사용인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부인이 이다를 붙잡았다.
“이다. 안 돼. 안 되겠어. 그 약을 먹어야겠어. 어서 가져와…… 어서, 의원에게 연락해. 빨리, 빨리, 이다, 잘 수가 없어, 잘 수가 없어…….”
“어머니, 제발 그만하세요. 제발!”
이다가 좌절하여 소리쳤다. 그러나 부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못 자겠어! 이다, 날 도와줘야 해. 너희 아버지가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너까지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이다…… 어서 의원을 불러, 당장, 얼른 이다…….”
이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눈물이 터졌다. 이다는 소리 내지 않으려고 입 안을 물며 어머니의 손을 붙잡았다.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저 약에 의지해 멀쩡한 척했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젠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의원을 불러.”
이다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금 오라고 해.”
“이다, 잘했다. 잘했어. 고맙구나.”
부인이 한결 안심한 얼굴로, 한편으론 힘이 쭉 빠진 얼굴로 스르르 주저앉았다. 누군가 의원을 부르기 위해 밖으로 나가고, 몰려들었던 사용인들도 눈치를 살피며 사라졌다. 그러나 멜로디아만은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았다.
“아가씨.”
멜로디아는 여전히 부인의 갑작스러운 발작에 놀란 상태였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했다.
“다시 생각하세요, 제발……. 부인께 약을 드리면 안 돼요.”
“나가.”
이다는 멜로디아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