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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Prologue



“또 그 꿈이야! 제기랄.”
최강권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꿈을 생각하면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게 명색이 조부라면서 하나뿐인 손자가 잘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하겠단 말인 거지?”
강권은 고아인 부모 밑에서 자라났고 중학교 2학년 때 고아나 다름없게 되었으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벌써 며칠째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이란 게 희한한 것이었다. 100억 원을 갚아 주면 전생을 읽을 수 있게 해 주겠단다.
‘젠장, 100억 원은커녕 100만 원만 있어도 좋겠다.’
꿈속이었지만 당연히 거절이었다. 이런 강권의 마음을 알았는지 자칭 할아버지는 엄청 다급해진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강권의 전생만 읽게 해 주겠다더니 세 명의 전생까지 읽을 수 있게 해 주겠단다. 동료에게 빚을 졌대나 어쩠다나.
자신의 능력으로서는 거기까지가 한계라고도 했다.
“100억 원이 있다면 내가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겠어요?”
“물론 네 사정이야 이 할아비가 잘 알고 있지. 그렇지만 얼마 후에는 그 돈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전생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란다. 전생을 읽는다고 해서 단지 전생에 어떻게 살았다는 것만 아는 게 아니고 전생에서 알고 있었던 지식과 경험까지도 모두 알 수 있게 되지. 뿐만 아니라 전생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도 알아볼 수 있어. 물론 네가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에 달린 일이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전생의 지식과 경험은 그렇다 쳐요. 그런데 전생이라면 최소한 수백 년은 흘러갔을 것인데 사람이 어떻게 수백 년을 살 수 있겠어요?”
강권은 꿈이었지만 너무 얼토당토 않는 것 같아 딴죽을 걸었다.
생각해 보나 마나, 너무 터무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수백 년을 산단 말인가? 강권은 자칭 할아버지인 노인의 말이 도무지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급히 해명을 했다.
“아이야! 그것 역시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단다. 전생이란 것이 불과 몇 년 전일 수도 있고, 또 지금 천오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살고 있는 자도 있으니 말이야. 내가 곤경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그자 때문이니라.”
‘육십갑자 동방삭이 또 있다는 것이야, 뭐야? 사람이 어떻게 천오백 년 동안 죽지 않고 살 수 있냔 말이야?’
강권은 할아버지의 해명이 궁색한 변명처럼 들렸다.
그래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할아버지, 죄송하지만 지금 제 사정으로는 할아버지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겠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이 약한 강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할아버지라는 사람의 애처로운 눈빛이 밟혀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100억 원은커녕 수중에 100만 원도 없는 걸 어떡하란 말인가.
‘젠장, 이러시려면 유산을 넉넉히 남겨 주시든지. 그랬으면 이럴 때 백억이 아니라 천억이라도 포기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강권의 실정은 인력시장에 다니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었다. 일당에서 인력시장에 10% 주고, 교통비조로 팀장에게 4,000∼5,000원을 공제하고 나면 강권의 수중에 들어오는 것은 끽해야 하루 58,000∼59,000원 정도다.
그러면 한 달에 180만 원 가량을 벌 텐데 젊은 놈이 혼자 쓰면서 100만 원도 모으지 못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 중퇴에 일정한 기술이 없고 게다가 몸까지 약한 강권으로서는 잘해야 보름에서 20일 정도 일할 수 있다.
그럼 대략 90∼120만 원. 여기서 고시원비와 기타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한 달에 10만 원 모으기도 힘들었다.
“후후후, 나에게 100억 원이 생기면 까짓것 생전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할아버지께 효도 한 번 하지 뭐.”
강권은 잠에서 깨고서도 꿈이 선명하게 생각나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100억 원이라는 돈이 누구 애기 이름인가? 강권은 이런 말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워 혼자 낄낄거리며 일을 나갔다.
그런데 이렇게 중얼거린 말이 씨가 되고 그것도 바로 그 다음 날 아침에 이루어지리라고는 강권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제1장 - 어떻게 이럴 수가?


“강권아! 너 이번 주에 로또 샀잖아. 번호 한 번 맞춰 봐라.”
“사기는 했는데…… 상수 형, 내 복에 설마 로또가 맞겠어요?”
“그래도 또 모르잖아. 저번 주에 이월이 돼서 이번 주 당첨금이 무려 300억 원이 넘어. 만약에 1등에 당첨이 된다면 팔자가 완전 바뀐다고.”
“그, 그거야 그렇지만…….”
강권은 말을 흐리면서도 내심 기대를 갖고 지갑에서 로또를 끄집어 냈다. 그런데 번호를 맞추다 말고 그대로 눈이 뒤집어졌다.
“헉!”
1등, 1등이었다.
“강권아! 왜 그래?”
한상수는 기절해 있는 최강권의 손에서 로또를 가로채서 번호를 맞추어 보았다. 1등, 1등이었다.
한상수 역시 눈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한상수는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대신 가로챌 궁리를 했다.
“이것만 있으면…….”
한상수는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대로 가로채기로 했다. 양심이 누구보다 올곧다고 자부하던 상수였지만 이번 1등 로또 당첨금 313억 5천만 원은 너무나 엄청난 거금이었다. 아니 1등이 둘이라니 당첨금을 둘이서 나눈다고 하더라도 156억 7천 5백만 원이었다. 제세공과금을 제하고도 무려 100억 하고도 5억 원이 넘었다.
양심을 지키고 사느냐? 아니면 이걸 갖고 튀느냐?
한상수는 갈등했다. 양심을 지켜서 로또 용지를 최강권, 저 녀석에게 준다면 마음이야 편할 것이다. 하지만 100억 원이 넘는 거금은 최강권 저 녀석의 돈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로또란 게 최강권 것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또를 들고 가는 사람에게 돈을 주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최강권이 로또를 산 것은 자기와 그만 아는 사실이었다.
잠깐의 고뇌였지만 한상수에게는 몇 겁의 세월을 보낸 것 같은 진한 갈등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여기서 눈 한 번만 찔끔 감으면 대대손손 잘살 수 있어. 현실이란 게 양심을 지키고 산다고 누가 단돈 100원짜리 하나 주지 않잖아.’
자기가 양심을 한 번 속이면 자신의 후손들에게 가난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한상수는 로또를 들고 조용히 사라졌다.

* * *

최강권은 깨어나고 나서 한상수가 자신의 1등 당첨된 로또를 가지고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안 순간 완전 허탈에 빠졌다.
로또는 무기명채권이나 마찬가지여서 용지를 들고 가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까닭에 갖고 튄 순간에 이미 한상수의 로또가 되어 버렸다. 무식한 최강권이었지만 그 정도는 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이대로 말 수는 없다.
시계를 봤다. 액정에 5/2(월) AM 12:17이란 자막이 보였다.
강권은 씻지도 않고 무작정 택시를 잡아타고 로또 지급 은행의 본점으로 갔다. 그런데 택시 기사의 말대로 가장 빠른 길이라는 마포대교를 지나서 가는데 오늘따라 길이 엄청 막혔다.
마포대교에서 3중 충돌사고가 났단다. 1∼2분이면 건널 수 있는 것을 무려 13분이나 걸렸다. 택시비가 무려 2만 8천원이나 나왔다. 강권은 3만원을 건네주고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6층에 있는 수신부 복권사업팀으로 갔다.
“이번 주 1층 당첨금이요? 손님,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강권은 딱 잘라 거절하는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그런 말이 상투적이라는 거다.
“손님,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손님 같이 말씀하시는 분이 벌써 십여 명은 됩니다. 안 가고 계속 이곳에 계시면 영업 방해로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강권은 트라우마가 있어 평소 경찰이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알레르기가 있었지만 끝까지 자기 말이 사실이라고 우겼다.
강권이 끝까지 우기자 직원이 딱하다는 듯 당첨금은 이미 찾아갔고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되찾을 방법이 거의 없다는 말을 했다. 로또라는 게 무기명채권 같은 것이어서 주인을 가릴 필요도 없지만 주인을 가릴 방법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영수증도 없으니 상대가 우기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증명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고 했다. 또 법으로 따져도 백이면 백 질게 뻔한데, 지게 되면 무고죄까지 뒤집어쓸 수 있다고 했다.
강권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지만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은행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때려죽일 놈, 쬐금이라도 떼어 주고 가면 어디가 덧 나냐? 그걸 혼자 다 갖고 튀냐, 튀길. 에이, 잘 먹고 잘살아라.”
강권은 이내 체념을 했지만 너무나 열이 받아서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사람을 때려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마음뿐만은 아니었다.
만약 한상수가 여기에 있다면 정말로 때려죽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돈을 찾아서 잠적해 버렸을 한상수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잊어버리려고 못 먹는 술을 진탕 먹고 취해야 했다.
그러기를 열흘에 열흘이 훌쩍 지났고 얼마 갖고 있던 돈마저 모두 썼다. 이제는 돈을 벌지 않으면 고시원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새벽 4시 반. 일을 나가려고 억지로 일어났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매일같이 연이어 먹었더니 아직도 술이 덜 깨서 기분이 알딸딸했다.
‘젠장, 돈 벼락을 맞을 뻔했는데…… 그 꿈 때문인가? 어쩐지 꿈이 뒤숭숭하더라니. 그렇지만 이미 그렇게 된 걸 이제 어쩌겠어?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한 할아버지에게 효도했다고 생각하고 그만 잊어버려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력시장으로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강권을 아는 체한다.
“강권아, 오랜만이다. 너 그동안 뭐했기에 코빼기도 안 보였냐? 오늘은 토목 8만 원인데 나 따라갈 거지?”
강권이 뒤를 돌아보니 봉고차를 갖고 인력시장에서 팀장을 하는 김용진이었다. 최강권은 키는 작았지만 골격이 굵고 힘이 좋아서 남보다 일을 몇 배를 더하기 때문에 팀장들 사이에서 나름 인기였다. 고아여서 믿고 의지하는 곳이 없으니 잘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김용진그런데 빈곤의 악순환이라고 제대로 못 먹고 힘들게 일을 하니 몸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꾸준히 일을 나갈 수 없었다.
“아! 용진이 형, 토목이라면 당근 가야죠.”
“그럼, 내 차에 타고 있어. 차 어디 있는 줄은 알지?”
“예, 형. 인력 사무실 오다가 봤어요. 건너편에 주차되어 있는 것.”
강권은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즉시 대답하고 김용진의 차로 갔다. 차에는 이미 몇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거, 완전 땡 잡았네. 편하게 일하고 돈도 만원 더 받고. 히히.’
강권은 내심 희희낙락했다.
그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은 토목은 무거운 것들을 나르는 것은 대부분 기계가 하기에 일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했다.
강권이 간 곳은 하필이면 쓰레기 하치장의 외부 옹벽을 쌓는 곳이었다. 장마가 오기 전에 옹벽을 쌓아서 쓰레기 하치장의 침출수가 외부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한대나 어쩐다나.
강권이 같은 잡부들이 하는 일은 목수들에게 자재를 날라다 주는 것이었다. 강권은 몸이 좋지 않아서 적당히 비비적대다 편한 쪽으로 빠지려는데 팀장이 일할 곳을 지정해 주었다.
“강권아, 힘 하면 너잖아. 저쪽은 네가 수고 좀 해 줘라.”
“용진이 형, 어제 술을 얼마나 펐는지 아직도 알딸딸한 것 같은데 오늘은 이쪽에서 일하면 안 될까?”
“강권아! 숙취는 땀 흘리다 보면 다 풀려, 땀 흘리는 것 이상 없다고. 내가 네 나이 때는 물불 안 가렸어. 특별히 만원 더 줄 테니까 그렇게 좀 해 줘라.”
“예, 알았어요.”
‘에이, 형도. 저 구정물 속을 어떻게 안전화를 신고 다녀요? 차라리 만원 더 안 받고 말래요.’
강권은 입안에 이 말이 뱅뱅 돌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팀장 말을 듣지 않으면 팀장들 사이에 소문이 나서 이 바닥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강권아, 저쪽에 있는 장화 있으니 신고해. 부탁 좀 하자.”
“예, 알았어요.”
‘제기랄! 한상수 그 자식 때문에 이게 뭐야?’
강권은 내심 이렇게 구시렁거리며 자재 있는 곳으로 갔다.
허허벌판인데도 쓰레기가 엄청 쌓여 있어 냄새가 오라지게 났다.
거기다 자재를 나르는 것은 쓰레기더미에서 나온 침출수가 고여 있는 웅덩이를 지나다녀야 했다. 작업장에선 안전화를 신어야만 되는데 장화를 갖다 놓은 이유가 그래서였던 것 같았다.
강권이 날라야 하는 자재들은 옹벽을 쌓는 형틀목수들이 쓰는 유로폼이었다. 유로폼은 콘크리트가 새나오지 않게 하는 일종의 거푸집이었다. 토목공사인 옹벽을 쌓을 때는 대부분 하나에 20kg 정도 나가는 600폼을 사용한다. 그런데 토목공사에서 쓰는 유로폼은 폐기 직전의 것이 태반이다. 특히 해체 작업을 할 때 폼이 잘 떨어지라고 폐유를 잔뜩 처바르기 때문에 작업복이고 장갑에 기름투성이가 된다. 거기다 기름이 묻은 폼은 미끄럽기 때문에 까딱 잘못했다간 손에서 미끄러져 발등을 깰 수도 있다. 안전화를 신으면 그럴 일이 없지만 장화를 신고 있으니 잘못해서 폼이 발등에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뼈가 으스러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폼을 나르는 작업은 굉장히 힘이 들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사실 장소만 괜찮으면 크레인으로 폼을 나르는데,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으니 일일이 사람이 날라야 했던 것이다.
‘어쩐지, 내 복에 좋은 일이 걸릴 일이 없지.’
아직까지 술이 덜 깬데다 기분마저 꿀꿀하니 일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사고란 항상 이럴 때 난다.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것에 발바닥을 찔려서 썩은 물속에 나뒹굴었다.
설상가상이라고 강권은 발목이 완전 꺾이는 부상까지 당했다.
“악! 내 발.”
찔린 것은 큰 상처가 아닌데 넘어져 접질린 게 인대가 나갔단다. 병원에 실려 가서 4주 진단을 받고 입원해 있는데 하도급업자가 합의를 하러 왔다. 아니 합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적당히 을러서 대충 때우겠다는 심보로 온 것이었다.
팀장인 김용진에게 강권이 혈혈단신에 일자무식이란 것, 그리고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는 것을 주워듣고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았다.
“너 이 XX말이야. 우리 회사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아니 술을 먹고 일하다니 누구 잡으려고 그따위 행동을 하고 있냐고?”
사장은 나타나자마자 대뜸 욕설이었다.
강권은 사장에게 자기변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저 술 안 먹었는데요.”
“뭐라고? 야! 이 XXX야, 술을 안 처먹었는데 어떻게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7이나 된다는 말이야? 그것도 병원에 와서 쟀는데 말이야. 이 정도면 운전을 해도 운전면허 정지감이야. 너 업무방해죄로 고발을 하려다가 인생이 불쌍해서 치료해 주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죄송한 줄 알았으면 자, 여기에 지장이나 찍어. 고소를 하려다 인생이 불쌍해서 한 달 동안 너 입원시켜서 치료해 주겠다는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강권은 사장이 윽박지르는 통에 내미는 서류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지장을 찍었다. 중학교 2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강권이 제대로 읽어 보았자 의미도 알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강권이 지장을 찍자 사장은 휑하니 나가 버렸다.
결론적으로 사장은 한 달만 치료해 주고 산재 처리나 공상 처리는 해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장이 고발하려다 인생이 불쌍해 참았다고 말한 것은 일자무식이나 다름없는 강권에게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사실 강권에게 있어서 법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렸을 때 빨간딱지로 살던 집을 빼앗아 간 것이 법이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강권에게서 하나뿐인 혈육인 아버지마저 알코올중독자라고 앗아간 것도 법이었다.
그러니 강권은 고발하지 않겠다는 것만도 황송하게 생각했다. 자기가 몸 상태가 정상이었다면 그런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나름 미안하던 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산재 처리를 하거나 공상 처리를 해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돈이 나오는데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가 버리니 강권은 막막해졌다.
더 막막해진 것은 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퇴원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4주 더 입원치료를 하라고 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산재나 공상 처리가 되지 않았으니 강권이 치료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전혀 없었다.
따지고 들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강권은 법에 대해서 공포심을 갖고 있으니 아예 따지려는 마음조차 없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몸이 고생한다고 강권은 결국 다 낫지 않은 상태로 퇴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고시원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디 의지할 데 하나 없는 강권은 기브스를 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하지만 다리까지 저는 상태에서 일자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 일 좀 하고 싶은데요?”
“그래요? 그럼 이사지참해서 한 번 와 보십시오.”
“이사지참이라면?”
“사진이 첨부된 이력서. 그것도 몰라요?”
“아니요. 아, 압니다.”
그런데 그나마 없는 돈에 사진을 찍고 이력서를 써서 막상 가 보면 최종 학력이 중학교 중퇴라는 것이 걸렸다.
강권의 사정은 모르고 얼마나 꼴통이었으면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서 잘렸느냐는 거다. 면전에 대놓고 우리 회사는 최소한 고졸은 되어야 다닐 수 있다고 하는 곳도 있었다.
절룩거리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 갔다 고시원에 와 보니 자신의 짐이 고시원 밖에 쌓여 있었다. 강권은 서둘러 고시원 사무실에 가 보니 원장이 싸늘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