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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강권은 이렇게 말하며 [주식회사 씨크릿 컴퍼니]라고 적혀 있는 명함을 미진이에게 건네주었다. 명함을 건네주고 난 다음부터 강권의 말투는 존대 말투로 바뀌어졌다. 인간 김미진에서 고객 김미진으로 다르게 상대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어머, 강권 씨. 언제 이런 회사를 차렸어요?”
“차린 지 얼마 안 됩니다. 미진 씨가 우리를 고용하면 첫 손님이니까요.”
“그래요? 그런데 씨크릿 컴퍼니가 어떤 회사지요?”
김미진은 명함을 앞뒤로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명함에 회사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으니 그녀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강권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회사에 대해서 설명했다.
“미진 씨 회사인 미림과 같은 성격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림은 온라인으로 해결하는데 우리 씨크릿 컴퍼니는 오프라인으로 해결한다는 점이 다르지요. 조금 전문성을 띤 심부름센터나 해결사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김미진은 강권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강권 씨, 좀 구체적으로 말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하, 그야 어려울 게 없지요.”
강권은 이렇게 말하고는 암암리에 [사일런트] 마법을 펼치고는 말을 이었다.
“고객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현안 문제를 대행해 주는 법집행 대행 사업입니다. 우리 회사는 법으로 해결을 할 수 없는 사건만 맡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말하자면 고객이 법으로 호소해서 만족을 얻을 수 없는 경우에만 맡는다는 것이지요. 우리 회사의 장점은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는 불법도 불사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객에게는 전혀 피해가 가지 않게 처리하지요. 우리 이사 중 한 사람의 프로필을 본다면 어느 정도는 신뢰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강권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가지고 온 바인더에서 한 사람의 이력서를 꺼내 미진에게 보여주었다.
미진은 얼떨결에 이력서를 받아서 읽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북파 16회라는 부분이었다.
‘어! 이게 뭐야?’
미진이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자 강권은 기다렸다는 듯 말해 주었다.
“미진 씨가 보신 대로 우리 이사 중 한 사람은 HID 북파 부대 후신인 국군 정보사 특수부사관으로 20년을 복무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우리 씨크릿 컴퍼니의 능력이 조건만 맞는다면 백악관의 금고를 털어 오라고 해도 털어 올 수 있을 정도라면 더 말이 필요 없겠지요.”
“그럼…….”
“기가 센 사람은 능히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데 미진 씨의 기가 조금 약해졌더군요. 그리고 얼굴에 수치심과 근심이 나타나 있고요. 그것은 미진 씨와 회사에 동시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래요. 강권 씨,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해도 죽여 주시겠습니까?”
“죽을 짓을 했다면 죽여 줄 수 있긴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우선 법으로 해결을 볼 수 있으면 청부를 받지 않습니다. 정치와 크게 관련이 있는 자는 불가. 우리나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사람은 불가. 죽을 운명이 아닌 자는 불가. 죽을 짓을 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하거나 실수로 잘못을 저지른 자는 불가. 대충 이런 예외 조항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죄질 여하에 따라서 죽이지는 않더라도 불구로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예컨대 대기업 회장이 강간을 해서 증거 조작 등의 사유로 사실상 법에 호소하기가 불가능한 사안인 일 경우에는 죽이지 않은 대신에 발기 불능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진은 강권이 마지막으로 말한 예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강권 또한 미진이 마음에 들라고 그런 예를 들었기도 했다.
“그럼 청부금은 얼마나 지불해야 하나요?”
“통상 청부를 수행하면서 드는 경비 전액과 청부로 인해 받을 이익의 반을 청부금으로 받는데 그동안 미진 씨에게 신세진 것도 있고 해서 이번만큼은 특별히 서비스로 해 드리겠습니다.”
강권이 이처럼 무보수로 하겠다는 것은 일을 처리하면서 엄청 이득을 얻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미진은 알지 못했다. 경옥이가 강권이 자신을 위해 자신의 친구에게 무보수로 일해 준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도 망외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또한 미진이 빚을 지고 나몰라라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고, 돈에 관한한 그녀의 배포가 자신보다 크다는 것도 계산속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한푼이라도 더 벌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아닐 수 없었다.

* * *

강권은 강석천을 불렀다. 강석천은 씨크릿 컴퍼니에서 강권을 제외하고는 가장 뛰어난 능력자였다.
강석천이 오자 강권은 명령을 내렸다.
“강 이사, 씨크릿 1팀을 붙여 줄 테니까 한세 그룹에 대해서라면 뭐든 전부 알아 오게. 그룹의 시발, 성장 배경, 최근 동향은 물론이고 회장과 그 직계의 사생활까지 수집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수집해 오도록 하게. 내가 쓴 교안(敎案)의 사건 유형별 접근법을 적용한다면 크게 어려운 점은 없을 거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씨크릿 컴퍼니는 모두 10개 팀이 있는데 그중 1∼3팀은 지능 범죄 전담반이었다. 씨크릿 컴퍼니의 주요 고객은 개인이 아니고 회사다. 그런데 어떤 회사를 파악하는데 가장 유용한 자료는 돈의 흐름이다. 그래서 각 팀에는 각각 10명의 행동 대원 외에 지원 조직으로 해커, 회계사, 법무사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씨크릿 1팀이 조사해 온 자료에 따르면 한세 그룹은 김경동 회장이 70년대 부동산 붐으로 돈을 벌어서 시작한 한세 실업이 효시다. 한세 실업은 겉으로는 일본에서 전기, 전자 제품을 수입해 와서 팔고, 국내 농수산품을 일본에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런데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뿐이고 실상은 각종 밀수품으로 떼돈을 벌었다. 그 후 밀수가 어려워지자 계명화학이란 회사를 빼앗듯이 사더니, 이후 조선, 전기, 전자 분야에 발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세 그룹의 성장 전략은 기술을 개발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의 적당한 기술을 가진 회사를 병합하고, 일본에 로열티를 주면서 회사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생명공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제약 회사를 차리면서 그룹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현 자산 총액은 13조 5천억 재계 순위는 25위다.
그리고 김경동 회장은 세 명의 부인으로부터 3남 4녀, 총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유비 통신에 따르면 해외 현지처까지 따져 총 10명의 부인에 1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고 한다.
김경동 회장의 자녀 중에 최고 실세는 셋째인 김철호였다. 김철호가 실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친인 서경숙이 부동산 재벌의 무남독녀였는데 김철호는 서경숙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았기 때문이었다.
강권은 한세 그룹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을 하자 김철호를 타깃으로 삼고 그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도록 했다.

* * *

청담동 클럽 카이저.
멤버십 클럽이어서 멤버가 아닌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이곳 클럽 카이저의 멤버가 될 수 있는 자격 조건에 연봉 2억 이상, 30세 이하라는 조건이 달려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VVIP가 아니고는 멤버조차 될 수 없었다.
그 청담동 클럽 카이저에 이탈리아 최고급 수제 양복인 BOGGI를 빼입은 청년이 들어섰다. 발음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너무나 야시꾸리해서 우리나라에서는 런칭조차 하지 못했지만 세계 최고의 수제 양복이라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 고급 양복을 빼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청년은 출입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실례지만 우리 카이저의 회원이십니까?”
“아니, 카이저가 물이 좋다고 해서 회원이 되려고.”
“그러십니까? 이 멤버십 컨디션에 통과되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지요?”
“앱솔루를리.”
매니저는 되도 않게 혀를 굴리고 있는 청년에게 어린 싸가지라고 내심 한바탕 욕을 해 주고는 신청서를 내밀었다.
신청서에 쓰는 곳은 몇 군데 없었다.
성명, 주소, 생년월일, 카드넘버 그리고 기타 수입란이 전부였다. 청년은 대충 휘갈겨 주고 매니저에게 넘겼다.
매니저는 그걸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최 이사님, 이사님께서는 플래티넘 멤버는 자격이 안 되시고, 골드 멤버는 되시겠군요.”
“뭐야? 내가 왜 플래티넘이 안 된다는 거지?”
청년이 기분이 상했다는 듯 따져 묻자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답변을 했다.
“저, 죄송하지만 플래티넘 멤버는 자기 자산이 최소 100억 이상이어야 하든지, 아니면 연수입이 10억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플래티넘 멤버와 골드 멤버의 혜택은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씨, 하나마나한 소리는 왜 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곧 차이가 있다는 소리 아냐? 도대체 그 차이가 뭔데?”
“연 1회에 한하여 카이저피아 룸의 일일 주인이 되실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 차이 뿐입니다.”
“카이저피아 룸?”
“예. 플래티넘 멤버께서는 일 년 중 하루에 한해서 완전 황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호오, 그래? 나 그거 하고 싶어. 자, 이걸 줄 테니 나 플래티넘으로 해 줘.”
매니저는 부모 잘 만나서 23살이란 어린 나이에 이사 직함을 단 싸가지에게 엄청 울분을 느끼고는 한마디 해 주려다 수표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 개수를 보고 기함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억! 처, 천만 원.”
“그래. 나 플래티넘으로 만들어 주면, 이거 자네 거야.”
어린 싸가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천만 원짜리 수표를 서영환이라는 이름표 바로 위에 있는 주머니에 꼽았다.
팁으로 백만 원짜리 수표를 받은 매니저는 더러 있었지만 아직까지 천만 원짜리 수표를 받은 매니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영환은 눈을 찔끔 감고 연수입란에 1자를 하나 더 기입했다. 연수입이 5억에서 15억이 되었으니 플래티넘 멤버 자격은 충분했다.
“연회비를 어떻게 납부하시겠습니까?”
“연회비? 얼마야?”
“플래티넘 멤버의 연회비는 5,000만 원입니다.”
‘무슨 연회비가 5,000만 원이나 한다는 거야.’
강권은 배알이 꼴렸지만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래? 그럼 골드는 얼마야?”
“골드 멤버의 연회비는 1,000만 원입니다.”
“하도 카이저, 카이저 해서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별거 아니네. 그런데 말이야. 자고로 사내는 현찰이 있어야 힘이 생기는 법이잖아. 그래서 말이지 내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현찰은 안 되겠고, 할 수 없이 계좌이체로 할 수밖에. 계좌이체 되지?”
매니저 서영환은 최강권이란 핏덩이의 지갑에 자기에게 건넨 수표와 같은 수표가 최소한 10여 장이 더 있는 것을 보았다.
방금 찾은 것처럼 빳빳하니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걱, 억이야? 2억이야?’
서영환은 눈이 뒤집어졌지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여기에 계좌번호를 적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뭐.”
강권은 계좌번호를 적어 주고는 서영환에게 말했다.
“참! 이곳에도 포커판이 있나? 잔챙이 말고 말이야.”
“요새는 포커보다는 고스톱을 더 선호합니다.”
“고스톱? 얼마짜리?”
“점 10만부터 시작하는 것 같았습니다.”
“알았어. 한 번 자리를 마련해 봐. 따면 개평 줄게.”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물론 강권이 여기에 온 것은 김철호가 여기 자주 출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에게 선전포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김철호가 고스톱 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고스톱을 치러 오는 날이 오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 *

“이봐! 왔으면 인사부터 하지.”
“아! 그러지. 나 최강권이야. 이름처럼 엄청 주먹이 세지. 앞으로 잘 지내자고.”
강권의 말에 강권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던 세 명의 귀공자들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달고 흘끔 쳐다보았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았다는 듯, 딱 그런 식이었다.
그뿐이었다. 그걸 가만 보고 있을 강권이 아니었다.
“호, 웃긴 놈들이네. 인사하자며? 그런데 말을 씹어?”
“뭐야? 이 자식이? 감히 미림의 이사 따위가?”
자리를 주선하면서 매니저 서영환이 발설한 모양이었다. 부러 발설하라고 미림의 이사 직함을 적었으니 작전 성공이었다.
강권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미안, 본인이 겨우 미림의 이사 따위에 불과해서. 그러는 너는 뭐하는 자식이니?”
“뭐야? 이 자식, 너 죽고 싶어?”
이렇게 말하는 명일영은 자본금 5조 8천억으로 재계 순위 50위인 유진 통상의 후계자였다. 미림의 자본금이 겨우 1천억이니 유진 통상에 비하면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총괄이사라는 전대미문의 직함이니 이사 자격은 안 되는데 어찌어찌하다 겨우 이사를 꿰어 찼을 게 분명했다.
그런 녀석이 까불고 있다는 것이 명일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교계에서 재계 순위는 지위의 우열과도 관련이 있었다. 재계순위가 낮으면 국으로 잠자코 처분만 바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는 한세 그룹의 김철호가 좌장이나 다름없었고, 김철호의 비위를 거스르면 안 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그 버르장머리 없는 핏덩이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하! 죽고 싶냐고? 너 귀 먹었어? 나 최강권이야. 싸움이라면 자신 있다고. 못 믿겠으면 덤벼 보던지?”
“뭐야?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해 보겠다는 거야?”
명일영이 방방 뛰었지만 김철호의 한마디에 다소곳해졌다.
“일영아! 잠자코 있어. 이 자리는 말싸움을 하는 자리가 아니고 돈 놓고 돈 먹는 자리야. 패나 돌려.”
명일영은 김철호가 무슨 의도로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짜고 고스톱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예, 알았습니다. 형님.”
강권이 바라던 바였다. 사실 강권은 고스톱은 처음이지만 타짜에게 특별 강습을 받았기 때문에 아마추어들과 고스톱을 쳐서 잃을 일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홀랑 벗기면 어떻게 나올라나?’
김철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한마디로 간웅(奸雄)의 상이었다. 그 점이 더 흥미로웠다.
강권은 화투의 재질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보고 흥미가 동한다는 듯 화투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화투는 어디서 파는 거야?”
“촌스러운 놈. 이 화투는 우리 형님께서 특별히 제작한 거야. 특수 아크릴 필름에 국선 입상 화가가 직접 그린 거야. 한 장을 사려면 네 녀석은 최소한 서너 끼는 굶어야 할 걸.”
“그래?”
강권은 시큰둥하게 말하더니 혼자 무어라고 구시렁거렸다.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할 지랄이 없어 화투짝에 돈지랄들이야?”
그런데 혼자 중얼거린다고 중얼거리는데 목소리가 큰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도발을 하려는 것인지 옆에서 다 들렸다.
“뭐라고?”
“아니, 어서 패나 돌리라고. 그런데 점 100인가?”
“뭐야? 이 쫌생아! 우릴 어떻게 보고 겨우 점 100이야?”
“그럼 점 얼마야?”
“최소한 점 10만은 돼야지?”
“허! 겨우 그 정도야? 이거 실망인데. 점 100이라는 게 100만을 가리키는 거였거든. 초등학생도 점 1,000을 치는 판국인데 우리 같은 VVIP들이라 굳이 만 자를 넣을 필요가 있을까 해서 말이야. 나는 최소한 점 100만은 생각했었는데. 쩝, 잔챙이 판에 끼어 마라? 젠장, 기왕 끼었으니 조금만 놀다 가지 뭐.”
강권이 들으라고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명일영의 안색이 확 달아올랐다. 별 시답지 않는 녀석에게 잔챙이라는 소리를 듣다니 명일영으로서는 자존심이 엄청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일영이 김철호의 얼굴을 쳐다보는 눈길이 묘했다. 판을 키우자는 의미일 것이다.
김철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잃을 일은 없을 것이다. 눈빛을 교환한 명일영이 소리쳤다.
“좋아, 후회하지 마. 점 100만으로 하지.”
“고고씽.”
강권은 기다렸다는 듯 지갑에서 수표를 꺼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
“뭣들 해? 다들 꺼내 놔. 자고로 오고가는 현찰 속에 밝아지는 신용 사회 아니겠어?”
명일영은 오늘 놀려고 2천만 원을 준비했는데 강권이 꺼낸 수표를 보니 꺼내 놓기가 민망했다. 강권이 탁자 위에 놓은 돈은 1,000만 원짜리 수표로 20장 정도는 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급히 클럽 내에 있는 대전소(貸錢所)에 가서 차용증을 쓰고 신용 한도인 3억을 차용했다.
이렇게 해서 판돈이 10억이 넘는 고스톱 판이 벌어지게 되었다.
패가 돌리고 선을 뽑았는데 김철호가 선이었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강권은 세 번째였다. 두 번째로 앉은 녀석이 패를 보지도 않고 죽었다.
그러니까 순서는 김철호가 선이었고, 명일영이 말이었다.
강권의 예상대로 명일영은 자기가 먹을 패가 있는데도 전혀 먹지를 않고 무조건 내주고 있었다.
‘흐흐, 그렇게들 해 봐라.’
강권은 시작을 하기 전에 화투를 보는 척하면서 마킹을 해 두었기 때문에 뒷면만 보면 무슨 패라는 걸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리패를 뒤집는 척하면서 고를 하면 바로 독박을 쓰도록 조작을 해 놓았기 때문에 여유만만이었다.
엄청난 동체 시력에 사진기 같은 기억력을 갖고 있는 강권이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수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김철호는 청단으로 점수를 나고 고를 했다.
둘이 슬쩍슬쩍 보여 주면서 치는데 광을 두 개 먹은데다 명일영의 손에 광이 세 장이 더 있었다. 완전 5광 찬스였기 때문에 고를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하하하, 지금부터 설사의 시간이군. 똥광에다 쌍피 두 개까지 얹어서 싸겠지.’
김철호는 똥 광에다 쌍피 두 개까지 얹어서 싸고는 인상이 구겨졌다. 강권은 보란 듯이 김철호가 싼 것을 먹고 멍텅구리 1점, 피 2점, 이렇게 단숨에 3점이 되었다.
“하하, 못 먹어도 고.”
‘다음 쌀 것은 팔 광.’
강권의 생각대로 명일영은 들고 있는 광을 내줄 수밖에 없었고 김철호는 또 쌌다.
“하하하, 나이가 어려 싸시나? 아니면 저녁을 잘못 드셨나? 또 한 번 돌아 주세요.”
명일영은 지금 시점에서 김철호가 점수를 낼 수 있는 길은 광으로 점수가 나는 것뿐이니까 비 광을 내줬다.
어차피 김철호가 독박은 쓴 상태고 자기 돈은 나가지 않으니까 아무 부담이 없었다.
강권은 비 광을 먹고 쓰리고를 했다.
이렇게 해서 총 15점이 났는데 김철호는 멍따에 피박, 명일영은 광박에 멍따, 피박까지 썼다.
김철호는 독박을 써서 졸지에 7천 5백만 원이란 거금을 날렸다.
강권이 선을 잡자 둘은 아무리 짜고 쳐도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번갈아 가면서 광박에 피박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3억을 몽땅 날리고 광을 팔고 있는 김도수에게 1억씩 빌려 그것마저 날렸다.
둘이 합해서 8억 몇 천만 원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어떻게 더 하시겠수?”
“이 자식, 계속 약 올릴 거야?”
“하! 이거 왜 그러시나? 나, 최강권이라니까? 주먹 엄청 세다고.”
“이익.”
명일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철호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서자 판이 그대로 깨졌다. 이로써 강권은 6천만 원을 투자해서 무려 9억 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하하, 제대로 약을 올려 주었으니 이제 좀 더 과감하게 나오겠지? 그러다 보면 파탄이 날 테고.’
강권이 김철호를 약 올렸던 것은 그런 의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