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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나무는 무엇이더냐?”
다른 사람은 전부 가고 혼자 남은 강석천은 강권의 느닷없는 물음에 영문을 몰라 눈만 깜빡거렸다.
“미련한 놈. 갑(甲)이 무엇이고, 인(寅)이 무엇이더냐?”
“예, 모두 나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이 뻗어 나가려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 중 새벽을, 계절 중 봄을 나무로 보고 있다. 나무를 상징하는 색깔은 청색이요, 오상(五常) 중의 인(仁)이 나무다. ……중략…… 따라서 갑인신공을 제대로 익히려면 어진 마음을 가져야만 하며 항상 천진난만하게 행동을 해야만 한다. ……중략…… 생(生)하는 수(數)는 3이고, 성(成) 하는 수는 8이니 항상 바람처럼 가벼워야 하느니라. 정(丁)과 임(壬)을 인수지합(仁壽之合)으로 하고 진방(辰方)을 보아야 하며 곡직(曲直)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강석천은 지금 강권이 노래처럼 읊조리고 있는 것이 갑인신공의 구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갑인신공의 법문과 대조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어왔던 것과 다른 것은 일정한 운율과 고저장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희한한 것은 강권의 노랫소리의 흐름에 따라 몸 안에서 기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운기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강석천이 갑인신공의 법문대로 제대로 운기를 하고 있는지 지켜보면서 강권은 노옴에게 약초를 캐 오라고 했다. 노옴이 캐오는 약초로 조호명을 치료하는 쇼를 제대로 할 작정인 것이다.
일주천이 끝나자 강권은 한숨을 내쉬면서 강석천의 욕을 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어떻게 그걸 구결이라고 생각하느냔 말이야? 제 놈이 98대 손이라고 했으면 최소로 잡아도 3,000년은 되었을 것인데 그 당시에 한글이 있었겠냐고?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서 어떻게 무공을 배우겠다는 거야?”
강권이 이처럼 강석천을 욕하는 것은 넉넉잡고 10분 정도면 끝날 무공 전수가 30분이 넘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강권이 사용한 방법은 일종의 파동을 이용한 무공 전수였다.
일정한 운율과 음의 고저장단에 의해서 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기의 경로가 달라진다는 게 파동을 이용한 무공 전수의 요체다.
그런데 이 파동을 이용한 무공 전수에는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
전수자가 음공(音功)에 정통해야 하고, 최소한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을 가져야 한다. 반면 피전수자는 경맥과 근골이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 경맥과 근골이 튼튼하지 못하면 음공에 의해서 도리어 경맥이나 내장이 파열되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운공조식을 지켜보지 않아도 되었을 무렵 노옴은 산삼 십여 뿌리를 비롯해 하수오, 삼지구엽초 등을 캐 왔다. 그중의 하나는 200년 묵은 천종산삼이었다.
이제 노옴은 숙련된 심마니가 울고 갈 정도로 약초 캐는 데는 도사가 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사손이니 이 정도의 선물은 해 주어야겠지. 저놈은 복도 많군.”
이 말은 강석천에 대해서 그만큼 애정을 갖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강권은 노옴에게 누가 오면 입구를 막으라고 해 놓고 산삼 한 뿌리를 씹어 먹으면서 운기조식을 했다. 조호명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고, 강석천에게 무공 전수를 하며 소진시킨 내력을 보충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호명에게 기를 불어넣어 준 것과 30분 넘도록 음공을 펼친 것은 3시간 이상 권각(拳脚)을 휘두르는 것 이상의 내력을 소모하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 * *
“제대로 된 갑인신공으로 운기한 기분이 어떠하냐?”
“무척이나 상쾌해서 마치 몸이 날아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르신 제가 어르신을 어떻게 불러 드려야 하는지요.”
“그것 참, 애매하구나. 너는 98대라며? 나는 48대이니 알아서 부르려무나.”
“예에? 어, 어떻게 그, 그럴 수가.”
강석천이 놀라는 것은 무공을 가르쳐 준 할아버지에게서 귀에 못이 배길 정도로 천살문에 대해서 얘기를 들어 어느 정도 족보는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려 준 천살문의 48대라면 최소한 1,500∼1,600년 전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왜 그리 놀라느냐? 내 스승님이 무무상인이신데 그분께서는 천살문의 47대손이셨다. 그러니 내가 48대손인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예에? 스승님께서 무무상인이시라고요?”
“그래, 그게 어쨌는데?”
“그, 그게 아니옵고…… 무무상인이시라면 저의 직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젠장, 어떻게 된 거야? 그럼 야는 명학이란 놈의 사손들 아냐?’
무무상인은 두 명의 제자를 거두었는데 그중 한 명이 강권이의 전생인 명철이었고, 또 하나는 명학이었다. 명철은 공주와 연애질하느라 제자를 거두어들이지 않았으니 강석천은 명학의 사손들이 맞을 것이다. 강권은 강석천을 거두어들여야 하나 아니면 내쳐야 하느냐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강권은 석천의 상이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아 거두어들이기로 했다.
“너 말고 또 다른 천살문도는 있느냐?”
“저……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소손 말고 다른 천살문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공을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중국 흑도방파인 삼합회의 회주 중 하나가 우리 천살문의 무공을 계승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제자를 거두어들일 생각은 없었느냐?”
“소손이 여식만을 둔 터라 차마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권은 강석천의 말이 대충 이해가 갔다. 제대로 된 갑인신공이라면 남자가 익히건 여자가 익히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갑인신공에 고목신공을 섞어 버리자 피부가 나뭇등걸 같아지는 폐해가 있어, 아비 된 입장에서 여아에게는 차마 전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너의 갑인신공은 엄밀히 말해서 완전한 갑인신공이 아니다. 아직은 고목신공의 영향을 완전 배제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만약에 제대로 된 갑인신공을 만들 기회가 있다면 조금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그 기회를 잡겠느냐?”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석천이 강권의 말에 포함된 의미가 무엇인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몸에서 고목신공의 기운을 완전히 빼기 위해서는 엄청 두들겨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강석천은 제대로 된 갑인신공을 익히기로 결정했다.
“예, 태사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권은 참나무 몽둥이를 11개 구해 오라고 하고, 참나무 몽둥이를 구해 오자 노옴이 캐 온 산삼을 먹인 다음에 강석천의 전신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두들겨 패는 것은 고목신공의 기운을 빼는 외에도 혈도 타통(打通)의 묘용도 있었다. 혈도 타통으로 강석천은 반 갑자의 공력이 생겼고 대주천에 한 발 다가서게 되었다.
운기조식을 하고 난 후 이 사실을 안 강석천은 강권에게 큰절을 올리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뭐! 별거 아니다. 처음 만나는 사손에게 그 정도쯤이야 베푸는 게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참, 무극십팔기는 다 익혔느냐?”
“무극십팔기라 하시면?”
강석천의 표정을 보니 모르는 게 분명했다.
‘이런 제기랄 놈들, 도대체 뭘 가르치고 배웠던 게야?’
“네가 알고 있는 사문의 초식을 펼쳐 보도록 하여라.”
강권의 지시에 강석천은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는 품세를 펼쳤다. 그런데 그것 역시 완전 짜깁기였다. 무당파의 태극 13세, 진가 태극권, 청성파의 대라산수 등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아이고 두야. 이런 잡기들을 초식이라고 펼치고 있으니,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어휴.’
무극십팔기의 묘용은 근육의 순발력과 파워를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데 있었다. 천살문의 내공심법들은 처음에는 내공을 쌓는 속도가 엄청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더디다.
대신에 내공은 정순했고, 일정한 수위에 도달한 다음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내공이 쌓아진다. 또한 그 일정한 수위에 도달할 때까지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무극십팔기였다.
부족한 내공을 빠른 스피드와 파괴력으로 대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강권이 총알을 잡아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무극십팔기를 익혔기에 가능했다.
‘이것들 순 사이비 아냐? 아니, 어떻게 그 중요한 무극십팔기도 가르치지 않을 수 있는 거지?’
이건 강권의 생각일 뿐이고, 명학의 생각은 달랐다.
천살문에서는 그 사람의 기운에 따라서 내공심법을 달리 전수해 주는데 명학은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똘똘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제자로 삼고 무공을 전수했다.
사형인 명철이 망국의 공주와 사랑에 빠진 사이에 혼자 무림에 왔다 갔다 하면서 몇 차례 싸우면서 내공의 부족에 엄청 고전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내공심법을 보완할 방법을 찾게 되었고, 초식이란 것도 주워 배웠다.
강석천의 선조는 이 시기의 명학에 무공을 배웠으니 내공심법도 엉망이었고, 엄청 중요한 무극십팔기는 아예 배우지 조차 못했던 것이다.
“혹시 이것은 알고 있느냐?”
강권은 이렇게 말하며 무극십팔기의 동작들을 하나하나 보여 주었다. 강석천은 강권의 동작을 보면서 이른바 한계 동작의 조합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계 동작이란 인간의 신체구조로 펼칠 수 있는 극한의 동작들이다. 그 한계 동작들을 연달아 펼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십팔 품세들이 연계하면서 미리 근육과 관절들을 풀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가같이 무식한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서도 요가 이상의 유연성을 갖게 해 주고 저절로 발경을 익힐 수 있게 만드는 동작들이었다.
늦게나마 생활체육학과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강석천이 아무리 많은 실전을 했더라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강석천은 골수 강권맨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이경복은 강희복 경찰청장이 강권이 말했던 조폭 조직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것을 알자 크게 실망을 했다. 자신이 모시던 경찰청장은 지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으로 알았는데 지위와 명예를 탐해 의리를 저버리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나이도 있는데 이대로 공직 생활이 끝이 된다는 게 불안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이경복의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의 뒤통수를 칠 생각까지 하다니…….’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결국 이경복은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변호사를 개업했지만 강희복 경찰청장의 미움을 사서 일거리가 그리 많지 못했다. 일이 많지 않다 보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이경복은 동생의 도장에서 운동으로 시간을 때우다가 문득 최강권이 생각나 강권을 찾았다.
최강권은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하하, 근일에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최 이사, 정말 내가 찾아올 줄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이경복은 그 웃음이 너무 묘해서 마음이 동했다.
“최 이사, 어떻게 밥 좀 먹게 미림에 말해 주시겠소?”
“그거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저라면 쉴 때 푹 쉬겠습니다.”
이경복은 강권의 말이 뭔가 현기를 품은 것 같아 자존심을 굽혀 가며 물었다.
“최 이사, 무얼 알고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 그냥 흘려들으시기 바랍니다.”
이경복은 강권의 말에 조바심을 느끼고 귀를 기울였다.
“제가 보기에 아마도 차기 경찰청장은 이경복 씨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특정 기업에 기대 돈을 받으면 우선은 달겠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돈이야 먹고 살기에 궁하지 않을 테니, 이 기회에 잠시 인권 변호사나 좀 하고 계십시오. 그러면 좋은 기회가 생길 것입니다. 인권 변호사로 이미지를 깨끗하게 만들어 놓으시면 차기 경찰청장에 법무부 장관까지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업적을 쌓는다면 대통령까지도 가능하구요.”
“예에? 그게 정말입니까?”
“이경복 씨의 사주는 일간이 경(庚)에 자(子)가 많아 오(午)를 충(充)하는 이른바 비천록마격(飛天祿馬格)을 구성합니다. 이는 부귀가 함께 따르고 명성을 크게 얻을 좋은 사주입니다. 게다가 호랑이 띠인 인(寅) 해에 태어났는데 이 인(寅)은 오(午)와 합(合)을 이루어 더욱 길하게 됩니다. 특히 이경복 씨의 복록을 가로채고 있던 인물과 떨어졌으니 앞으로는 제 복을 찾아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권 변호사를 하라구요?”
“예. 조만간 인권 문제가 우리사회에 크게 이슈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하시고 이에 임하신다면 자체발광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이경복은 강권의 말에 느끼는 것이 있었다.
‘강희복이 무도 경관들을 차출한다고 하더니 이 친구가 제안한 것을 자기가 해 보겠다고 설치고 있는 것이 분명해. 조폭이라도 엄연히 국민의 일원인데 무리하게 닦달을 하다 사고치는 것이 분명할 거야.’
이경복의 생각대로 강희복은 무도 경관들을 동원해서 조폭들을 잡고 그들을 무리하게 회유하려 했다.
그런데 그런 무데뽀의 강경책은 필연 파탄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어서 조폭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그런데 강희복은 그런 사건을 무도 경관들에게 덮어씌우려다 오히려 무도 경관들의 집단 반발을 사게 되었다.
거기에 출세 지향주의자인 강희복에게 터진 최후의 카운터펀치는 용인 대학생을 사살하고 조폭으로 누명을 씌운 사건이었다.
최강권의 도움을 받은 이경복이 인권 변호사로 그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니 차기 대통령이 그를 경찰청장으로 내정했다.
그 후 사법고시를 패스했으면서도 경찰에 오래 봉직했던 전력은 그로 하여금 법무부 장관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든 것이 강권의 말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제5장 주식회사 씨크릿 컴퍼니
“성 이사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왜 그동안 일을 잘하고 있던 연구원들이 잇달아 사직서를 내는 것이지요?”
“한세 그룹에서 IT연구소를 새로 설립하겠다고 연구원들을 빼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세 그룹에서요?”
“한세 그룹 회장의 셋째가 IT관련 회사를 차린다는 소문입니다.”
한세 그룹은 70년대에 부동산에서 떼돈을 벌어 오퍼상인 한세 실업을 차려 기반을 잡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화학과 건설, 조선으로 발을 넓히더니 급기야는 생명공학과 제약 등에까지 손을 뻗혀 마침내 재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손을 뻗힌 분야마다 흑자를 이루어내서 재계 판도를 바꾸어 놓은 것으로도 유명했다.
김미진은 IT관련 회사를 차린다는 그 김철호와는 한 차례 악연이 있었다. 미림 초창기 시절 인맥을 넓히려고 오명희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을 했다가 하마터면 김철호에게 강간을 당할 뻔했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파티를 주최한 오명희의 중재로 망신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때 기억을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다. 그 사건을 거의 잊었다 싶었는데 김철호가 다시 도발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인간에게 어떻게 복수를 하지?’
김미진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 문득 강권이 생각났다.
‘강권 씨에게 월급이 나가고 우리 회사 사옥에서 살고 있으니 아직 우리 이사지. 그가 나서 주면 무슨 수가 생기지 않을까?’
김미진은 강권이 무식(?)해서 다른 것은 믿을 수 없었지만 사주를 보는 것과 싸움 잘하는 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김미진은 강권이 김철호를 흠씬 두들겨 팼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렇지만 한동안 소원했던 강권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게 쑥스러워 경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옥아! 너 어떻게 살고 있니? 어떻게 된 애가 집에서 놀고 있으면서 내가 전화를 하지 않으면 통 전화도 없냐?”
―어! 미진아! 너 미국에 출장 갔다고 하더니 언제 돌아온 거야?
“며칠 됐어. 한 번 보자. 강권 씨도 보고 싶으니 같이 와.”
―알았어. 강권 씨가 오후에 스케줄이 없으면 함께 갈게.
“어! 강권 씨, 어디 다녀?”
―어디 다니기는. 그냥 아르바이트지.
경옥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강권은 특전사요원들에게 이미 훈련을 시켰고, 지금은 조폭들을 잡아다 순화(?)를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또 조호명에게 교관 봉급을 받고 있으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런데 순화를 시키고 있는 조폭들은 두 부류였다.
하나는 대외 과시용으로 청와대에 보여 주기 위한 부류였고, 다른 하나는 진짜 정예(?) 조폭들이었다. 이 정예 조폭들의 순화에 가장 공을 세우고 있는 사람은 물론 강석천이었다.
강석천은 북파 대원들 중 괜찮은 인물들을 포섭해서 데려왔고, 이들은 강권에게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다.
강권의 일은 이따금 조폭들에게 카리스마를 보여 주고, 백두대간을 돌아다니면서 각종 약초를 캐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물론 정작 약초를 캐고 있는 것은 노옴이었다.
3개월 안에 발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를 만드는 훈련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권이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권 씨, 오늘도 바빠?”
“나야 항상 바쁘지. 그런데 우리 옥이 공주님이 데이트 하자고 하시면 어쩔 수 있나? 시간을 쪼개서라도 내야지.”
“다름이 아니라 미진이가 좀 보재.”
“옥아, 미진이 혹시 미국 쪽에 가 있지 않았었어?”
“어머, 자기가 어떻게 그걸 알아?”
“우리 공주님께서 나를 너무 홀수로 아시는 것 같은 걸. 미진이 걔는 중국이나 미국에 가지 않는 한 너무나 잘 풀려서 나하고 전혀 볼일이 없을 걸. 그만큼 잘 나간다는 말이지. 그런데 중국이나 미국에 가면 걔에게 좋지 못해. 미진이 걔는 보석인데, 보석이 불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지? 완전 가치가 없어지는 돌멩이가 되어 버려. 또 쇳덩이에 얻어맞으면 아무리 단단한 보석이라도 흠집이 생기게 마련이지. 결국 미진이한테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내가 보고 싶단 걸 거야.”
경옥은 강권의 말에 자기 잘못을 깨달았다.
강권은 조금의 단서만 있으면 일의 시말을 모두 꿸 정도로 날카로운 판단력을 갖고 있는 것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경옥은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을 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물었다.
“자기야, 미안. 그런데 자기야, 홀수로 안다는 게 무슨 말이야?”
경옥이 진지하게 묻자 강권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홀수 한 번 읊어 봐.”
“1, 3, 5, 7, 9…… 아! 띄엄띄엄 안다는 뜻으로 말한 거야?”
“크크크, 내가 생각해 낸 복고풍 개그야. 우리 옥이 공주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미진이 울분이 가득한 얼굴로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권은 문득 바나나가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라는 것이 생각나 잠간 나갔다 오겠다고 하고는 바나나를 사 왔다.
그리고 미진이에게 바나나를 건네면서 말했다.
“미진 씨, 이 바나나를 먹어 봐. 스트레스 해소에는 바나나가 그만이거든.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기가 쇠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일이 더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가 더 쌓이게 돼. 세상의 모든 일은 얼마만큼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성패의 절반이 달렸어. 아무리 운이 좋고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냉정을 유지하는 사람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등대가 아닐까 해.”
미진은 퍼뜩 느껴지는 것이 있어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우울한 기분이 좀 풀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미진 씨는 보석이라고 했던 적이 있을 거야. 그런데 명리학상으로 보면 이 보석은 쇠 중에서도 신금(辛金)에 속해. 반면 미국은 경금(庚金)이지. 신금인 보석은 단단한 바위, 가공되지 않는 쇠를 뜻하는 경금과 함께하면 좋지 않아. 쇠와 쇠가 부딪히면 당연히 큰 소리가 나고 종국에는 약한 쇠가 부러진다는 이치지. 미국과의 일은 되도록 성 이사에게 맡기면 좋은데, 이번 일은 미진 씨가 우겨서 갔을 거야.”
“강권 씨가 어떻게 그걸 알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미진 씨가 날 찾을 일은 그것밖에는 없는 것 같았거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우리 회사의 고객이 된다면 기꺼이 해결해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