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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록 1권 15화
3장 지강현의 괴사(怪事) (6)
젊은 도사가 당황하며 움찔했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곧 자세를 다잡은 도사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더니, 붉은색 목검을 꺼내 검면에 묻혔다.
“이얍!”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 있는 담천을 향해 젊은 도사가 몸을 날릴 때였다.
“도사님, 이분은 저를 구해주신 분이에요!”
소현이 다급히 도사를 말렸다.
“엇!”
신형을 멈춘 젊은 도사가 눈을 꿈뻑이며 담천과 소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이, 이상하다. 분명 사기(邪氣)가 느껴져서 왔는데.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도사가 장내를 둘러보는데, 담천이 턱을 까닥이며 도경의 시신을 가리켰다.
“허억!”
그제야 시신을 발견한 도사가 참혹한 모습에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저, 저것은!”
도사가 얼른 시신 곁으로 달려갔다.
“시신에서 풍겨지는 사기(邪氣)! 분명 요마가 틀림없군! 하하하! 이거, 형장을 오해했구려. 내가 좀 덜렁거리는 편인지라…… 미안하오!”
젊은 도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담천에게 사과했다.
도사는 스무 살 초반대로 보였는데, 그 외모가 깎아 놓은 조각을 보듯 잘생긴 미공자였다.
만일 도사만 아니었다면 수많은 처녀들의 가슴을 들었다 놓았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소현의 얼굴에도 홍조가 깃들어 있었다.
“험험, 저는 전진교의 도사인 해륜(解쿿)이라 합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어쨌든 요마를 물리치시다니, 대단하군요!”
해륜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담천을 감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일반인이 요마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엄청난 무공의 고수이거나 도를 수행하는 이들만이 그나마 어느 정도 요마와 겨룰 수 있었다.
해륜은 담천이 무공의 고수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랫동안 도를 닦은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선기(仙氣)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천이라 하오. 여기 있는 소저께도 미리 말씀드렸지만, 개인적 사정이 있으니 오늘 일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하오.”
담천이 무뚝뚝한 답에 해륜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요마를 물리쳐 사람을 구한 자이니 악한 자는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거기다 특별히 사악한 기운도 느껴지지도 않았고.
쿵쿵쿵!
그때, 대문 쪽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있나요?”
천혜린의 목소리였다.
“아!”
담천은 자신이 잠시 천혜린을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밖에서 기다리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자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하여 직접 온 것이리라.
담천이 천천히 걸어가 대문을 열어 주었다.
“대체 왜 이리 오래 걸린……”
눈꼬리를 치켜올린 채 목소리를 높이던 천혜린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해륜을 쏘아보았다.
“저분은 누구시죠?”
느닷없는 천혜린의 반응에 담천이 의아한 표정으로 해륜을 쳐다봤다.
“아, 일행이 있으셨군요. 저는 전진교의 도사 해륜이라고 합니다. 근처를 지나다가 갑자기 사기가 느껴져 달려와 보니 이미 담 공자가 요마를 처리하셨더군요.”
해륜이 포권을 하며 청량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진교 도사이신 게 분명한가요?”
“마, 맞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마치 심문이라도 하듯 천혜린이 날카로운 어조로 묻자 해륜이 당황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그는 혹여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가 싶어 담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담천 역시 천혜린이 왜 이리 해륜을 경계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만! 잘생긴 도사!’
그때, 담천의 머릿속에 소소와의 일이 떠올랐다.
명륜안을 막아 낸 부적을 만든 도사가 무척 잘생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소소가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지 않았던가.
대부분의 도사들은 산속이나 한적한 곳에서 혼자 수행을 하기에 세상으로 나온 도사들은 좀체로 보기 힘들뿐더러, 잘생긴 젊은 도사는 더더욱 희귀한 존재였다.
그런 만큼 소소가 만난 도사가 해륜일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제야 천혜린의 태도를 이해한 담천이 해륜을 자세히 살폈다.
좀 덜렁거리는 것 외에는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 자였다.
“하하하……. 제가 무슨 실수라도…….”
담천까지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자 해륜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잠시 누구랑 착각했던 모양이군요.”
말을 마친 천혜린의 시선이 이번에는 소현을 향했다.
“다친 데는 없나요?”
갑작스런 천혜린의 등장에 멀뚱히 서 있던 소현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담 공자 덕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저는 담 공자의 정혼녀인 천혜린이라 합니다. 혹시 왜 저자가 소저를 공격한 것인지 말해 주실 수 있나요?”
마귀의 권속이 양소현을 공격했다면, 분명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또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마귀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듯했다.
아까의 공포스러웠던 상황이 다시 떠오른 듯 잠시 몸을 떤 양소현이 입을 열었다.
“저자는 지강현의 관리 중 하나예요. 새로 부임한 지현이 데리고 온 인물인데, 저자의 말로는 제가 아버지 일로 현청에서 소란을 피운 것 때문에 나를 죽이러 왔다고 했어요.”
“아버지 일이라면?”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해륜이 끼어들었다.
“저희 아버지께선 이곳 현청의 주부로 계시던 분이에요. 한데 새로 부임한 지현, 곽진이 저희 아버지를 죽였지요.”
새삼 억울함이 치밀어 오른 듯 양소현이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현청에서 공표한 내용은 아버지가 곽진을 죽이려다 도리어 목숨을 잃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말도 안 돼요. 아버지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해코지를 하실 분이 아니에요. 현청에 함께 근무하던 모든 분들에게 물어보세요. 저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도 사실은 지현과 관리들의 말을 믿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지현에게 죽임을 당한 관리가 비단 저희 아버지만은 아니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넷이 죽고, 둘은 파직되었어요. 그들의 빈자리는 언제나 지현이 데리고 온 자들로 채워졌지요!”
말을 할수록 감정이 북받치는지 소현의 어조가 높아졌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담천은 생각에 잠겼다.
분명 석연치 않은 일이었다.
여러모로 보아 새로 부임한 지현 곽진이 마귀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곽진이 정말 마귀라면 손쉽게 첫 번째 마귀를 발견한 셈이었다.
“곽진이란 자의 정체가 의심스럽군요. 이런 요마를 거느리고 있다면 분명 사악한 자이거나 인간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담천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한 듯 해륜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고는 슬쩍 천혜린을 쳐다봤다.
‘가만 보니 저 여인은 요마의 시체를 보고도 전혀 동요가 없군.’
보통 여인들이라면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두려워해야 할 상황.
한데 천혜린은 전혀 그런 모습이 없었다.
‘에이, 괜한 의심을…….’
요마를 잡은 담천과 함께 온 여인이라면 무언가 사연이 있겠거니 여기며 해륜은 의심을 접었다.
“일단, 무사하시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곽진이 소저를 노리는 것이 거의 확실한 이상 당분간은 몸을 숨기는 것이 좋겠어요. 어디 갈 데는 있나요?”
그때까지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혜린이 양소현에게 물었다.
담천과 자신은 세가로 돌아가야 했다.
한데 자신들이 떠나고 난 뒤, 또다시 권속들이 쳐들어온다면 양소현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새삼 자신을 처지를 깨닫게 된 듯 양소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소저는 당분간 저와 함께 계시지요. 하면 놈들이 쉽게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해륜이 앞으로 나섰다.
“그게 좋겠군.”
담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륜이 소소에게 부적을 만들어 준 도사라면 권속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것임이 분명했다.
“고, 고맙습니다.”
양소현이 얼굴을 붉히며 해륜에게 감사를 표했다.
해륜과 단둘이 지내야 한다 생각하니 무언가 야릇한 상상이 들었던 것이다.
‘에고, 내가 도사님께 무슨 흉측한 생각이람…….’
양소현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엉뚱한 상상을 떨쳐 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요.”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듯하자 천혜린이 담천에게 눈짓을 보냈다.
아무래도 해륜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담천이나 자신의 정체를 들킬 수도 있고, 게다가 너무 늦어지면 오늘 내로 세가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해륜과 소현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담천은 묵묵히 돌아서서 천혜린을 따랐다.
* * *
여러 일이 있던 터라 두 사람은 밤 늦게가 되어서야 세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천혜린은 시간이 늦은 관계로 담씨세가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세가에 도착한 담천은 오늘 벌어진 싸움에 대해 전체적으로 복기해 보았다.
마귀의 권속을 처음 만났고, 그 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했다.
만일 무리해서 암혼기를 끌어 올리지 않았다면 당한 쪽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이겼지만, 그야말로 위험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암혼기가 폭주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고, 도경의 힘이 오히려 암혼기의 폭주를 막는 역할을 해 준 것도 운이 좋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오늘처럼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권속은 물론이고,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한 마귀들을 상대해야 하는 담천이기에 지금보다 실력을 더 키울 필요가 있었다.
특히, 무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사실 지금 담천이 검을 쓰는 방법은 힘과 속도만 믿고 무작정 휘두르는 것에 가까웠다.
오늘이야 상대가 담천보다도 무공에 문외한인 놈이었기에 다행이었지만,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만일 상대가 무공을 제대로 익히고 있다면 담천이 패배할 확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무공을 익혀야겠군.’
사실, 초유벽이던 시절에도 무공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삼류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아버지의 강요로 소년기에 몇 가지 기본공을 배웠던 것을 빼고는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담천은 달랐다.
그의 기억 속에는 상당한 무공 지식이 쌓여 있었다.
육신의 주인이었던 원래의 담천이 워낙 무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탓에 기억의 손실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또한 상당 기간 무공을 익혀 육체가 제법 단련되어 있었다.
물론, 원래의 담천이 오성도 그리 뛰어나지 않고 근골도 평범했던 탓에 썩 좋은 신체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나, 자신에게는 암혼기가 있었다.
게다가 초유벽은 싸움을 싫어해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뿐, 오성은 또래에 비해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학문을 배우면서는 스승에게 나름 기재 소리도 듣던 초유벽이다.
그러니 예전의 담천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아니, 담천 정도의 무공만 확보할 수 있어도 암혼기를 이용하면 상당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담천은 차근차근 기억을 정리해 자신의 방에 있는 무공 서적들을 살폈다.
그중에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분리한 후 두 권의 서적을 추려 냈다.
한 권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풍운십이검이라는 검법이었다.
아무래도 초유벽일 때 익힌 몇 안 되는 기본공 중 하나가 검공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