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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마록 1권 25화


6장 해륜(5)


하지만 담천이 그들의 정기를 흡수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만일 마귀를 잡는 목적이 정기 흡수에 있다면, 나중에 그 힘을 모아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담천이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힘을 사용려는 것이라면 무슨 수를 쓰던 막아야 했다.
“혹시 힘을 모으기 위해 마귀들을 잡는 것이오?”
“아까 그것을 말하는가 보군. 힘을 흡수하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일이오. 혹시 내가 그 힘으로 강호 정복이라도 할까 봐 그러는 것이오? 그거라면 걱정할 것 없소. 나는 강호나 무림 따위엔 한 톨의 관심도 없으니.”
담천의 비꼬는 말투에 해륜의 눈썹이 치켜올라 갔다.
“물론, 지금까지는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당신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소. 그 이상한 힘도 그렇거니와, 마귀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은 요마들이나 하는 짓이오!”
잠시 말을 멈추고 담천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해륜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서 당분간 당신과 함께하며 지켜볼 것이오. 나도 한 가지 밝히자면, 우리 사문은 대대로 마귀를 잡는 사명을 띠고 있소. 어차피 그대나 나나 목적이 같으니, 힘을 합하는 것도 좋겠지.”
그 말에 담천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이봐, 애송이 도사.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이런 식으로 자꾸 내 일을 방해하려 한다면, 아무리 그대가 날 구해 줬다 해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거야. 나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것은 그대가 아닌 누구라도 막을 수 없는 일이야. 만일, 그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대는 물론 그 누구든 진정한 악귀를 보게 될 거야!”
해륜은 담천이 뿜어내는 숨 막힐 듯한 살기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대가 진정 숨길 것이 없다면 나와의 동행을 거부할 이유가 없지 않소! 내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도 있는 것이오! 게다가 그대에게도 내가 도움이 되면 됐지, 방해가 되진 않을 것이오. 오늘도 내가 부적을 날려 도왔기에 그대가 놈들을 쉽게 해치우지 않았소?”
담천이 말없이 해륜을 노려보았다.
사실 정체를 노출시킬 위험만 없다면 해륜은 담천에게 큰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해륜의 제마부와 담천의 능력이 합쳐진다면 권속들 두셋은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륜이 담천을 의심하고 있고, 담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것이다.
정체가 드러나게 되면 복수는 끝이었다.
담천이 차가운 얼굴로 천령검을 뽑아 해륜의 목에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죽고 싶지 않으면 더 이상 내 일에 상관하지 마라!”
“나, 나도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나는 지금 부탁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만일, 내 제안을 거부한다면 나는 당신의 정체를 사람들에게 밝힐 것이오!”
순간, 담천의 온몸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감히!”
“왜! 죽이기라도 할 것이오? 마음대로 해 보시오! 난 절대 물러설 수 없소!”
담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슴속에서 살심이 가득 일었다.
당장에 해륜을 죽여 버리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륜을 이 자리에서 죽여 버려야 했다.
하지만 선뜻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복수를 위해서라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해륜을 죽인다면 자신이 진대치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게다가 그에게 도움까지 받지 않았던가.
“젠장!”
결국 담천은 칼을 거두고 해륜을 노려보았다.
“잘 생각했소. 절대 그대에게 손해가 가지는 않을 것이오. 정 꺼림칙하면 그냥 내가 없다고 생각하시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해륜이 담천에게 말했다.
“흥!”
코웃음을 날린 담천이 혼자 세가로 향하자 해륜이 재빨리 그 뒤를 따랐다.

* * *

담천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후 머리를 부여잡았다.
‘귀찮은 도사를 어떻게 떨구지…….’
계속 혹을 달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죽일 수 없다면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 했다.
마귀를 잡는 일이야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진대치를 잡는 데는 방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흥, 어차피 따돌리면 될 일!’
암혼기를 두른 담천의 속도를 해륜이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음먹고 따돌린다면 해륜도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해륜과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담천의 정체에 대해 밝힌다고 한 것인데, 마귀를 잡을 때에 한해서 동행을 허락한다면 해륜도 담천이 자신의 제안에 따른다 여길 것이다.
어차피 해륜이 담천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해륜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진대치의 일을 처리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젠장,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거지?’
자신이 왜 이런 번거롭고 성가신 걱정을 해야 하는지 짜증이 일었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더 아파 오자 담천은 해륜에 대한 일은 일단 젖혀 두고 오늘 싸움에 대해 떠올렸다.
‘확실히 무공을 익힌 게 효과가 있었어.’
단지 초식 몇 개와 보법만 익혔을 뿐인데, 전에는 간신히 상대했던 권속들이 너무도 쉽게 제압되었다.
특히 비설형의 효과는 탁월했다.
놈들의 무식한 공격은 담천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했다.
물론, 해륜의 도움이 있었기에 더 쉽게 처리할 수 있었음은 사실이다.
‘해륜의 도움이 있으면 마귀를 잡는 것이 몇 배로 쉬워진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어차피 함께 다니는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이용해 주지.’
해륜이 스스로 택한 길이다.
그에 따른 결과는 결국 해륜이 감당해야 할 몫.
‘나를 따르기로 한 것을 후회하도록 해 주지!’
담천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 * *

치이이익!
“끄으으…….”
진가의 지하 석실에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네놈이 자객을 보낸 것이냐?”
진대치가 본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사내의 가슴에 인두를 들이대며 물었다.
“이…… 개 같은 새끼…… 내 아내를 겁간하고 죽이고도 아직 더 날 괴롭힐 게 남았단 말이냐……. 크윽!”
거의 감기다시피 내려앉은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사내가 절규했다.
“크크크, 네 계집이 날 먼저 유혹해서 잠시 놀아 주었거늘, 어찌 갈보 같은 네 계집년을 원망하지 않고 아무 잘못도 없는 내게 뭐라는 것이냐! 그리고 내가 언제 그년을 죽였더냐? 제 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내 잘못이란 말이냐?”
“이익!”
사내가 이를 악문 채 진대치를 노려보았다.
“그년에 내 아래 깔려서 콧소리를 내는 꼴을 보았다면 네놈도 결코 나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나 찰싹 달라붙든지. 큭큭큭.”
“이, 이 천하에…… 악적 놈! 네놈은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놈! 하늘이 반드시 내놈의 더러운 목숨을 거두어 갈 것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거의 죽어 가던 사내가 피를 토해 내며 절규했다.
그 모습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져 진대치가 움찔했다.
천벌이라는 말이 어쩐지 그의 뇌리에 불길한 느낌을 심어 준 것이다.
“이런 주제도 모르는 새끼!”
잠시나마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에 진대치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옆에 있던 쇠몽둥이를 집어 들었다.
“흥, 내가 네놈에게 천벌이 무엇인지 알려 주마! 하늘? 내가 곧 네놈의 하늘이고 저승사자이니라!”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버러지 새끼! 감히 나 진대치에게 천벌을 논해!”
퍽! 퍼억!
진대치는 광기에 젖은 채 몽둥이를 정신 없이 휘둘렀다.
피가 튀어 올라 진대치의 온몸이 붉게 물들었다.
사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퍼억, 퍽!
“헉, 헉!”
한참 뒤에야 제풀에 지쳤음인지 진대치가 몽둥이질을 멈췄다.
하지만 사내는 이미 잘 다져진 고깃덩이마냥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바닥에 엎어진 채 몇 번 경련을 일으키던 사내의 육신이 움직임을 멈췄다.
“퉤! 장강에 내다 버리거라!”
사내의 시신에 가래침을 뱉은 진대치가 수하들에게 명했다.
“다음은 포목점 박가 놈인가?”
뱀 같은 눈동자를 굴리며 진대치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소공자님!”
그때, 석실 문이 열리며 무사 하나가 들어섰다.
무사는 열다섯 정도로 보이는 소년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무척 상기된 표정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해낸 듯한 모습이었다.
“그놈은 뭐냐?”
진대치가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 묻자 무사가 몸을 떨었다.
“시, 실은 이 아이가 아무래도 암살자를 본 듯합니다.”
“뭣이!”
진대치의 눈이 빛났다.
“상세히 말해 보거라!”
“공자님께 하나도 빠짐없이 네가 본 것을 말씀드리거라!”
무사의 명에 눈치를 보던 소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장강 변에 있는 호령객잔이란 곳의 점원 아신이라 하온데, 며칠 전 저의 객잔에서 하룻밤 묵은 손님들이 있는데…… 그러니까…… 삼경이 지난 시간이었는데…….”
아신이 두려움에 더듬거리며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 그중 한 명이 완전 피범벅이 되어 그…… 뭣이냐, 두 사람이 거진 질질 끌다시피 해서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그리고 그 사실을 숨겨 달라고 은자까지 쥐어 줬읍죠.”
진대치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놈이 분명했다.
시간대와 부상, 그리고 장강 근처라는 사실까지 모두 들어맞았다.
일행이 있었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패거리가 더 있다는 이야기였다.
“놈의 얼굴은? 봤느냐?”
“그, 그것이, 부상당한 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일행 중 한 사람은 소인이 또,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요.”
“몇 놈이고 어떻게 생긴 자들이냐!”
진대치가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
드디어 놈들의 종적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놈들에게 자신을 노린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똑똑히 알려 줄 것이다.
“그중 한 명이 도사였습니다요! 그 얼굴이 뭐시냐, 송, 송옥? 뭐신가처럼 잘생긴,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잘난 젊은 도사였습니다요, 나리!”
‘도사?’
진대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이 도사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런 만큼 도무지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아니지, 도사가 지나가다 발견하고 그냥 도와준 것일 수도 있어. 둘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 그도 아니면 놈의 친척이나 친인 중에 도사가 있을 수도 있지.’
어쨌든 도사를 찾으면 놈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생긴 젊은 도사가 흔할 리 없었다.
어딜 가도 쉽게 눈에 띌 테고 진대치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너희는 당장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도사 놈을 찾도록 해라! 인상착의를 배포하고 현상금을 걸어라!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놈들을 찾아내라!”
진대치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봉마록』 제2권에서 계속>











봉마록 1권

지은이: 기억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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