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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25화
9장. 검마가 (3)


‘그렇군.’
그리고 그렇게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자 자홍이 단순히 검마전의 풍경을 보고 감탄한 것이 아니란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살수라는 직업상 목표물을 제거하는 것에 일순위를 둔다면 당연 이순위는 그러한 목표물을 제거하고 안전하게 탈출하는 것일 거다.
자홍은 검마전에 들어오는 순간 본능적으로 탈출로를 계산했고, 그 탈출로가 용이치 않자 그대로 감탄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만유정이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어느새 소화방에 도착했다.
“모시고 왔습니다.”
구일기에게 보고했던 흑의인은 만유정이 도착하자 먼저 안으로 들어가 소식을 알렸다.
“신의께서 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죠.”
구자영 역시 만유정이 도착하자 곧 고두모와 자홍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은 환자를 보살피는 공간, 필요한 용건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만유정을 급하게 데려오는 것만 아니었으면 고두모는 몰라도 자홍이 검마전에 들어오는 순간 손님의 자격으로 다른 곳으로 안내했어야 옳았다.
“우선 급한 제 여동생을 잘 부탁해요.”
구자영은 만유정에게 간단하게 말하고는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어디가요.”
만유정이 이대로 가려는 그녀를 내버려 둘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말에 구자영의 가던 걸음이 잠시 멈추고 만유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리 와요.”
“예?”
순간 그녀는 만유정의 말에 무슨 소린가 하며 고개를 돌리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당황한 음성을 내뱉었다.
그러나 만유정은 진심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는 상상의 동물이라고 했다. 이 순간 구자영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상상의 가정이 펼쳐졌다.
그리고는 그 상상이 어느 상상으로 도달했을 때 그녀의 얼굴이 살짝 숙여지고 말았다.
그런 구자영이 답답했는지 결국 만유정은 그대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불긋.
그 행동은 그녀의 상상을 더욱 자극했고, 이윽고 싸늘한 그녀의 볼에 한 줄기 열기가 되어 돌아왔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제야 구자영도 이 긴박한 상황에 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는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뭔 생각해요. 소저도 환자인데 이왕 이렇게 된 것 같이 치료해야죠.”
거기에 이어진 만유정의 말에 그녀가 펼친 상상의 나래도 현실로 돌아왔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녀는 만유정의 손길에 따라 소화방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결국 고두모와 자홍만 졸지에 갈 길을 잃어버린 상황.
“옛부터 적당하면 자신감이요. 과하면 자만이라 했거늘. 저놈의 뻔뻔함은 도저히 끝을 알 수 없구나. 그 씹어도 시원치 않을 팽가도 저렇게 뻔뻔하진 않았거늘.”
갈 길을 잃어버린 고두모가 그런 만유정을 바라보며 결국 한마디 했다.
“허. 그게 신의의 매력 아니겠소.”
그 말에 자홍은 그저 웃으면서 고두모의 말에 가볍게 대꾸했다.

소화방 안으로 들어간 만유정이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방 안을 가득 태우고 있는 뜨거운 열기였다.
마치 한여름 해가 쨍쨍 비치는 습한 곳에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곳에 들어온다면 인상을 먼저 찡그릴 것이다.
물론 만유정이야 이런 것에는 익숙한 상태였기에 그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어느새 만유정의 손으로부터 탈출했는지 구자영이 따라서 들어왔다.
“어허. 자네가 개세신의인가?”
구일기는 만유정이 들어오자 기척을 감지하고는 고개를 돌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예. 그렇게 불리우고 있습니다.”
딱 봐도 나 강하오라는 인상을 풀기는 중년인을 만유정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만유정은 구일기를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허. 개세신의가 매우 젊다는 소문은 들었건만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이구만.”
구일기는 만유정의 모습이 청년의 모습이자 놀랍다는 듯 살펴보았다. 그러나 한 줄기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 결코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았다.
즉 그 말은 만유정의 나이가 외형 그대로 매우 젊다는 뜻이었다.
“응? 자영이 너는 뜨거운 건 질색하지 않았더냐. 여긴 어인 일이냐.”
그렇게 잠시 만유정을 살펴보던 구일기는 옆에서 걸어오는 구자영을 보고 말했다. 음한지기를 익힌 그녀에게 이곳은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화방에 잘 오지 않던 그녀였는데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그게. 동생이 걱정돼서요.”
차마 만유정 때문에 끌려왔다고 할 수 없었는지 대충 얼버무리는 그녀였다.
“아아아.”
구일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때마침 병석에 누워 있는 구화영의 신음 소리가 그녀를 구해줬다.
“이런 어서 오게.”
구일기는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느꼈는지 곧 만유정을 향해 말했다. 그러자 그 말에 만유정 역시 구화영을 향해 다가갔다.
“뭐하느냐 빨리 물을 떠오너라. 음기를 살짝 조절하게.”
병석(病席)은 주변 사람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오르는 구화영의 양기를 식히기 위해 얼음물을 퍼붓는 것부터 고운령의 음기주입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마의 잠시만 비켜 보시오.”
그때였다. 구일기가 나타나며 그동안 진료하던 마의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만유정은 마의를 살짝 밀치고는 구화영의 맥을 잡았다.
스으윽.
단지 맥만 잡았을 뿐인데도 만유정의 손으로부터 엄청난 열기가 다가왔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만유정의 내부가 조금씩 타들어 갈 정도였다.
만유정은 곧바로 품에서 불사침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구화영의 손끝을 시작으로 침을 하나씩 꽂아 갔다.
“아니, 지금 뭐하는 짓인가.”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마의 혁무양이 놀란 듯 소리쳤다. 만유정의 정체를 모르는 혁무양이었기에 갑자기 나타나 침을 꽂는 그의 행동에 경악하고 만 것이다.
“지금부터 얼음물 가져오지 마세요. 소저께서도 더 이상 음기 주입하지 마시고요.”
그러나 만유정은 그러한 혁무양의 말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는지 다시 얼음물을 부으려는 시녀들과 옆에서 음기를 주입하는 고운령을 향해 말했다.
“뭣들 하느냐.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을 멈추 거라. 그리고 마의께서도 들어보셨을 것이오. 개세신의라고 제 딸아이가 데리고 온 의원이니 잠시 가만히 지켜봅시다.”
그리고 그런 만유정을 향해 마치 검마가의 가주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란 걸 증명하는 듯 구일기가 재빠르게 도와줬다.
구화영의 몸은 만신창이 그 자체였다. 이미 내부는 화기로 인해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고, 음식이 쌓여도 분해가 되지 않아 온몸의 세포가 죽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구자영이 만유정을 찾아오기 전에 온몸에 털이 급속도로 나기 시작했다고 했음에도 지금 구화영의 몸에는 어떠한 털도 찾아볼 수 없었다.
털도 밑천이 있어야 나는 것이기에 지금 그녀의 내부가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었다.
만유정은 재빨리 침을 하나씩 꽂으면서 우선 구화영의 내부에 있는 화기를 조절시켰다. 이미 내부가 엉망이 되었지만 아직 구화영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어도 최소 죽지는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만유정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혈도에 침이 박혔다. 그 손놀림이 얼마나 현묘하고 정교한지 혁무양은 그대로 경악하고 말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침술이라니. 지금 기문혈(氣門穴)을 자극하면 양기가 코로 나올 텐데. 이럴 수가. 음. 이런 설마 저런 것이 가능하다니. 그렇다면 이리저리 양기가 순환하여 결국 온몸에 분산되는 것인가.”
만유정의 침술은 내공에 대한 이해도에서 나온다. 그런데 만유정의 심법에 대한 이해도는 고금제일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히 똑같은 침술이어도 혁무양과 하늘과 땅 차이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만유정이 하고 있는 일은 전신에 퍼져 있는 화기들을 온몸에 균등 분배하는 일이었다.
즉 화기가 넘치는 부분은 화기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그나마 덜 있는 부분은 다른 곳의 화기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이리저리 화기를 인위적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몰려오는 화기에 늦게 침을 꽂는다거나 아니면 너무 빨리 꽂는다거나 하다가는 순식간에 혈맥이 타들어 가면서 숨을 거둘 수 있는 위험한 침술이었다. 혁무양이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유정의 손이 순식간에 움직이면서 그러한 화기를 온몸에 분배해 나갔다. 그러자 점점 고통스러워하던 구화영의 안색이 조금씩 펴져 갔다.
생명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상반신의 화기가 진정된 결과였다.
구화영의 안색이 살짝 펴지자 걱정하던 가족들의 얼굴에도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유정의 손이 구화영의 다리로 이동했다. 뜨거운 열기에 옷마저 타 버려 알몸의 상태로 된 그녀였지만 너무나 진지한 만유정의 표정에는 어떠한 음심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물론 만유정이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구자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구화영을 바라보다 그런 만유정을 보며 살짝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설마 나도.’
만유정이 설명하길 자신과 동생의 병은 음기와 양기의 차이일 뿐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그 말은 자신 역시 저렇게 알몸으로 전신에 침을 박아야 된다는 말일 수도 있는데 괜한 상상이 그녀의 뇌리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담 어떻게 하지.’
아마 평상시였으면 이런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마도의 여인이었으니 말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마도의 여인답게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런 것 하나 보여 주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원과는 거리가 먼 신강에 근거지를 둔 마교 출신이기에 애초에 그녀가 살던 곳에서는 알몸 한번 보여 줬다고 결혼해야 된다는 문화도 적용되지 않았다.
‘아, 내가 또 왜 이런 걱정을 하지.’
그제야 구자영은 이번에도 자신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머리를 흔들고 말았다.
남녀가 첫눈에 반하는 데는 기지개 한번 펼칠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차마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묘한 부분이었기에 구자영은 이내 자신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에 곧 정신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곧 다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만유정의 불사침이 이윽고 가장 음양이기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회음혈을 향해 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유정은 망설임 없이 회음혈에 불사침을 꽂았다. 가장 어려운 회음혈이었지만 만유정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러자 회음혈에 있던 수많은 양기들이 사방으로 이리저리 퍼져 갔다.
그렇게 마지막 침술이 끝나자 만유정은 조용히 구화영의 코로 손을 가져갔다.
“하아. 하아.”
비록 여전히 온몸에 양기가 들끓고 있었지만 애초에 양강지력을 익혀서 그런지 제법 안정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진정은 시킨 것 같네요.”
그러한 안정된 숨소리를 느끼자 만유정이 구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내 보니깐 양기를 온몸에 정확히 균등 분배한 것 같은데 맞는가?”
구일기가 의술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해도 그렇다고 내공에 대한 전반적인 이치를 모르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즉 만유정이 행한 일련의 과정을 이미 다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억눌렀을 뿐이에요. 태극의 균형을 맞추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러한 구일기의 말에 만유정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떤가. 딸아이를 치료할 수 있겠는가.”
구일기도 방금 전 만유정이 행한 침술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었기에 어느새 그의 어투에는 제법 신뢰가 가득 차 있었다.
“예. 한 사 일 정도면 완벽하게 치료가 될 것 같습니다만.”
구일기의 물음에 대답하던 만유정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말해 보게.”
그 의도를 노련한 구일기가 모를 리 없었는지 만유정에게 말을 재촉했다.
“무료 진료는 잘 안 하거든요.”
역시나 만유정으로부터 대가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 어떤 대가를 원하는가.”
구일기 역시 무료로 받을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이렇게 요구하는 만유정이 달가운 것만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구일기의 음성이 살짝 가라앉았다.
“치료가 끝난 후 제가 원하는 세 가지 부탁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아 물론 곤란한 부탁은 절대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요.”
물론 만유정은 그런 구일기의 내심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니, 설령 신경 쓴다고 해도 자신이 앞으로 해줄 치료의 대가를 생각한다면, 저 세 가지 요구도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는 만유정이었다. 즉 만유정 입장에서는 나름 인심 쓴 것이다.


불사문 2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