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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문 1권 24화
9장. 검마가 (2)


“……!”
아마 어느 누구여도 그러한 움직임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다.
영심안이 출수와 동시에 엄청난 신호로 만유정에게 위험을 알려 왔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은 저 움직임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려 왔다. 그야말로 황당하면서도 절체절명의 순간!!
“대충 알았으면 바쁜 일행이니 얼른 보내 주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때마침 불같은 고두모가 미지근한 수우강의 태도에 분노했는지 그대로 소리쳤다. 그리고 동시에 수우강의 손이 순식간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영심안에 느껴졌다.
그것은 아주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에 있던 어느 누구도 수우강이 출수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 말은 좋게 말하면 영심안이 그만큼 예민한 감각이라는 말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수우강의 무공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단한 한 수였다.
“이 늙은이가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치느냐!”
결국 수우강은 갑자기 날아온 고두모의 말에 만유정에 대한 생각을 접고는 본능적으로 역시 고두모를 향해 소리쳤다.
“네놈이 아무리 내성을 지키는 수문장이라 해도 검마가(劍魔家)의 손님이거늘 왜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것이냐.”
그러나 그 말에 질 고두모가 아니었다. 오히려 고두모의 목소리도 더욱 커지면서 수우강을 향해 날아갔다.
“…….”
그 기세가 대단했음인가 갑자기 수우강의 몸이 그대로 멈추었다. 얼핏 듣기에는 정말 분노에 가득 찬 말, 그러나 그 속에 마치 자신의 행동을 눈치챘다는 듯한 억양과 의도를 눈치 빠른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이다.
절정 고수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이 천하제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래도 십사대 고수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상대는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그래서인가 강호에서는 이 절정 고수들 간의 기세 싸움이 대단했고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수우강이 손을 뻗어 만유정의 가슴을 뒤지려는 순간 고두모의 분노에 가득 찬 말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즉 수우강의 출수를 눈치챈 사람은 만유정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고두모의 존재를 무시하고 먼저 출수한 수우강은 일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출수했다는 것은 상대에게 명분을 준다는 것이고, 그 명분을 줬기에 기세 싸움에서 고두모가 승리한 것이다.
“누구신가 했더니 한음마녀 고두모였군.”
수우강은 잠시 고두모를 노려보았다. 수문장답게 강호의 상식도 풍부한 그였다. 그런 그가 고두모를 몰라볼 리 없었다.
“알았으면 헛소리 하지 말고 얼른 비켜서라.”
고두모 역시 수우강이 노려보자 같이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맞받아쳤다.
그 순간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듯 둘 사이의 분위기가 급속도록 냉각됐다. 그러더니 어느새 둘 사이에 한 줄기의 선이 그어졌다.
그러나 그 선은 결코 눈에 보이는 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두 절정 고수가 만들어 낸 기세의 선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의 선이 의미하는 것은 딱 하나. 지금 내가 이 경로를 통해 너에게 다가가 목을 베어 버리겠으니 너는 어떻게 대응하겠냐라는 무언의 협박이었다.
맨 처음 선을 그은 사람은 수우강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고두모 역시 선을 그었다. 이제 그 선을 실천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일만 남았다.
“좋다. 통과시켜라.”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수우강이 기세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수우강과 고두모 사이에 있던 질식할 듯한 기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심지어 주변에 있던 문지기들은 그 둘이 서로 기세를 끌어올려 대치했는지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수우강은 만유정을 향해 잠시 시선을 돌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문을 빠져나갔다.

통과 명령이 떨어지자 만유정 일행은 내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성 안으로 들어가는 만유정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유정의 영심안과 판단력은 방금 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제야 만유정은 무공이나 배우자고 왔던 이곳이 자신에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금 전 그 순간은 암계(暗計)와 귀계(鬼計)가 난무하는 강호의 한 단면을 짤막하게나마 느끼게 해 준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보았던 고두모가 단순히 성질만 급한 노파가 아니라 실은 강호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한 노 강호인이라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만유정은 내성 안으로 들어오자 결국 고두모를 향해 감사의 인사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본녀의 위대함을 알고 떠들어 봤자 이미 늦었다.”
물론 고두모로부터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뭐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죠.”
당연 그러한 고두모의 말에 만유정 역시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조용히 쫓아오기나 해라.”
그러나 아주 변화는 없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방금 전 만유정의 말로 어느새 둘 사이에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사라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류를 구자영도 느꼈는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그 이유를 그녀 스스로도 잘 몰랐지만 그렇게 만유정 일행은 검마전으로 향했다.

마도맹이 설립됐지만 그렇다고 마교가 통째로 옮겨 온 것은 아니었다. 그 말은 검마가 역시 그대로 천산산맥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마냥 그렇다고 마도맹이 건설되었는데 천산산맥 깊숙한 곳에 처박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마도맹에 분타 형식의 장소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곳이 바로 검마전(劍魔戰)이었다.
맹에서 무사를 지원해 주는 것이 아닌 검마가에서 자체적으로 기른 무사들을 배치한 곳이었지만, 그럼에도 검마전은 항시 검술 수련에 여념이 없는 무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항시 이곳에는 무인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 일쑤였다.
또한 당대 검마가의 가주인 구일기도 그러한 무인들의 함성을 들으며 항상 활력을 얻곤 했기에 그 함성은 작금에 와서 검마전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검마전 안에는 아무런 무인의 함성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구일기의 딸 구화영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검마전 안 구화영이 머무르는 소화방(小花房)은 지금 묵직한 침묵과 함께 침울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도저히 방도가 없는 것이오?”
그리고 그러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답답했는지 입을 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역량으로는 도저히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백발이 무성한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정녕 마의도 방도가 없다는 말이오?”
맹에서 가장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는 마의조차 방도가 없다고 하자 구일기는 결국 분노하고 말았다.
“양기가 폭발하면 음기를 주입해서 반대로 균형을 맞추면 될 거 아니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오?”
“후. 죄송합니다.”
하지만 분노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알다시피 지금 양기가 너무 폭발해서 제어하기도 쉽지도 않거니와 또 그만한 음기를 가진 영약도 없는 상태라. 아니, 설령 음기를 가진 영약이 있어도 음양이기는 조화를 이루는 한편 폭발하려는 성질도 있기에 솔직히 제 의술로는 무리입니다.”
구일기는 순간 내기를 끌어올려 자신의 앞에 있는 마의를 쳐 죽이고 싶었지만 그대로 화를 가라앉혔다.
애초에 죽었어야 할 운명인 아이들이었다. 그것을 그나마 이렇게 살게 해 준 것도 다 지금 앞에 있는 마의(魔醫) 혁무양이 있었기 때문인 것을 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
그저 구일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어 가는 구화영이 혼몽한 상태에서 내뱉어 대는 타들어 가는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얼음물을 수시로 나르고 고두모의 정식제자라 할 수 있는 고운령이 끊임없이 음기를 주입했지만 그럼에도 구화영의 발작을 멈추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믿을 건 자영이 뿐인가.”
이제 남은 희망은 개세신의를 찾으러 간다던 구자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말하는 것일 뿐 딱히 개세신의가 와서 고칠 거라고는 내심 기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의 혁무양과 성수신의(聖手神醫) 곽미양은 강호에서도 이대 신의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의원이었기에, 설령 개세신의가 소문처럼 뛰어난 의원이어도 도저히 이건 인간의 영역으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도 이미 초절정을 바라보는 절정의 고수였기에 그러한 기의 불균형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는 구일기였다.
“전주님.”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을 때 구일기 앞으로 흑의인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전음으로 소식을 알렸다. 만유정 일행이 검마전에 당도하자 그 소식을 알리러 온 것이었다.
“정말이냐. 당장 이곳으로 오라고 해라.”
구일기는 그 소식에 흑의인을 향해 명령하고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부인. 자영이가 왔다고 하오.”
그러더니 줄곧 옆에서 조용히 구화영을 지켜보던 자신의 부인인 백아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개세신의라는 사람이 고칠 수 있을까요. 듣기로 돈에 미친 악마 같은 의원이라는데.”
그러나 백아린 역시 별로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애초에 백아린이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잘 알기에 구일기는 그저 아무런 말없이 부인을 바라보았다.
“소문이 맞다면 꼭 고칠 수 있을 것이오.”
“그래야겠죠.”
매사 부정적인 백아린과 다르게 구일기는 항상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구일기가 있기에 마음 놓고 의존할 수 있는 백아린이었다.

내성에 들어오고 얼마 후 만유정 일행은 검마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성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성문에서 검마전까지의 거리가 제법 가까웠다.
만유정은 검마전 안으로 들어오자 조용히 사방을 살펴보았다. 비록 주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만유정의 영심안은 주위에 숨어 있는 고수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곳에 발을 디디는 순간 검마전 내부에 있는 감시의 눈길이 뻗쳐 온 것이다.
“오세요. 신의께서 말씀하신대로 동생이 제법 위급하대요. 바로 소화방으로 안내할게요.”
감시의 눈길이 뻗쳤다는 것은 도착하기 이전에 보고가 들어갔다는 말이었다. 즉 만유정이 도착했을 때 이미 구일기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그래서인가 검마전에 도착하자마자 만유정은 곧바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햐. 과연 명불허전이구나. 내 생애 검마전에 들어올 날이 있을 줄이야.”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이 오게 된 자홍은 이왕 이렇게 된 것 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듯 이리저리 살피기 여념이 없었다.
물론 자홍 역시 살수로서의 기감이 뛰어났기에 주변에 은신해 있는 자들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에 강호를 살아가는 불문율이었다.
만유정 역시 그러한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이미 불사문에 입문한 순간부터 강호에 사실상 발을 디딘 만유정이었지만, 마도맹에 들어오는 순간 그러한 것을 더욱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 만유정이었다.
그래서인가 짧은 순간이었지만 만유정은 이제 이리저리 경공을 펼치면서 움직이는 무사들의 움직임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익숙함을 받아들이자 성문을 통과하기 전 수우강이 했던 행동도 어쩐지 이해가 되었다.
“건물 배치가 오묘하네요.”
그렇기에 만유정도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주변이나 살피면서 검마전을 감상하기 여념이 없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적이 쳐들어올 때를 대비해 수성에 유리한 건물 배치를 한 것이지.”
그리고 그러한 만유정의 말에 고두모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렇겠네요.”
고두모의 말에 그제야 그 오묘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만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이라는 것은 일종의 무형적 압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건물을 세워 놓음으로 이쪽 길로 가라고 강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유정의 뛰어난 감각은 순식간에 그러한 건물로 인해 파생된 길이 마치 한곳으로 모여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연못.’
마치 누군가가 쳐들어오면 토끼몰이를 하듯 쫓기다 저 연못에서 최후를 맞이할 거라 만유정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