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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역전 김철수 1권
1화
Prologue
15년 전.
“아우, 귀여워. 뭘 먹고 이렇게 귀엽니?”
“아주머니, 애가 너무 귀여워요!”
“꺄아악! 귀여워! 한번 안아 봐도 돼요?”
나는 인기 절정이었다.
귀여운 5살 꼬마.
그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 다 귀엽다고 하지만 내 귀여움은 그런‘애가 귀엽네요.’ 수준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여고생이 다들 안아보려고 난리였고, 방송국PD가 정말로 아역배우 해 볼 생각 없냐며 엄마한테 명함을 내미는, 그야말로 귀여움의 극치.
그게 나였다.
“행복했지, 그때는…….”
귀엽다, 귀엽다 소리가 나중엔 질리기까지 했었다. 유치원 꼬마 여자애들까지도 내 볼에 뽀뽀 한번 하려고 싸워 대던 그 절정의 시기. 남자에게 한 번쯤은 온다는 인기 절정의 시기가 아마 그때였던 건가. 슈퍼에 가서 과자를 빤히 보면 아줌마가 공짜로 과자를 주고, 포장마차에서 여고생들을 지그시 바라보면 떡볶이와 어묵, 튀김이 뚝딱 생겼던 그런 시절.
그리고 현재는…….
투둑―
인중에 노란 여드름이 터지며 고름이 거울에 흉하게 달라붙었다.
“으악, 아파―!”
20세, 질풍노도의 시기도 한풀 꺾인 대학교 1학년 남학생.
연애경험, 무. 아는 여자 없음. 썸씽조차 한 번도 없음.
별명.
<여름>
자칫 잘못 들으면 좋아 보일 별명이나 얼굴과 함께 보면 짐작이 가는 별명이다. 내 얼굴은 귤껍질 위에 화산이 분화한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3살 때부터 세력을 넓혀 간 여드름은 내 인기 절정의 화려한 유년시절을 단숨에 무너뜨리고, 여자 없는 인생, 우울한 인생, 여자애들의 혐오스럽다는 눈초리를 독차지하는 최악의 인생을 선사했다.
<여(드)름>
진정한 나의 별명.
“으아아아악! 여드름아, 좀 사라져∼!!!”
나의 비참한 절규와 함께 입가의 여드름이 툭 터지며 핏물과 함께 입술로 흘러든다.
“크악, 퉤엣! 퉤퉤 퉤엣!”
아, 젠장.
Part 1 운수 좋은 날 (1)
내 이름은 김철수.
웬만하면 김 씨, 박 씨, 이 씨인 대한민국에서 김 씨 성을 가졌고, 초등학교 국어책에 등장해 영희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 이름인 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20세 새내기 대학생, 그게 바로 나다. 여기까진 괜찮다. 나름.
“아, 진짜, 또 곪았네.”
투둑―
나의 하루는 여드름을 짜는 걸로 시작된다.
짜면 안 좋다는 건 안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얼굴에 손을 대면 더 망가진다는 걸 모르지는 않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노랗게 곪는 여드름을 보면 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 더러워 보이는 녀석들을 짜지 않으면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너무 더러워 보여서 밖을 나다닐 수가 없다.
“어차피 더러워 보이기는 매한가지인데.”
그래도 외관상 노랗게 곪은 것보다는 짜고 난 것이 낫다는 거다.
드르륵―
무슨 놈의 자취방 화장실이 미닫이인 건지. 혼자 사는 집이라서 다행이지만 잠글 수가 없는 이 미닫이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나는 문을 발로 툭 차며 들어가 따뜻한 물로 세안을 시작했다. 클이니크 안티―블레미쉬 3―스텝 폼 클렌징으로 조심스럽게 세수를 하고 여드름 전용 토너+로션+폼 오일 프리 자외선 차단제―오일 조절용 클렌징 마스크까지 모두 끝낸 나의 피부는…….
“활화산.”
무슨 7, 80년대 락 밴드 이름도 아니고.
“으아아아, 이게 다 무슨 돈지랄이야!!!”
거금을 주고 산 스킨케어 솔루션이고 나발이고 소용이 없다. 학교와 자취방만 오가며 여드름이 더 생길까 봐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10시면 자며, 가방에 세안제와 스킨 토너, 스팟 트리트먼트 젤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관리를 하건만 내 피부는 그 노력을 비웃듯 노란 꽃을 피워 낸다.
“아, 죽어 버릴까.”
지금은 사실 반쯤 포기한 상태라 이런 말을 내뱉기라도 하는 거지, 예전 사춘기 때는 진짜 죽어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지나갈 때마다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하며, 사내 녀석들까지도 웃고 떠들 땐 괜찮다가도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슬쩍 외면하는 모습.
사람들이 보여 주는 저런 반응이 정말 지긋지긋했던 나는 결국 대인기피증까지 생겼고, 지금도 그 증세는 여전하다.
“아, 강의를 또 들어가야 되네. 가기 싫어, 가기 싫어.”
나는 시계를 보고는 다가온 강의 시간으로 인한 무궁한 스트레스를 한 몸에 받으며 괴로워했다. 오늘은 그래도 학기 마지막 날이다. 오늘 시험을 보면 방학이니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위안 삼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나갈 채비란 이러하다. 최대한 눈에 안 띄는 어둡고 칙칙한 의상에 잔뜩 기른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알이 엄청 큰 안경으로 얼굴의 반을 가려 버린다.
어둠의 자식.
나에게 어울리는 표현 중 그나마 멋있는 표현이랄까.
여하튼 나는 그렇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가방을 들쳐 메고 자취방을 나섰다.
쿵―
자취방 철문이 닫히면서 벌써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런 내가 정상적으로 학교를 갈 수 있고, 밖을 나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지경이다. 이미 감정적으로는 은둔형 폐인 뺨치는데 말이다.
‘아, 엄마…….’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신다.
내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는데, 무슨 일을 하다 돌아가셨는지, 어쩌다 돌아가셨는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냥 돌아가셨다는 말뿐. 엄마는 외아들인 나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그리도 고생을 하셨다. 어릴 때는 자주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엄마한테 반항도 하고, 사춘기 때는 정말로 몇 주간 집에 틀어박혀 안 나갔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 때문에 엄마가 수척해지고 힘겨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렇다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은 것도, 사람을 대하는 게 밝아지거나 혐오감 어린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남들 하는 것처럼 학교에 다니고, 대학교에도 다니는 그런 아들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꼬르르륵―
‘아, 배고파.’
학교로 향하는 길, 뱃속에서 울려 퍼지는 고동 소리에 나는 급격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요즘 하루에 한 끼 정도밖에 못 먹고 있는 관계로 몹시 힘겨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물론 엄마는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 주신다. 당신 자신은 못 먹어도 나는 어떻게든 잘 입히고 잘 먹일 분이 우리 엄마니까.
‘안 돼. 화장품 할부가…….’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내 여드름을 치료하기 위한 화장품 값.
할부로 산 비싼 화장품 값을 갚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게다가 화장품은 소모품이다. 한 번 사면 평생 써먹는 게 아니라 쓰면 쓸수록 없어지는 물건이니, 결국 이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 다 때려치워 버려?’
가끔, 어차피 효과도 없는 화장품 계속 찍어 바르면 뭐하나 싶어 다 때려치워 버릴까, 생각을 한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엄마 등골 뽑아서 얼굴에 쳐 바르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나는 엄마가 자신을 위해 만 원 이상 되는 옷이나 신발을 사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시장에서 싼 옷을 사와서,
‘이거 얼마짜리 같아?’
하고 내게 묻곤 하신다. 딱 보기에도 한 5, 6천 원밖에 안 되어 보이는 옷이지만 나는 매번 짐짓 모른 척하며 묻는다.
‘음, 한 삼만 원? 사만 원? 엄마가 어쩐 일로 그렇게 비싸 보이는 옷을 다 샀어?’
그러면 엄마는 쿡쿡거리며 슬쩍 손가락 다섯 개를 펴는 것이다. 내가 오만 원? 하고 물으면 오천 원! 하고 대답하면서 기뻐하는 우리 엄마.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는 이 정도밖에 없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엄마한테 비싸고 예쁜 옷 한 벌이라도 사 드리고 싶지만, 얼굴이 지저분하다고 받아 주는 곳도 없고, 대인기피증 때문에 사람들을 대하는 일도 너무 두렵다. 못난 놈, 지지리 못난 놈.
“아, 오늘따라 자기비하가 쩌는구나. 철수야, 정신 차리고 학교나 가자, 엉?”
나는 우울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강의실로 향했다.
끼익―
“푸하하하하, 뭐? 미친 거 아냐?”
“야, 그 오빠 어디서 만났어?”
“지난번 간호과랑 미팅했을 때 만난 여자애가 문자 보냈어!”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직 1학년이라 시험에 대한 압박이 적은 건가. 물론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무리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 어느 곳에도 나의 무리는 없다.
아웃사이더.
줄여서‘아싸’ 그게 나의 포지션이다. 나는 조용히 강의실 뒤쪽 구석진 자리로 스며들어 엎드려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팔뚝에 이마의 여드름이 터지는 감각과 함께 진득한 고름이 느껴졌지만 참아야 한다.
“쟤 또 자네. 학기 다 끝났는데 나는 쟤 이름도 모른다? 쟤 뭐냐?”
날 말하는 건가?
나한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은 또 오랜만이다. 목소리가 조금 호의적인 것 같기도 하다. 일어나서 말을 걸어 볼까? 아냐, 아냐…… 아냐! 혹시 그래도 남자니,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는데…….
“놔둬, 쟤 오티도 안 오고 해오름식, 개강파티, 과모임 등등 참가하는 데가 없어. 동아리도 안 하고, 강의 끝나면 스르륵 사라지는데, 찾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쟤 얼굴 봤냐?”
“왜? 어떤데?”
“푸하하하, 너 피나투보 화산 알아?”
“왜, 여드름이 많아?”
“아주 괴물이라니까? 그 이토 준지 괴기만화책 보면 여드름 짜는 뚱땡이 있거든?”
“아! 나 그거 인터넷에서 짤방으로 봤어! 우엑, 그 정도라고? 에이, 그건 만화잖아∼”
“진짜라니까? 뭐 뚱땡이는 아니지만.”
살짝 가졌던 기대감은 그대로 수직하강해서 비참함 등급으로 변경되었다. 나는 더욱 깊숙하게 팔로 파고들며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심정을 꾹 눌러 담았다. 아, 죽고 싶다.
“어! 미영이 왔다!”
“미영아, 안녕!”
“과대다, 과대∼!”
“시험공부 많이 했어?”
아이들의 인사말 소리에 나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내 눈앞에 여신의 자태가 드러났다. 긴 웨이브 머리에 백옥 같은 피부, 큰 눈망울에 오뚝 솟은 코, 앵두 같은 입술……. 묘사는 진부하기 짝이 없지만 진짜‘여신’이라는 칭호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우리 과의, 아니 우리 학교의 퀸, 미영이었다.
‘미, 미영이…….’
나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했다.
물론 못 올라갈 나무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걸 어찌하겠는가. 게다가 미영이는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하다. 여자애들은 내가 근처에 있으면 피하기 바쁜데 미영이는 내게 인사도 해 주고 가끔 내가 못 들은 과제도 알려 주며, 과모임에 오라고 권유도 해 준다.
‘천사다…… 아니…… 여신이야…….’
바라만 봐도 행복한 나의 여신.
“캬, 쟤를 보면 우리 과 여자애들이 다 메주덩이로 보인다, 아주 그냥.”
“얼굴도 착하고, 몸매도 착하고, 성격까지 착해! 아, 진짜 확 그냥 고백해 버릴까?”
“아서라, 아서. 쟤 차가 뉴비틀이다.”
뉴비틀은 폭스바겐의 딱정벌레를 닮은 앙증맞은 디자인의 외제차로, 당연히 중형 외제차들보다는 값이 싸지만 스무 살 먹은 여자애가 몰 정도의 차는 아니었다. 여자애들의 로망 같은 차라고 한다.
“와, 엄친딸이 따로 없네. 집에 돈도 많다고?”
“세상에는 저런 사람도 있는데 말이지…….”
미영이를 훔쳐보고 있는 내게 녀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비교당하는 건가. 무리도 아니지. 미영이가 밝은 태양이라면 나는 하수구 깊숙한 곳에 있는 오물 섞인 어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부각시키지 않아도 돼.’
나는 또다시 현실의 갭에 한숨 쉬며 연신 미영이의 모습을 좇았다.
“어머 어머, 저 아싸, 또 너 훔쳐본다.”
여자애들이 내 시선을 눈치챘나 보다. 나는 순간 움츠러들어 스르륵 시선을 아래로 하며 고개를 팔에 파묻었다.
“무슨, 시끄러우니까 깬 거겠지.”
아, 역시 미영이 넌 천사야.
“아니라니까! 너 진짜 밤길 조심해야 돼. 저런 애들이 막 성범죄를…….”
저 기집애를 진짜 그 이토 준지 괴기만화처럼 묶어 놓고 얼굴에 여드름을 짜서 문대 버리고 싶다. 내가 어떻게 저 순결하고 고결하고 기품 있고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 미영이한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에이, 말이 심하다. 진희야,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거야.”
“으이구, 넌 너무 착하다, 착해. 아무튼 조심하라고.”
“걱정 마셔.”
미영이에 비하면 무슨 말라죽은 개미핥기같이 생긴 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구나. 그에 반해 역시 미영이는 말투까지 우아하고 예쁘다.
‘박진희, 넌 진짜 밤길 조심해라.’
나는 으득 이를 갈면서 저 박진희라는 개미핥기 얼굴에 여드름을 짜서 문대는 상상을 해 보았다. 통쾌하기는커녕 속이 안 좋아졌다.
‘아, 짜증 나.’
나는 서둘러 시험지를 채워서 제출하고는 강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오래 머물러 봤자 듣기 싫은 얘기만 들을 게 분명하니 빨리 자취방으로 도망쳐야겠다. 세 시간 뒤에 또 교양 강의가 하나 있지만 집을 제외하곤 내가 쉴 곳은 없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강의실 문을 빠져나갔다.
“철수야! 잠깐만!”
우뚝―
이 목소리는…….
“미, 미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