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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Part 7 습격 (5)
“자자, 이렇게 된 김에 무서운 얘기라도 할까?”
그러면서 영호가 커튼까지 쳐 완전히 컴컴한 환경을 조성해 댔다.
“꺄악! 나 무서운 얘기 진짜 진짜 싫어하는데!”
여자애들은 괜히 무서운 척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영호 근처에서 아양을 떨어 댔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남자애들은 낭패스러운 표정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 여자애들에게 말을 걸으려 애를 쓰고, 민철은 영희를 멍하니 바라보고, 민지는 달라붙는 남자애들의 말을 조곤조곤 들어 주며 새로운 여신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아영은 현태와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었고, 어째서인지 현태는 이질감 없이 애들과 잘 어울리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일행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왜 나만 이렇게 이물질 같은 거지.’
이 흉악한 상황 속에 어떻게 흘러들어야 자신이 정상인처럼 보일까 고민을 하던 태현은 스르륵 빈자리로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
“자, 강태현 표, 공포특집을 시작한다. 이건 실화다.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지.”
음산한 오오라, 참혹한 표정. 일렁이는 촛불 아래 음영 진 태현의 얼굴을 보고 이곳에 모인 많은 인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날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비가 오고, 번개까지 쳐서 전기까지 끊겼던 곤혹스러운 날이었지. 오히려 지금보다 어두웠을 거야.”
꿀꺽.
누군가의 침 삼키는 소리가 고요한 거실로 울려 퍼지고, 태현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무서운 얘기라도 하자며 모인 일행들이 한참 무서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야. 이상하게 한 사람이 비는 거야. 분명 이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야. 어디 갔을까…… 어디 갔을까……?”
태현의 목소리는 얘기의 내용을 넘어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의외로 이야기꾼의 재능이 있는 건가? 지금 이 상황과 결부되면서 다들 묘한 오싹함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어, 어라, 여, 여기 계시던 할아버지 어디 가셨지?”
“하, 할아버지?”
정말로 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태현은 아까 할아버지가 아영이와 얘기하다 어딘가로 가는 걸 이미 봤었다. 다들 눈치 못 채기에 애드립으로 이야기를 지어 봤는데, 다들 동요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무서운 이야기로 점수를 따겠어.’
태현은 포기하지 않는다.
“후후, 오늘도 그때처럼 한 사람이 사라졌군.”
꿀꺽.
여자애들 몇 명은 귀를 막고 떨기까지 하고 있었다. 격렬한 반응이다. 태현은 지금까지 지었던 표정 중 그 어떤 표정보다 음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 사람이 사라진 뒤, 말이야. 나타나지…….”
번쩍―!
쿠쿠쿠쿵!
커튼 너머로 새하얀 백광과 함께 거의 시간 차 없이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천둥소리, 그리고…….
“끼,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어마어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 잉?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이런 열렬한 반응이?”
태현은 자신의 등 너머를 보며, 엄청난 반응을 보이며 기절 직전까지 간 아이들에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으으으으으…….”
희미한 신음 소리, 태현의 얼굴로 드리우는 그림자, 마스크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사내.
“흐, 흐아아아아아악!”
태현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오고,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사내가 중얼거렸다.
“으으, 여기가 어디지…….”
철수였다.
* * *
어느 한적한 산길.
차가 다니기엔 험준해서 등산객이나 다닐 법한 소로에 자그마한 짐승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무리가 엄청난 속도로 펄쩍펄쩍 날아다니듯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청문회라니. 예상 못 했던 바는 아니지만. 쯧.”
잘 보니 그 물체는 짐승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그것도 100살도 넘어 보이는 노인들의 무리. 그들은 철수의 일 때문에 소환되어 청문회에 참석하게 된 운상을 비롯한 장로들이었다.
“후우, 그나저나 영희를 두고 가도 괜찮은 것인가.”
운상의 입에서 걱정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괜찮을 겁니다. 현태를 두고 왔으니까요. 게다가 아영이와 세명이도 있고, 그 밖에 다른 제자들도 숨어서 호위하고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1장로, 박금자가 운상의 옆을 따라 달리며 그를 달래었다.
“후우, 녀석들 무슨 생각으로 우리 전부를 청문회에 소환을 한 거지?”
“그 녀석들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요.‘문’에 대해.”
영희가‘문’이라는 것은 이능자들의 세력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속한 조직에서도 아는 자가 없었다. 오직 장로회와 장로들의 직전제자들만이 그 사실을 알고 영희를 호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들을 전부 소환하면 어쩔 수 없이 영희를 함께 데려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청문회를 통해‘문’에 대한 장로회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동시에‘문’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얕은 속셈이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영희나 세명이라는 녀석은 눈치채지 않았소?”
“아, 그건 제가 아영이에게 지시해 일러두었습니다. 현태도 붙었으니, 오히려 거처에 있는 것보다 안전할 것입니다. 영희도 바다에 가게 돼서 기뻐할 것이고요.”
“쯧쯧, 고얀 것. 할애비 말을 그렇게 안 듣고, 결국 납치까지 생각하다니.”
운상은 지금쯤 철수를 납치해 바다로 향하고 있을 영희를 생각하며 괘씸하단 생각에 빠져들었다. 영희는 자신이 철수를 납치해서 할아버지 몰래 바다를 간다고 생각할 터였으나, 사실 아영의 보고로 이미 예전에 그들의 계획과 이어지는 행적이 전부 공개된 상태였다.
그리고 금자는 그 보고를 이용해 제자인 아영을 통해 자신들이 청문회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혹여나 있을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여 영희를 피신시키는 계획을 세운 터였다.
‘문’에 대한 것은 장로회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노출할 수 없다.
이것은 장로회에서도 절대적인 규칙이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영희를 노출시킬 수는 없기에 이런 위험해 보이는 계획까지 세운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청문회 장소로 영희를 데려갔으면 되었을 일. 하지만 문에 대한 사항은 장로회를 제외한 그 누구라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보를 차단해 왔고, 이능자 세력도, 그들이 속한 조직도 영희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만약 영희를 두고 가는 걸 알게 되면 두 세력 중 어느 곳이든 간에 노괴들의 영역을 잔뜩 뒤집어 놓을 게 분명하다.
“한약방이 지저분해지겠군.”
운상이 살짝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후우, 그래도 영희가 실망하지 않아 잘됐군.”
운상의 얼굴이 한결 개운해 보였다. 영희가 그토록 졸랐는데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해 아쉬워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았던 것이었다. 금자의 계획으로 영희가 원하던 바다에도 가고, 피신에 대한 것도 영희가 알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숨길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괜찮은 계획이었다.
“그래 봤자 비가 올 것 같군요.”
나이가 들면 생기는 초능력인지, 금자는 일기예보도 예상하지 못한 비 소식을 예상하며 묘한 웃음을 보였다.
“비가 오더라도 바다는 바다지 않소.”
오히려 운상으로서는 만족스러웠다. 비가 오면 그 야시시한 비키니인지, 속옷인지를 입고 난리치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운상은 그보다 함께 간 사내 녀석들에게 신경이 쏠렸다.
“그나저나 세명이라고 했었소? 그 현태 녀석의 제자.”
“아, 그렇습니다. 수장.”
세명이라는 녀석은 겉보기에는 차분하고 치밀할 것처럼 보이지만 구멍이 많은 녀석이라 계획에 가담을 시키지 않았다. 겉으로는 가볍고 아양이나 떠는 여자애로 보이지만 과거 정보부 소속으로 1장로를 꼭 닮아서 굉장히 영리하고 지능적인 아영과는 정반대라고 할까. 나름 책임감은 좀 있어서 지금쯤 불안해하며 혼자 마음 졸이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쯧쯧, 그 녀석은 제 스승 젊었을 적과 판박이로군.”
“후후후, 세명이는 그 얘기를 들으면 거품이라도 물겝니다.”
그 말에 운상이 씩 웃으며 영희가 가고 있다는 바다 쪽을 흘깃 바라보았다.
“철수가 깨어날 때가 되었지요?”
“그렇소. 곧 깨어날 거요.”
운상은 아련한 눈으로 영희 일행이 향한 바다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잘 놀다 오너라. 부디 위험한 일이 없어야 할 터. 현태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철수 이 어설픈 녀석아, 영희를 부탁한다.’
운상의 눈동자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가득 어렸다. 그때였다.
“수장, 가까운 곳에 이능자들의 느낌이 옵니다.”
4장로의 말에 운상의 얼굴에 흉험한 기색이 어렸다.
“잘됐군.”
운상의 손에 흉험하기 그지없는 푸른 기운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형철용역 사무실.
“노괴들이 이동을?”
형철용역의 사장 권형철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노괴들의 영역 경계 곳곳에 심어 둔 부하들 중 한 명에게 노괴들 대부분이 어디론가 이동을 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것이었다. 노괴들의 힘이 약해진 것, 이 문제는 이능자뿐만 아니라 노괴들이 속한 세력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런데 노괴들만 이동했나? 무슨 물건 같은 건 없었나?”
―가까이 접근을 했던 것이 아니고, 아주 멀리서 관측했을 뿐이라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가까이 가려고 했던 한 팀은…… 전멸했습니다. 그리고 영역에 한 노괴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팀에 열 명씩 구성을 했으니, 관측에 대한 대가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얻어 온 이 소식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알겠다. 노괴들은 쫓지 말고 영역 주변을 계속 주시해라.”
형철은 그렇게 전화를 끝마쳤다.
“후우―”
어차피 쫓아도 결국 본격적인 적 세력의 영역에 가면, 이번엔 한 팀이 아니라 역추적당해 형철용역이 깡그리 헐릴 것이었다. 더 이상의 추적은 위험했다. 게다가 좀 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가 있었다.
“후후, 들어 본 적이 있지. 경계를 허문다는 그 물건에 대해서.”
경계를 허무는 물건, 포르타.
포르타라고 불리는 물건에 대한 것은 하부에서는 아는 자가 거의 없고 어솔리티 내부에서도 일부만 아는 사실이었으나, 형철은 우연한 기회로 현실계와 자신이 넘어온 이능계와의 경계를 허문다는 어떤 물건에 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소문만 들어 봤을 뿐, 실체에 대해선 알고 있지 못했지만 노괴들이 그것을 지키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노괴들이 이동을 했어.”
물론 노괴들이 포르타를 가지고 이동했을 확률이 높긴 하다. 하지만 그 포르타라는 물건이 가지고 이동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한 노괴가 남은 것만 봐도 무언가 걸리는 게 있다. 형철의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혹시 포르타를 한 노괴가 지키고…… 나머지 노괴들이 이동한 것이라면?”
포르타라는 것이 어떤 장소라면?
이건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만약 그렇다면 한 노괴가 남은 것이 이해가 될지도 모른다. 노괴가 한 명뿐이라고 해도 분명 형철용역 전부가 달려들어도 당해 낼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한 명이라면…….
“어느 정도 정보에 근접할 수 있다.”
정보는 곧 힘이다.
이것은 형철의 지론이었다. 정보를 갖는다는 것, 그것은 곧 힘을 갖는다는 것이다.
“후후후, 노괴들이 내게 힘을 실어 줄 때인가.”
그때였다.
띠리리링―
“음?”
부하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달칵.
“변화가 있나.”
―나, 남은 노괴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뭐라? 장소가 아니었나?
“그, 그게 무슨 소리냐.”
―이, 이상한 사내를 옮기고 있습니다.
사……내?
“사, 사람을 말이냐?”
형철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려 왔다.
―네, 네! 일단의 일행들과 함께 사내를 싣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습니다!
“쪼, 쪼, 쪼, 쫓아라!”
형철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더더욱 심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서, 설마, 양동작전이었나. 주위를 돌리고‘문’을 빼내려는?
“후, 후후후후, 후후, 후후후후후! 무, 문을…… 내, 내가!”
문을 얻는다면, 문을 얻는다면!
“어솔리티의 최상위 계층이 될 수 있다!”
형철의 눈이 야망으로 번들거렸다.
<『인생역전 김철수』 제2권에서 계속>
※이 글 속에 나온 인명, 지명, 단체명은 허구이며 실제와는 연관이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