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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그날 저녁에도 사마우는 바닷가에서의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때와는 달리 마음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오늘 박씨 부인의 통곡과 함께, 사신으로 이름을 날릴 당시의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왠지 박씨 부인의 모습이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마음이, 왠지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찍 수련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사마우는 무심코 방에 들어가려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방 앞에 낯선 신발 두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마우가 다소 의문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내 집을 찾아올 사람이 있었던가?”
순간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방 안의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로 회강현의 촌장과 전굉이었다. 갑작스런 그들의 방문에 사마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방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촌장이 고개를 숙였다.
“무사님의 허락도 없이 주인 없는 방에 들어온 것을 먼저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우선 오전에 있었던 시장에서의 도움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마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별말씀을요, 우연히 벌어진 일일 뿐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런 사마우의 말에 촌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한 움큼의 은자를 내밀었다.
“은인께는 죄송스런 말이지만 그만 이곳을 떠나 주실 수 없겠습니까?”
뜻밖의 촌장의 말에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촌장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들이 비록 양아치라고는 하지만 전굉의 말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상부가 있었다. 그들 역시 상부에 매일 일정한 세금을 바치고 나름대로 일정한 구역을 보장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부 인물들이 바로 진정한 마교의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런 일련의 사태가 상부에 알려지면 당연히 마교 인물들은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이런 사태가 계속해서 빈번하게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차하면 그런 다툼에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아마도 이런 얘기는 모두 전굉을 통해 확인된 것인 듯했다. 세상은 마교 천하, 마교와 관련된 인물과의 분쟁은 그야말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관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이미 관부마저도 마교의 횡포를 견제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애꿎은 화는 하소연할 곳도 없는 일반 백성들의 몫이었다. 그리고 행여나 그런 화를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것 역시 일반 백성들이었다. 이런 촌장의 설명에 사마우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당금의 무림이 마교 천하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결국 제왕성을 비롯한 여타의 세력들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는 뜻이었다.
그가 이곳에 온 지 고작 삼 년, 그사이 세상이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마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촌장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지요.”
사마우가 선뜻 자신의 요구에 응하자 촌장은 연방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장이 곧장 일어나 전굉의 팔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전굉이 그런 촌장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대인께서 어디를 가시건 소인이 모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인이라도 좋고, 노비라도 좋습니다. 부디 대인을 따르게 해 주십시오.”
촌장이 그런 전굉을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놈,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허튼 생각일랑 하지도 말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촌장의 말에 전굉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왕후장상은 씨가 따로 있답니까? 이런 시골구석, 이제는 정말 지긋지긋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사마우를 향해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이 미천한 것을 데려가 주십시오.”
사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전굉과 촌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촌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런 전굉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따라나설 때부터 수상하더라니.”
하지만 곧 어쩔 수 없다는 듯 사마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이놈을 데리고 가 주시겠습니까? 이미 이놈의 아비도 이놈을 붙잡을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허니 이놈의 소원대로 나리께서 데려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마우가 다소 망설이는 표정으로 촌장을 바라보았다. 촌장이 그런 사마우를 간곡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이내 사마우가 그런 촌장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촌장이 홀로 밖으로 나가자 전굉이 눈치를 살피더니 빠르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전굉이 향한 곳은 부엌이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재료들로 서둘러 밥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튿날 사마우는 전굉을 대동한 채 항구로 나갔다. 배를 타고 광동성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이왕 떠나기로 결정한 이상 다시 과거의 행적을 되짚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 광동성의 제왕성이 어떻게 변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촌장이 친절하게도 그들을 위해 배를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사마우가 막 배를 타고 떠나려는 순간 그의 눈에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보였다. 배 위에는 마교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촌장의 예상대로 마교가 실제로 그를 찾아온 것이다.
마중하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일순간 창백해졌다. 사마우가 그런 사람들을 씁쓸한 표정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타고 있던 배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이 그런 사마우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사마우는 지금껏 단전에 착용하고 있던 철면을 천천히 얼굴로 가져갔다. 철면을 쓴 그는 마교의 배가 항구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 백여 명의 마교 인물들이 차례차례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을 안내하는 자들은 바로 이전에 달아났던 십여 명의 장정들이었다.
사마우가 그런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비록 철면을 썼지만 십여 명의 장정들은 단번에 그가 사마우임을 알아보았다. 당시와 똑같은 복장에 똑같은 창을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놈입니다, 저놈.”
마교도 중 일인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나는 마교 서열 삼백 위 위진령이다. 당신이 우리 마교도를 핍박했는가?”
사마우는 대답 대신 가볍게 창을 휘둘렀다. 진혈창이 정확히 상대의 무릎을 가격했다. 위진령은 그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위진령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의 눈으로도 사마우가 어떻게 창을 움직였는지 정확하게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은거고수.”
위진령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그의 뒤를 따르던 백여 명의 마교도들이 흉흉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모여든 마을 사람들과 십여 명의 장정들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사마우가 위진령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본좌는 철마다.”
사마우의 말에 위진령이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마교 말석 위진령이 위대한 철마님을 뵙습니다. 철마 천세.”
그러자 뒤에 선 백여 명의 마교도들이 모두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철마 천세.”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과장된 그들의 반응에 사마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위진령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속하는 도마 헌원풍 님 휘하에 있습니다. 철마님의 말씀을 감히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와 잠깐 동행해 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말로는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확인은 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에 사마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언제부터 마교가 이렇게 일반 백성들마저도 괴롭히게 되었는지 내 헌원풍에게 직접 그 책임을 묻도록 하지.”
위진령이 다소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공손히 사마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자 마교도를 안내했던 십여 명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단지 사마우를 일반 무림인으로 생각했을 뿐이고, 마교에 대항하는 무림인이 있다고 보고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마우가 마교의 일인, 그것도 백마 중 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대륙 곳곳에서는 마교의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일이 허다했다. 그들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물론 이런 그들의 행동을 마교 내에서 묵인해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오늘은 왠지 자신들이 무사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면 사마우가 사실은 철마가 아니라는 것, 그것 하나뿐이었다.
위진령의 안내로 배를 향해 움직이던 사마우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위진령을 안내해 온 십여 명의 장정들을 향해 다가갔다. 갑작스런 사마우의 움직임에 위진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진혈창이 빛을 번쩍였다. 이내 십여 명의 장정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런 그들을 향해 사마우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다시 눈에 띄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거늘.”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뚜벅뚜벅 배를 향해 걸어갔다. 위진령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손히 사마우의 뒤를 따랐다. 그런 위진령의 뒤를 전굉이 헐레벌떡 따라가고 있었다.
잠시 후, 쓰러진 십여 명의 장정 시체를 포함해 마교도들 모두가 배에 오르자 비로소 배가 출항했다. 배에 오른 사마우가 씁쓸한 표정으로 회강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의 신분을 철마라고 밝힌 것은 모두 그들을 위해서였다. 그들의 말처럼 마교의 인물이 돌아왔고, 그런 그들을 데려온 것이 십여 명의 양아치들이라면 자신이 이렇게 제어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삼 년간 정이 많이 들었기 때문일까?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는 사마우의 행동은 과거의 그였다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배는 회강현을 떠나 복건성 라원 지역으로 향했다. 사마우는 배 위에서 누구도 믿지 말라던 담대혁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도마 헌원풍은 분명 담대혁 휘하에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만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만나야 할 인물이었다. 그리고 무림에서 살아가려면 작금의 무림 상황 역시 파악해야만 했다. 그러자면 헌원풍을 만나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마의 등장, 그것이 마교 천하에서 십마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임을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제5화 동창(東廠)


절강성 회강현을 출발한 배는 이튿날 복건성의 라원만에 도착했다. 라원만에서 사마우와 일행은 다시 육로로 복건성의 성도인 복주로 향했다. 그렇게 복건성 북부에 위치한 무이산을 지날 무렵이었다.
무이산은 복건성 북부 승안현에 있는, 낭떠러지 절벽이 연달아 있는 명산이다. 중국 내에서 또 하나의 계림이라고 불리며 험준한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와 계곡이 구불거리며 흐르는 구곡계, 그리고 바위 뒤 그늘에 보일 듯 말 듯한 불교사원이 있으며, 마치 신선이라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수려한 산수화의 세계가 펼쳐진 곳이었다.
사마우는 그런 주변의 산수를 음미하면서 천천히 말을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앞서 길을 안내하던 위진령이 주변을 경계하며 일행을 멈춰 세웠다. 사마우 역시 주변의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말을 멈췄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주변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이내 숲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뜻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적의를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십여 명이 위진령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중 선두에 선 인물이 마상의 사마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동창의 복건 지부장 마평달이 철마님을 뵙습니다.”
철면 속의 사마우가 다소 묘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동창, 그것은 관부(官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가 회강현을 떠나 이곳에 도착한 지는 고작 이틀에 불과했다. 그런데 동창이 그런 그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그 이틀이라는 기간 동안 그의 존재가 동창에 노출되었음을 의미했다.
아무리 동창이라고 하지만 회강현과 같은 시골구석의 상황까지 세세히 파악할 여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결국 마교 내에 동창의 첩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지금 사마우의 일행 내부에 있다는 말이었다.
위진령도 이런 사실을 눈치 챈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마평달을 노려보았다.
“동창의 높으신 분이 이곳까지 어인 행차시오.”
마평달은 그렇게 묻는 위진령을 무시하고 사마우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잠시 담소라도 나눴으면 합니다만.”
자신을 무시하는 마평달의 무례한 태도에 위진령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를 향해 검을 움직였다. 순간 마평달이 가볍게 몸을 움직여 달려드는 위진령의 검을 피했다. 위진령은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위진령의 검은 마평달의 현란한 움직임에 막혀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마평달이 이내 살짝 비웃음을 흘렸다.
“마교가 그 위명만큼 대단하지도 않은 것 같군.”
마평달의 비아냥거림에 적지 않게 분노한 위진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까지의 공격은 단순한 위협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은은한 살기마저 내뿜으면서 검에 혼신의 공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이에 마평달 역시 방심하지 않고 위진령의 검을 피하면서 자신의 검으로 손을 옮겨 갔다.
순간 마상의 사마우가 위진령을 향해 말했다.
“그만.”
그런 사마우의 말에도 불구하고 위진령은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마평달을 공격해 갔다. 마평달은 여유롭게 위진령의 검을 막음과 동시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사마우에게 말했다.
“고작 서열 삼백 위의 인물이 감히 백마의 일인인 철마님의 명을 거스르다니, 마교의 위계가 생각보다 더 엉망이로군. 과연 뒤에 계신 분이 진짜 철마님이 맞기는 한 건지 의심이 갈 정도로군요.”
마평달의 비아냥거림에 사마우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의 몸이 마상에서 사라졌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마평달이 흠칫 놀라며 주변을 확인하는 순간, 어느새 사마우가 그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위진령은 어느새 인상을 찌푸리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사마우가 진혈창으로 위진령의 무릎을 가격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의 창이 마평달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고작 동창의 지부장 따위가 감히 본좌와 독대를 하려는 것인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이 쓰윽 앞으로 움직였다. 마평달이 순간 당황하며 재빨리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마평달은 사마우의 창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사마우의 창이 마평달의 눈 주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마평달의 눈가에 작은 상처가 생겼다. 그 상처는 마치 날카로운 병기가 스치고 지나간 흔적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작은 상처는 창으로 만들어 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결국 창끝에서 뿜어 나온 무형의 기운이 마평달의 눈 주위에 상처를 만들었던 것이다.
마평달이 놀란 표정으로 검을 거두면서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명불허전(名不虛傳), 과연 마교 주축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철마님다운 솜씨로군요. 덕분에 오늘 안계(眼界)를 크게 넓혔습니다.”
사마우는 그런 마평달을 무시하고 무릎 꿇은 위진령을 바라보았다. 위진령이 다소 꺼림칙한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순간 사마우가 그런 위진령의 뺨을 후려쳤다.
“물러나 있으라.”
사마우의 호통에 위진령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힐끔 마평달을 노려보았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씩씩 콧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마우는 그런 위진령과 자신을 바라보는 마평달을 무시한 채 다시 말의 등에 몸을 실었다.
“싸우지 않을 거라면 길을 열어라.”
사마우의 말에 마평달의 표정이 굳었다.
“어찌 감히.”
사마우가 천천히 말을 몰아 마평달의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뒤따르는 마교도들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마평달의 옆을 지나갔다. 그렇게 사마우와 일행이 지나가자 한 마리의 전서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평달이 눈가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마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과연 철마는 철마인가?”

얼마 후 일행은 무이산을 벗어나 복건의 북쪽 성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도마 헌원풍이 직접 나와서 사마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철면을 뒤집어쓴 사마우를 본 헌원풍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무림지존 철마 천세, 도마 헌원풍이 지존을 뵙습니다.”
헌원풍의 인사에 사마우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위진령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전에 마평달을 통해 사마우의 실력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마우가 진짜 철마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위진령이 아는 한 철마는 담대비우였다. 그리고 담대비우는 이미 여든이 훌쩍 넘은 고령이었다. 죽은 십여 명의 장정들의 보고에 따르면 사마우는 기껏해야 이십 대 중후반의 애송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헌원풍이 사마우가 철마임을 인정하자 조금 전 무이산에서의 일들이 다시금 위진령의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감히 철마의 명을 어겼던 것이다.
전란의 와중에 이미 많은 백마들이 죽음을 맞았다. 과거 철마는 서열 사십오 위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있을 서열 조정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삼십 위권 이내에는 위치할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도마 헌원풍의 서열은 백마 서열 삼십이 위에 달해 있었다.
더구나 철마의 위치는 단순한 서열의 문제가 아님을 대부분의 마교도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감히 철마의 명을 거역했다. 그것도 적에게 개망신을 당하면서까지. 그것은 능지처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위진령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정작 사마우는 이미 당시의 일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사마우는 헌원풍의 안내로 복건성 마교 지부로 들어섰다. 복건성 일대는 헌원풍의 관할이었다. 그나마 이곳에는 반마교의 세력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열 삼십이 위에 불과한 헌원풍에게 맡겨졌던 것이다. 헌원풍의 안내로 그의 거처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이미 사마우를 위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사마우가 먼저 자리에 앉자 헌원풍이 그 옆에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자네도 앉게.”
사마우의 말에 비로소 헌원풍이 읍하면서 맞은편 자리를 차지했다.
“다행히도 그동안 무탈하셨군요.”
헌원풍의 말에 사마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풍의 너무나 공손한 태도에 사마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이 있다)라고 했던가? 그 공손함 이면에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사마우의 의심의 눈빛을 읽었음일까? 헌원풍이 먼저 그를 향해 말했다.
“담대혁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철마님을 진정한 정통으로 인정하셨습니다.”
헌원풍은 과거 담대혁의 마지막 모습과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을 사마우에게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