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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사마우는 반야심공의 운용을 끝마치고 다시 철혈심공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단전의 철면이 꿈틀꿈틀 몸 안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다른 때와는 달리 단전에서 적지 않은 고통마저 수반하고 있었다.
설마 주화입마? 하지만 주화입마는 아니었다.
그런 고통 속에서 무언가가 아련히 그의 뇌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꿈처럼 아련한 환상의 공간 속에서 철면을 쓴 인물이 천천히 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철면인의 창 주변으로 흑색의 기운이 은은히 감돌기 시작했다.
철혈지기, 철면인의 창끝에 어리는 기운은 분명 철혈지기였다. 이를 확인하는 순간 사마우는 갑작스레 전신을 엄습하는 고통에 그만 실신해 버렸다.
하지만 이튿날 사마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에서 깨어났다. 이상하게도 몸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개운했다. 그러나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늦잠이라는 건가?’
사마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늦잠이라는 것을 자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자 방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밖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표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사마우의 집을 찾은 것은 오늘 그가 바닷가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행여나 사마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염려되어 이렇게 직접 그의 집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듯 사마우가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사마우는 곧장 바닷가에 나가 바다에 몸을 실었다. 몸에 부딪쳐 오는 파도의 느낌이 이전과는 어딘지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역시 사마우는 철혈심공을 운용하고 있었다.
우문량이 전해 준 철혈지기 덕분에 이미 그의 철혈심공은 칠성에 근접한 상태였다. 철혈심공의 경지가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철면이 꿈틀거리는 느낌은 강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철면이 단전을 후벼 파는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또다시 단전에서 어제의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오는 신호였다. 사마우는 꿈이건 현실이건 어제 보았던 철면인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우는 전신이 점차 몽롱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환상의 세계로 천천히 빠져 들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의 현상은 우연이 아니었다. 환상의 공간 속에서 철면인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오늘은 비교적 맑은 정신으로, 그런 철면인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환상 속의 철면인은 사마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과거에 보았던 철마 담대비우의 모습도 아니었다. 우선 자신은 물론 담대비우와는 체형부터 달랐다. 그리고 환상 속에서 자신은 철면인을 그저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사마우는 담대비우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확인하듯 그를 살폈다. 하지만 철면인은 확실히 담대비우가 아니었다. 분명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어째서 그런 인물이 자신의 꿈에 등장하고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철면인은 마치 보란 듯이 사마우 앞에서 천천히 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점차 빨라졌다. 나중에는 사마우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을 압도하는 듯한 철면인의 기세에 흠칫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대체 저자는 누구인가?’
그의 신분을 알고 싶었지만 환상 속에서는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마우가 할 수 있는 일은 철면인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이 환상이, 꿈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대체 그렇게 며칠을 허비한 것일까? 밤이면 밤마다 철면인은 항상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그 시점은 철혈심공을 운용할 때였다. 이런 현상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사마우는 밤마다 반야심공을 포기하고 그렇게 철혈심공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철면인을 자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철면인의 동작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어느새 환상 속의 사마우는 철면인의 움직임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물론 환상이었다. 하지만 환상이 마치 현실처럼 이토록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항상 마지막 순간에는 참기 힘든 고통이 전신을 압박함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아니 환상 속에서 완전히 혼절하고 말았다.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밖으로 나갈 때마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마우는 다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다시 육 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 보름 동안은 아이들이 항상 걱정스런 모습으로 그의 집을 찾았다. 하지만 점차 늦잠이 습관이 되자 아이들도 더 이상 그의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그가 늦잠을 잔다는 것을 모두 알았고, 그것을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상 아이들이 집으로 찾아오지 않게 되자 사마우는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진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감정도 잠시뿐이었다. 그러나 사마우의 행동에도 다소의 변화는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마우는 아이들을 위해서 바닷가에 과자를 준비하곤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그를 보기 위해 바닷가를 찾았다. 물론 과자를 먹으려는 목적이 더 컸지만, 사마우는 왠지 그런 아이들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회강현에서의 이 년 세월, 사마우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그의 창의 움직임은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단순히 진규의 창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아예 새로운 창법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움직임은 환상 속의 철면인이 그에게 선보였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철면인은 더 이상 사마우의 꿈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철면인의 환상이 나타나지 않자 사마우는 다소 섭섭한 마음까지 들었다. 찬찬히 돌이켜 보건대 철면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의 철혈심공이 구성에 육박할 무렵이었다.
철혈심공은 말 그대로 철혈지기를 증폭, 운용하는 방법이다. 철혈심공이 구성을 넘기자 철혈지기는 몸속에서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야심공으로 쌓인 자신의 본신내공마저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사마우는 이를 통해 몸속의 내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거친 파도와 부딪치며 내공을 운용할 때면, 그 충격과 더불어 철혈지기와 본신진기가 융합하면서 몸 안의 또 다른 천살지기마저도 촉발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점차 그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반응하는 세 개의 상반된 기운 때문에 실제로 몸속이 마치 폭발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소용돌이치던 기운도 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삼 년간 미친 듯이 수련을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이미 일 년 전 소림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원의 세력이 마교의 손에 무너진 것이다.
소림에 숨어 있던 금불마, 그는 다름 아닌 소림사의 장경각 각주였다. 혈마와 마찬가지로 갑작스런 그의 배신으로 소림 역시 무당과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혈마와 금불마를 시작으로 곳곳에서 숨어 있던 십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인들에게 충격을 준 이는 제왕성의 패도 막붕과 사혈문의 사황 기무령이었다. 제왕성의 세력을 규합했던 막붕은 사실 마교 서열 팔 위의 붕마(鵬魔)였다. 그리고 사파 무림 세력을 규합했던 사황 기무령은 마교 서열 육 위의 사마(邪魔)였던 것이다.
제왕성과 사혈문으로 모여들었던 고수들 중 제법 실력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무영지독에 중독되었고, 결국 이렇다 할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왕성과 사혈문이 마교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소림과 제왕성, 사혈문이 무너진 지 일 년, 대륙은 완벽하게 마교의 수중에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대륙이 일통되었음에도 혈난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십마대전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모습을 드러낸 금불마, 사마, 혈마, 붕마, 독마는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천마를 비롯한 십마 중 다섯은 아직 그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또한 일단 이들은 천하를 집어삼키자마자 지금까지 여타 세력을 포용하던 정책을 버리고 비로소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자비한 착취와 살육이 대륙을 휘젓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살육은 자연스럽게 마교에 대한 저항을 유발했고, 오히려 무너져 버린 정사의 인물들이 조금씩 힘을 추스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그날도 사마우는 시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회강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작은 어촌의 시장치고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물건이 그곳으로 유입되었다. 그곳에 작은 항구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이렇게 장이 서는 날이면 주변의 작은 마을 사람들까지 이곳을 찾았다. 장이 서는 날은 바로 작은 어촌에 하나의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었다.
사마우는 언제나 간단한 식료품과 함께 아이들의 과자를 사곤 했다. 특히 식료품은 다소 부족하게 살지라도 아이들의 과자는 빼놓지 않고 넉넉히 샀다. 아이들은 물론 사마우에게도 그것은 이제 적지 않은 낙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날은 유난히 장터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 떠들썩함 속에는 지금까지의 유쾌한 분위기와는 달리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일단의 무리가 장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상인들을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을 협박하는 무리, 그들의 가슴에는 마교를 상징하는 ‘마(魔)’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손가락질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중얼거림이 장터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교의 무리 중 한 명이 손가락질하는 아주머니를 강하게 밀치며 위협하듯 칼을 뽑아 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어부 박씨가 혀를 찼다.
“쯧쯧, 저놈의 새끼는 어부 전씨 아들 아이가? 무산지 뭔지 된다고 뭍으로 가더니만 어디서 저런 애새끼들을 데려와서 행패고, 행패가.”
어부 박씨의 말에 어부 전씨의 아들 전굉이 눈을 부라렸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어디서 감히.”
어부 박씨가 그런 전굉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이 자식 봐라, 내가 네놈 어릴 때 업어 주고 다녔다. 그런데 네가 지금 누구한테 행패고, 행패가.”
이내 전굉이 날카로운 눈으로 어부 박씨를 쏘아보았다. 그런 전굉의 뒤에서 한 사람이 흐뭇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자네의 말처럼 촌 동네 시장치고는 나름 규모가 대단하군.”
그의 말에 전굉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아마 여기가 제일 짭짤한 수입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굉의 말에 공감하듯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에서 우리의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말에 전굉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껄끄러운가?”
그의 말에 전굉이 조금 당황해 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굉이 자신을 나무라던 박씨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아저씨, 제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사십시오. 옛정을 봐서 말로 하는 것이니 괜히 봉변당하지 마시고 저리 비키십시오.”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전굉의 옆에 있던 자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의 일검에 어부 박씨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시장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그들의 만행에 숨을 죽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전굉이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숨죽이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마교 서열 백 위 빙마 유준상이다. 오늘부터 이곳은 우리 마교가 접수한다.”
그 말과 동시에 주위의 물건들을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가 전굉을 바라보며 말했다.
“계속해라. 이쯤 되면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느냐.”
전굉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수입의 일 할을 우리에게 세금으로 바치도록.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모두 이 꼴이 될 것이다.”
전굉이 바닥에 누운 박씨의 시신을 가리켰다. 그런 전굉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죽은 박씨 아저씨는 그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용돈을 쥐어 주기도 하며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던 사람이었다.
가능하면 아저씨를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토록 나서서 말렸건만, 바보 같은 아저씨는 그것도 모르고…… 전굉이 이런 생각으로 웅얼거리자 유준상이 그런 그의 머리를 툭 쳤다.
“빨리 세금부터 거두도록 해라. 질질 짜지 말고.”
유준상의 말에 십여 명의 장정들이 시장을 돌기 시작했다. 때마침 도착한 사마우가 그런 그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이내 사람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마우가 매일 미친 듯이 바닷가에서 창을 휘두르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건장한 십여 명의 청년들이었다. 특히 뭍에서 마교의 소문을 들은 몇몇 사람들은 더욱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마우는 힐끗 돈을 걷는 장정들을 훑어보았다. 그런 사마우의 시선에 반응해, 돈을 걷던 장정들이 갑자기 움찔 움직임을 멈추었다. 순간 유준상이 인상을 찌푸리며 사마우를 찬찬히 살폈다.
창을 들고 있는 자세를 보아하니 나름 무공을 좀 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유준상은 자신의 가슴에 마(魔) 자를 보란 듯이 가슴을 앞으로 쓱 내밀었다.
“이놈, 감히 지금 본교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냐? 본좌는 위대한 마교 백마의 서열 백 위 빙마 유준상이다.”
겁 많은 개가 요란하게 짓는 법이라고 했던가? 자신을 향해 호통 치는 유준상을 향해 사마우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백마가 되었는가?”
사마우가 알기에 빙마는 냉상아였다. 때문에 다소 의문스런 표정으로 유준상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순간 유준상이 놀란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사실 유준상은 빙마가 여자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마치 빙마를 아는 듯 ‘그녀’라고 칭하고 있었다.
혹시나 상대가 빙마와 연관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 있는 인물이 감히 백마와 관련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내친걸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하하하. 빙마가 여자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쳐라.”
그의 명령에 십여 명의 장정들이 창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순간 사마우의 창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상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마우를 덮치던 십여 명의 장정들이 갑자기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동시에 사마우가 유준상을 향해 씨익 비웃음을 흘렸다. 유준상이 흠칫 놀라 주변을 훑어보았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런 촌구석에 이 정도의 고수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쓰러진 이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유준상은 그것을 확인하고 당당히 가슴을 폈다.
상대가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아마도 마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마교의 인물이다. 감히 지금 마교를 적대시하겠다는 뜻인가?”
자신의 말에 사마우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서 있자, 유준상은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그럼 그렇지. 감히 제까짓 것이 중원을 차지한 마교의 이름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천천히 사마우를 향해 다가갔다.
“이쯤에서 물러선다면 내 지금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치도록…….”
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마우의 창이 그 시끄러운 입을 꿰뚫고 있었다. 자칭 빙마 유준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마우를 바라보았다.
“…….”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유준상을 향해 사마우가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사마우의 얼굴에 일순간 잔잔한 살기가 어렸다. 그러자 죽음을 눈앞에 둔 유준상의 얼굴에 새삼 공포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이를 지켜보는 시장의 사람들 역시 갑작스런 사마우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마우가 일순간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고작 이 정도의 흥분에 살기가 일어난단 말인가?’
갑자기 일어나는 살기에 사마우 스스로도 적잖이 놀라야 했다. 이제는 살기를 어느 정도 충분히 자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창이 놈의 입을 꿰뚫자 일순간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왠지 그런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우가 이내 마음을 추스르자 전굉이 당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전굉이 이 마을을 떠난 것은 이 년 전의 일이었다. 마을을 떠나기 전의 그 역시 사마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떠나기 전 몇 번이나 사마우를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나름 그의 동작을 열심히 흉내 내기도 했다.
무인의 꿈을 꾸는 그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골구석에서 창이나 휘두르는 사마우를 그다지 대단한 인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눈앞의 백마가 너무나 쉽게 죽는 모습을 확인하자 사마우의 실력이 자신의 상상 이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유준상은 백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전굉은 그가 백마인 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마우는 전굉과 주변에 쓰러진 십여 명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마교가 대체 얼마나 썩어 있기에 이따위 양아치들까지 마교를 사칭하는가?”
사마우의 중얼거림에 전굉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주변 십여 명의 장정들이 황급히 사마우의 앞으로 다가와 두려운 듯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마교의 전사들이 무릎을 꿇고 비는 광경에 전굉은 더더욱 멍한 표정으로 사마우와 주변을 번갈아 둘러보았다. 사마우가 그런 장정들을 향해 담담하게 말했다.
“썩 이곳을 떠나라. 앞으로 다시 내 눈에 띈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동시에 유준상의 입에 박힌 창을 쓱 뽑았다. 유준상의 입에서 튀어나온 피가 무릎을 꿇고 앉은 장정들의 얼굴로 뿜어져 나갔다. 피를 덮어쓴 그들은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이 애써 몸을 추스르고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사마우가 갑자기 그런 그들을 다시 불러 세웠다.
“잠깐.”
사마우의 부름에 그들이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다른 분부라도…….”
너무나 비굴한 그들의 모습에 사마우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두목의 시체는 가져가야 하지 않겠는가?”
사마우의 말에 그들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직도 버둥거리는 유준상의 시체를 들고 서둘러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굉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런 일련의 상황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사마우가 천천히 시장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선은 박씨 아저씨의 시신을 수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제야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죽은 박씨의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박씨의 부인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를 본 사마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박씨 부인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