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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길 1

1화

프롤로그


2020년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낙산으로 올라가는 높은 터럭에는 몇 걸음 밖의 화려한 번화가와 다르게 오목조목한 낡은 집들이 산비탈을 따라 버티고 서 있었다.
조금만 빠져나가면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지는 거리지만, 한 골목만 비껴 들어오면 바로 앞거리의 소음조차 묻힌 조용한 오르막길이 나온다.
승현은 그 골목의 시멘트로 대충 얽어 놓은 계단에 앉아 줄담배만 피고 있었다.
대충 걸쳐 입은 추리닝 바지에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 정리도 안 한 기름진 머리에 얼굴에 돋아난 성긴 수염이 그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의 나이 서른넷.
반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50만 원 하는 이 낙산 언저리 옥탑방에서 살고 있었다. 그나마도 구할 돈이 없어 삼촌이 어렵사리 마련해 준 방이었다.
수입도 일절 한 푼 없고, 피붙이도 없이 그는 반년째 이곳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모든 세상과 연락을 차단한 그에게는 핸드폰 한 대조차 없었다.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조차 없는 삶. 그저 소주와 담배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끔찍한 삶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벤처 사업가였다. 머리도 좋고, 수완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탁월한 두뇌를 자랑했던 승현은, 세 살에 한글을 떼고,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에는 한자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대학교 시간강사를 다니던 아버지와 7급 공무원인 어머니는 비록 경제적인 여유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공부도 꽤나 하고 생각이 트인 편이었다. 때문에 재능을 보이는 승현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유치원에 들어가서 접한 수학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방정식 문제를 거뜬히 풀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미술이며 음악도 나이에 맞지 않는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또래랑 어울리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승현은 아직 또래에 비해 사회성이 떨어져 초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아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승현의 부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승현을 중학교로 진학시키지 않고 집에서 공부시키기로 했다.
승현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열네 살 겨울에는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2000년도 수능시험은 상위 50%의 평균이 400점 만점에 216점밖에 안 될 정도로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승현은 360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비록 만점에 미치지 못하고, 목표로 했던 서울대에는 들어갈 수 없는 점수였지만 한양대에 당당하게 정시로 입학할 수 있었다. 00학번이 된 승현은 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당연히 나이가 한참 차이 나는 동기들이랑 어울리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오로지 수업과 집을 반복하는 생활이었다. 어머니가 공무원이고, 아버지도 서강대학교 사학과의 전임강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다행히도 IMF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승현은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미시, 거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경제학의 여러 사조와 통계학, 재정학, 회계학, 경제 수학에 걸쳐 계절학기까지 나가며 열심히 수업을 들은 승현은 삼 년 만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쯤 되자 승현은 크게 경제학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승현은 복수전공 제도를 이용해 역사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04년 2월에 졸업을 한 승현은, 이번에 다시 연세대로 학교를 학사편입해 들어가 기계공학과 화학공학을 복수전공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수식과 어려운 전공서적에 둘러싸여 공부하는 동안 승현은 점점 세상과 멀어지고, 연애도 못해 본, 거기에 멋도 부릴 줄 모르는 공부벌레로 성인이 되어 갔다.
친구도 없이 그저 학문적 열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승현은 비록 머리는 좋지만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키는 갈수록 커 184cm가 되었고, 한창 유행하던 왁스칠도 하지 않는, 그냥 귀를 덮도록 마냥 내버려 둔 헤어스타일이었지만, 숨겨진 외모는 발군이었다.
승현은 이번에도 복수전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학사학위 두 개를 따고 06학번으로 서울대 의대에 들어섰다.
같은 87년생 또래들이 막 대학에 들어온 나이였다. 승현은 그들과 다르게 벌써 대학을 세 번이나 다니며 문이과에 걸쳐 5개의 학사학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대 의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처럼 동기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어디 나왔냐는 질문에는 그저 검정고시를 치뤘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동기들은 다들 놀기보다는 죽자 살자 공부를 해 온 타입들이라, 아직 평범한 사회생활을 겪어보지 못한 승현에게도 그렇게 어울리기 힘든 아이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멋 부리는 데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도 있어서, 승현도 조금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확실히 태가 좋은 편이라 승현은 조금 꾸미기 시작하니 돋보였다.
의대 예과를 다니며 부족한 시간을 틈틈이 쪼개 연애도 하고, 08년도에는 행정고시를, 09년도에 변리사 시험, 10년도에는 외무고시를 패스했다.
굳이 그쪽으로 나갈 생각은 없었지만, 남들보다 탁월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우월한 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승현에게는 자만심을 표출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6년간 정상적으로 의대 생활을 하고 국가고시를 패스한 승현은 인턴 생활을 시작했지만 체질에 맞지 않아 전문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로스쿨에 지원해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했다.
그러나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즈음에 승현은 큰일을 치르게 되었다. 정교수 자리를 눈앞에 두고 있던 아버지가 심근경색으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만 것이었다. 그때쯤 어머니도 공무원 생활을 그만둔 상황이라 당장 어머니의 연금으로만 생활을 이어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승현은 돈이 급해지자 그동안 취미로 했던 미술이며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곡을 써서 돈을 모으고, 싸구려 일러스트를 그려서 팔아 댔다.
겨우 로스쿨 등록금을 마련한 승현은 차마 힘들어 하는 어머니를 내버려 두고 공부를 계속하기 찝찝했지만, 13년도에 로스쿨에 들어가 삼 년간 다시 내리 미친 듯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십 년 넘게 대학을 전전하던 승현에게도 처음 밟는 석사과정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어머니가 직장암으로 결국 돌아 가시게 되었다.
이미 감정이 메말라 가고 있었던 승현에게도 그것은 큰 슬픔이었다.
변호사 자격을 따고 나자, 어머니의 바람대로 이제는 공부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가 꿈을 펼쳐 보기로 했다.
승현은 딱히 하고 싶었던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저 이것저것 배우는 게 좋아 계속 공부만 했던 것이다.
그의 화려한 이력은 이미 언론에도 몇 차례 보도됐고, 여러 번 세간에서도 입에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승현은 이번에도 크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의료 소송을 전문적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남은 재산을 탈탈 털어 집을 정리한 뒤 어렵사리 얻은 사무실이었다.
승현은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파리만 날렸지만, 곧 서울대 의대와 서울대 로스쿨의 간판을 단 능력 있는 변호사에게 일이 맡겨지기 시작했다.
곧 운이 좋아 지방 국립 대학병원을 둘러싼 대규모 의료사고에 관련된 의뢰를 맡아, 대법원까지 올라간 1년간의 마라톤 소송에서 결국 원고승소 판결을 얻어 내어 승현은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변호사 사무실의 규모도 커져, 서초동에 3층 빌딩을 전세 내고, 선후배 변호사를 끌어모아 로펌을 만들었다.
야간 과정으로 생물학 석사를 마친 승현은 이내 사람을 규합해 의료기기 회사를 차렸고, 이천에다 공장을 세워 자신이 모은 두뇌들을 규합해 의료용 나노로봇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미 100억 원대에 자산에다가 800억에 가까운 대출을 신용을 담보로 받은 승현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삼 년간은 그는 주목받는 30대 변호사이자 사업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재벌가나 정계에서도 혼담이 들어오고,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성공한 그에게 여러 가지 인터뷰 요청도 수도 없이 들어왔다.
한마디로 이 시대에 성공한 젊은 남성의 표본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왔다. 평소 자기의식이 뚜렷하고,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 않는 그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었다.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남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외적인 조건들이 너무나도 화려해 그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는 것이지, 개인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남들에게 재수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충분했다.
결국 그의 아래에서 무시당하고 일로도 혹사당하던 사시 출신 선배 변호사들이 로펌에 고용된 회계사들과 작당해 이중장부를 작성하고 빼돌린 돈으로 승현 소유의 의료기기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때쯤 승현은 자신의 성공을 주목해 주는 언론과 세상에 둘러싸여 밖으로 다니며 일에 소홀해지기 시작해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노로봇의 개발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었고, 승현이 언론에 부각됨에 따라 의료기기 회사의 주식은 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고점을 찍자, 선배 변호사들은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기 시작했고, 이백억에 가까운 차익을 남겨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떠났다. 이때쯤 세무청에서 회계감사가 들어오고, 이중장부 작성과 주식을 통한 차익실현 등이 문제가 되었다.
이 주식투자는 모두 승현이 전에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두고 의료기기 회사의 지주회사로 설립해 두었던 서류상의 회사의 명의로 전부 이루어졌기 때문에, 책임은 고스란히 승현이 덮어쓰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식은 폭락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의료기기 회사를 세우기 위해 은행에서 빌렸던 800억 중 580억에 달하는 규모의 채무 독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승현은 사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만 회사를 부도처리하고 파산 신청을 내고 말았다.
그가 강남과 분당에 가지고 있었던 120억 원대의 부동산과 외제차 3대, 회사 공장과 부지 전부가 압류처분 되고, 승현은 졸지에 막대한 채무를 가진 신용불량자가 되어 채권추심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결국 어렵사리 연락이 된 삼촌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시내의 구석으로 숨어든 것이었다.
자기 명의로 옥탑방 계약도 체결할 수 없어 사촌 동생의 이름을 빌려다가 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한때 잘나가던 인생이 겨우 나이 서른넷에 이렇게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빠질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생각해 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라면도 이제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고,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가치를 필터까지 빨아 피우고 아쉽게 비비고 나니 이제 정말 자신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염치없어 삼촌에게 더 이상 손을 벌릴 수도 없고, 몇 달을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깎여 나가기 시작한 월세는 이제 겨우 두 달 남았을 뿐이었다.
“아, 씨발. 개 씨발 좆같은 세상.”
그저 욕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차피 이제 더 이상 버티기는 무리였다. 승현은 터벅터벅 옥탑방으로 올라가려던 것을 그만두고 1층 주인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내 파마머리를 한 늙은 주인집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총각 뭔일이야?”
승현은 차마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월세 내기가 힘들 것 같아요. 이번 달 월세까지 보증금에서 빼시고 남은 것 받아서 방 뺄 수 있을까요.”
아주머니의 얼굴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아니, 젊은 총각이 일도 안 하고 매일 뒹굴거리니까 그렇지. 1년 계약하고 들어왔는데 지금 방 빼면 우리도 곤란해.”
“그, 정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올라가 봐요. 어차피 100만 원밖에 안 남았어. 현금으로 줄 테니까 내일 아침 내려와요.”
아주머니는 할 말만 던져 버리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승현은 정말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음 날 80만 원을 받은 승현은 방을 정리했다.
가재도구랄 것도 전혀 없었고, 라면을 끓여 먹을 버너에 양은 냄비, 거기에 옷가지 몇 벌이 전부였다.
낡아 빠진 등산 가방에 주섬주섬 그것들을 챙겨 넣고 승현은 거리로 나왔다. 막상 밖으로 나오니 갈 곳이 막막했다.
“이 돈도 떨어지면 노숙이라도 해야 하나. 휴…….”
지저분한 꼴로 대학로 번화가로 나가기가 부끄러워 승현은 낙산을 뺑 둘러 한성대학교 방향으로 올라갔다.
간간이 지나치는 등산객들은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이내 관심을 끊고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반년 전이면 신문이며 방송에 자주 얼굴을 내비치던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사인을 부탁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제는 그저 허우대 멀쩡한 노숙자이나 다름없지만.
그저 정처 없이 터덜터덜 걷다 결국 들어선 것은 쪽방촌이었다. 승현은 여기 말고는 당분간 답이 없음을 알았다. 더럽고 지저분한 쪽방 골목에 들어선 승현은 그중에서도 제일 허름한 곳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 원으로 방 하나를 얻어 들어서니, 벽지에는 곰팡이가 슬어 있고 바람이 다 밀려들어 오는 방은 겨우 몸 하나 누이면 끝이었다. 소주 몇 병을 깔아 놓고 그냥 말술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어느새 튼튼했던 몸도 이런 생활에 한참을 망가져 있었던지, 이내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현은 또다시 그 고통을 잊으려고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삼촌이 얻어 준 집에서도 말도 없이 나왔으니 아마도 앞으로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승현은 세상에서도 버림받은 천애 고아나 다름없었다. 나이는 한창이었지만, 이미 세상의 성공과 그 바닥을 모두 경험하고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진 승현에게 인생은 이미 나락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가진 능력이라면, 충분히 파산 신청이든 구제를 신청하고 다시 살아 볼 수 있는 여력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이런 패배의 수렁은 도무지 재기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화려한 어제는 이제 추억하면 가슴만 아플 뿐이고, 보이지 않는 내일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나, 생각만 하면 답답하고 헛구역질이 밀려 나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천재 소리를 들으며 학사학위 6개에 석사 2개. 그중에서 둘은 의대와 로스쿨.
남들은 하나 붙기도 힘들다는 행시, 외시, 변리사의 시험을 모두 패스하고 젊은 경영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의 탁월한 두뇌도 지금은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항상 최고로 살아왔던 그에게 이런 가차 없는 실패는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승현을 좌절하게 만들었고, 그에게 미래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승현은 그저 죽지 못해 살아 있을 뿐,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볼 의지조차 지금은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술을 퍼마시다가 방이 차가워지자, 술기운에 라면 끓여 먹던 양은 냄비에 연탄을 올려 불을 붙였다. 취한 상태에서 난방을 한다고 벌인 일이었다. 이내 타닥거리며 연탄이 조금씩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남아 있는 한 병의 소주를 한 번에 들이켜 마신 다음에, 승현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누웠다.
술기운에 눈이 감겨 왔다.
한참을 졸고 있던 승현은 가래 섞인 기침을 콜록대다 의식이 혼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기억을 잃고 있는 동안 꽉 닫힌 밀폐된 쪽방 안에서는 연탄이 타들어 가고, 피어오른 일산화탄소는 조용히 승현의 호흡을 압박해 왔다.

쪽방에 시체 한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키 184cm의 건장한 체격. 호남형 얼굴. 지문 조회 결과 사업 실패 뒤 잠적한 사업가 이승현으로 확인되었다. 사인은 일산화탄소중독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
그의 삼촌이 연락을 받고 찾아와 시체를 거두어 화장 처리하고 양수리로 가져가 뿌렸다. 장례랄 것도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났다.


제1장.
뒷골목의 소년


어떤 항구가 있었다.
대륙의 서남쪽에 바다로 나가는 입구에 땅과 땅 사이로 좁은 만(灣)이 있었고, 그 만 안쪽 끝에 잔잔한 바다와 낮은 언덕들이 만나는 곳에 로쉬엠이라 불리는 바로 그 항구가 자리했다.
아뎀데나펜의 여러 공작들은 그 항구의 이권을 둘러싸고 수십 년에 걸쳐 때로는 무력을 동원한 정쟁을 펼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도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지 못해 그 도시를 공작들의 상호 견제 아래에 자치도시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도시를 둘러싼 외부의 권력 다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아뎀데나펜 최고의 항구로 그 명성을 드날렸다.
이곳은 대륙 서남쪽에서 바다로 나가는 외해무역(外海貿易)에서 근방 여러 나라의 걸친 물품이 들고 나가는 최고의 상업 도시였고, 델바팀 군도와 제게쉬헴 섬 사이의 은룡해(銀龍海)를 오가는 상선들과 어선들의 최종 집결지였다.
최근에는 더 먼 바다로 나가 보려는 탐험가들이 모험심 가득한 아쉘반넬의 공작 이디쉴 3세의 후원을 입고 원양을 항해하는 배를 이곳 로쉬엠에서 조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아뎀데나펜 최고의 부를 거머쥔 상인들과 먼 바다를 누비는 탐험가들, 그리고 대륙 최고의 조선 기술을 보유한 건선업자들이 사는 이곳 로쉬엠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부분이 존재했다.
많은 사람들로 번잡하고 탑과 화려한 건물들이 늘어선 항구와 운하 지구를 지나 성곽 쪽으로 나가는 곳의 보발 언덕 너머로 들어서면,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작다란 집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로쉬엠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이들은 도시의 빨랫감을 맡아 오거나, 똥물을 퍼고, 가축을 도살하고, 운하를 청소하는 따위의 남들이 기피하는 일들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져 나오면 운하 지구 끄트머리와 마주한 곳에 거대한 싸구려 사창굴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고리대금업자들이 사는 시장 골목이 나오는 그야말로 로쉬엠의 일반 시민들조차 꺼리는 격리 구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