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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포지션 1
1화
프롤로그 성산(聖山) 카일라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고원!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000미터에 이르는 고봉들이 즐비한 천혜의 험지지만 천산고봉을 정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전문 산악인들로 인해 동네 뒷동산마냥 몸살 아닌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바로 히말라야의 고원들이다.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처럼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한 정복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쉽게 속살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바로 히말라야다.
사실 현대에 들어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체가 많이 밝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곳이 많은 곳이다.
8,000미터 급 고봉들이 지금도 추가로 발견되고 있으면서도 그 내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이유는 딱 하나다.
만년설이 정상을 지배하는 히말라야는 웅장한 자태 뒤에 숨겨진 천험의 지형과 자연의 변화무쌍함으로 인해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그 한계가 있기에 히말라야는 지금도 전입미답의 철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인간 한계의 상징으로서의 명성은 여전할 뿐 아니라 경외심을 품게 하는 존재로 히말라야는 현대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
때문에 예로부터 히말라야는 신들이 잠들어 있는 대지라 불리는 곳이다.
품 안에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채 태고 이래로부터 존재해 오고 있는 까닭이다.
히말라야라는 태고의 품 안에는 성산(聖山)이라 불리는 카일라스(Kailash)가 있다.
달리 강림포체봉이라 불리는 카일라스는 히말라야의 험준 고봉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8,000미터 급 고봉이 즐비한 히말라야에서 높이라고 해봐야 6,714미터인 카일라스는 그저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연꽃을 닮기도 했고, 코끼리를 닮은 모습을 간직한 히말라야 최고의 비경인 카일라스다.
덕분에 불교와 힌두교를 믿는 티베트와 인도인들에게 있어 카일라스는 최고의 성지인 곳이다.
카일라스로 가기 위한 입구에는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다. 마나사로바와 라카스탈 호수가 바로 그것이다.
마나사로바는 둥근 태양의 모습으로 빛(陽)의 힘을 대표해 왔고, 라카스탈은 초승달 모양으로 어둠(陰)의 힘을 대표한다고 여겨져 왔다.
카일라스를 오체투지의 예배법으로 자벌레가 기어가듯 한 바퀴를 돌며 순례하면 금생의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세 번을 순례하면 삼생의 죄가, 백팔 번을 순례하면 일체 업장이 소멸되어 성불한다고 믿는 성산인 것이다.
때문에 인도와 티베트인들의 오랜 조상들이 살았던 시절부터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져 왔고 덕분에 수메루(Sumeru), 즉 수미산이라고 불렸다.
1장 카일라스에서 생긴 일
우르르르릉!
카일라스에서 지금 대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콰르르르!
폭포의 흰 포말처럼 엄청난 규모의 눈덩이가 지상을 향해 낙하를 하고 있었다.
우르릉!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겨우내 쌓였던 눈들이 낙하를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속에 숨어 언제나 녹지 않을 것 같은 만년빙들이 충격으로 인해 떨어져 내리며 뇌성을 토했다.
눈사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쾅!
비산하는 눈보라 사이로 커다란 만년빙이 산 중턱을 강타하자 산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콰―콰콰쾅!
산의 중턱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의 육중한 몸체가 아래로 떨어지며 걸리는 모든 것을 부셔 버렸다.
자연의 힘은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계속적인 충격에 암석들이 잔해로 흩어지고 암벽에 덧칠해진 눈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새하얀 눈보라로 바람에 날려 허공을 배회했다.
“하아! 대단하구나. 이런 장관이라니!”
눈사태가 일어난 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장관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모포를 여러 겹 두른 것 같은 낡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카일라스를 찾는 순례자와 같이 꾀죄죄한 모습이다. 순례자들이 산 밑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정상과 가까운 절벽에서 눈사태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넋을 잃고 있었다.
“거참! 시원하게도 쏟아지는구나.”
수천 척의 절벽 위에서 눈과 만년빙들이 산을 깎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신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만년빙 위에 쌓인 눈만 흘러내린다면 몰라도 만년빙은 물론 산중턱까지 깎아낼 정도로 무너지다니 모를 일이로다. 대체 어떤 것이 영향을 주었기에…….”
강력한 진동도 없었는데 일어난 일이라 그의 소리에 의혹이 일었다.
보통 눈사태는 쌓인 눈의 거죽만 떨어져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쓸데없는 고민이로군. 쯧! 쯧!”
특별한 원인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영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끌탕을 쳤다.
자신이 찾고 있는 새로운 영기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한 모두가 쓸데없는 호기심일 뿐인 까닭이다.
“그래도 그 녀석에게 이런 장관을 이야기해 주면 좋아할 테니 눈에 더 담아두도록 하자.”
찾아야 할 것이 있기에 의문은 접었지만 일생을 두고 보기 힘든 장관이었기에 인영은 시선은 떼지 않았다.
자신이 본 것을 손자에게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좌르륵!
투―두―툭! 툭!
눈사태로 떨어져 내린 만년빙에 잘려 나간 절벽의 단면에서 돌들이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탁! 타탁!
주먹만 한 돌 몇 개를 끝으로 소리가 잦아들었다.
가공할 눈사태가 일어났었다는 마지막 잔향이었다. 성산 카일라스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난 혼란이 잦아들었고, 이내 적막이 찾아왔다.
“휴우우! 이제는 다 끝났나 보구나.”
한숨과 함께 시선이 산자락을 훑었다.
한참을 산을 바라보던 눈빛에 진한 아쉬움이 스쳤다. 기대한 것들이 모두 무산된 탓이었다.
“역시, 여기에도 없구나. 영지(靈地)란 영지는 다 돌아보았는데 성과가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 난감하구나. 하나같이 전부 임자가 있는 것들이었으니…….”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배어 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의 영지들을 찾아다닌 그였지만 이제는 지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곳 카일라스에는 두 번째로 찾아오는 길이었다.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때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이곳 카일라스에 왔을 때 그다지 많은 지역을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주인이 정해진 영기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워낙 많은 영기가 있어 손이 타지 않은 곳 정도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많기는 했지만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영기는 카일라스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당시 두 달여가 넘는 기간 동안 산을 전부 훑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영산 카일라스에는 더 이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찾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미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정말 찌릿한 느낌의 기운이었지…….”
당시에는 찰나에 사라져 버렸고, 종적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라 생각하고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카일라스를 떠났다.
손자가 위험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주인이 없는 영기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카일라스를 떠나 수많은 곳을 떠돌았다. 그러나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를 찾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고대문명이 존재했던 곳이나, 원시가 살아 있는 오지를 찾아다녔지만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주인이 없는 영기를 찾았어도 그저 하찮은 것들뿐이라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세계 각지를 헤맨 끝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역시나 없구나.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착각이었구나.”
돌아가는 길에 아쉬움이 너무 남아 찾은 곳이 바로 카일라스였다. 처음 찾아왔었고, 그저 착각이라고 느꼈던 그날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후후, 그래도 이렇게 경이로운 장관을 보았으니 괜찮은 여행이었다.”
자연의 장관이 종막을 고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조금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보자. 그리고 찾지 못하면 곧바로 돌아가자. 손자 녀석의 마지막이라도 지켜야 하니까.”
그리 큰 기대는 걸고 있지는 않지만 작은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봐도 찾는 것은 없었지만 자신이 있는 곳은 하늘 아래 최고의 성산이라는 카일라스였다.
“어디 보자!”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위와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둘러쓴 벙거지 같은 것을 벗어 버렸다.
고생이 심했는지 두 눈이 쏙 들어간 앙상하게 마른 노인이 얼굴이 드러났다.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카일라스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매가 무서워졌다.
쏴―아아아아!
서늘한 기운이 노인의 몸에서 퍼져 나와 카일라스를 덮기 시작했다.
영파(靈波)!
노인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무인이 사용하는 기감과는 달리 영혼의 파장이었다.
“으음!”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던 노인은 신음을 흘렸다.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었는데 영파를 통해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주 순수한 기운이다.’
노인은 곧바로 누더기 같은 겉옷을 벗었다.
누더기 속에 어울리지 않게 빛이 바랜 하얀색의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영파가 전해오는 감각을 따라 노인의 시선이 돌려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만년빙이 강타해 움푹 떨어져 나간 절벽 면이었다.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제 맨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산중턱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사태가 나기 전까지는 그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던 기운이 절벽 면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기운은 전에 왔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을 떠난 후 처음 기착지였던 카일라스에서 느꼈던 그때의 그 느낌이 강렬했기에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너무도 미세하게 나탔다가 사라진 터라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실이었다.
“후후후, 크하하하하하하!!”
노인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크,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으로 두 번째로 다시 찾은 카일라스였다.
자신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은 해야겠지.”
파팟!
노인의 신형이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노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은 절벽 쪽이었다.
타―타타타탁!
노인은 움직임은 한줄기 바람 같았다.
육상 선수가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듯 속도 또한 보통의 사람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노인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사면을 따라 수평으로 달리고 있었다.
퍼퍼퍽!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 절벽이 찍혀 나갔다.
사람 같지 않은 움직임을 보인 그는 어느새 눈사태가 난 산중턱에 다다랐다.
“차앗!”
탁!
기합과 함께 노인의 신형이 절벽에서 약간 튀어나와 받침대마냥 턱이 진 부분에 빠르게 올라섰다.
“으음.”
많이 지친 탓일까 노인의 신형이 한순간 비틀거렸다.
사실 절벽을 수평으로 타는 것쯤이야 노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가 비틀거렸던 것은 그가 선 자리에서 일고 있는 존재감이 확실한 어떤 기운 때문이었다.
‘으음,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은 처음이구나. 그동안 발견했던 영기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기운이다.’
마음을 추스른 노인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저런 문양이 새겨져 있다니 흥미롭구나.’
노인의 시야에 자연적인 것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눈사태가 난 뒤에 드러난 바위에 생전 처음 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세월을 비껴간 듯 너무도 선명히 새겨져 있는 문양이 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문양들은 그냥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기하학적으로 생긴 문양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새겨져 있는 것이 고대의 문자가 틀림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문명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유적과 영험한 신기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가보지 않은 적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바위 앞에 새겨져 있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처음으로 보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양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이다.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면 확인을 해봐야 한다.’
노인은 문양이 새겨진 부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쏴―아아아!
충격을 받아 길게 갈라진 바위에서는 자신이 느꼈던 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노인의 입에서 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위에 새겨진 이 문양은 봉인을 위한 것이 틀림없다. 눈사태의 충격으로 견고했던 봉인이 깨져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안에 잠들어 있기에 이렇게 강한 존재감을 흘린다는 말이냐?’
지금 자신이 손을 댄 바위에 새겨진 문양은 안에 있는 뭔가를 봉인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흘러나오는 것보다 속에 감추어져 있는 기운이 더욱 크다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비라 알려진 것들을 수도 없이 봐온 그였지만 이 정도 존재감은 처음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노인은 손바닥을 통해 자신이 가진 힘을 방출했다.
드르르!
작은 진동이 바위에 덮였다.
콰지직!
바위에 금이 가고 뒤덮고 있는 문양이 점차 사라져 갔다. 봉인이 해제되고 있는 것이다.
우르르르르!
문양이 사라진 뒤 바위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바위가 옆으로 떨어져 내리며 절벽 아래로 단말마를 토했다.
후아아앙!
바위 뒤에서 동굴이 나타나더니 기압 차로 인해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기압 차로 인한 바람이 몰아쳤지만 노인은 동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 엄청난 기운이다.’
지금까지 노인이 보았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기운이 동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신전인 건가?”
봉인이 깨진 상태였기에 영기의 정체를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의 영기와는 다른 기운인 신기가 느껴졌다.
1화
프롤로그 성산(聖山) 카일라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고원!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000미터에 이르는 고봉들이 즐비한 천혜의 험지지만 천산고봉을 정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전문 산악인들로 인해 동네 뒷동산마냥 몸살 아닌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 바로 히말라야의 고원들이다.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격언처럼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얻기 위한 정복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쉽게 속살을 허락하지 않는 곳이 바로 히말라야다.
사실 현대에 들어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체가 많이 밝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는 곳이 많은 곳이다.
8,000미터 급 고봉들이 지금도 추가로 발견되고 있으면서도 그 내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이유는 딱 하나다.
만년설이 정상을 지배하는 히말라야는 웅장한 자태 뒤에 숨겨진 천험의 지형과 자연의 변화무쌍함으로 인해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그 한계가 있기에 히말라야는 지금도 전입미답의 철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인간 한계의 상징으로서의 명성은 여전할 뿐 아니라 경외심을 품게 하는 존재로 히말라야는 현대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곳!
때문에 예로부터 히말라야는 신들이 잠들어 있는 대지라 불리는 곳이다.
품 안에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채 태고 이래로부터 존재해 오고 있는 까닭이다.
히말라야라는 태고의 품 안에는 성산(聖山)이라 불리는 카일라스(Kailash)가 있다.
달리 강림포체봉이라 불리는 카일라스는 히말라야의 험준 고봉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8,000미터 급 고봉이 즐비한 히말라야에서 높이라고 해봐야 6,714미터인 카일라스는 그저 높은 봉우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연꽃을 닮기도 했고, 코끼리를 닮은 모습을 간직한 히말라야 최고의 비경인 카일라스다.
덕분에 불교와 힌두교를 믿는 티베트와 인도인들에게 있어 카일라스는 최고의 성지인 곳이다.
카일라스로 가기 위한 입구에는 두 개의 커다란 호수가 있다. 마나사로바와 라카스탈 호수가 바로 그것이다.
마나사로바는 둥근 태양의 모습으로 빛(陽)의 힘을 대표해 왔고, 라카스탈은 초승달 모양으로 어둠(陰)의 힘을 대표한다고 여겨져 왔다.
카일라스를 오체투지의 예배법으로 자벌레가 기어가듯 한 바퀴를 돌며 순례하면 금생의 죄가 소멸된다고 한다.
세 번을 순례하면 삼생의 죄가, 백팔 번을 순례하면 일체 업장이 소멸되어 성불한다고 믿는 성산인 것이다.
때문에 인도와 티베트인들의 오랜 조상들이 살았던 시절부터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져 왔고 덕분에 수메루(Sumeru), 즉 수미산이라고 불렸다.
1장 카일라스에서 생긴 일
우르르르릉!
카일라스에서 지금 대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콰르르르!
폭포의 흰 포말처럼 엄청난 규모의 눈덩이가 지상을 향해 낙하를 하고 있었다.
우르릉!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겨우내 쌓였던 눈들이 낙하를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속에 숨어 언제나 녹지 않을 것 같은 만년빙들이 충격으로 인해 떨어져 내리며 뇌성을 토했다.
눈사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쾅!
비산하는 눈보라 사이로 커다란 만년빙이 산 중턱을 강타하자 산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콰―콰콰쾅!
산의 중턱에서 떨어져 나온 암석의 육중한 몸체가 아래로 떨어지며 걸리는 모든 것을 부셔 버렸다.
자연의 힘은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계속적인 충격에 암석들이 잔해로 흩어지고 암벽에 덧칠해진 눈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새하얀 눈보라로 바람에 날려 허공을 배회했다.
“하아! 대단하구나. 이런 장관이라니!”
눈사태가 일어난 곳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경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위대한 자연의 장관을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모포를 여러 겹 두른 것 같은 낡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카일라스를 찾는 순례자와 같이 꾀죄죄한 모습이다. 순례자들이 산 밑에서 치성을 드리는 것과는 달리 그는 정상과 가까운 절벽에서 눈사태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넋을 잃고 있었다.
“거참! 시원하게도 쏟아지는구나.”
수천 척의 절벽 위에서 눈과 만년빙들이 산을 깎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연신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만년빙 위에 쌓인 눈만 흘러내린다면 몰라도 만년빙은 물론 산중턱까지 깎아낼 정도로 무너지다니 모를 일이로다. 대체 어떤 것이 영향을 주었기에…….”
강력한 진동도 없었는데 일어난 일이라 그의 소리에 의혹이 일었다.
보통 눈사태는 쌓인 눈의 거죽만 떨어져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쓸데없는 고민이로군. 쯧! 쯧!”
특별한 원인이 없다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는 하지만 인영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끌탕을 쳤다.
자신이 찾고 있는 새로운 영기의 파장이 느껴지지 않는 한 모두가 쓸데없는 호기심일 뿐인 까닭이다.
“그래도 그 녀석에게 이런 장관을 이야기해 주면 좋아할 테니 눈에 더 담아두도록 하자.”
찾아야 할 것이 있기에 의문은 접었지만 일생을 두고 보기 힘든 장관이었기에 인영은 시선은 떼지 않았다.
자신이 본 것을 손자에게 이야기해 주면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좌르륵!
투―두―툭! 툭!
눈사태로 떨어져 내린 만년빙에 잘려 나간 절벽의 단면에서 돌들이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탁! 타탁!
주먹만 한 돌 몇 개를 끝으로 소리가 잦아들었다.
가공할 눈사태가 일어났었다는 마지막 잔향이었다. 성산 카일라스에서 급작스럽게 일어난 혼란이 잦아들었고, 이내 적막이 찾아왔다.
“휴우우! 이제는 다 끝났나 보구나.”
한숨과 함께 시선이 산자락을 훑었다.
한참을 산을 바라보던 눈빛에 진한 아쉬움이 스쳤다. 기대한 것들이 모두 무산된 탓이었다.
“역시, 여기에도 없구나. 영지(靈地)란 영지는 다 돌아보았는데 성과가 아무것도 없다니 정말 난감하구나. 하나같이 전부 임자가 있는 것들이었으니…….”
목소리에 깊은 회한이 배어 있었다.
꽤나 오랜 세월 동안 세계의 영지들을 찾아다닌 그였지만 이제는 지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곳 카일라스에는 두 번째로 찾아오는 길이었다. 자신이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한 번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때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처음 이곳 카일라스에 왔을 때 그다지 많은 지역을 돌아보지 않았음에도 주인이 정해진 영기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워낙 많은 영기가 있어 손이 타지 않은 곳 정도는 금방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많기는 했지만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영기는 카일라스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당시 두 달여가 넘는 기간 동안 산을 전부 훑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실망뿐이었다.
영산 카일라스에는 더 이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찾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미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등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기운이었다.
“정말 찌릿한 느낌의 기운이었지…….”
당시에는 찰나에 사라져 버렸고, 종적을 찾을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잘못 느낀 것이라 생각하고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카일라스를 떠났다.
손자가 위험하기에 하루라도 빨리 주인이 없는 영기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카일라스를 떠나 수많은 곳을 떠돌았다. 그러나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를 찾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고대문명이 존재했던 곳이나, 원시가 살아 있는 오지를 찾아다녔지만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주인이 없는 영기를 찾았어도 그저 하찮은 것들뿐이라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세계 각지를 헤맨 끝에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혹시나 해서 찾아왔는데 역시나 없구나.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것은 착각이었구나.”
돌아가는 길에 아쉬움이 너무 남아 찾은 곳이 바로 카일라스였다. 처음 찾아왔었고, 그저 착각이라고 느꼈던 그날의 느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지만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후후후, 그래도 이렇게 경이로운 장관을 보았으니 괜찮은 여행이었다.”
자연의 장관이 종막을 고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조금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펴보자. 그리고 찾지 못하면 곧바로 돌아가자. 손자 녀석의 마지막이라도 지켜야 하니까.”
그리 큰 기대는 걸고 있지는 않지만 작은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봐도 찾는 것은 없었지만 자신이 있는 곳은 하늘 아래 최고의 성산이라는 카일라스였다.
“어디 보자!”
감각을 활성화하기 위해, 추위와 눈보라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둘러쓴 벙거지 같은 것을 벗어 버렸다.
고생이 심했는지 두 눈이 쏙 들어간 앙상하게 마른 노인이 얼굴이 드러났다.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인지 카일라스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매가 무서워졌다.
쏴―아아아아!
서늘한 기운이 노인의 몸에서 퍼져 나와 카일라스를 덮기 시작했다.
영파(靈波)!
노인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은 무인이 사용하는 기감과는 달리 영혼의 파장이었다.
“으음!”
한동안 정신을 집중하던 노인은 신음을 흘렸다. 그냥 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었는데 영파를 통해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주 순수한 기운이다.’
노인은 곧바로 누더기 같은 겉옷을 벗었다.
누더기 속에 어울리지 않게 빛이 바랜 하얀색의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영파가 전해오는 감각을 따라 노인의 시선이 돌려졌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만년빙이 강타해 움푹 떨어져 나간 절벽 면이었다.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제 맨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산중턱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인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눈사태가 나기 전까지는 그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던 기운이 절벽 면에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기운은 전에 왔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을 떠난 후 처음 기착지였던 카일라스에서 느꼈던 그때의 그 느낌이 강렬했기에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너무도 미세하게 나탔다가 사라진 터라 자신이 잘못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실이었다.
“후후후, 크하하하하하하!!”
노인의 입에서 커다란 웃음이 흘러나왔다.
“크크, 드디어 찾았다. 드디어!”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으로 두 번째로 다시 찾은 카일라스였다.
자신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이 그토록 찾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은 해야겠지.”
파팟!
노인의 신형이 둥실 떠오르더니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노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난 것은 절벽 쪽이었다.
타―타타타탁!
노인은 움직임은 한줄기 바람 같았다.
육상 선수가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듯 속도 또한 보통의 사람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빠른 몸놀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움직임은 결코 인간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노인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벽의 사면을 따라 수평으로 달리고 있었다.
퍼퍼퍽!
노인의 발걸음을 따라 절벽이 찍혀 나갔다.
사람 같지 않은 움직임을 보인 그는 어느새 눈사태가 난 산중턱에 다다랐다.
“차앗!”
탁!
기합과 함께 노인의 신형이 절벽에서 약간 튀어나와 받침대마냥 턱이 진 부분에 빠르게 올라섰다.
“으음.”
많이 지친 탓일까 노인의 신형이 한순간 비틀거렸다.
사실 절벽을 수평으로 타는 것쯤이야 노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가 비틀거렸던 것은 그가 선 자리에서 일고 있는 존재감이 확실한 어떤 기운 때문이었다.
‘으음, 이렇게 강렬한 존재감은 처음이구나. 그동안 발견했던 영기들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기운이다.’
마음을 추스른 노인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곳에 저런 문양이 새겨져 있다니 흥미롭구나.’
노인의 시야에 자연적인 것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보였다.
눈사태가 난 뒤에 드러난 바위에 생전 처음 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세월을 비껴간 듯 너무도 선명히 새겨져 있는 문양이 노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저 문양들은 그냥 중구난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기하학적으로 생긴 문양은 일정한 틀을 가지고 새겨져 있는 것이 고대의 문자가 틀림없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 문명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유적과 영험한 신기가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가보지 않은 적이 없는 그였다.
하지만 바위 앞에 새겨져 있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처음으로 보는 문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양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존재감이다. 이 정도의 존재감이라면 확인을 해봐야 한다.’
노인은 문양이 새겨진 부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쏴―아아아!
충격을 받아 길게 갈라진 바위에서는 자신이 느꼈던 영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으음…….”
노인의 입에서 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바위에 새겨진 이 문양은 봉인을 위한 것이 틀림없다. 눈사태의 충격으로 견고했던 봉인이 깨져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안에 잠들어 있기에 이렇게 강한 존재감을 흘린다는 말이냐?’
지금 자신이 손을 댄 바위에 새겨진 문양은 안에 있는 뭔가를 봉인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흘러나오는 것보다 속에 감추어져 있는 기운이 더욱 크다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신비라 알려진 것들을 수도 없이 봐온 그였지만 이 정도 존재감은 처음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자.’
노인은 손바닥을 통해 자신이 가진 힘을 방출했다.
드르르!
작은 진동이 바위에 덮였다.
콰지직!
바위에 금이 가고 뒤덮고 있는 문양이 점차 사라져 갔다. 봉인이 해제되고 있는 것이다.
우르르르르!
문양이 사라진 뒤 바위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바위가 옆으로 떨어져 내리며 절벽 아래로 단말마를 토했다.
후아아앙!
바위 뒤에서 동굴이 나타나더니 기압 차로 인해 공기가 빨려 들어갔다. 기압 차로 인한 바람이 몰아쳤지만 노인은 동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 엄청난 기운이다.’
지금까지 노인이 보았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기운이 동굴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신전인 건가?”
봉인이 깨진 상태였기에 영기의 정체를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의 영기와는 다른 기운인 신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