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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흘러나오는 신기도 그렇고, 동굴의 구조와 문양의 형태로 보아 자연적인 동굴에 만들어놓은 신전임을 알 수 있었다.
“카일라스니 그럴 수도 있겠군.’
카일라스 곳곳에는 원래부터 비밀스러운 신전들이 무수히 존재했다. 워낙 영험한 산이었기에 무수한 종파들이 비밀리에 신전을 만들어 놓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일단 들어가 보자.’
천천히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이건 보통 어둠이 아니구나.’
동굴 안은 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놀라운 것은 동굴 입구 부분도 검은 장막 같은 어둠에 휩싸여 바로 앞도 확인할 수 없었다.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어둠이 분명했다.
‘이런 것으로 날 막을 수는 없지.’
노인이 기괴한 모양의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의 손끝에서 은은한 백광이 흘러나오더니 그의 전신에 넘실거렸다.
‘제발 이번에는 이곳에서 손자 녀석을 살릴 수 있는 단서를 얻었으면 좋으련만…….’
일반적인 영기가 아니라 신기라는 사실에 꺼려지는 마음이 들었지만 손자를 위한 마지막 희망이었기에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노인의 발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이 갈라졌다. 그가 만들어낸 백광이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낸 것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선 노인은 자신의 온몸을 자극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일반적인 신기가 아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신기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노인은 수인을 다시 맺었다.
그의 몸에서 넘실거리는 백광이 더욱 커지며 동굴 안을 환하게 밝혔다.
동굴 벽면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안으로 죽 이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으음, 이곳에도 문양이 있다니.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것과 비슷한 패턴이다. 도대체 어떤 존재가 남긴 신기이기에 이렇게 이중으로 봉인을 했다는 말인가?’
점점 더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봉인을 해제해야 했기에 이번에도 역시 문양에 손을 짚었다.
‘으음, 이건 바깥에 있는 것보다 더욱 강한 봉인이다.’
문양에 담겨져 있는 기운의 정체를 파악하던 노인은 자신이 살피고 있는 것이 바위에 새겨져 있던 봉인과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더욱 파고들자 절대적인 의지를 가진 존재에 대한 사념이 느껴졌다.
워낙 강력한 것이라 등골이 서늘했다.
‘으음, 보통 기운이 아니다. 알려져 있는 신기와는 차원이 다른 힘이 느껴지는구나. 거기다 강한 의지까지 서려 있으니…….’
신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세상이었다. 이렇게 강력한 의지라면 직접 미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절대 의지보다도 강력하고 무서운 의지다. 이런 종류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의문이기는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수많은 종파를 만나고 신의 의지가 서려진 것들을 접해온 그로서도 처음으로 느껴보는 강력한 사념이었지만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예상대로 진입할수록 문양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었다.
중앙에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호위하듯 세워져 있는 기괴한 모습의 조각상들도 나타났다.
중앙 쪽으로 집중되어 있는 문양과 예를 다하듯 서 있는 조각들을 보면서 이곳이 예상대로 신을 위한 경배의 장소로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사열을 하듯 맞추어 세워진 것을 보면 고대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도대체 어떤 신의 의지가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란 말인가?’
세상의 모든 영기와 신기를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그였다. 전혀 정체를 알 수 없는 신기에 서려진 절대적인 존재의 의지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알아볼 방법은 그것뿐이다.’
곧바로 영파가 발현됐다.
스스스스스!
노인의 몸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동굴을 살피며 앞쪽 중앙을 향해 나아갔다.
‘으음, 신기가 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구나.’
영파가 전해오는 정보를 통해 노인은 의지가 서린 신기가 흘러나오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동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신기는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좌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위에 아무것도 없지만 신상을 올려놓았던 것인가 보군. 어디…….’
노인은 좌대를 향해 나아갔다.
다가갈수록 좌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세밀히 파악할 수 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런 기운을 가진 존재가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후후후, 이런 행운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구나.’
자신의 손자를 살리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었다.
영험하다는 영지를 찾아 떠돌아다닌 세월이 벌써 십여 년이 다 되어 이제는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다.
비록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는 아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기는 하지만 신이 남긴 기운이 있는 이상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는 이름 모를 신의 잔재가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영기보다는 훨씬 나은 까닭이다.
‘태완아, 이제야 너를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았구나.’
손자를 생각하는 노인의 눈가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발견한 이름 모를 신의 잔재라면 하늘이 무너지는 큰 슬픔을 맞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태완아!”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오셨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라 태완은 쑤시는 몸을 뒤로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냥 누워 있어라.”
“으, 괜찮아요.”
백옥 같은 손으로 이마를 짚어 주는 엄마의 손길이 고맙지만 태완의 몸은 이미 천근이었다.
“이런, 열이 많잖아. 오늘 네 생일 파티에 친구들이 온다고 했는데 열 수 있겠니?”
“힘들 거 같아요. 조금 있다가 제가 전화할게요.”
“그렇게 해라. 이렇게 아파서는 생일 파티는 아무래도 무리겠다.”
“예, 엄마.”
“일단 해열제하고 종합감기약을 가져다줄 테니 먹고 좀 쉬어라.”
“알았어요.”
방을 나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태완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조금 전보다 더 욱신욱신 쑤시는 것이 몸살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았다.
“후후후, 웃기는구나. 고작 악몽을 꿨다고 몸살까지 나다니…….”
오늘도 어김없이 열이 많다. 감기라면 그냥 넘기겠지만 웃기게도 밤새 악몽 속을 헤맨 결과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진짜로 그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걸까? 바로 어제 만나서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얼굴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고, 조금 이상한 할아버지였는데…….”
엊그제 공원에서 만난 이상한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연세가 꽤 된 할아버지라는 것만 생각날 뿐 이상하게도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남긴 말은 또렷이 기억이 났다.
“앞으로 이상한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그랬지. 그냥 놀리려고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구나.”
그저 지나가는 말투로 당부한 것이지만 벌써 이틀째 악몽을 꾸고 나니 허튼소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앞으로 이상한 꿈을 꾸게 될 것이고 악몽과 마주하게 되면 자신을 똑바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지?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말투였어.”
악몽을 계속해서 꾸게 될 것이라는 예언 같은 말을 상기해 봤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태완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설마하니 그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처럼 계속해서 악몽을 꾸지는 않겠지.”
그러는 사이 방문이 다시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태완아, 약 먹자.”
“예.”
태완은 작은 컵에 든 해열제와 종합감기약 하나를 받아들고는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푹 자라. 친구들에게는 내가 연락해 두마.”
만으로 열두 살이 되는 생일날이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이런 몸 상태로 파티를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처음이었는데…….’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한 번도 생일 파티를 하지 못한 태완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접어야 했다.
“예, 엄마. 친구들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태완은 아쉬운 표정을 부탁을 하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 알았다. 어서 누워서 자라.”
“예, 엄마.”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태완은 허리춤에 걸쳐 있는 홑이불을 끌어당겼다.
‘그 할아버지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큰일인데…….’
이름 모를 할아버지의 말이 계속해서 불안하게 했다. 악몽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눈을 감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약기운을 이길 수 없었던 태완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쏴아아아!
―키키키키킥!
마치 잠의 요정이 뿌리는 은빛모래의 향기처럼 밀려드는 수면의 욕구는 참을 수 없는 악몽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끊임없이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웃음소리와 웅성거림은 꿈속에서도 현실처럼 태완을 괴롭혔다.

◈◈◈

“허―억!”
오늘도 어김없이 악몽을 꾼 태완은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벌써 열흘째구나.”
며칠 동안 꿈을 꾸면서 몸살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악몽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정말 심상치 않은 일이다.”
언제나 비슷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은 일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태완은 자리에 일어나자마자 생각하던 일을 하기로 했다.
“일단 학교가 끝나고 가면 공원에 계실 테니 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 번 만나보자.”
직접 볼 때는 선명하지만 뒤돌아서면 이내 얼굴을 잊어버리는 이상한 할아버지를 만나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공원을 몇 번 지나치며 할아버지가 있는지 먼발치서 살펴왔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사주나 궁합을 봐주고 있었기에 오늘도 공원에 가면 만나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서두르자.”
이부자리를 갠 태완은 서둘러 세면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평상시와 같이 학교로 갔다.
수업을 하는 내내 머릿속은 온통 공원에서 만나게 될 할아버지 생각뿐이었다.
졸업을 얼마 안 남겨 둔 때라 수업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충 대충 이어지던 수업이 끝나자 태완은 서둘러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오늘도 계시는구나.”
좀 허름해 보이는 한복을 입었지만 그리 춥지 않은지 대나무를 잘게 쪼개 만든 돗자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는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간 태완은 쭈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사정을 아는 듯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후후후, 그래도 버틸 만했나 보구나.”
‘웃음이 참 포근하신 분이구나.’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예. 할아버지 말씀대로 악몽을 계속 꿨어요.”
“그런 악몽을 계속 꾼다는 것이 견디기 어려운 일인데 어린 나이에 장하구나.”
‘역시, 뭔가 알고 있는 분이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태완은 자신이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어째서 제가 그런 악몽을 계속해서 꾸는 건가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선 내 소개를 해야겠구나. 내 이름은 화영이라고 한다. 너도 보다시피 남들 운세를 봐주며 먹고사는 사람이지. 남들이 허황되다고 말하는 직업이지만 그리 믿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 바로 이 직업이기도 하다. 아마도 너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이다.”
태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꿈을 예언했고, 정확히 맞췄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럼 네 질문에 답변을 해주겠다. 그런 악몽을 꾸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네가 선택받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제가 선택을 받았다는 것인가요?”
“그래,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꿈을 꿀 이유가 없지.”
“그렇군요. 혹시나 제가 무당 같은 것이 되는 건가요?”
혼자서 많은 생각을 해왔기에 태완이 물었다.
“후후후후, 걱정이 많았나 보구나.”
“예, 사실은 제가 그렇게 되면 안 되거든요.”
태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외가가 모두 크리스천이라 정말 껄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 걱정할 것은 없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을 천시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런 것은 아닌가 보구나?’
태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럼 어떻게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요?”
자신이 생각해 오던 것이 아니라 안심이 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기에 태완이 물었다.
“현재로서는 그 악몽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다. 운명을 따돌릴 수 있는 이는 세상의 모든 인연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뿐이니 말이다.”
‘어쩐지 그럴 거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역시나 그렇구나.’
단언하듯 말하는 노인의 이야기에 태완의 눈에 실망스러운 빛이 스쳤다. 악몽을 꾸면서 막연히 느끼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벗어날 수 없는 거였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는 태완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그리 걱정할 것 없다. 벗어날 수는 없지만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있으니 말이다.”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이요?”
반색을 하며 태완이 물었다.
“그래, 견뎌낼 수 있는 방법! 내가 그 방법을 알려줄 테니 어디 한번 해보겠느냐?”
“해볼게요.”
어차피 악몽에서 벗어날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지금부터 집에 가서 한 가지를 찾아라.”
“한 가지를 찾아요?”
“너희 집에 오래된 고서가 한 권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보시는 옛날 고서가 집에 상당히 많은데요?”
다른 집과는 달리 서재에 옛날 고서들이 아주 많았기에 태완이 반문했다.
“보통 고서들 하고는 다른 책이다. 한문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상한 그림만 하나 가득 그려져 있는 책이니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알았어요, 할아버지. 그런데 책을 찾으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 책을 찾게 되면 안에 있는 그림들을 모두 기억하도록 해라. 그리하면 네 스스로 악몽에서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저, 정말이요?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정말이다. 그걸 다 외우면 악몽을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게다.”
‘나와 관계가 있는 분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집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아실 리 없을 테니까.’
악몽을 예언하는 것도 그렇고, 집에 고서가 있다는 것도 그렇고 의문이 많았지만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태완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 공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너에게 방법을 알려줬으니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이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가시는 건가요?”
“그래.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제는 이 공원에 올 일은 없을 게다. 그리고 악몽은 그저 악몽일 뿐이다. 네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효과가 있을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준 할아버지였기에 태완은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
고개를 든 태완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귀신에게 홀린 건가?”
잠깐 고개를 숙인 것뿐인데 방금 전까지 돗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깔고 있던 돗자리도 사라지고 없었다.
‘소리라도 나야 정상인데…… 그리고 여전히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앞에서 봤을 때는 정말 선명했는데 말이야.’
신비한 할아버지였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얼굴을 기억하려고 애를 썼었는데 갑자기 사라지고 나니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구나.’
할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하려 애쓰다가 주변의 시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어째서 저런 모습으로 혼자 구시렁거리고 있는 거지?”
“그러게,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야.”
“미친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안쓰럽네.”
“뭔가 사연이 있겠지, 뭐.”
공원 벤치 앞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수군대고 있었다.
‘이상하네. 분명히 같이 있었는데?’
방금 전까지 자신과 함께 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은 말들이었기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집으로 가서 이상한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책이 있나 우선 찾아보자.’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태완은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거짓말을 할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야. 집에 그런 책이 있는 걸 아시는 것을 보면 나하고 연관이 있는 분인 것도 같고…….’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알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친밀감을 보면 자신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분명 분명해 보였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책은 집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악몽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는 책을 보게 되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되리라는 생각에 태완은 발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