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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2장 구구수인도(九九手印圖)!


“학교 다녀왔습니다.”
태완은 집 안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그래, 어서 와라. 조금 늦었구나.”
“친구들과 조금 놀았어요.”
걱정하실까봐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지 않았던 태완은 친구들 핑계를 댔다.
“운동장에서 뛰어놀아서 그런지 배가 고프네요.”
“알았다. 점심 차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예, 엄마.”
‘죄송해요. 엄마.’
거짓말한 것은 죄송한 일이지만 쓸데없는 걱정보다는 나았기에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를 보며 태완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가방을 한쪽에 놓은 태완은 방을 나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어느새 부엌에는 식사가 차려졌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 아버지 서재에 있는 책을 제가 좀 봐도 돼요?”
밥을 거의 다 먹을 즈음 태완이 물었다.
“이제 졸업이 얼마 남지 않으니 심심한가 보구나.”
“예, 이번 방학에는 중학교 과정 공부도 할 테지만 책도 많이 읽어보려고 해요.”
“좋은 생각인 것 같다만 아버지 서재에 있는 책들은 꽤 어려운 것인데 네가 볼 수 있겠니?”
“상관없어요. 체육관도 나가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하니까 짬짬이 시간을 내서 보려고요.”
“뭐, 어렵기는 하지만 봐서 나쁠 것은 없으니 그렇게 하도록 해라. 그래도 아버지 허락은 받아야 하니까 오시면 말씀을 드리도록 하고.”
“예, 엄마.”
엄마의 허락을 받았으니 아버지도 반대는 하지 않을 것이기에 태완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태완은 아버지의 서재로 향했다.
“전공하신 것과는 다르게 온통 저런 책들만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한 것처럼 할아버지는 우리 집과 관련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서재에는 동서양을 막론한 철학 관련 책들이 한쪽 서가에 가득했다. 무역상사에 근무하시는 아버지의 전공과는 무관한 책들뿐이었다.
“어디 보자.”
태완은 서가로 가서 옛날 고서적만을 추렸다. 누르스름한 황지로 겉표지가 된 책들을 챙기자 100여 권이 넘었다.
그림이 있는 것만 찾으면 되기에 책을 살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고서를 전부 살펴봤지만 이상한 그림만 있는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완은 꺼내 놓았던 책들을 다시 꽂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분명히 집에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이야. 아버지가 따로 챙겨두신 건가?”
그런 책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아버지가 따로 두신 것이 분명했기에 나중에 찾기로 했다.
“그나저나 그동안 몰랐는데 꽤나 재미있을 법한 책들이다. 유불선 삼도는 물론이고 황제내경 같은 옛날 의서도 있으니 말이야.”
아버지의 뜻에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혀온 태완은 서가에 책을 꽂으며 흥미가 일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살폈던 책들이 하나같이 희귀한 고서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방학부터는 여기에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꽤나 중요한 것들인 것 같고, 재미도 있을 것 같으니 말이야.”
서재의 책을 읽는 것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일이다. 때문에 잠시 미루어 두어야겠지만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책들을 전부 읽어보리라 마음을 먹으며 서재를 나섰다.
태완이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고 서재를 출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이틀 뒤였다. 그렇다고 모두 읽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회사의 일과 관련된 것들과 너무 전문적이어서 아직은 읽을 때가 되지 않은 책들은 제외되었다.
서재 출입이 가능해지자 태완은 공원의 점쟁이 할아버지가 알려준 책을 찾기 위해 분주히 뒤졌지만 허사였다.
열흘이 넘도록 서재를 뒤졌지만 그림만 있는 책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휴우, 보이지를 않는구나. 악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이 거짓은 아닌데 말이야.”
오늘도 서재를 뒤졌지만 원하던 책을 찾지 못한 태완은 마음이 답답했다. 책을 찾는 동안에도 악몽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찾지 못한 태완은 그대로 집을 나왔다.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공원으로 갔다.
‘내가 특별한 아이라서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고 그러시기는 했지만 어째서…….’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기는 동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달리 특별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답답한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더욱 답답해지던 태완은 해가 져 어스름해지자 집으로 돌아갔다.
“뭐하고 온 거니?”
“공원에서 산책을 좀 했어요.”
“조금 있으면 아버지가 오신다고 했으니 어서 씻고 밥 먹을 준비해라.”
“예, 엄마.”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니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그래, 우리 강아지. 학교는 재미있었니?”
“예.”
‘저건? 검은색 표지의 책은 없었던 건데…….’
아버지 손에 들려 있는 얇은 책자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표지를 가진 그것은 서재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계세요.”
때마침 식사 준비를 하던 엄마가 응접실로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학교로 찾아가 뵈려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퇴근 시간에 사무실로 오셔서 일찍 올 수 있었어.”
“김 교수님이 책을 돌려주시러 들르신 모양이네요?”
“그래. 연구가 이제 끝난 모양이야.”
“다행이네요,. 그럼 어서 씻으세요.”
“알았어. 이것 좀 서재에 두고 씻고 나올게.”
검은색 표지의 책을 들고 서재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태완은 그것이 찾던 책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따가 주무실 때 서재에 가서 봐야겠구나.’
어차피 저녁을 먹어야 하기에 살펴볼 시간이 없음을 자각한 태완은 나중을 기약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이내 가족끼리의 오붓한 식사가 시작되었고, 식사 시간 내내 태완이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빌려줬다가 가지고 온 검은색의 책이 가득했다.
식사가 끝나고 가족끼리 시간을 보낸 후 밤이 깊어질 즈음 태완은 부모님이 주무시는 사이 서재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고서들과 함께 꽂혀 있는 검은색의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서가에서 책을 꺼내 펴들자 공원에서 만나 할아버지의 말대로 책은 온통 그림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이거구나. 그런데 온통 손 모양 그림뿐이네.”
책자는 얇았지만 그림의 양은 상당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그림이 손을 그린 모습뿐이었다.
한 손만 그린 것도 있었고, 양손을 그린 것도 상당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어디서 보았는지 잘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태완은 손 모양이 많이 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거 혹시?”
책장을 넘기며 차근차근 바라보던 태완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고서의 내용 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음을 생각해 내곤 곧장 책을 찾았다.
표지 겉장에 포박자(抱朴子)라 쓰여진 책을 찾아 든 태완은 안에 써져 있는 내용을 살폈다.
“이건 아니고. 다른 곳에 있었나.”
잡아 든 책에는 비슷한 내용이 없었기에 다른 책을 찾아 들었다. 이번 책의 겉장에도 역시 포박자라 쓰여 있었다.
진의 갈홍이 쓴 포박자는 내편 20편, 외편 50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태완의 집에는 전편이 있었고, 하나하나 살피다가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
포박자에서 찾아낸 내용은 도인 절구자인도 아자관법(刀印 切九字印圖 阿字觀法)이라는 도법(道法)이었다.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列前?)!

아홉 개의 자구(字句)로 이루어진 이 도법은 영적인 존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도법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귀신이나 요괴를 포획하는 포박술로 이용하거나 자신을 보호하는 결계를 만들어내는 구자절법(九字切法)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수인을 맺어 특수한 파동을 만들어 귀신이나 요괴를 물리치는 구자인법(九字印法)이었다.
“손 모양이 이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손 모양 그림들이 구자인법과 비슷한 도법이라는 결론인데 말이야. 해석을 하려면 일단 이것부터 외워야 할 것 같구나.”
자신이 찾아낸 검은색 표지의 유사한 형태임을 확인한 수인은 포박자에 나온 내용을 우선 암기하기로 했다.
손 모양만 나와 있으니 어떤 뜻인지 알기 위해서는 단서가 되는 것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웠다고는 하지만 모르는 글자도 많았고 해석도 쉽지 않은 탓에 암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 집어넣고는 있지만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법에 대해서 알려면 포박자 전편을 완전히 숙지해야 함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외우려면 며칠은 걸리겠구나. 일단 손 모양 그림부터 외우도록 하자.”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 검은색 표지의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그림을 외우며 손으로는 그려져 있는 손 모양을 연습해 보기도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태완은 날이 샐 무렵 거의 모든 손 모양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런, 어쩌다가 보니 밤을 새웠구나.”
다행히 잠을 자지 않아 악몽을 꾸지 않았지만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안으로 다 외우고 만다.”
태완은 생각이 잘 나지 않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살피며 손 모양들을 외워 나갔다.
손 모양의 그림이 일천 가지가 넘었지만 원래부터 머리가 좋았기에 태완은 대부분을 외울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견딜 수 있게 되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편안하구나.”
포박자의 내용까지 외운 후 그림의 내용들이 무엇인지 확인을 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리겠지만 불안감은 많이 가신 상태였기에 마음이 편안했다.
“날이 샌 것 같으니 오늘은 그만하자.”
포박자를 읽고 외운 그림들을 해석하고 싶었지만 태완은 책을 꽂은 후 서재를 나섰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태완은 침대에 누워 쉬었다.
잠시 쉬려고 했던 것이 밤을 꼬박 새운 탓인지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잠이 들자 악몽이 다시 찾아왔다.
―우우우우…….
―키키키키키킥!
악몽은 여느 때와 똑같았다. 신음성과 들려오는 저주받은 것 같은 호곡성이 전신을 에워쌌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악몽으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이 전보다는 훨씬 덜했다.
‘그저 외웠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효과를 본 건가?’
악몽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스산하고 무서운 소리들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서워 벌벌 떨던 다른 때와는 달리 태완은 야간의 두려움만으로 악령의 소리와 맞설 수 있었다.
‘무, 무슨 소리지?’
소리에 집중하자 뭔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힘이 되어 주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

“태완아! 어서 일어나라!”
“으음, 어머니 목소리였구나.”
악몽에서 깬 태완은 자신이 들은 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악몽 속에서 어머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그림을 외운 것만으로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구나.”
어머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깰 때까지 잠깐이었지만 꿈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었다. 전 같았으면 깨지 않고 악몽 속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에서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날 수 있었다. 전보다 상황이 훨씬 나아진 것이다.
“태완아!”
“일어났어요.”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대답을 한 태완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으음, 냄새가 좋구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다. 부엌으로 가자 아버지도 식탁에 앉아 계셨다.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예, 늦게 잠이 들어서요.”
“너무 책만 읽은 것도 좋지 않은 일이다.”
“예, 아버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완은 식탁에 앉았다.
“태완아.”
“예, 엄마.”
“이제 졸업을 하니 아주 긴 방학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너무 긴장을 풀지는 마라. 중학교에 들어가면 할 것들이 많으니 미리 준비하도록 하고?”
“걱정 마세요.”
“그래, 알았다. 어서 밥 먹자.”
“예, 어머니.”
어머니의 당부를 끝으로 세 사람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반찬은 물론이고 밥도 아주 맛이 있어서 식사 시간은 상당히 즐거웠다.
식사를 끝마친 태완은 화장실로 가서 양치를 한 후 가방을 매고는 학교로 향했다.
교실로 들어서자 초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북적였다.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전달 사항을 말씀하신 것으로 짧은 방학식이 끝났다.
방학식이 끝나자 태완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서재에 있는 책을 보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온 태완은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가 포박자를 탐독했다.
태완이 읽은 것은 연단을 비롯한 도가의 이론을 집대성한 내편 20편이었다.
한문으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해 또한 마찬가지여서 따로 해석까지 해야 했기에 내편을 읽어 나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내편을 다 읽은 데는 방학 기간의 반 가까이 소요되었다.
그나마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문을 계속해서 공부해 온 터라 그 정도 걸린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일이었다.
내편을 전부 읽은 후 태완은 자신이 해석한 것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도교의 사상이 집대성된 것이라 그 뜻을 완전히 체득하지는 못하지만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있던 터라 외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대단하구나. 실제로 연단을 하거나 신선들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아주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내편 20편을 모두 외운 태완은 도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만족할 수 있었다.
공원에서 만난 화영이라는 할아버지가 보라고 했던 검은색 표지의 그림책을 읽고 해석하는데 기초가 될 만한 것들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늘부터 한번 볼까?”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남은 기간은 10여 일뿐이지만 아직도 시간은 적잖게 남아 있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중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태완은 오랜만에 그림책을 펼쳐 들었다. 그동안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보지 않았다.
악몽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던 터라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펼쳐 들자 손 모양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양손을 각자 날개로 표현하기도 했었지. 그럼 이건 일우(一羽)인가?”
처음 장에 나타는 왼손 그림들을 바라보며 태완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포박자만 본 것이 아니었다.
포박자를 해석하기 위해 도교와 관련된 여러 지식들을 도서관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얻었던 태완은 자신도 모르게 그림을 해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