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4화


그동안 쌓아온 지식으로 볼 때 도교에서는 양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두 손을 이우(二羽)나 일월장(日月掌), 이장(二掌)이라 칭했다.
그리고 열 손가락은 십도(十度), 십륜(十輪), 십련(十蓮), 십법계(十法界), 십진여(十眞如), 십조(十條) 등으로 부르며 도교의 사상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자관법은 아홉 개의 자구를 이용해 도법을 행하는 법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이 책의 수인도 모양이 비슷하니 포박자에 나오는 절법이나 인법과 같은 것이 분명한데, 문제는 어떤 식의 효과를 발휘하느냐 하는 건데 말이야.”
태완은 손가락 그림이 뜻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그동안 외웠던 포박자와 그 밖의 지식들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살펴본 결과 태완은 몇 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한 손을 사용하는 패턴은 한 페이지마다 세 개씩 총 삼십 페이지에 그려져 있고, 두 손을 사용하는 패턴은 한 페이지에 한 개씩, 마지막 것은 두 페이지에 걸쳐 그려져 있으니…… 으음, 총 아흔아홉 개의 패턴인 건가?”
수인의 종류는 총 99개였다.
38페이지에 걸쳐 98개의 패턴이 그려져 있었고, 마지막은 앞뒤 페이지에 걸쳐 한 가지 패턴이 기록되어 총 40페이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도대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니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패턴의 수만 파악했을 뿐 어떤 용도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임병투자개진열전행(臨兵鬪者皆陳列前?)의 아홉 자구를 이용한 구자절법이나 구자인법하고는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좋아 한 번 해보자. 이 수인도대로 따라하다 보면 뭔가 알 수 있겠지.”
태완은 그림책의 이름을 수인도라고 붙였다. 말대로 손으로 인을 맺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 책상에 놓은 채로 손으로 그림을 따라했다.
“이거 쉽지 않은데!”
관절마디를 꺾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악몽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손가락이 뻗어 나온 손바닥의 연결 부위가 아프도록 따라했다.
두어 시간을 연습한 결과 겨우 첫 페이지를 흉내 낼 수 있었다. 태완은 외워 두었던 수인들을 그림책을 보며 하나하나 연습해 나갔다.
그렇게 수인도를 따라 연습한 지 10여 일이 흘러 대부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왜 아무런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 거지?”
완벽하게 따라하게 되었지만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음양도를 차용하여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신비한 현상은 그저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랐었나?”
조금 허무한 감도 있기는 했지만 헛수고만은 아니었다.
기괴한 웃음소리와 귀곡성이 들여오는 악몽은 이제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 할아버지 말씀대로 악몽을 견딜 수 있게 된 것만도 다행이지.”
탁!
실망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대로 만족하기로 한 태완은 그동안 보고 있던 수인도를 접고는 서재를 나섰다.
“오늘은 도장에서 보내자.”
찝찝한 느낌이 남아 있었기에 태완은 도장에 가기로 했다. 매일같이 나가기는 했지만 방학 기간 내내 정해진 시간만 운동을 하고 온 터라 오늘은 좀 격렬하게 운동을 해볼 참이었다.
집을 나선 후 곧바로 도장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있는 도장은 어려서부터 다니던 곳으로 특이하게도 합기도와 특공무술을 같이 가르치는 도장이었다.
도장에는 두 명의 관장이 있었는데 같은 도장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형은 1층에서 합기도를, 동생은 2층에서 특공무술을 가르쳤다.
태완은 초등학교를 다니기 이전부터 도장에 다녔다. 네 살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으니 벌써 8년째였다.
그저께 내린 눈이 날씨가 추운 탓인지 녹지를 않아 빙판이 된 길을 걸어 도장에 도착한 태완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르륵!
도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점심시간이라 다들 사무실에서 식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태완은 곧바로 탈의실에 가서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도장 바닥에 앉아 스트레칭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발끝과 손끝을 시작으로 관절과 전신 근육을 이완시켜 나가자 몸이 개운해졌다.
태완이 스트레칭을 끝낼 때 즈음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며 관장들이 나타났다.
“어? 태완이 왔냐?”
큰 관장이자 합기도를 가르치는 박현성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태완이 운동하러 올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 관장님.”
“왔으면 이야기를 하지?”
“점심식사하고 계시는 중인 것 같아서요.”
“그랬구나.”
“오늘은 일찍 왔구나.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
현성의 동생이자 특공무술을 가르치는 박차성이 물었다.
차성은 태완의 아버지인 인국의 친구이자 군대 동기이기도 했다.
“아무 일 없었어요. 작은 관장님. 그저 기분이 좀 그래서 연무로 좀 풀어보려고요.”
“그랬구나. 오후 수련 타임까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연무를 하고 있어라. 우리는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후후후, 그렇게 하세요. 도장은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12시부터 3시까지는 수련을 하는 수련생이 없었다.
지금은 방학 기간이라 그렇지는 않지만 수련생 대부분 학생들인 관계로 학교가 파한 후에야 수련생들이 오기에 만들어진 휴식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PC방으로 게임을 즐기러 간다는 것을 아는 터라 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장 잘 보고 있어라. 무슨 일이 생기면 가람으로 연락하고.”
“예, 관장님.”
관장들이 나가자 태완은 도장으로 들어오는 문을 잠갔다.
그리고 도장에 서서 연무를 시작했다.
합기도의 각종 술기들이 태완의 손과 발에서 풀어져 나왔다. 특공무술도 연이어졌다. 합기도와 태권도의 바탕 아래 특전부대의 무술을 개량하여 만들어진 특공무술의 각종 술식도 태완의 몸을 통해 도장 안에 펼쳐졌다.
“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연무에 빠져 있었던 태완의 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쾅! 쾅! 쾅!
태완은 서둘러 도장 문을 열었다.
“후후후, 이 녀석 또 연무에 빠져 있었던 것이냐?”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 현성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동안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었던 것 같던데 이제는 풀린 모양이구나.”
“예, 관장님.”
“고민을 풀었다니 됐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올 시간이니 오늘은 네가 가르치도록 해라.”
“예, 관장님,”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사범에 준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던 터라 태완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되는 수련 타임은 대부분 초등하교 1학년에서 3학년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가르치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6학년이 된 후부터 간혹 태완이 가르쳐 왔기에 아이들도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관장들이 2층으로 올라가고 난 후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3시 타임에 수련을 하는 수련생들은 모두 이십여 명으로 어린아이들답게 도장 안이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자! 그만! 모두 정렬!!”
태완의 고함이 도장 안을 울렸다.
겉보기에는 여려 보이지만 수련생들은 태완이 엄한 사범임을 알기에 소란스러움을 멈추고 재빨리 정렬했다.
“오늘은 네가 너희들의 수련을 돕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란을 피우는 놈들은 각오해라.”
“예! 사범님!”
태완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일제히 목청이 터져라 합창을 했다.
연무가 시작되었고, 태완은 나이 어린 수련생들의 자세를 잡아주며 도장 안을 맴돌았다.
“차성아, 아무리 봐도 난 놈이다.”
“형님, 그렇지만 하도 애 같지 않아서 징그럽기도 한 녀석입니다.”
“후후후, 그렇기는 하지. 8년 동안 합기도와 특공무술을 수련하면서 사범 자격이 될 정도의 단을 딴 녀석이니 말이야.”
“분명 무투가로서 천재적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후후후, 속을 알 수 없어서 그런 거냐?”
“인국이 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녀석만큼이나 속을 알기 어려운 것은 저 나이 또래에는 없는 겁니다.”
“그래도 눈빛을 맑지 않느냐?”
“그렇기는 하지요.”
“요 몇 달 동안은 조금 혼탁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으니 이제는 저 녀석에게 비기를 가르쳐도 될 것 같구나.”
“버, 벌써요?”
차성이 놀라 물었다. 수련을 계속해 왔다지만 이제 태완의 나이가 열두 살밖에는 안 됐기 때문이다.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더구나. 연무에 빠져 완전히 무아지경이 된 것도 전보다 더한 것 같고. 이제는 가르쳐도 되겠다 싶다.”
“형님께서 그렇데 판단을 하셨다니 반대는 하지 않습니다만, 인국이 녀석이 허락을 할까요?”
“그 녀석이 허락을 하지 않을 것 같은가 보구나. 후후후,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것이 인연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인국이 녀석도 저 아이가 그동안 무엇인가 고민을 하고 있었고, 이제는 그것을 풀고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결국은 허락하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인국이에게는 제가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해라. 이제 우리는 그만 올라가 보도록 하자.”
“예, 형님.”
잠시 태완이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 흐른 후 수련 타임이 끝나자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도장을 빠져나갔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지도한 태완은 다음 타임까지 한 시간가량 남아 있었기에 다시 연무를 시작했다.
관장들이 돌아오는 통에 연무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쉬웠기에 마저 끝내기 위해서였다.
류(流), 원(圓), 화(和)로 이어지는 합기도의 원리를 따라 술식들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했고, 태완은 이내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수련이 끝났음을 알고 2층에서 내려오던 두 사람은 태완의 연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성아!”
“예, 형님.”
“저 아이의 연무가 조금 달라진 것 같지 않냐?”
“달라지다니요?”
“저 아이의 손을 잘 봐라.”
“손이요?”
의문을 표시하며 차성은 태완의 손을 바라보았다.
“으음, 조금 달라진 것 같군요.”
동작이 이어지는 내내 손가락들이 기이한 형상을 그리고 있었다.
시작 지점과 끝나는 지점은 술식이 원하는 동작을 따랐지만 중간 과정에서 손가락들이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합기도에서 특공무술에서 없는 동작이었다.
‘저런 동작을 취하면서 흐트러짐이 하나도 없다니 기이한 일이구나. 도대체 저 아이가 그동안 고민해 온 것이 무엇이기에…….’
처음 보았을 때부터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
또래답지 않게 범상치 않은 머리와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았지만 오랜 시간 다듬어진 형을 일부나마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저런 식의 손동작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형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으니 당분간은 간섭하자 마라. 아무래도 자신만의 투로를 개발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벌써요? 이제 수련을 시작한 지 8년밖에 안 됐는데 말입니다.”
“너도 알다시피 저 아이는 우리의 머리로는 잴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그야말로 천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 아니냐.”
“그렇기는 합니다만 벌써 자신만의 형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것은 대종사들이라고 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달리 천재라 칭하는 것이 아니다. 범재의 눈으로 그들을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니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천재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국이의 승낙을 빨리 받아야겠군요?”
“오늘 한 번 만나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태완은 연무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태완의 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것은 놀라움으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연무가 진행되는 동안 무투가로서 오랜 세월 수련해 온 두 사람으로서도 가늠할 수 없는 자질을 가진 태완이었기에 한시 바삐 인국의 승낙을 받아 비기를 전수시킬 생각밖에는 나지 않았다.
태완이 그리는 손동작들은 모두 수인도에 나오는 것들이었다. 주먹과 수도로 적을 타격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수인들이 태완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다.
수인을 그리는 것은 태완이 의식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방학 기간 동안 심력을 쏟으며 익혀왔던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수인을 맺고 있었지만 연무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의 동작처럼 여겨질 정도로 자연스럽게 원래의 동작에 섞여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연무를 끝낸 태완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전신이 시원하구나.’
격렬한 연무로 인해 마음이 편안해진 태완은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답답했던 것이 모두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아이들이 올 시간인데. 계속 연무를 할 생각이냐?”
차성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아닙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봐야겠어요.”
“그렇구나. 아버지에게 내일 좀 보자고 말씀을 드리도록 해라.”
“아버지에게요?”
“그래, 내가 연락을 한다고 말씀드려라.”
“알겠습니다. 아버지께 말씀을 드릴게요.”
“오늘은 수고했다. 이제 그만 가보도록 해라.”
“예, 관장님. 큰 관장님도 내일 뵐게요.”
“그래라. 땀이 많이 나서 냄새가 날 테니 샤워실에 가서 좀 씻고 가거라.”
“예.”
인식하지 못했는데 도복이 완전히 땀에 푹 젖어 있었기에 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이 도장 안으로 들어왔고, 태완은 샤워장으로 가서 몸을 씻고는 옷을 갈아입은 후 도복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3장 뒤늦은 생일 선물


“정말 그거 태완이에게 줄 거야?”
엄지손톱보다 약간 큰 구슬로 만들어진 묵주를 바라보던 인국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아버님이 반드시 태완이에게 주라고 하셨으니 줘야지요.”
“그렇지만…….”
인국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생일 선물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과 아버님 사이의 문제는 태완이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그리고 태완이에게 처음으로 주시는 선물이고요.”
“알았어. 그렇게 하도록 해. 하지만 아버지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마.”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인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런데 말이야. 당신은 괜찮겠어?”
“별거 있나요. 묵주 형태고 종교하고는 상관없는 물건이잖아요. 그리고 태완이가 종교를 정한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럼, 장인어른께서 주신 선물은?”
“아버님께서 주신 묵주에 매달아 봤는데 괜찮아 보였어요. 묵주가 크기는 하지만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고.”
“그러면 됐어. 태완이가 도장에서 오는 대로 주도록 해. 비록 늦은 생일 선물이지만 좋아할 테니까 말이야.”
“알았어요. 여보.”
‘다행이다.’
아들이 운동을 하러 나간 사이에 생전 연락을 하지 않던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밖으로 나가 만난 시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생일 선물이라며 받은 것이 바로 묵주였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물건이지만 아들에게 전해지는 시아버지의 첫 선물이었기에 받아들고 들어왔다.
남편과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시아버지이지만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수아로서는 선물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의 선물이라면 목숨보다 소중한 자신의 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면 남편의 반대였는데 이렇게 잘 넘어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여보, 전 이만 돌아가서 저녁 준비할게요.”
“그래, 얼른 돌아가 봐. 난 이만 올라갈 테니까. 선물은 내가 가면 주도록 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버지에 대해서는 태완이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마.”
“알았어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버지와의 관계가 남편에게는 커다란 트라우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빌딩 1층에 있는 커피숍을 나선 인국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갔고, 수아는 밖으로 나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