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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식물인간처럼 의식을 잃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며 오열하던 수아는 고개를 들어 남편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린 것인지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여보! 태완이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아내의 오열과 재촉에도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인국은 묵묵부답 얼굴만 굳히고 있었다.
“흑흑흑, 이제 시댁으로 가는 길밖에는 없어요. 그 길만이 우리 태완이를 살릴 수 있어요. 여보!”
태완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시댁으로 돌아가는 것뿐임을 알기에 수아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생때같은 아들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내의 말에 고민하던 인국이 입을 열었다.
“그럴 수는 없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온 나요. 그 지긋지긋한 곳에서 말이오. 멸시와 조롱밖에 없는 그곳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밤을 타 도망을 친 나란 말이요.”
아내인 수아에겐 더할 나위 없는 모진 소리였기에 인국은 입술을 깨물었다.
“흐흑! 하지만 여보, 우리 태완이가 죽어요. 저렇게 앙상하게 말라죽는다는 말이에요. 의사들은 가망이 없대요. 며칠 있지 않아서 우리 태완이가…… 우리 태완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지 모른다는 말이라고요. 제발! 시댁으로 가요. 여보! 제발…… 흑흑흑!”
수아는 인국을 잡아 흔들며 인국을 재촉했다. 두 눈 가득 흐르는 눈물이 인국의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왜 그곳을 뛰쳐나왔는지 잘 알지 않소. 무당의 자식이란 굴레 아닌 굴레! 어딜 가나 그 굴레는 나를 놓아주지를 않았소. 경멸과 멸시로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들이 싫어 집을 나온 후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소. 도망치는 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시며 우시던 어머니를 그렇게 모진 결심으로 뿌리치고 나온 나요. 크으으!”
자식이 저리 식물인간이 되어 누어 있는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국이다.
아내의 말대로 한다면 아들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자신의 가문이 보통의 무가라면 벌써 가고도 남았지만 그렇지가 않기에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요.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무당의 자식이니 하는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잖아요. 그렇게 당신을 따르던 태완이란 말이에요. 맛난 거 보면 당신 준다고 챙기던 아이에요. 그렇게 의젓하고 예쁘던 아이가 저렇게 말라죽어 가고 있어요. 여보! 가요. 제발! 시댁으로 가요. 태완이가 죽는다면 저도 살 수가 없단 말이에요. 흑흑흑!”
인국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아는 다시 인국을 재촉했다.
“여보!”
아들을 바라보는 인국의 눈빛이 흔들렸다.
‘어쩌면 수아 말대로 태완이가 죽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크으, 그렇게도 자식에게만은 이런 업보를 물려주지 않으려 했건만…….’
짊어져야 할 업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죽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대로 태완이 명을 달리한다면 따라 죽고도 남을 아내였기에 인국은 모질게 결심했던 것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휴우! 할 수 없구려. 내가 짊어져야 할 업보가 저 아이에게 내려진 것이니 이제는 순리대로 풀 수밖에. 어차피 병원에서도 포기한 아이니 태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갑시다.”
“흑흑흑! 고마워요. 여보! 당신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당신도 나도 우리 태완이보다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무당이라는 멍에가 씌워진다고 해도 태완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자신의 승낙에 흐느껴 울며 기뻐하는 아내였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국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가 않았다.
‘당신은 몰라. 우리 집안에 걸린 운명의 굴레가 뭔지 당신은 진정 모를 것이오.’
이제는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살아난다고 해도 자신에게 씌워진 운명의 굴레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지 않지만 방법이 없었다.
‘태완아. 이제는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너에게는 잔인한 운명의 굴레를 씌우지 않으려 했건만…….’
삐이익!
아내와 아들을 한동안 바라보다 인국은 벽에 달린 인터폰을 눌렀다.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가기 위해 의사들을 부른 것이다.
◈◈◈
퍼퍼퍼퍽!
‘크윽! 일부러 받아들이려니 힘들구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쳐 오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흡수하려 했기에 고통이 매우 컸다.
저릿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그다지 나쁜 상태는 아니었다.
‘다행이 예상대로다.’
의식적으로 흡수하자 상당한 기운이 몸에 머물렀다. 그냥 맞고만 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양이었다.
퍼퍼퍽!
‘크으, 좋다. 그렇게 계속해서 와라.’
태완은 고통을 참으며 거부하는 마음을 풀어 버렸다.
그것이 계기가 된 듯 소나기가 쏟아지듯 미지의 기운들이 태완을 향해 부딪쳐 왔다.
‘한 번 해보자.’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자신의 몸 안에 어느 정도 기운이 쌓였다고 생각한 태완은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금강인과 부동금강결이었다.
티티티티티팅!
달려들던 기운들이 무엇인가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부동금강결에 금강인을 섞어 만들어진 무형의 막이 미지의 존재들을 튕겨내고 있었다.
‘크크크, 된다. 돼!’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보았던 자료들을 나름대로 익힌 후 복합해 만들어낸 것이라 실패할 확률이 높았는데 단번에 성공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몸 안으로 들어온 기운을 끌어다가 썼는데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악몽을 꾸기 시작하면서 금강인이나 금강부동결이 안 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전에 먹히지 않았던 것은 내게 그것을 발동시킬 만한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 확실하다. 좋아. 이제부터는 무조건 흡수하고 본다.’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 기운들을 빼앗을 수도 있다고 확신한 태완은 알게 모르게 거부하던 생각을 버리고 달려드는 기운들을 받아들였다.
“헉!”
콰아아아아아아!
엄청난 기운들이 몸 안에서 일어났다.
받아들인 기운만이 아니었다. 생각을 바꾸는 순간 엄청난 기운이 내부에서 피어오르며 전신에 맴돌았다.
퍼퍼퍼퍽!
기운들이 달려들어 계속해서 충돌했지만 고통은 없었다.
커다란 바다에 당도한 강물처럼 몸 안에서 일고 있는 거대한 힘에 빠져 버렸다. 부딪친 기운들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거대한 하나로 합류하고 있었다.
자신이 세운 가설이 맞아떨어진 것이기에 태완은 한껏 자신을 개방했고, 거대한 포식자가 되었다.
콰르르르르!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태완은 은하의 중심부처럼 커다란 핵이 되었고, 몰려드는 각양각색의 기운들은 핵으로 빨려 들었다가 소용돌이의 흐름이 되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태완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악몽으로 인한 고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달려들던 기운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려드는 것은 멈추지 않았지만 음습하고 기괴한 기운들은 두려워 떨며 복종했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자신에게로 흡수되고 있으니 두려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기운들 말고도 다른 기운들도 나타나 흡수되기 시작했다. 밝고 화사한 기운들도 거대한 은하에 합류에 하나가 되었다.
‘이제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구나.’
거대한 하나가 된 이후 태완은 더 이상 꿈속에 있지 않았다. 병실에 확연히 느껴지는 것을 보면서 현실로 되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꼭 현실이라고는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만 벌어졌던 현상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각종 기운들이 현실에서도 몰려들고 있었다.
비록 꿈속보다는 형체가 흐릿했지만 자신에게 달려들어 흡수되는 것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제는 악몽이 현실인지, 아니면 현실이 악몽인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만 빼놓고 이제는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태완으로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나저나 병실을 나가는 건가?’
몰려드는 기운으로 인해 정신이 없었지만 들을 것은 다 듣고 있었다.
간간이 들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병원을 나가 다른 곳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준비가 끝났어요.”
그동안 자신을 간호해 주었던 김 간호사의 목소리에 태완은 상년에서 벗어났다. 병원을 떠날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네, 저희도 준비가 끝났어요.”
“그럼 옮기겠습니다.”
수아의 말에 남자 간호사 두 사람이 다가와 태완을 이동용 침상으로 옮겼다.
드르르륵!
이동용 침상은 병실을 나섰고, 이내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에는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 간호사,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아니에요. 흑!”
수아의 말에 1년여 동안 돌봐온 태완이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김 간호사가 울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흐느꼈다.
“어, 어서 타세요.”
“잘 있어요.”
김 간호사의 재촉에 수아는 아들이 옮겨진 앰뷸런스에 올라탔다.
탁!
문이 닫히자 인국이 김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김 간호사님, 잊지 못할 겁니다.”
“흑, 잘 가세요.”
“예, 그럼.”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배웅을 하는 김 간호사에 작별 인사를 한 인국은 자신의 차로 향했다. 앰뷸런스를 선도하기 위해서였다.
부르릉!
비상등을 켜고 차가 출발하자 앰뷸런스가 경광등을 켜고 소리도 요란하게 뒤를 따랐다.
삐요! 삐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단 말이지?’
앰뷸런스에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대화를 통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돌아가셨다고 생각되던 할아버지 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궁금증이야 도착하면 풀릴 것이고. 으음, 이거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동안 왜 숨겨왔는지 모르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태완은 아직도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기운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개방한 이후 자신에게 흡수되어 달려드는 숫자가 상당히 줄어들었는데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재미있군. 몰려들면 몰려들수록 내 힘도 강해지니까. 그럼, 그것들이나 한번 시도해 볼까.’
점점 강대해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달려들고 있는 기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태완은 그동안 자신이 정립해 온 것들을 생각했다.
그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효과가 있는 이상 하나하나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주술(呪術)과 부적(符籍), 그리고 각종 인법(印法) 등 초자연 현상과 관련된 것들이 의식만 하면 가능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흠뻑 빠져 있는 동안 서서히 차가 멈추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 왔구나. 여기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집인가? 후후후, 정말 재미있는 곳이구나.’
앰뷸런스 밖의 정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태완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특별한 곳이었다.
지금은 보기 드문 한옥으로 지어진 지 꽤나 오래된 곳인 듯 고색이 창연했다.
‘이제 들어가는구나.’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서 앰뷸런스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탁!
앰뷸런스의 문이 열고 인국이 등을 내밀었다.
“업혀주시오.”
남자 간호사는 미리 언질을 받은 것이 있었기에 태완을 업혀주었다.
“조심하십시오.”
남자 간호사는 앰뷸런스에서 내려서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수아의 작별 인사를 받은 남자 간호사는 앞으로 가 앰뷸런스에 올라탔고 이내 떠났다.
“들어갑시다.”
“그래요. 여보.”
인국은 아들을 업고 집으로 향했다. 수아도 남편과 아들의 뒤를 따랐다.
마음이 불편한 두 사람과는 달리 태완은 주변을 살펴보기 바빴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다르구나.’
아버지 등에 업혀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면서 태완은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핍박하고 있는 것들의 실체가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 영화에 나오는 악마처럼 생긴 수많은 악령이 에워싸고 있었다.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나를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이상하게 실체를 확인했음에도 그리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들이 자신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이상할 뿐이었다.
‘내게 달려들면 흡수되어 버려서 그런 것인가? 이런! 아니로군.’
두려워하는 것도 그것도 잠시였다. 악령들의 뒤에 엄청난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한옥으로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악마들처럼 생긴 모습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뒤에 나타난 것은 실체가 모호한 것들이 이었다. 기운도 상당히 달랐다. 앰뷸런스를 타고 오면서 느꼈던 것들이었다.
기괴하고 두려운 흉측한 모습에 음습한 기운을 가진 악령들과 다르게 모습이 모호하지만 밝고 환한 느낌이 드는 기운들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신령이라는 것들인가?’
상반된 존재들이 한 군데 있었다.
피피피핏!
잠시 지켜보던 밝은 존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악령들도 빠르게 달려들었다.
‘크으, 굉장하다. 기운이 장난이 아니구나.’
두 부류의 존재들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몸에 닿으면 불꽃을 피우며 산화해 버린 후 흡수되어 버리면서도 비집고 들어오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부딪쳐 흡수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기운의 양이 그동안 봐왔던 것들과는 천지 차이였다.
실체를 가진데다가 흡수되며 얼마나 발광을 하는지 정신이 산만해지며 어지러웠다.
또렷했던 의식이 혼몽(混夢)에 싸여 뿌연 안개 속을 떠도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희미하게 보이는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응! 뭐지?’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솟을대문을 넘는 순간 부딪쳐 오던 기운들이 모두 사라졌다. 정확히는 솟을대문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넘어오지 못하고 있구나. 혹시, 이곳에 결계라는 것이라도 쳐진 건가?’
악령과 신령 대분이 둘러쳐진 담장을 넘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들 오는 것인지 계속해서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만 바글거리고 있었다.
몇몇 악령들은 괴성과 험한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악다구니를 부리고 있었다.
‘후후후, 재미있네. 우리 집안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곳인가 보구나.’
결계가 쳐진 한옥이었다. 허름해 보이는데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들이 그 결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작동하는 결계를 보면 집주인이 모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런 건가?’
그동안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태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특별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막을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분들이라면 자랑스러워해도 충분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에게 조부모님의 존재를 숨겨왔다.
‘후후후, 무당 집안이라…… 아마도 그것 때문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알려주시지 않은 것이겠지. 내게 일어난 현상도 우리 집안의 유전일 수도 있을 테고.’
한옥의 분위기나, 결계로 봐서 사람들이 천시하는 무당 집안일 것이 분명했다. 그런 피를 이어받았으니 접신으로 인한 무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대충 이해가 가는구나. 저기 저분은? 으음.’
솟을대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선 후 안채를 지나자 시야가 아닌 다른 것을 보는 것이지만 사람이 보였다.
사당 같아 보이는 곳에 앞에 한복을 곱게 입은 노부인이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후, 저분이 할머님이시구나. 참 포근한 눈빛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이 느끼며 태완은 노부인이 자신의 할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애비가 왔구나.”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말에 인국은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아니다. 이제서라도 돌아왔으면 됐지. 어서 태완이를 안으로 옮기도록 해라.”
혜화는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아들을 다독인 후, 손자인 태완을 사당으로 들이도록 했다.
곧장 문이 열리고 태완은 사당 안에 뉘어졌다.
사방 안은 절에서 볼 법한 모습이었다.
사천왕상이 사방에 자리하고 대자대비하다는 석가모니와 여래불, 그리고 미륵불이 새겨진 탱화가 전면에 걸려 있었다.
‘으음, 여기에 머물고 있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다. 바깥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은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존재감은 없었지만 바깥에서 바글거리고 있는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운이 사당 안에 머물고 있었다.
태완이 사당 안을 살펴보고 있을 때 인국은 어머니인 혜화에게 잘못을 빌고 있었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것은 없다. 이 모두가 우리 집안의 숙명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아가가 태완이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겠구나.”
혜화는 그동안 무병을 앓고 있는 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했을 수아를 위로했다.
“흐흐흑, 어머님.”
“괜찮다. 괜찮아.”
갑자기 터지는 울음에 혜화가 다가와 수아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종교를 가지고 있어 그리 쉬운 결심이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남편을 설득해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혜화가 말했다.
“아가, 태완이가 몸이 많이 상했을 테니 이제부터 안정을 시켜야겠구나.”
“예, 어머님.”
“인국이 너는 아가를 안채에 가서 쉬도록 하고 제법당으로 가서 준비를 하고 오너라.”
“예, 어머니.”
할 말이 많을 법도 하건만 인국은 혜화의 말에 따라 수아를 일으켰다.
“어서 갑시다.”
“예, 여보.”
인국이 바깥으로 나가자 혜화는 바닥에 누운 태완을 바라보았다.
“태완아, 그동안 고생이 많았겠구나. 이 할미가 다 낫게 해줄 테니 염려하지 말거라.”
할머니를 생전 처음 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가까웠던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태완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기분 좋은 나락으로 빠져들 즈음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야, 바라밀다…….”
‘이건?’
들어본 소리였다.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독경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으으음. 좋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독경 소리가 흘러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신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은하처럼 거칠게 휘돌던 기운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멈추며 안정이 되어갔다.
독경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왔고, 안정감은 더욱 깊어갔다.
‘아∼음! 졸리다.’
오랜만에 찾아온 편안함으로 인해 태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