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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 포지션 2
1화
1장 기운을 다스리다
사사사사삭!
태백산 자락에 있는 천절영가를 향해 검은 인영들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너무도 은밀해 그림자를 방불케 했다.
그림자들의 선두에 선자는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었다.
바로 전주의 명령을 받고 음양전을 나섰던 흑좌사였다.
착!
빠르게 앞으로 전진을 하던 흑좌사가 손을 올리자 뒤를 따르던 자들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하나의 동작으로 멈춰 선 것을 보면 상당한 훈련을 거친 자들이 분명했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충분히 심혼영사진(心魂影寫陣)을 펼칠 수 있겠구나.’
바글거리는 악령과 신령들을 바라보는 흑좌사는 눈빛을 빛냈다.
심혼영사진은 주술로 이루어진 사령진(邪靈陣)의 한 갈래다. 다른 사령진들이 악령을 불러내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시전자가 만들어낸 심마를 이용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심마에 의지와 사념을 심은 뒤 악령과 결합해 목적한 바를 이루는 술법이다.
심혼영사진은 한 가지 악독한 면이 있었는데 시전자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흑법사들은 심혼영사진을 펼쳐라.”
사사사삭!
단호한 흑좌사의 명령에 흑법사들이라 불린 이들이 빠르게 산개했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흑법사의 움직임에는 한 점 망설임도 없었다.
흑법사들은 전면에 있는 한옥을 포위하듯 움직인 후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스르르르…….
흑법사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심혼영사진으로 만들어낸 심마였다.
흑법사들의 심마는 곧장 형체를 이루더니 불러낸 악령들을 흡수했다.
―끄아아악!
―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심혼영사진의 의해 만들어진 심마로 인해 힘을 빼앗긴 후 소멸하는 악령들이 흘린 비명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천절영가 주변 악령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의지가 실린 흑법사들의 심마가 날뛰며 태완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악령들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흑법사들이 만들어낸 심마들이 흡수하는 것은 악령뿐만이 아니었다.
악령과 함께 몰려들기 시작한 신령은 물론 천절영가의 주변에 펼쳐진 결계의 기운도 같이 흡수하고 있었다.
한옥 주변이 혼돈에 빠져들었다.
다른 존재들이 소멸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한옥 주변을 벗어나지 않은 채 심마들을 피해 다니는 악령과 신령들이 차례차례 흡수를 당했다.
피해는 악령과 신령뿐만이 아니었다.
심마가 흡수하는 기운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흑법사들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내상을 입은 것인지 입가에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크으으으.”
“으으으.”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탓에 흑법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을 흘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라.”
상황을 지켜보던 흑좌사의 입에서 영력이 실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오, 사이르 카미아…….”
흑좌사의 명령에 흑법사들은 진언을 외우며 최후의 힘을 이끌어냈다.
사아아아아!
연기 같은 것이 흑법사들의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심마로 스며들었다. 심마에 덧씌운 의지 위에 자신의 영혼을 더한 것이다.
휘―이이이이익!
심마에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영혼이 더해진 심마들은 무서운 속도로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천절영가 주변의 기운들을 흡수해 나갔다.
―끼아악!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흑좌사의 귀를 즐겁게 했다.
자신이 준비한 술법이 성공하며 악령과 신령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좌사의 눈빛만은 여전히 싸늘했다. 조심스러운 그의 성격처럼 여전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다.’
심마들은 악령과 신령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기운을 흡수하는 것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흐릿하던 형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초혼지체보다는 못하지만 저런 정도라면 대단히 성공적이다. 조금 있으면 완성될 테지만 안타깝구나. 키우기 쉽지 않은 전력이거늘…….’
자신의 주관하에 펼친 심혼영사진은 음양전에서 보유하고 있는 200여 명 중에서 무려 36명의 흑법사들을 희생시킨 술법이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희생은 감수해야 하지만 전력의 손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각종 귀물과 영물은 물론이고 독초와 영약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음양전의 고위 음양사가 장장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진언을 주입해야 한 명의 흑법사가 탄생한다.
여러 가지 능력은 가지지 못하지만 특화된 능력은 그 어떤 음양사보다 강하기에 상당히 중요한 전력이었다.
음양전의 강대한 힘으로도 키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들이 흑법사들이었다.
상당한 전력을 깎아 먹어야 하는 이상 이번 계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을 해야 했다.
‘어차피 희생은 각오한 일이다. 심마가 저 정도라면 반드시 초혼지체를 차지해야 한다. 반드시!’
흑좌사는 결의를 다지며 날카로운 눈으로 천절영가를 바라보며 주변의 상황을 주시했다.
‘초혼지체에게 펼쳐진 사혼미령(邪混迷靈)으로 인해 이곳을 찾아든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면서 천절영가 주변에 펼쳐진 결계에 서린 기운도 같이 흡수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열리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일이다.
제일 먼저 초혼지체인 태완에게 사혼미령이라는 주술을 펼쳤다. 사혼미령이 발동하게 되면 주술에 걸린 숙주는 자신도 모르게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부르게 된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숙주의 주변을 맴돌게 되는데 술법의 힘으로 인해 사념은 점차 사라지고 기운만 남게 된다.
사념이 남아 있다면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나름 순수한 존재로 변해 버린 기운들은 사혼미령의 힘에 강력하게 이끌리게 된다.
기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숙주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가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사혼미령으로 인해 기운들은 하나로 뭉쳐지고 종내에는 아주 거대한 것으로 변하게 된다.
사혼미령을 펼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다.
음양사 중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는 이렇게 합쳐진 기운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운으로 합치는데 긴 시간이 걸리고, 흡수하기 위해서는 참혹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술법이다.
다른 술법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이 초자연적인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뭉쳐진 기운의 크기만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사혼미령으로 인해 얻은 기운들은 음양사들의 실력을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태완을 숙주로 이용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보통 감응력이 뛰어난 영능력자의 경우 최고 100개의 기운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데 태완은 달랐다. 초혼지체라 불리는 특별한 몸은 뭉칠 수 있는 개체가 무한에 가까웠던 것이다.
음양전에서는 태완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사혼미령을 펼쳤다.
이를 주관한 자가 흑좌사였는데 사혼미령을 펼치기 위해 세 사람의 영혼이 제물로 받쳐졌고, 거의 1년에 걸쳐 주술이 완성이 되어 이제 수확을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털썩!
흑법사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심혼영사진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채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심마가 흡수하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기운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아서 천절영가의 결계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상황을 지켜보는 흑좌사의 눈매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계획했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흑법사들은 심혼영사진에 이어 사혼미령과 비슷한 술법을 펼쳤다.
태완에게 펼쳐진 것과는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뿌리가 같은 것이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술법이다.
술법을 편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하나는 초혼지체가 흡수하지 못하는 악령과 신령을 흡수해 강력한 기운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절영가의 결계를 깨트리는 것이다.
사념과 의지가 사라진 기운을 흡수하면서 결계를 이루는 기운들도 함께 흡수할 수 있게 되는데 기운이 완전히 떨어지면 결계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명계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어디선가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반수 이상의 흑법사들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는 악령과 신령의 수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으음, 너무 많다. 사혼미령을 펼치기 전에 예상한 것보다도 최소한 열 배가 넘는다. 이렇게 많으니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털썩!!
심마를 끌어내 악령과 신령의 기운을 흡수하던 흑법사 중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쓰러지며 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제길, 결국은 결계를 깨지 못했구나.’
자신의 염려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워낙 많아 흑법사들이 결계를 유지하는 기운을 흡수하는 것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것이지? 벌써 중단이 되어야 하는데…….’
흑좌사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흑법사들이 쓰러진 이상 심혼영사진이 중단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흑법사들이 남긴 심마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고,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기운으로 변해 버려야 하는데 영혼과 의지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니…….’
흑좌사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고 있는 심마는 영혼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육신이 죽은 이상, 영혼과 의지는 사라지고 기운만 남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멀쩡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가 개입을 했다는 것인데…….’
흑법사의 심마가 흡수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었다. 많아야 100여 개의 개체만 흡수가 가능한데 그렇지 않았다.
영혼과 의지를 유지한 채 마치 블랙홀처럼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있었다. 술법이 변형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천절영가 주변에 펼쳐진 결계로 인한 기운도 빠르게 흡수해 점차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천절영가의 결계가 깨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결계가 사라진다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초혼지체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직 결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흑법사들이 심마로 만들어낸 기운들부터 회수해야 한다.’
심마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흑좌사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초혼지체만큼이나 흑법사들이 흡수한 기운들도 중요했다.
흑법사들의 죽음으로 인해 심각한 전력의 손실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들의 심마가 남긴 기운들이라면 까먹은 전력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자신의 능력에 버금가는, 아니, 훨씬 능가하는 음양사들을 양성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니?’
회수할 때를 기다리며 심혼영사진을 이루고 있는 기운들을 살펴보던 흑좌사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심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점차 천절영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콰득!
흑좌사는 황급히 자신의 검지를 으스러트릴 듯 깨물어 피를 낸 후 허공에 뿌렸다.
“혈사천망령(血嗣天網令)!”
흑좌사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과 함께 허공에 뿌려진 핏물은 핏빛 안개로 변했다. 피에 영력을 담아 기운을 가두는 주술이 펼쳐진 것이다.
“크으윽!”
심마들이 만들어낸 기운을 주술로 잡아놓자마자 흑좌사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까지 끌려 들어간다.”
끌어당기는 힘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영력을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이지 무서운 힘이다. 역시, 천절영가라는 말인가? 이런 무서운 함정을 만들어 놓다니.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로구나. 크으, 이대로 있다가는 나까지 당한다.’
심마를 끌어당기는 인력이 작용하는 중심부에 가공할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 흑좌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가문들 중 최고로 치는 천절영가가 준비한 함정이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크으, 해(解)!”
흑좌사는 다급히 혈사천망령을 풀었다.
“헉! 헉!”
자신이 느꼈던 공포의 기운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흑좌사는 숨을 헐떡였다.
“크으, 잠깐이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영력을 반이나 빼앗겼구나.”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절영가의 중심부에서 휘돌고 있는 기운과 찰나의 시간 동안 이어진 것에 불과했는데 가지고 있는 힘 중 반이나 빼앗겨 버린 것이다.
“제길, 이번 계획은 실패다. 어서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준비한 계획이 실패한 이상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가주가 실종된 상태에서도 이런 가공할 함정을 준비한 것을 보면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가진 힘 중 반이나 빼앗긴 상태였다.
어떤 다른 함정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는 이상, 피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
태완이 평온함에 안주해 있던 것도 잠시였다.
자신을 중심으로 기운들이 은하처럼 휘돌던 현상이 다시 나타나자 태완은 정신이 어지러웠다.
‘으음, 또 시작인가? 어지럽네. 정신을 잃으면 끝장이다.’
태완은 정신을 찾으려 애를 썼다.
‘지금 휘돌고 있는 기운들을 제어해야 한다.’
애써 전신을 가다듬으며 몸속을 휘돌고 있는 기운을 제어하려고 했다.
‘효, 효과가 있다.’
의지가 일자 휘돌던 기운이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저 무기력하기만 하던 몸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효과가 있다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는데 자신의 방법이 효과가 있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완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집중했다. 혼미해 가는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기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픔을 남긴 채 이대로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으, 할머니가 힘을 쓰시는 것 같은데도 흡수되는 기운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간힘을 내며 버티고 있는데 쉽지가 않았다.
서서히 제어가 되어 가던 기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밀려와 흡수되는 기운들로 인해 다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독경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최후의 방법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팽이가 서 있는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돌려보자.’
의지만으로 제어가 되지 않자 태완은 마지막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은하 모양을 하고 있는 기운의 회전 속도를 의식적으로 높이기로 한 것이다.
우우우우웅!
의지가 일자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태완의 몸에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블랙홀이 따로 없었다.
천절영가를 넘어온 악령과 신령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기운으로 화해 태완에게로 빨려들었다.
‘서, 성공이다.’
혼미해지던 의식이 점차 돌아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면서 주변에 있는 기운들을 흡수하는데도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기운을 제어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몸이 온전히 돌아오지는 않는구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는 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디냐. 이제는 어떤 존재도 나를 괴롭힐 수 없게 됐으니,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자.’
자신이 이제 악몽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던 태완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비록 자신의 육체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을지라도 언젠가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1화
1장 기운을 다스리다
사사사사삭!
태백산 자락에 있는 천절영가를 향해 검은 인영들이 빠르게 다가서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이들은 너무도 은밀해 그림자를 방불케 했다.
그림자들의 선두에 선자는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었다.
바로 전주의 명령을 받고 음양전을 나섰던 흑좌사였다.
착!
빠르게 앞으로 전진을 하던 흑좌사가 손을 올리자 뒤를 따르던 자들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하나의 동작으로 멈춰 선 것을 보면 상당한 훈련을 거친 자들이 분명했다.
‘저 정도의 양이라면 충분히 심혼영사진(心魂影寫陣)을 펼칠 수 있겠구나.’
바글거리는 악령과 신령들을 바라보는 흑좌사는 눈빛을 빛냈다.
심혼영사진은 주술로 이루어진 사령진(邪靈陣)의 한 갈래다. 다른 사령진들이 악령을 불러내 이용하는 것과는 달리 시전자가 만들어낸 심마를 이용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심마에 의지와 사념을 심은 뒤 악령과 결합해 목적한 바를 이루는 술법이다.
심혼영사진은 한 가지 악독한 면이 있었는데 시전자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다.
“흑법사들은 심혼영사진을 펼쳐라.”
사사사삭!
단호한 흑좌사의 명령에 흑법사들이라 불린 이들이 빠르게 산개했다.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흑법사의 움직임에는 한 점 망설임도 없었다.
흑법사들은 전면에 있는 한옥을 포위하듯 움직인 후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스르르르…….
흑법사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심혼영사진으로 만들어낸 심마였다.
흑법사들의 심마는 곧장 형체를 이루더니 불러낸 악령들을 흡수했다.
―끄아아악!
―끼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심혼영사진의 의해 만들어진 심마로 인해 힘을 빼앗긴 후 소멸하는 악령들이 흘린 비명 소리였다.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에 천절영가 주변 악령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의지가 실린 흑법사들의 심마가 날뛰며 태완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악령들을 무차별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흑법사들이 만들어낸 심마들이 흡수하는 것은 악령뿐만이 아니었다.
악령과 함께 몰려들기 시작한 신령은 물론 천절영가의 주변에 펼쳐진 결계의 기운도 같이 흡수하고 있었다.
한옥 주변이 혼돈에 빠져들었다.
다른 존재들이 소멸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한옥 주변을 벗어나지 않은 채 심마들을 피해 다니는 악령과 신령들이 차례차례 흡수를 당했다.
피해는 악령과 신령뿐만이 아니었다.
심마가 흡수하는 기운으로 인해 충격을 받은 흑법사들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내상을 입은 것인지 입가에 피까지 흘리고 있었다.
“크으으으.”
“으으으.”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탓에 흑법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음을 흘렸다.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라.”
상황을 지켜보던 흑좌사의 입에서 영력이 실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오, 사이르 카미아…….”
흑좌사의 명령에 흑법사들은 진언을 외우며 최후의 힘을 이끌어냈다.
사아아아아!
연기 같은 것이 흑법사들의 정수리에서 빠져나와 심마로 스며들었다. 심마에 덧씌운 의지 위에 자신의 영혼을 더한 것이다.
휘―이이이이익!
심마에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영혼이 더해진 심마들은 무서운 속도로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천절영가 주변의 기운들을 흡수해 나갔다.
―끼아악!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흑좌사의 귀를 즐겁게 했다.
자신이 준비한 술법이 성공하며 악령과 신령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좌사의 눈빛만은 여전히 싸늘했다. 조심스러운 그의 성격처럼 여전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방심은 금물이다.’
심마들은 악령과 신령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기운을 흡수하는 것 때문에 영향을 받는 것인지 흐릿하던 형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초혼지체보다는 못하지만 저런 정도라면 대단히 성공적이다. 조금 있으면 완성될 테지만 안타깝구나. 키우기 쉽지 않은 전력이거늘…….’
자신의 주관하에 펼친 심혼영사진은 음양전에서 보유하고 있는 200여 명 중에서 무려 36명의 흑법사들을 희생시킨 술법이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기에 희생은 감수해야 하지만 전력의 손실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각종 귀물과 영물은 물론이고 독초와 영약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음양전의 고위 음양사가 장장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진언을 주입해야 한 명의 흑법사가 탄생한다.
여러 가지 능력은 가지지 못하지만 특화된 능력은 그 어떤 음양사보다 강하기에 상당히 중요한 전력이었다.
음양전의 강대한 힘으로도 키우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들이 흑법사들이었다.
상당한 전력을 깎아 먹어야 하는 이상 이번 계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을 해야 했다.
‘어차피 희생은 각오한 일이다. 심마가 저 정도라면 반드시 초혼지체를 차지해야 한다. 반드시!’
흑좌사는 결의를 다지며 날카로운 눈으로 천절영가를 바라보며 주변의 상황을 주시했다.
‘초혼지체에게 펼쳐진 사혼미령(邪混迷靈)으로 인해 이곳을 찾아든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면서 천절영가 주변에 펼쳐진 결계에 서린 기운도 같이 흡수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열리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일이다.
제일 먼저 초혼지체인 태완에게 사혼미령이라는 주술을 펼쳤다. 사혼미령이 발동하게 되면 주술에 걸린 숙주는 자신도 모르게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부르게 된다.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숙주의 주변을 맴돌게 되는데 술법의 힘으로 인해 사념은 점차 사라지고 기운만 남게 된다.
사념이 남아 있다면 그렇게 될 리는 없겠지만 나름 순수한 존재로 변해 버린 기운들은 사혼미령의 힘에 강력하게 이끌리게 된다.
기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숙주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가서 자리 잡게 된다.
이때 사혼미령으로 인해 기운들은 하나로 뭉쳐지고 종내에는 아주 거대한 것으로 변하게 된다.
사혼미령을 펼치는 이유는 바로 이런 특성으로 인해서다.
음양사 중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는 이렇게 합쳐진 기운을 흡수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운으로 합치는데 긴 시간이 걸리고, 흡수하기 위해서는 참혹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술법이다.
다른 술법에 비해 부작용이 거의 없이 초자연적인 기운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뭉쳐진 기운의 크기만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사혼미령으로 인해 얻은 기운들은 음양사들의 실력을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태완을 숙주로 이용한 것도 이유가 있었다.
보통 감응력이 뛰어난 영능력자의 경우 최고 100개의 기운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데 태완은 달랐다. 초혼지체라 불리는 특별한 몸은 뭉칠 수 있는 개체가 무한에 가까웠던 것이다.
음양전에서는 태완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후 철저한 준비를 거쳐 사혼미령을 펼쳤다.
이를 주관한 자가 흑좌사였는데 사혼미령을 펼치기 위해 세 사람의 영혼이 제물로 받쳐졌고, 거의 1년에 걸쳐 주술이 완성이 되어 이제 수확을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털썩!
흑법사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심혼영사진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채 하나둘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심마가 흡수하는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기운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아서 천절영가의 결계가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상황을 지켜보는 흑좌사의 눈매가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계획했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흑법사들은 심혼영사진에 이어 사혼미령과 비슷한 술법을 펼쳤다.
태완에게 펼쳐진 것과는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뿌리가 같은 것이라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술법이다.
술법을 편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다.
하나는 초혼지체가 흡수하지 못하는 악령과 신령을 흡수해 강력한 기운을 만드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절영가의 결계를 깨트리는 것이다.
사념과 의지가 사라진 기운을 흡수하면서 결계를 이루는 기운들도 함께 흡수할 수 있게 되는데 기운이 완전히 떨어지면 결계는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명계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어디선가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반수 이상의 흑법사들이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 있는 악령과 신령의 수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으음, 너무 많다. 사혼미령을 펼치기 전에 예상한 것보다도 최소한 열 배가 넘는다. 이렇게 많으니 유지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털썩!!
심마를 끌어내 악령과 신령의 기운을 흡수하던 흑법사 중 마지막으로 남은 자가 쓰러지며 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제길, 결국은 결계를 깨지 못했구나.’
자신의 염려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워낙 많아 흑법사들이 결계를 유지하는 기운을 흡수하는 것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멈추지 않는 것이지? 벌써 중단이 되어야 하는데…….’
흑좌사의 눈에 의문이 스쳤다.
흑법사들이 쓰러진 이상 심혼영사진이 중단되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흑법사들이 남긴 심마는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고,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냥 평범한 기운으로 변해 버려야 하는데 영혼과 의지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니…….’
흑좌사의 의문은 점점 커져만 갔다.
악령과 신령을 흡수하고 있는 심마는 영혼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육신이 죽은 이상, 영혼과 의지는 사라지고 기운만 남아야 하는데 아직까지 멀쩡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는 것은 누군가가 개입을 했다는 것인데…….’
흑법사의 심마가 흡수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었다. 많아야 100여 개의 개체만 흡수가 가능한데 그렇지 않았다.
영혼과 의지를 유지한 채 마치 블랙홀처럼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있었다. 술법이 변형되지 않는 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천절영가 주변에 펼쳐진 결계로 인한 기운도 빠르게 흡수해 점차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천절영가의 결계가 깨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결계가 사라진다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초혼지체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였다.
‘아직 결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흑법사들이 심마로 만들어낸 기운들부터 회수해야 한다.’
심마들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의 기운을 흡수하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흑좌사는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초혼지체만큼이나 흑법사들이 흡수한 기운들도 중요했다.
흑법사들의 죽음으로 인해 심각한 전력의 손실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들의 심마가 남긴 기운들이라면 까먹은 전력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았다.
자신의 능력에 버금가는, 아니, 훨씬 능가하는 음양사들을 양성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도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아니?’
회수할 때를 기다리며 심혼영사진을 이루고 있는 기운들을 살펴보던 흑좌사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심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점차 천절영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콰득!
흑좌사는 황급히 자신의 검지를 으스러트릴 듯 깨물어 피를 낸 후 허공에 뿌렸다.
“혈사천망령(血嗣天網令)!”
흑좌사의 입에서 터져 나온 외침과 함께 허공에 뿌려진 핏물은 핏빛 안개로 변했다. 피에 영력을 담아 기운을 가두는 주술이 펼쳐진 것이다.
“크으윽!”
심마들이 만들어낸 기운을 주술로 잡아놓자마자 흑좌사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가,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까지 끌려 들어간다.”
끌어당기는 힘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영력을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말이지 무서운 힘이다. 역시, 천절영가라는 말인가? 이런 무서운 함정을 만들어 놓다니.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로구나. 크으, 이대로 있다가는 나까지 당한다.’
심마를 끌어당기는 인력이 작용하는 중심부에 가공할 힘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파한 흑좌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신력을 사용할 수 있는 가문들 중 최고로 치는 천절영가가 준비한 함정이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크으, 해(解)!”
흑좌사는 다급히 혈사천망령을 풀었다.
“헉! 헉!”
자신이 느꼈던 공포의 기운으로부터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흑좌사는 숨을 헐떡였다.
“크으, 잠깐이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영력을 반이나 빼앗겼구나.”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절영가의 중심부에서 휘돌고 있는 기운과 찰나의 시간 동안 이어진 것에 불과했는데 가지고 있는 힘 중 반이나 빼앗겨 버린 것이다.
“제길, 이번 계획은 실패다. 어서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준비한 계획이 실패한 이상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가주가 실종된 상태에서도 이런 가공할 함정을 준비한 것을 보면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자신이 가진 힘 중 반이나 빼앗긴 상태였다.
어떤 다른 함정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는 이상, 피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
태완이 평온함에 안주해 있던 것도 잠시였다.
자신을 중심으로 기운들이 은하처럼 휘돌던 현상이 다시 나타나자 태완은 정신이 어지러웠다.
‘으음, 또 시작인가? 어지럽네. 정신을 잃으면 끝장이다.’
태완은 정신을 찾으려 애를 썼다.
‘지금 휘돌고 있는 기운들을 제어해야 한다.’
애써 전신을 가다듬으며 몸속을 휘돌고 있는 기운을 제어하려고 했다.
‘효, 효과가 있다.’
의지가 일자 휘돌던 기운이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저 무기력하기만 하던 몸에도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효과가 있다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길 수도 있다.’
병원에 있을 때만 해도 죽음을 생각했는데 자신의 방법이 효과가 있자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완은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집중했다. 혼미해 가는 정신을 붙잡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았기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아픔을 남긴 채 이대로 떠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크으, 할머니가 힘을 쓰시는 것 같은데도 흡수되는 기운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간힘을 내며 버티고 있는데 쉽지가 않았다.
서서히 제어가 되어 가던 기운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지막지하게 밀려와 흡수되는 기운들로 인해 다시 요동을 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독경 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최후의 방법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팽이가 서 있는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돌려보자.’
의지만으로 제어가 되지 않자 태완은 마지막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은하 모양을 하고 있는 기운의 회전 속도를 의식적으로 높이기로 한 것이다.
우우우우웅!
의지가 일자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태완의 몸에서 진동음이 흘러나왔다.
블랙홀이 따로 없었다.
천절영가를 넘어온 악령과 신령들이 순식간에 하나의 기운으로 화해 태완에게로 빨려들었다.
‘서, 성공이다.’
혼미해지던 의식이 점차 돌아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면서 주변에 있는 기운들을 흡수하는데도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기운을 제어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몸이 온전히 돌아오지는 않는구나.’
몸에 힘이 들어가지는 했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디냐. 이제는 어떤 존재도 나를 괴롭힐 수 없게 됐으니, 일단은 그것으로 만족하자.’
자신이 이제 악몽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었던 태완은 지금 상황에 만족하기로 했다.
비록 자신의 육체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을지라도 언젠가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