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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산 위에서 계곡 안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고택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선풍도골의 모습인 두 사람은 고택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주변에 어려 있는 기운이 심상치가 않았다.
사실 인상을 찡그린 채 고택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은 인간이 아니었다.
고택의 안과 밖에 가득 찬 귀체와 영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은 사람들이 꿈에서나마 보고 싶어 하는 산신과 수신이었다.
그들은 고택이 위치해 있는 태백산의 신령이 아니다.
태백산도 영험하기로 소문난 산이지만 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금강산에 거처를 정하고 있는 신령들이었다.
자신들로는 어쩔 수 없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두 지령신(地靈神)은 자신들이 데려갈 태완이 머물고 있는 한옥을 바라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택을 바라보는 두 지령신의 기분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짜증이 역력히 묻어 있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공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보고 있었던 것은 흑좌사와 흑법사들이었다.
“저 새끼들 지랄을 하더니 이게 끝이군.”
전신에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이가 한심한 어투로 말했다. 물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환(水環)이었다.
“지랄을 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같다.”
몸에 금빛 기운이 감도는 금령(金鈴)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혼영사진이 만들어낸 심마들이 이상한 존재로 변한 뒤에 안으로 빨려 들어가 소멸해 버린 것을 느낀 수환도 상황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저놈은 그냥 놔두는 거냐?”
“그냥 놔둔다. 그놈에게 부탁받은 것은 저 안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것뿐이니까.”
“하긴 그렇지. 그런데 저 아이가 맞는 거지?”
“으드득! 그래, 맞는 거 같다.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우리 집을 차지해 버린 그 싸가지 없는 어린놈의 말대로라면 말이다.”
뭐가 그리 화가 나는지 금령이 이를 갈며 대답했다.
“그만해라. 그러다가 이빨 상한다. 그나저나 금령아, 이제 어떻게 하냐? 펼쳐진 술법이 워낙 강력해서 너나 나나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어느새 차분해진 금령도 걱정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펼쳐져 있는 결계가 무너지기가 무섭게 얼마 있지 않아 새로운 결계가 형성이 되었다. 생명력을 담보로 펼치는 의식 결계였기에 이대로 진입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데리고 오는 시간이 늦었다고 그 새끼가 돌아 버리면 그나마 있던 집도 잃고 밖으로 쫓겨난단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좀 해봐라.”
수환의 말에 금령이 인상이 일그러졌다.
“수환아, 말은 바로 해라. 그게 내 집이지 네 집이냐? 셋방 사는 주제에. 쫓겨나는 거는 나고 넌 그냥 덤으로 붙어살다 방 비워 주는 거잖아!”
“이 자식이 치사하기는, 걱정이 되서 한 말인데 지금 셋방 산다고 구박하는 거냐?”
이제는 같은 처지이면서 소유권을 따지는 금령에게 열이 받은 수환이 눈을 부라렸다.
“그래, 알았다. 이젠 그만하자. 다퉈 보았자 우리만 손해니까.”
무척이나 오래된 논쟁이었기에 금령은 수환을 향해 손사래를 쳤다. 다투기 보다는 지금은 빼앗긴 집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에 수환도 곧바로 수긍을 했다.
“그래. 그만하자.”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놈이 말한 대로 안 했다간 그야말로 길거리로 나앉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수환과 금령은 방법을 찾으러 고민에 빠져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방법이 없네.”
“그러게.”
이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제길! 그 새끼 때문에.”
“정말 지랄 같은 놈이지.”
으드득!
빠드득!
자신들이 터전으로 삼고 있는 곳을 무단으로 점거한 자를 생각하면 자신들도 모르게 이가 갈렸다.
“씹어 먹을 놈!”
“갈아 마실 놈!”
수환과 금령은 동시에 욕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그 어린놈 부탁을 빨리 들어줘야 구박을 덜 받을 텐데 걱정이다.”
욕을 해 가슴이 조금 시원하기는 했지만 수환은 후환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어쩌다 우리가 그 인간에게 엮여가지고는 이런 모양이라니.”
자신의 터전을 점거한 화영을 생각하니 또다시 이가 갈리는 금령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한숨만을 삼켜야 했다.
“휴우, 팔자가 박복해서 그런다고 생각하자. 전생에 무슨 원수를 진 것도 아니고 그 어린놈이 하필이면 우리가 기거하는 곳에서 뒤질게 뭐냔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내가 금강산을 물려받은 게 이제 겨우 삼천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냔 말이다.”
금강산의 전대 산신령에게 천상계 선녀 하나를 소개시켜 주고 어렵사리 얻은 자리였다. 이제 인간에게 자신의 터전을 빼앗긴 터라 체면을 구길 대로 구긴 금령이 다시 한 번 울분을 토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어린 놈 영력(靈力)이 오죽이나 강해야 말이지. 아무리 능력이 큰 영술사라도 일단 육탈을 하면 영체가 생성될까 말까한데. 금방 죽은 놈이 그렇게 변하다니 말이다. 지령신이 된다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천 년에 하나 나타날까 말까 하는 호국신(護國神) 급이 되어 버리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거야 상대가 돼야 어떻게 해보기나 하지 말이야!”
“에고, 수환아. 그 어린놈이 행패 부린 거 못 봤냐? 그놈을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는 넌 그나마 어렵게 꿰차고 있는 수령신(水靈神) 자리도 보존하지 못하고 영계를 떠도는 도깨비가 될 수도 있어. 인마!”
자신들을 이곳으로 오게 만든 존재의 무서움을 알기에 금령은 수환에게 섣불리 행동하지 말기를 권했다.
“하긴 그놈이 그 성질에 오죽하겠냐. 전에 멀리서 봤을 때도 그리 기가 세더니만 거기다 이젠 육탈(肉脫)까지 하고 거의 호국신을 넘어 천신급에 육박하는 영력을 갖고 있으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그나저나 저놈들이 점점 더 폭주하는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같이 있다가 호되게 당했던 수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집을 무단으로 점거한 자는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힘이 없는 이의 비극이었다.
이대로 집마저 빼앗기면 오도 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이곳으로 오게 한 이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휴우!”
“에효!”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수환아, 저기서 발광하는 놈들부터 막아야 할 것 같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령이 발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 아이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리도 귀체와 영체들이 날뛰는 거냐?”
수환은 고택 주변을 맴도는 수많은 존재들을 미쳐 날뛰게 만드는 태완에 대해 궁금증이 이는 듯 금령을 바라보았다.
“공부 좀 해라! 공부 좀! 공부해서 남한테 주냐? 저 아이가 바로 혼을 부르는 초혼지체(招魂之體) 아니냐. 넌 그것도 모르고 어떻게 신령 생활을 할 수 있는 거냐?”
금령이 수환을 타박했다.
“초혼지체?”
금령의 타박에도 호기심이 인 수환이 의문을 표시했다. 초혼지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애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수환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보이자 금령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자식이!!”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금령을 보자 수환은 부아가 치밀었다. 금령의 눈빛은 자신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환의 기세가 확연히 변하자 금령은 황급히 말을 이어 나갔다.
“수환아, 초혼지체는 결코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잘못하면 세상이 멸망으로 치달을 수도 있으니까.”
“세상이 멸망해?”
금령의 심각한 어조에 수환은 방금 전 화를 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다시 호기심을 드러냈다.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이건 나에게 금강산을 물려준 그 좀팽이가 알려준 건데, 전에 딱 한 번 초혼지체라는 것이 인간 세상에 나타났었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 해줬지만 그것 때문에 세상이 한 번 뒤집어질 뻔했었나 봐. 그때 당시 초혼지체를 타고난 아이의 나이가 겨우 열 살이었는데 말이야. 그 아이가 가진 능력 때문에 천계와 명계 할 것 없이 발칵 뒤집혀 가지고 그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장장 일만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고 하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런 거냐?”
“너도 자세한 것은 몰라. 하지만 그 좀팽이가 얘기한 것으로 봐서는 차원이 붕괴될 정도까지 간 것 같더라.”
“도대체 초혼지체가 뭐기에…….”
“말 그대로 혼을 불러들이는 신체다.”
“혼을 불러들이다니, 도대체 무슨 말이냐?”
“설명하자면 길다.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지금은 인간 세상에 발휘할 수 있는 힘이 한정되어 있지만 저 아이를 통해서라면 모든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 귀계나 천계는 물론이고 그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 그 말이 정말이냐? 각 계 간의 격차를 지우는 존재라는 것이 말이야.”
“그래, 어쩌면 차원 간의 격차도 줄일지 모른다.”
금령은 수환의 반문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수환도 그때서야 초혼지체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금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칫 정말 세상이 파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굉장한 아이로군. 영체나 귀체가 저리 달려드는 것도 이해가 가고.”
“그래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들은 미치고 환장하지. 하지만 초혼지체도 약점은 있다. 바로 수명이 좀 짧다는 게 문제지”
“수명이 짧아?”
“모르긴 해도 열두 살을 넘기긴 힘들지 아마!”
“왜 그런데?”
“저길 봐라.”
수환의 반문에 금령은 손을 들어 고택을 가리켰다.
수환의 눈에는 수많은 귀체와 영체가 서로 간에 다투며 고택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들이 보였다.
“어느 한쪽이라면 몰라도 저렇게 영체와 귀체가 번갈아 가며 아이를 괴롭히니 어린 나이에 정신이 견뎌내겠냐? 지금까지는 염사의 결계라도 있었으니 그나마 견뎌낸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저 아인 벌써 정신이 붕괴돼서 명계에 신고하러 갔을 거다.”
“그렇구나!”
금령의 말을 들은 수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붕괴되어 버린다면 아무리 영체와 귀체라 할지라도 초혼지체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식이 그런 조건을 내건 것이다. 자신에게 저 아이를 데려다 달라고 말이야.”
“그렇다고 오래 살 수 있을까? 막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말이야.”
“그야, 모르지. 우리 같은 존재도 단박에 패대기칠 수 있는 놈이니 뭔가 방법이 있어서 그런 조건을 내건 거겠지.”
고택을 바라보는 금령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자신들이 꼼짝도 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방법이 없었다면 이런 일도 시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침범하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존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귀체와 영체들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방법만 있다면 태완이 어떤 존재로 변화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따를 수밖에 없으니 원하는 대로 해주자. 그나저나 이대로라면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큰일이구나.’
고풍스러운 한옥 주위에는 지금도 온갖 귀체와 영체들이 날뛰고 있었다. 그들을 막고 있는 것은 영기의 그물이었다.
한동안 안으로 몰려 들어가더니 이제는 영기의 그물로 인해 막혀 있는 상태였다.
약한 것들은 한옥을 은은하게 금색 빛을 내며 사방을 덮고 있는 그물 같은 것에 걸리어 괴로워하고 있었고, 강한 것들은 기회를 엿보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저 정도면 우리에게도 타격을 준다. 힘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천절영가 주위로 펼쳐져 있는 것은 일종의 결계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지만 귀체와 영체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다.
그것은 수환과 금령도 마찬가지였기에 약해지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카아아아악!
천절영가에 머물고 있는 태완이라는 아이를 차지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귀체와 영체들이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폭주할지도 모를 정도로 광포했다.
“귀체와 영체들이 폭주하기 시작하면 천계의 천장이라도 막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게 적어도 두세 배는 강해진 것 같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압력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다.”
폭주를 하지 않았는데도 태완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서인지 귀체와 영체에서 발산되고 있는 힘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금령아, 저렇게 증폭하는 힘을 견고하게 막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식에 생각하고 있는 방법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정말 그렇다면 무서운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겠지. 초혼지체가 여기서 살아남는다면 저기 보이는 귀체나 영체보다 더 강한 존재들을 이 땅에 불러들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인과율이 틀어지고 세상이 끝날 수도 있다.”
금령은 태완의 존재가 두려워졌다.
자신의 집을 빼앗은 화영이 초혼지체의 약점을 막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로 유추해 볼 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 세상에 거하고 있는 귀체나 영체는 막을 수 있겠지만 차원을 넘는 존재들까지는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만약 초혼지체를 찾아 차원을 넘을 수 있는 존재들이 이 땅에 찾아오게 된다면 인과율이 틀어져 그야말로 세상이 종말을 고할 수도 있기에 두렵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장 진혼인(鎭魂印)


“금령아, 일단 그분 말씀을 믿자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 그분이 우리에게 허튼소리를 할 양반도 아니고.”
자신의 집을 차지한 화영이 만만치 않은 힘을 가졌지만 수환과 함께 최후를 각오하고 상대한다면 이길 가능성이 있었지만 포기했다.
화영이 무슨 짓을 꾸미든지 도와주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수환이 말대로 금령이 아는 한 부탁을 한 존재는 결코 이 세상을 종말로 몰아갈 존재가 아니었기에 화영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완전하지 않은 데도 저런 정도라면 각 계에서 탐을 낼 만도 하다. 온전한 힘을 구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지 저 아이의 몸이라면 명계, 천상계에 있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탐이 날 거다. 어쩌면 저 아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차원에서 직접 넘어올 수도 있고 말이야.”
천계와 귀계, 그리고 명계는 물론 다른 차원과도 직접 연결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렇게 되면 큰일이겠지. 하지만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으니까 그분께서도 그 자식이 말하는 것을 들어주라고 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염사 결계가 약해지는 것 같으니 저 아이를 좀 더 살펴보자. 저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면 그분이 어떤 뜻으로 우리에게 그 자식의 부탁을 들어주라고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
금령과 수환은 의지를 집중해 천절영가 안에 있는 태완에게 집중했다.
기운이 달리는지 혜화가 펼치는 염사 계통의 결계가 조금씩 약해지고 있어서 태완을 살피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다.
“으음, 그 자식의 말을 들어줘도 괜찮을 것 같다.”
“결론이 난 거냐?”
옆에서 금령의 결정을 지켜보던 수환이 물었다.
“그래, 저 아인 이미 정신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 같다. 조만간 명계로 불려갈 테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냐? 나는 또, 천만다행이네. 한참을 걱정했는데 말이야.”
“정신이 죽는다면 초혼지체도 그다지 염려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초혼지체라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날 테니까 말이다.”
“그럼 이제 데리고 가자.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그냥 그놈에게 저 아이만 데려다주고 우리 집만 찾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 그렇기는 하지만 조만간 명계로 불려갈 아이를 왜 그놈이 데려오라고 하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자신들을 이곳으로 보낸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금령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명운이 끊길 아이라면 데리고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네.”
수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능력을 가졌다면 그놈도 초혼지체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뭔가 방법이 없다면 이렇게 우리에게 시킬 놈이 아니니까. 우리가 정말 저 아이를 그놈에게 데려가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결과가 분명한데도 데려오라고 하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기에 금령은 망설여졌다.
“금령아, 너무 신경 쓸 거 없다. 그분이 우리에게 부탁한 것을 보면 저 위에 계신 높으신 양반들이 알아서 할 일 같으니 우리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우린 그저 집만 도로 찾으면 된다고 말이다.”
“그래, 이럴 때는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겠지.”
금령도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의 집을 점거한 화영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래, 일단 저놈들부터 해결하자.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구나.”
양파가 속을 내보이지 않듯 이번에는 천절영가에서 다른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들은 문제도 되지 않는데 저런 것이 또 우리 발목을 붙잡는구나.’
한옥 주변에는 붉고 푸른 귀기(鬼氣)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귀체들뿐만 아니라 욕망이 지나쳐 폭주한 것인지 영체들도 귀기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