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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일각이 채 못 되어 관량은 기진맥진해지고 말았다.
서화삼괴 또한 기력이 고갈되어 가던 차였지만 관량보다는 그 상태가 나은 편이었다.
이에 서로 병장기를 거두니 관량의 패배였다.
대련이 아니고 전투 상황이었다면 목숨을 잃었으리라.
관량은 삼재진의 위력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부어오른 어깨가 욱신거리며 패배에 대한 비통함 또한 들었으나 문득 무심코 몸속을 관조하자 전신의 공력을 소모한 후 얼마 남지 않은 몸 안의 양의 기운들이 의지대로 제어되어짐이 느껴졌다.
대련이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흘을 계속한다면 대회 날짜에 맞춰 진기를 다스리는 것도 꿈은 아니리라.
네 사람은 누구 하나 말도 없이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운기에 들어갔다. 다시금 대련을 하려면 공력을 회복해야 했음이었다.
한데 운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순 관량에게 살의에 찬 시선이 향하고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녹저였다. 찰나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그것은 무척이나 복수에 차 있었고 또한 악랄한 것이었다.
아직도 관량에게 당한 수모를 잊지 못함인가?
관량은 알지 못했으나 녹저의 이와 같은 복수심은 후에 관량을 위기에 빠지게 하였으니 참으로 악연이 아닐 수 없었다.
호유용의 서재.
찻잔을 마주하고 호유용과 함께 두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내는 불혹(不惑)이 넘어 보이는 자들로 용모가 헌양하였으며 또한 심기가 굳세 보였다.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이다.”
“뜻을 구하려면 어찌 먼 길의 수고를 마다하겠습니까!”
호유용의 말을 받은 자는 눈매가 단정하며 적당히 살이 오른 얼굴에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 자였는데 이자가 바로 대도독부(大都督府)의 장관인 모양(毛羊)이란 자였다.
이 모양이란 자가 명제국 문신들의 수장 격인 자였으니 모양의 가담은 호유용에게는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그 뒤에 앉은 자는 육중형(陸仲亨)이란 자로 그 문장력과 박학다식함으로 널리 이름을 얻고 있었으나 주원장의 폭정으로 관직을 버리고 모양에게 의탁한 자였다.
모양은 인사를 건네기 무섭게 본 이야기를 꺼내었다.
“승상! 묻겠소. 거사를 성공시킬 자신이 있으시오?”
참으로 시원시원한 물음이 아닐 수 없었는데 모양의 성격이 그러했다. 돌려 말하기보다는 단도직입적으로 내뱉는 성격이었다.
호유용은 이에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여유롭게 답했다.
“이를 말이겠소이까! 어찌 그런 자신도 없이 내 장관을 뫼셨겠소. 나흘 후에 성대한 자리를 마련했소이다. 그 자리에서 내 군사들의 용맹함과 함께 귀빈들을 뵙게 하겠소이다. 아마 그들을 본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오.”
“귀빈들이라…… 좋소이다. 승상을 믿고 나 또한 준비하도록 하겠소. 나흘 후 승상이 보이는 패(牌)의 고하를 보고 문신들의 규합을 준비하도록 하리다.”
호유용이 저만큼 자신하는 데에는 그만큼 확실한 수가 있을 것이라 보였다. 이미 호유용의 저택에 오면서 마음을 굳히고 온 터였던지라 호유용이 자신함에 더욱 마음이 굳어지는 모양이었다.
차를 들며 잠시 담소를 나누는데 갑작스럽게 수하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중요한 자리였던지라 호유용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도 더한 차가움이 담겨 노성을 발하였다. 이에 문을 열고 들어온 천호장은 두려움에 깊이 부복하며 떨리는 두 손으로 하나의 천 조각을 호유용에게 바치었다.
“밖에 한 괴인이 찾아와 이 천 조각을 주며 승상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금세 사라졌습니다.”
호유용은 천 조각을 펼치자마자 이내 버럭 호통을 쳐 댔다.
“누군지도 모를 괴인의 말을 듣고 감히 이런 무례를 범했단 말이냐? 네놈이 정녕 살고 싶지 않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 그것이 괴인은 강호인이었습니다. 그것도 비조 같은 몸놀림을 가진 고수였습니다. 또한 괴인의 기도와 용모가 범상치 않아 무례를 무릅쓰고 급히 달려온 것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쿵! 천호장은 바닥에 머리를 찧어 용서를 구했다.
머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호유용의 노화를 삭이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목이 날아갈 판국인 것이었다.
크음!
천호장의 말을 듣자니 문득 괴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호유용은 노화를 억누르며 다시금 자세히 천 조각을 훑어보았다.
천 조각은 황색으로 되어 있었다.
황색은 황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그로 인해 황색 천을 보자마자 무엇인가 자신을 음해하려는 세력의 수작으로 여겨 호통을 친 것이었다.
하나 천 조각은 살필수록 괴이한 구석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의 깃발이었다. 사각의 황색 바탕의 천 조각 가운데에 백련화(白蓮花)가 그려져 있는 형상이었다.
무엇인가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깃발의 문양에 시선을 주던 호유용은 순간 눈을 크게 부릅뜨며 대경했다.
“백련교(白蓮敎)!”
황색 바탕에 백련화 문양은 다름 아닌 백련교의 깃발이었던 것이다.
2
둥! 둥! 두두둥!
고수(鼓手)의 웃통을 벗어젖힌 상체에는 굵은 땀방울이 연방 흘러내렸다.
북채를 잡아 간 힘줄이 꿈틀거림에 따라 박자를 맞추어 심금을 울리는 웅대한 고성(鼓聲)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혼이 담긴 소리였다.
고수의 손짓을 바라보던 진녕이 핫! 하고 기합성을 발하며 기수식을 취하자 진녕의 앞에 늘어선 일백 장정들이 뒤따라 검을 꼬나 쥔 채 기수식을 취했다.
“핫! 천지세(天地勢)!”
전신을 경갑주로 무장한 일백의 장정들이 절도 있는 동작으로 우렁찬 기합과 함께 앞선 진녕의 구령에 맞춰 연무를 해 나갔다. 뻗어지는 검의 궤적은 크고도 웅대하였고 내딛는 두 다리의 굳건함은 하늘을 떠받들 듯하였다.
쿵!
일백 장정의 기합과 함께 밟아 가는 진각이 아지랑이 같은 먼지바람을 피워 올렸고 동시에 대연무장에 거칠게 족적을 남겨 갔다.
그로부터 숨 돌릴 틈도 없이 24세의 관부검술이 장내에 펼쳐졌다. 전신을 무거운 경갑주로 무장한 일백 무인들의 검술은 호쾌하고도 전율스러웠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넉 자에 달하는 중검(重劍)은 쌍수검(雙手劍)으로 그들의 손에 들린 채 육중한 검세를 펼쳐 냈다.
둥둥둥!
검광이 빛을 발할수록 고수의 손놀림 또한 빨라졌다. 마치 가슴속 혼을 태우는 양 연방 심금을 울려 대는 저음의 거성을 피워 내는 고수의 전신은 땀으로 목욕을 한 지 오래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을 타고 흘러내림에도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천지를 가를 듯 이어지는 호기로운 검로와 혼을 깨우는 북소리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호유용을 포함한 호가장 식솔들의 얼굴에는 자긍심 가득한 웃음꽃이 피어났고 손님으로 참석한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참으로 잘 단련된 무인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십호장급 이상의 검사들로 교두(敎頭)인 진녕의 지휘 아래 절도 있고 패기 가득한 연무를 펼쳐 보인 것이었다. 이는 무척이나 장관을 연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나아가 이들이 말을 타고 적진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장면을 그리게 할 정도였다.
어찌나 숨죽이고 연무에 몰입했던지 24세의 연무가 끝이 났는데도 보는 이들은 그 여운에 사로잡혀 이를 깨닫지 못할 정도였다.
호유용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좌중을 깨웠다.
호유용의 박수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이들은 그때서야 노도와 같은 박수갈채로 이들의 무위를 칭송하였다.
퇴장하는 일백의 무인들과 단(亶) 위로 들어서는 총관 구양수(歐陽秀)의 모습을 지켜보던 호유용은 자리에 앉으며 좌중을 보고 말하였다.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변변찮은 재주인지라 귀빈들의 옥안(玉眼)에 혹여나 누를 끼치지는 않았나 걱정될 따름입니다.”
“변변찮은 재주라니요. 하늘에서 내려온 무장들 같았소이다. 안 그렇소이까?”
이선장이 동조의 뜻을 구하자 좌중의 조정의 중신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였다.
비무대(比武臺)가 준비되어 감에 따라 총관 구양수가 단 위에 올라 장내를 굽어보며 무술대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호유용의 주위를 둘러싸고 입에 침을 발라 가며 혀를 놀리던 이들도 이에 입을 다물고는 저마다 자리에 앉아 대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노리고 호유용의 좌측에서 한 사내가 다가서니 대도독부 장관 모양이었다.
“소개할 귀빈들은 언제 볼 수 있는 것이오?”
주변의 눈을 의식하여 목소리를 낮춘 것이었으나 그 특유의 직선적인 어투는 그대로였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무술대회가 끝나고 자리를 마련하여 소개해 올리겠소이다.”
모양의 거침없는 언사에 호유용의 미간이 꿈틀거렸고 어지러운 심기에 노화가 치밀었다.
‘글깨나 읽었다는 선비 놈 아니랄까 봐 참으로 안하무인한 자로구나! 내 거사를 성공시킨 후 네놈은 꼭 먼저 제거하리다!’
마음속으로 단단히 다짐하는 호유용이었다.
대회를 위해 마련한 대연무장 외곽의 임시 막사 안.
진녕은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아 내며 연무로 인한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완전 무장을 한 상태에서의 연무는 극심한 체력의 소모를 가져와 이제 오십 줄의 나이에 접어드는 진녕으로서 힘에 붙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점차 본래의 신색을 회복하는 진녕의 뒤로 한 사내가 들어섰다.
들어선 사내는 고개를 숙여 깊이 읍을 한 후 조용히 진녕의 뒤에 시립하였다.
진녕은 보지 않고도 누구인지 짐작하는 듯했고 사내는 진녕의 뒤에 시립하는 모습이 여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진녕의 심복으로 보였다.
“수련은 얼마나 하였느냐?”
진녕의 물음에 사내는 담담히 답하였다.
“구성(九成)을 이루었을 뿐이옵니다.”
진녕은 눈빛을 빛냈다. 구성이라 함은 대성을 눈앞에 둔 터였다. 사내가 익힌 무공이 황궁무고에서도 십대무경에 드는 것이기에 그리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진녕은 마음을 굳혔다.
“오늘 대회에 한 사내가 나올 것이다. 사내의 이름은 관량! 도절의 심복이다. 그자를 죽여라!”
사내는 진녕의 갑작스런 명에 일순 눈썹을 꿈틀였으나 금세 평정을 찾아갔다.
“그자의 무위는 그리 가볍지 않다. 아마도 이변이 없는 한 본선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본선에 오른다면 시선이 집중될 것이니 그전에 예선에서 제거해야 한다. 이미 조치를 취해 둔 터, 그자와 세 번째 경기에서 맞붙게 될 것이다. 일 수에 죽이지 말고 혼전 중에 어쩔 수 없이 죽인 것으로 만들어라. 너라면 잘해 낼 것으로 믿는다! 추성(秋猩)!”
“예!”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내, 추성은 그제야 짧고도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무척이나 말수가 적은 사내였다.
‘처음부터 무척이나 의심이 가던 자였다. 이제 거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터에 혹시 모를 저런 자를 안은 채 거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오늘은 북원과 동영의 귀빈들도 와 있지 않은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옳은 일이리라!’
마음을 굳게 다지는 진녕이었다.
한편 추성은 진녕의 어사대에서 본대를 맡고 있는 고수(高手)였으나 세간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어사대의 활동이 지극히 은밀한 탓이었다.
하나 사내 추성을 아는 자들은 그를 일컬어 살귀(殺鬼)라 불렀다. 상대를 격살함에 있어 지극히 잔인하게도 수족을 차례로 잘라 가고 오관(五官)을 서서히 제거하여 극도의 공포 속에 상대를 죽이는 악취미를 지닌 자였기 때문이다.
추성은 진정으로 피에 굶주린 살귀였다.
살인 명령(殺人命令)이 떨어지자 고개 숙인 추성의 두 눈에서는 핏빛 요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무술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총관 구양수의 외침과 함께 둥! 둥! 둥! 고수의 북소리가 뒤를 이었다. 드디어 무술대회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때부터 대연무장에 마련된 네 개의 비무대 위에서 십팔반무예를 바탕으로 한 호가의 무장들의 각축의 장이 펼쳐졌다. 어느 하나 용맹무쌍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어느 하나 가벼운 일전이 없었다.
몇 번의 예선전이 치러진 후 드디어 관량의 차례가 다가왔다.
“창술의 관량 대 백타(白打)의 장괴(張Ŧ) 올라오시오!”
관량은 묘한 흥분에 전신이 알싸한 느낌을 받았다.
수백, 수천의 관중 앞에서 무예를 겨룬다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호승심과 함께 투지가 들끓었다.
툭툭 몸을 털어 긴장을 떨쳐 낸 관량은 창을 꼬나 쥐고 비무대 위로 성큼 올라섰다.
반대편에서도 장괴라 불린 상대가 올라서고 있었다.
상대는 칠 척의 거한이었는데 그의 손에는 피육을 둘러싸고 원앙월(鴛鴦鉞)의 형태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원앙월이란 둥그런 형태의 월아(月牙) 두 개가 겹쳐진 모양새로 그 가운데에 손을 끼워 사용하는 권장가들의 병기의 일종이었다.
특히나 장괴란 사내의 원앙월은 자모원앙월(子母鴛鴦鉞)이라 하여 소림본산에서 뻗어 나온 무기로 사용자의 무력을 몇 배나 끌어내 주는 병기로 유명하였다.
절로 투기가 치솟는 관량이었다.
상대는 큰 덩치만큼이나 패도적인 무위로 덮쳐 올 것이다. 자신의 장기 또한 극쾌와 극강의 창술! 누가 강한지 그 강함을 견주고 싶은 마음이 구름처럼 일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내는 몸을 날렸다.
훙!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원앙월들은 공중을 수놓았다. 한 자 반 치에 이르는 크기의 그것들은 육장의 공격권을 확대시킴은 물론 그 위력 또한 더욱 고강하게 하여 감히 경시할 수 없게 하였다. 장괴의 보폭은 일반 무인의 두 배에 달할 만큼 큰 것이어서 몇 발자국 디디기 무섭게 쿵! 쿵! 거리는 진각음을 동반하며 관량의 지척으로 다가왔다.
장괴란 사내는 관부의 무예인 파자권(巴子拳)을 익힌 자였다. 파자권은 강렬한 진각에서 시작된 힘을 상반신 부위를 사용해서 상대에게 가하는 식으로, 전신을 사용한 동작에 의해 강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권법이었다.
이는 최근의 권법들의 일반된 무리였으나 파자권은 특히나 하체의 힘과 진각에 실리는 힘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파자권 전법의 특징인 웅보호조(熊步虎爪), 즉 접근전에 큰 힘이 되었다.
장괴는 파자권 특유의 보법인 맥보를 밟아 가며 발 앞꿈치가 땅에 닿음과 동시에 둔중하게 뒤꿈치로 진각을 울리며 힘을 실어 공격해 왔다.
굳건한 하체를 중심으로 뻗어 나오는 파자권은 힘이 넘쳤고 그 변화 또한 다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뻗어지는 팔과 다리, 어깨와 허벅지, 팔꿈치와 무릎이 축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육합(六合)의 원리를 따른 충천(衝天)이라는 기술로 파자권의 공격법 중 그 위력이 고강한 대표적인 기술이었다.
창세를 흩뜨리며 달려드는 살을 에는 경력들에 관량은 크게 감탄하여 연강휘창식으로 맞받으면서 파자권의 투로와 기의 흐름을 살폈다.
애(埃), 방(帮), 의(依), 고(靠)의 네 가지의 기본 기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파자권의 금나술과 솔법은 그 동작이 크되 화려하지 않고 중후하되 가볍지 않으며, 또한 허식이 배재된 지극히 실전적인 형태였다. 뻗어 오는 공격은 굳건한 하체를 중심으로 진, 퇴가 자유로웠고 그 투로는 단순하였으나 그 속에 실린 경력과 연환되어지는 다양한 공격이 쉽게 볼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십수 합이 흘러갔다.
챙챙!
더욱 공력을 돋우어 자모원앙월을 맞받아 가던 관량은 문득 공방을 늘려 갈수록 상대의 손이 어지러워짐을 느꼈다.
처음에는 상대의 강력하고도 호쾌한 권법에 집중하여 그 허점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점차 공방이 가중될수록 상대의 진각의 힘이 달리고 그 투로가 엉성해짐을 느꼈던 것이다.
이에 의아심이 든 관량은 확인해 볼 요량으로 공격을 전환하여 적사창법 중 제4식, 적사속보(赤巳速步)를 펼쳐 내며 극쾌의 찌르기로 더욱 강맹하게 공격해 갔다. 공력 또한 배나 돋우어 뻗어 내었으므로 뻗어 나가는 붉은 뱀이 훙! 소리를 내며 섬전과도 같이 쏘아졌다.
장괴는 숨을 헐떡이며 자모원앙월을 맹렬히 휘둘렀지만 패색이 역력했다. 그의 무공의 기본인 강(强)과 정(正)이 흔들리니 한 번 밀리기 시작한 기세는 용을 써도 뒤집지 못하였다.
파자권의 화후가 아직 무르익지 못한 탓이었다. 첫 수를 나눌 때는 파자권 특유의 저돌적인 강맹함으로 적지 않은 효과를 보았으나 점차 손을 섞어 감에 따라 부족한 공부는 여실히 드러났다.
이는 파자권의 화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 지닌 공력 또한 미약한지라 파자권의 진면목을 보이지 못한 탓이었다.
관량은 더 이상 승부를 끌어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비록 상대의 무공이 약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에 비하면 크게 손색이 있었다. 이에 끝을 볼 요량으로 장괴가 감당하지 못할 공력으로 연거푸 창을 후웅! 하고 크게 휘둘러 상대를 멀찌감치 떨쳐 냈다.
후욱! 후욱!
단 두 수 만에 비무대의 끝자락까지 밀려난 장괴의 신색은 말이 아니었다. 관량의 공격을 막아 내느라 다급히 끌어올린 공력의 여파로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행여나 놓칠까 싶어 피가 나도록 원앙월을 잡아 간 두 손에서는 손아귀가 찢어져 연방 피가 흘러내렸다.
실력의 차이가 너무도 확연했다. 무르익지 못한 파자권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자가 아닌 것이었다.
“내가 졌소이다.”
장괴는 패배를 시인하며 고개를 숙인 후 대를 내려왔다.
“창술의 관량 승!”
울려 퍼지는 총관의 외침에 따라 둥둥둥! 북이 울렸고 관중의 환호가 이어졌다. 장괴와 관량의 강맹한 결전은 비록 짧았으나 적지 않은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하였다.
관중의 환호를 뒤로하고 비무대를 내려오는 관량은 나흘간의 서화삼괴와의 대련의 적지 않은 성과에 적잖이 만족되었다. 과연 제어된 영보부법상의 양의 기운은 노도와 같았다. 장괴를 상대하는 데 단 사 할의 공력을 사용했을 따름이었으니 장괴의 무위가 녹저와 버금가는 수준인 점을 가만할 때 무척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우승도 점쳐 볼 수 있으리라 여겨졌다.
관량의 무위는 일개 십호장들이 감당할 것이 아니어서 다음 번의 비무에 오른 팔릉추(八稜錐)를 무기로 하는 자 또한 손쉽게 이겨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 대결을 위해 비무대에 올랐다.
“창술의 관량 대 검술의 추성(秋猩)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비무대 위에 올라 반대편에서 들어서는 상대를 넌지시 들여다보던 관량은 일순 움찔하였다.
상대는 말 그대로 한 자루의 잔뜩 벼린 칼을 연상시킬 정도로 날카로운 기도를 지닌 자였다. 게다가 무엇인지 모를 살기를 동반한 채.
‘쉽지 않겠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어찌 될지 모르는 자다!’
목뒤로 식은땀이 흐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으나 관량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벽이 나타나면 파(破)하면 되는 터!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