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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대사부 1
1화

서장


수많은 별이 수놓아진 밤하늘에서 유난히 인간과 친근한 별이 있었으니 상고 시대부터 자신의 위치와 계절의 변화를 알아내는 데 가장 중요한 중심이 되는 별들로 북두칠성이라 불렀다.
북두칠성은 천추(天樞), 천선(天璇), 천기(天璣), 천권(天權), 옥형(玉衡), 개양(開楊), 요광(搖光)의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고대인들은 이 별을 연계하여 고대의 술을 뜨던 표주박 모양으로 상상하였다. 천추, 천선, 천기, 천권은 표주박의 몸이 되는데 옛날에는 괴(魁)라고 하였고, 옥형, 개양, 요광은 표주박의 자루가 되며 옛날에는 표(杓)라고 하였다.
그 일곱별은 하늘의 음양과 오행의 균형을 한 치도 어그러짐 없이 맞추어 주는 보물과 같은 저울추인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이루었고 선기옥형을 주관하는 주성을 천추성이라 불렀는데 황제의 별인 까닭에 자미성(紫微星)이라고도 하였다.
자미성은 오행(五行)에 의지하여 만물을 기르고, 인명(人命)으로 하여금 성계(星係)가 구성되게 하며, 별들을 각각 정한 자리에서 맡은바 일을 하게 되었다. 자미와 구성된 성계들은 작록(爵綠)을 장악하고 모든 궁에서 복(福)을 내리며 능히 백 가지 악을 소멸시킬 수 있었다.
지금 그 자미성이 평소와는 달리 요요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천기를 살피는 이들은 별의 기운을 받은 이가 세상에 출현할 것을 예견하고 흥분하고 있을 터였다.
자미성이 빛을 발하는 그때, 다른 하나의 별이 동시에 빛을 발했으니 옥형성(玉衡星)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오귀염정성(五鬼廉貞星)이라 부르는 살성(殺星)이었다.
염정성은 천기를 실행하는 별로서 자미성과 함께 북두칠성의 중심이 되는 별이었다. 자미성과 염정성이 동시에 빛을 발한 것은 천하의 난세가 도래함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자미성이 빛을 발한 이 년 후.
절강의 소흥에 멀지 않는 곳에 우임금과 연이 깊은 회계산(會稽山)이 있었다. 그곳의 자그마하고 운치 있는 벽성장(壁星莊)에서 지금 막 태어난 아이가 있었으니, 산모가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얼렀다.
“오느라 고생했다, 아가야.”
눈을 꼭 감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아가 금방 태어났음에도 어미의 말을 들었는지 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 * *

검은 옷을 걸친 중년인의 안광은 차가웠다. 보통 사람들은 그와 눈빛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려 주저앉아 버릴 터였다.
“나를 따르겠느냐?”
“네.”
온통 진흙투성이의 작은 손을 내밀어 서슴없이 중년의 손을 잡았다. 중년인의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느 아이와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었다.
중년인은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건가요?”
“검은 연꽃을 구경하러 간다.”
뜻 모를 대답이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밌겠네요.”
서산에 걸린 해를 보면 길을 떠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걸음은 일말의 주저함이 없었다.

* * *

“닻줄을 끊어라!”
평소 항상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선장이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었다. 선상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초저녁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광풍이 몰아쳤다. 강과 다르게 성난 바다는 바람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채 같은 파도가 배를 가랑잎 까불 듯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내려놓기를 수차례, 배가 부서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억지로 배를 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하늘이 잔뜩 무거운데다 와 닿는 바람에 습기가 가득한 것이 심상치 않아서 출항을 취소하려던 그는 아이를 안은 부부의 간곡한 요청과 많은 뱃삯에 마지못해 배를 띠웠었다.
선원들이 배를 지키려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바다에 빠져 생명을 잃는 이만 늘어날 뿐이었다.
아이를 안은 채 나지막이 흐느끼는 아내를 달래던 중년인은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듯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지만, 불쌍한 집사람이 겨우 웃음을 되찾았는데 벌써 데려가려 하십니까? 어찌 조금 더 시간을 주시지 않으십니까. 단 한 달이라도 연장해 주신다면, 저는 지옥 불에 떨어져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행복을 누릴 시간을 주십시오, 하늘이시여!’
가슴속으로 절규하던 중년인은 아내가 안은 아이를 바라보았다. 겨우 돌이 지났을 법한 아이였다. 이런 난리 속에서도 잠든 아이는 좋은 꿈을 꾸는지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중년인은 아이를 꼭 안은 아내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음을 밝혔다.
“여보, 미안하오.”
“괜찮아요. 전 당신을 만나 행복했어요.”
“평생 고생만 시킨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그런 말씀 마세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따르고 싶어요.”
남자에게 최고의 찬사였다. 중년인은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기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태어나 처음으로 흐르는 눈물에 내리는 비가 이 순간만큼은 고마웠다.
“나도 당신을 다시 만나고 싶소. 다음번에는 후회 없는 삶을 누리게 해 주고 싶소.”
파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두 사람은 힘껏 서로를 안았다.
번쩍.
쾅.
뇌성이 울리며 사위를 환하게 밝힌 번개가 배 위에 작렬하고, 순식간에 반 토막 난 배는 깊은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남은 것은 캄캄한 성난 바다와 그 바다를 때리는 장대비뿐이었다.

* * *

“한, 읔, 한 가지만, 읔, 약속해 다오.”
피투성이의 중년인이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소년에게 팔을 뻗었다. 멀찌감치 서 있는 소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다만, 그의 손에 들린 단검에 맺혔던 붉은 피가 흘러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너, 너의 독심을, 윽, 잊지, 큭.”
중년인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년은 잠시 중년인이 정말 숨을 거두었는지 관찰하다가 확신이 들었는지 천천히 다가왔다. 발끝으로 시체를 툭툭 건드린 소년은 차가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네 걱정이나 해. 사부.”
입술이 비틀어지며 차가운 미소를 지은 소년은 몸을 돌리더니 밖으로 나갔다.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그의 눈썹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하얗다는 것이 특이했다. 사부를 죽인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 길은 하늘이 아니라 내가 정한다.”


1화 잠룡지도(潛龍之道)


원의 실정과 거듭된 흉년으로 천하는 어지러웠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동해 건너편에 축복 받은 자들의 삼선도(三仙島)가 있었다.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산의 꼭대기에서는 쉼 없이 맑은 감로수가 흘러내리고 각종 신선한 버섯들이 자라나 생활의 풍족함을 더해 주었기에 그다지 많지 않은 섬에 사는 거민들은 평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사실 거민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달랑 네 명이었다. 세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아이였다.
“이놈이 또 어딜 갔기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나?”
“놔두게. 그 나이엔 신기한 것들이 많은 법이지.”
길고 풍염한 흰 수염을 가진 노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리자 멀쩡한 곳이 없을 만큼 해어져 너덜너덜해진 승려 복장을 한 노인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역성을 들었다.
“자네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나게 하는가?”
낡은 검은 경장 차림의 노인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어깨에 둘러멘 바랑을 툭툭 털었다.
“먼지 나네. 좀 떨어져서 털고 오지.”
승려 복장의 노인이 손사래를 치며 인상을 찡그렸다.
“미안하이. 이보게, 그래도 이것 보게. 요번에 가서는 영지초(靈芝草)도 구했다네.”
자신의 바랑을 열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어깨를 펴던 노인이 눈을 반짝이며 누군가를 찾았다.
“곤(鯤)이를 찾는가? 그 녀석 아침나절부터 어디로 쏘다니는지 도통 볼 수가 없다네.”
“허허허. 그 녀석.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광극도사(狂極道師)가 손바닥만 한 섬에서 사람을 찾지 못하다니 믿기지 않네.”
“예끼, 이 사람아. 자네도 곤이의 성취를 알지 않는가. 내 경지를 벌써 넘어섰네. 그 녀석이 숨으려 들면 천하의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을 걸세. 그건 그렇고 마뇌(魔腦), 자네 영지초를 구했다고 했는가?”
“그렇다네. 이것 보게, 족히 백 년은 된 것 같지 않은가?”
“백 년은 고사하고 겨우 오십 년 정도 될까 말까 하는구먼.”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기함(氣陷)을 했을 소리였다. 그러나 마뇌의 머리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났다.
“오, 오십 년? 혈불(血佛), 네놈이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건가?”
자신이 힘들게 구해 온 영지초를 깎아내리는 혈불이 못마땅했던 마뇌가 벌컥 화를 내며 눈을 부라렸다.
“그만 하게. 저기 곤이가 오는 듯하이.”
광극의 한마디에 혈불과 마뇌는 눈의 힘을 풀고는 광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연인을 향한 설렘과 같은 열기가 어려 있었다.
갓난아이로 섬에 왔을 때부터 산에 서식하는 산양의 젖을 먹여 키운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영특함으로 자신들을 기쁘게 한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이 살지 않는 이 작은 섬에서 항상 자신들을 즐겁게 하는 아이였다. 순식간에 그들의 뇌리를 스쳐 가는 지난 소중하고 즐거웠던 시간들이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어리게 했다.
멀리서 조그마한 신형이 보이더니 소동은 축지법(縮地法)을 사용했는지 순식간에 허공을 가로질러 세 노인에게 다가왔다.
“할아버지들!”
한달음에 달려온 조그마한 소동의 손에는 크기가 어른의 팔뚝만큼 하며 전신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물고기가 한 마리 들려 있었다. 세 노인은 그 물고기를 보고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리고 할 말을 잊었다.
천하에서 가장 극양(極陽)하다는 태양마어(太陽魔魚)였다. 보통 사람들은 근처에 가지도 못할 양기를 뿜어내는 영물(靈物)이었다. 하지만 소동의 몸을 감싼 은은한 검은 막을 보면서 세 노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양곤의 몸에 한기로 몸을 보호하는 소청한수기법(召請寒水氣法)이 펼쳐졌듯 그들의 몸에도 어느새 호신강기(護身|氣)가 펼쳐져 있었다.
“곤, 곤아. 너는 그 물고기가 무엇인지 아느냐?”
“네. 태양마어예요. 그것도 태양마어가 천 년을 살아야 된다는 태양금린어(太陽錦鱗魚)예요. 할아버지들 몸보신하시라고 제가 며칠을 별러 겨우 잡아 온 거예요.”
“허, 너는 그것이 뿜어내는 양기에 대해서 아느냐?”
“네. 하지만 옥천(玉泉)에서 나오는 현빙벽화주(見氷碧火酒)랑 같이 드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황제내경(黃帝內經)에 나오길 오십육 세가 되면 간기(肝氣)가 쇠퇴해지므로 그 결과로서 간의 표현인 근육의 신축이 종전처럼 완전히 안 되며, 생식 능력도 결핍되어 신(腎)에 저장되었던 정기가 적어지고, 그와 동시에 신의 장기 자체의 기능도 나빠져서 결국 몸 전체가 노화되고, 육십사 세가 되면 신기(腎氣)가 완전히 소진된다고 했어요. 할아버지들도 몸을 보(保)하셔야 돼요. 그래서 잡아 온 거예요. 비록 완전히 백 년을 채우지 못한 것 같지만…….”
세 노인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을 걱정하는 소동의 진실한 마음을 잠시 즐겼다.
“곤아, 그래도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태양금린어니 좀 더 크거든 잡아먹자꾸나. 그래야 더 효력이 있지.”
광극이 자상한 음성으로 소동을 타이르자 아직은 어리고 때가 묻지 않은 소동은 냉큼 대답했다.
“네.”
“그럼 네가 잡았던 곳에 도로 가져다 두렴. 나중에 찾을 수 있도록 표시도 해 두고.”
혈불이 소동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네. 다녀올게요.”
다시 바람처럼 해변으로 달려가는 소동의 뒷모습을 보며 마뇌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단전만 다치지 않았어도 태양금린어가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러게나 말일세.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않은가.”
나머지 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동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이곳에 은거한 세 노인은 한때 천하의 패권을 다툴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장난인지 동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견제하다가 이곳으로 와서 자웅을 겨루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싸웠지만 우열을 가릴 수 없었고, 싸우면서 정이 든 이들은 또 다른 깨달음으로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다 십 년 전 태풍이 강하게 이 섬을 강타하고 남기고 간 아이가 곤이었다. 그 험난했던 태풍 속에서도 천행으로 생명을 건진 갓난아이를 세 노인이 금이야 옥이야 길렀다. 이름도 양곤(梁鯤)이라고 지어 주었다.
양곤은 타고난 신체가 천혜지체(天慧之體)였는데 천혜지체는 신체를 이루는 정기신(精氣神) 중 신(神)이 너무 과한 탓에 정(精)이 말라 이십 세를 넘기지 못하는 천형(天刑)을 가지고 태어나는 신체였다.
그러나 천하를 오시하던 세 노인은 각고의 노력으로 그의 신체가 가진 천형을 치료했다. 부작용으로 단전이 손상되어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체질이 되어 자신들의 절기를 잇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요즘 그들이 사는 낙은 양곤의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양곤의 머리는 천혜지체의 특성대로 굉장히 뛰어났다. 가르치기 시작하자 세 노인의 평생공부를 솜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빠른 속도로 배웠다. 문일지십(聞一知十)의 천재가 바로 양곤이었다.
광극이 가진 선술(仙術)과 의술을 모두 배웠고, 혈불이 가진 밀교(密敎)의 술법과 주술을 배웠으며, 마뇌가 가진 책략과 병법, 기문둔갑(奇門遁甲)을 배웠다. 비록 양곤의 선력(仙力)이 부족하여 펼칠 수 있는 술법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그의 머릿속에 모두 담겨 있었다.
아쉬운 것은 그들이 가진 무공을 가르치기는 했지만, 양곤이 펼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양곤이 나중에 적당한 인재를 찾으면 자신들의 무공을 전수하겠다고 위로했지만, 그들은 양곤이 자신들의 무공을 펼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그것은 그저 바람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저 녀석에게 가르칠 것도 바닥이 났는데 이를 어이할꼬.”
혈불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밑천이 떨어진 지가 오래일세.”
광극이 혈불의 한숨에 동참했다.
“나는 그래도 그 녀석에게 줄 수 있는 게 한 가지 남아 있네. 험험.”
마뇌가 턱을 쳐들고 헛기침을 하며 우쭐거렸다.
“그, 그게 뭔가? 나도 좀 가르쳐 주게.”
이미 마뇌도 자신의 밑천이 홀랑 털렸다는 것을 아는 두 사람은 그의 말에 혹하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두 친우의 눈빛에 광기(狂氣)가 어린 것을 본 마뇌는 흠칫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그게. 눈에 힘 좀 빼게. 이거 식은땀이 다 나네.”
“아! 알았네. 어서 가르쳐 주게.”
눈에 힘을 푼 두 사람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마뇌를 바라보았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저놈의 몸을 보호할 기물(奇物)을 하나 만들 생각이네.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게 할 수 없지 않은가? 험난한 강호에 나가서 순진한 저 녀석이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특별한 능력을 지닌 기물을 만들 생각이네.”
“그거 괜찮은 생각이네. 나도 같이 하면 안 되겠나?”
“나도.”
두 사람이 마치 안 된다고 하면 생사결(生死決)을 치를 요량으로 매섭게 눈길을 보내자 마뇌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나. 나 혼자 만드는 것보다 함께 하면 더 좋은 것이 만들어질 테니.”
세 노인은 자신들만의 비밀로 하자고 약속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멀리서 양곤이 태양금린어를 놓아주었는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들, 놓아주고 왔어요. 근데 그 녀석이 완전하게 자라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되는데. 어떻게 하죠?”
“괜찮다. 기다리지 뭐. 세월이 좀먹나?”
마뇌가 양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농을 건넸다.
“사실 태양금린어와 청린빙어(靑鱗氷魚)를 함께 복용해야 최대의 효과를 얻지 않겠느냐? 그놈이 자랄 동안 청린빙어를 구하는 게 좋겠구나.”
광극이 미소를 지으며 한술 더 떴다.
“그래요? 그럼 청린빙어를 잡아야죠. 청린빙어가 어디에 살아요?”
“청린빙어는 말이다. 북해(北海)에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로 무인들이 복용하면 피가 맑아지고 내공 증진에 큰 도움을 준단다. 하지만 자신이 살던 물에서 나오기만 하면 바로 죽고, 죽은 다음 두 시진만 지나면 상하기 때문에 구하기가 힘들단다.”
양곤의 질문이 나오자마자 냉큼 혈불이 받아서 얼른 대답했다. 양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그들의 큰 자랑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뇌와 광극은 인상을 찌푸리며 혈불을 흘겨보았다.
“웅∼. 일단 구하려면 북해로 가야 하는군요. 북해라면 여기서 굉장히 멀지 않아요?”
“아직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미소를 가득 머금은 광극이 양곤의 손을 잡고 자신들의 거처로 걸었다. 그러자 냉큼 마뇌가 양곤의 다른 손을 잡았다. 남은 혈불이 이마를 찌푸리며 굼뜬 자신의 동작을 탓하며 그 뒤를 따랐다. 세 노인과 소동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