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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이가 자는 모습이라 했던가. 양곤이 잠든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세 노인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했다. 이윽고 마뇌가 고갯짓으로 밖으로 나가자 이야기하자 세 노인은 조용히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섰다.
“햐∼ 고놈 자는 모습이 천상의 선동일세.”
“내 말이 그 말일세. 내 저런 고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네.”
“자는 모습이 예술이네, 예술.”
저마다 감탄을 내뱉은 세 노인은 머리를 맞대고 양곤에게 줄 기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혈불이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뭐니 뭐니 해도 호신을 위해서는 갑옷이 제일 아닐까?”
“그렇긴 해도 잠을 잘 때도 입을 수 있는 갑옷은 만들기가 까다로워서…….”
“입고 다니는 것도 번거로울 수도 있고. 성장하면서 체격이 변할 텐데. 그때마다 맞춰서 늘어나는 옷을 만들려면 보통 일이 아닐 걸세.”
두 노인이 반대하자 세 노인은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당장 마땅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가 기물을 만드는 동안 양곤에게 가르칠 게 있어야 되는데.”
“하긴, 금방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법 시일이 걸릴 텐데. 그동안 놀게 놔둘 수도 없고. 놀 놈도 아니지만.”
“음. 이렇게 하면 어떻겠나?”
마뇌가 입을 열자 두 노인은 동시에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림의 무공을 가르치는 걸세. 광극 자네는 정파의 무공을 가르치고, 혈불 자네는 사파의 무공, 나는 마도의 무공을 가르치는 걸세. 우리가 강호행을 하면서 많은 무공을 보았지 않는가.”
“그거 좋은 생각일세. 우리 무공은 이미 다 알려 줬으니 더 이상 가르칠 게 없고, 다른 문파의 무공을 가르친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네.”
혈불이 맞장구를 치자 광극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정파의 무공에 대해서는 연구를 한 적이 있어 제법 많은 무공을 알고 있다네. 그걸로 꽤 시간을 벌 수 있을 듯하구먼.”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세.”
마뇌는 자신이 제안한 생각에 두 노인이 찬성하자 우쭐해진 기분으로 어깨를 활짝 폈다. 소싯적 땅따먹기 하려고 상대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했던 것들이 이번에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던 두 노인은 입 꼬리가 올라갔다.
“우리도 참 단순해졌구먼. 한때 천하를 주무르던 우리가 이런 작은 일에 이토록 좋아하다니…….”
광극의 중얼거림에 내심 찬성하면서도 두 노인은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그들은 좋았다.
다음 날부터 세 노인은 천하에 널려 있는 각 파의 무공에 대해 양곤에게 가르쳤다. 워낙 많은 문파에 무공의 종류 또한 많았는지라 양곤이 배우는 기간도 제법 길어 어느덧 육 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양곤은 세 노인의 견식을 차곡차곡 머리에 담고, 섬이 좁다고 뛰어놀았다.
부쩍 자란 양곤은 이제 겉으로 보기에는 청년이라 할 정도로 체격이 좋아졌다. 세 노인의 지극정성과 섬에서 자생하는 신기한 버섯들, 그리고 섬 주위에 서식하는 많은 영물(靈物)들의 영향이었다.
요즘 양곤은 할아버지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이 생겼다. 머리가 커지면서 자신이 사는 섬의 바깥세상이 궁금했다. 할아버지들의 이야기와 책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 했다. 좋은 것도 많고, 나쁜 것도 많고, 다양한 볼거리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 했다. 그런 세상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들만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위에 올라앉아 멍하니 바다를 보는 시간이 늘었을 뿐이었다.
세 노인은 그런 양곤의 속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냥 세상에 나가라고 한다면 말을 듣지 않을 양곤임을 알기에 그가 나갈 수 있는 핑곗거리를 머리를 짜 생각해 내야 했다.
무공을 펼칠 수 없는 양곤을 험한 무림에 내보내는 일이라 걱정이 들 만도 하지만, 선술(仙術)과 기문둔갑(奇門遁甲), 신산귀계(神算鬼計)가 자신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른 것을 잘 아는 그들은 스스로 제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자네들, 오래전에 곤이 잡아 온 물고기 생각나나?”
혈불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머리를 탁 치며 말을 꺼냈다.
“태양금린어였지?”
그때가 기억난다는 듯 광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혈불을 쳐다보았다.
“그 영물과 어울리는 영물이 북해에 있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그래, 그랬던 거 같구먼.”
“나도 생각나네.”
“곤이에게 그 물고기를 구해 오라 하면 나가지 않을까? 우리가 먹으려 한다고 한다면.”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어차피 곤이도 이곳에서 나가 견문을 넓혀야 하니 그 방법이 괜찮을 듯하네. 마침 곤에게 줄 선물도 다 완성되었고.”
의견이 일치된 세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곤에게 이야기할 적당한 때를 상의했다.
양곤이 십칠 세가 되는 날, 세 노인은 양곤을 불러 앉히고 한 가지 선물을 건넸다. 별다른 문양 없이 반들거리기만 하는 묵빛의 반지였다.
“곤아, 이것은 널 위해 우리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다.”
처음 안을 내었던 마뇌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이게 무엇인가요? 마뇌 할아버지.”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널 위해 준비했던 물건인데, 묵환(墨?)이라고 부른단다. 이것은 네가 위험에 빠진 경우에 너를 구해 줄 물건이다. 이것이 우리라 생각하고 잘 간직하거라.”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들.”
기뻐하는 양곤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묵환을 만드느라 고생했던 일들이 모두 기억에서 사라진 세 노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단다.”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광극의 입이 힘겹게 떨어졌다.
“에? 저한테 뭔가를 부탁하시려고 이걸 주신 거예요?”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장난스레 양곤이 대답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양곤의 대답에 순간 당황한 광극이 말을 더듬었다.
“아녀요. 할아버지,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이에요. 말씀하세요. 제가 어떻게 해야 돼요?”
“흠흠. 사실 우리가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몸이 좀 허해진 것 같아서 예전에 네가 잡아 왔던 태양금린어가 필요하구나.”
“에이. 얼른 말씀하시지. 그거야 제가 언제든 환영하는 일이지요. 냉큼 잡아 올게요.”
양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간 혈불과 마뇌가 동시에 양곤의 다리를 붙잡았다.
“성질 하고는.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혈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네∼.”
머리를 긁적이며 양곤이 다시 자리에 앉고 광극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다시피 태양금린어의 효과를 증대시키려면 북해에서만 잡히는 청린빙어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저보고 청린빙어를 구하러 북해에 가야 된다는 말씀이세요?”
“그, 그래.”
순간 양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꽤 오래 걸릴 텐데. 세 분만 계셔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럼. 괜찮지. 이래 봬도 아직은 나를 상대할 놈들이 천하에 몇 없단다.”
자신의 팔뚝에 힘을 주며 마뇌가 너스레를 떨었다.
양곤은 자신이 세상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이런 생각을 해낸 세 할아버지의 깊은 정을 알았다. 노인들도 양곤이 이미 눈치 챈 것을 알았다. 서로의 생각을 숨긴 채 한바탕 우스운 경극을 펼치는 것 같았다. 서로를 위하는 정을 알았던 그들은 펼치는 경극을 그대로 즐겼다.
“알았어요. 나 없는 동안 서로 싸우지만 마세요. 아셨죠?”
“이놈아, 누가 누구랑 싸워? 상대가 돼야 싸우지.”
“아니, 이 늙은이가 누굴 핫바지로 아나?”
“고만들 하게. 나이 들어 이게 무슨 주책인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초옥에 끈끈하고 따뜻한 정이 가득 넘쳐흘렀다.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양곤이 가져갈 짐들을 챙기던 세 노인의 부산스러움에 일찍 잠에서 깬 양곤은 아직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들, 고맙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시 떠나지만,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곤아, 광극이 널 뭍으로 데려다 줄 것이야. 이것은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다. 무한낭(無限囊)이라는 것인데 주술이 걸린 주머니로 안에 아무리 물건을 넣어도 가득 차지 않는 주머니다. 유용하게 쓰일 게다. 그리고 네가 돌아오면 그 어촌의 촌장에게 전서구를 맡겨 둘 테니 전서구로 연락하거라.”
양곤에게 다가온 마뇌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네, 할아버지.”
양곤은 마뇌의 온기가 묻은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 허리춤에 찼다.
짐을 배에 실은 혈불이 양곤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북해까지는 먼 길이니 항상 조심하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곳은 조심하고, 너 외에 다른 사람은 믿지 말고, 마차 조심하고, 손발도 잘 씻고, 끼니 거르지 말고, 에 또…….”
“네, 혈불 할아버지. 항상 조심할게요. 저 어린아이 아녀요.”
“예끼, 이놈아. 내 눈엔 아직 어린아이야. 허허허.”
“네네, 할아버지.”
양곤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혈불의 체온을 느꼈다.
“얼른 타거라. 지금이 딱 좋은 시각이다. 조금 있으면 다시 진세가 발동될 거야.”
“네, 광극 할아버지. 잠시만요.”
씩씩하게 대답한 양곤이 남은 두 노인을 돌아보았다. 가만있으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던 양곤은 바닥에 엎드려 두 노인에게 큰절을 올렸다.
“다시 뵐 때까지 몸 보중하세요. 혈불 할아버지, 마뇌 할아버지.”
“그래, 오냐. 몸 조심하거라.”
“그래그래. 광극 할애비가 화낼라. 어서 배에 오르거라.”
“네.”
양곤이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걸음을 옮겨 배에 오르자 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노인은 뒷짐을 지고 얼굴 가득 미소 지은 채 양곤을 바라보았다. 양곤도 배에서 팔이 떨어져라 흔들며 작별의 아쉬움을 전했다. 그런 곤의 모습을 보던 광극이 입을 열었다.
“곤아, 이제 시작이니 마음을 굳게 가져라. 사내대장부란 자신이 선택한 길을 후회하면 안 되는 게야. 그저 앞만 보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사내대장부란다.”
“네, 광극 할아버지.”
대답은 했지만,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눈물은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듯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양곤은 섬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며 서 있었다.
한편, 섬에 남겨진 혈불과 마뇌는 양곤의 떠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걸음을 돌려 자신들의 집으로 향했다.
“근데 검댕아, 험난한 강호를 곤이 잘 헤쳐 나갈까?”
“알아서 잘하겠지. 근데 곤이는 무림인이 아니지 않은가? 강호의 일에만 얽히지 않으면 별일이야 있겠어?”
“하긴 무공을 펼칠 줄 모르니 무림인은 아니지. 주술력도 있으니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게야.”
“암. 누구 손잔데.”
두 사람은 강호에서 떠난 지 오래되었고 떠나기 전에도 자신들에게 시비를 거는 간 큰 무림인이 없었던 터라 쉽게 생각했다.

이윽고, 작은 어촌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양곤과 광극이 마을 촌장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촌장의 집이 가까워지자 한 촌로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신선님, 오셨습니까?”
다가온 촌로는 머리를 조아리며 광극에게 인사를 했다.
“촌장, 그동안 잘 있었는가.”
“네. 저야 잘 지냈습죠.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고맙네.”
촌장의 안내를 받으며 한 작은 모옥으로 들어간 광극과 양곤은 촌장 식구들의 환대를 받았다. 촌장 며느리가 내어온 차를 대접 받으며 광극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손자가 세상에 나오게 되어 같이 나왔네. 일단 이곳에서 당분간 머물면서 적응을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는가?”
“물론입죠. 마침 빈집이 한 채 있는데 그곳을 얼른 손보라 이르겠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이.”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촌장이 마을 청년들에게 빈 가옥을 손보라 이르러 나가자 광극이 양곤을 바라보았다.
“너에게 세상은 낯선 곳이니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분위기를 익히고 나가도록 하거라. 그게 지금 바로 더 큰 곳으로 가는 것보다 나을 듯하구나.”
“네, 할아버지.”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노파심이 자꾸 생기는구나. 그저 한 가지만 명심하거라. 너 자신을 믿어라. 그리고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네가 바른길이라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거라. 알았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난 이만 돌아가겠다. 나중에 섬으로 돌아올 때 촌장에게 이야기하면 전서구를 내어 줄 게야. 그것으로 연락하거라. 그럼 내가 데리러 오마.”
“네, 할아버지.”
양곤은 자리에서 일어나 광극에게 큰절을 올렸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건강하십시오.”
“오냐. 그리고 누가 우리에 관해 물어도 알려 주지 마라. 우리가 귀찮으니까. 알았느냐?”
“네.”
말을 마친 광극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고 양곤이 뒤를 따랐다.
배에 오른 광극은 가볍게 한번 손을 흔들고는 바다로 나갔다. 양곤은 광극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광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야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로움이 왈칵 밀려왔다.
자신이 섬을 떠나 세상을 향한 일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고민되었다. 그러나 광극이 말한 자신의 길이 세상에 나가는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양곤은 몸을 돌려 촌장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갯가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새로운 얼굴에 호기심을 보이며 동작을 멈추고 양곤을 따라 시선을 옮기고 있었고, 하늘 위에는 갈매기가 울며 한가로이 날고 있었다.
“오라버니.”
촌장의 집에 가까워졌을 때 양곤의 귀에 낯선 호칭이 들렸다. 처음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줄 모른 양곤은 계속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자그마한 인영이 그의 앞에 불쑥 얼굴을 나타냈다. 머리를 길게 땋은 곱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샐쭉한 표정을 지은 모습이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였다.
“불러도 왜 대답 안 해?”
“응?”
“불러도 왜 대답 안 하냐고.”
“불렀니?”
“응.”
“언제?”
“금방.”
“못 들었는데?”
“귀가 안 들려?”
“잘 들려.”
“그런데 못 들었어?”
“응.”
“내가 오라버니하고 불렀는데?”
“그게 날 부른 거였어?”
“응.”
“몰랐어. 누가 날 오라버니라고 부른 적 없거든.”
“그래? 그럼 뭐라고 불렀어?”
“곤아 하고 불렀지.”
“이름이 곤이야?”
“응. 양곤이야.”
“그렇구나. 그럼 곤 오라버니 하고 불러야겠네. 난 연이야. 요소연. 연이라고 부르면 돼. 오라버니라 특별히 허락해 주는 거야, 알았지?”
숨도 쉬지 않고 길게 단숨에 말한 요소연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래. 연아, 반갑다.”
“나도. 헤∼.”
혀를 쏙 내밀며 몸을 비비 꼬는 요소연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짓던 양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어디 가려워?”
“응? 몰랏!”
갑자기 몸을 돌려 휑하니 달려가는 요소연을 이해할 수 없는 양곤은 그냥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협.”
멀리서 촌장이 양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양곤은 걸음을 빨리해 촌장에게 다가갔다.
“소협,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같이 가시죠.”
“고맙습니다. 그런데 소협이라 부르시니 제가 불편합니다. 저보다 어른이시니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아니, 제가 감히 그럴 수는…….”
“괜찮습니다. 곤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순후한 성품을 지닌 양곤은 자신의 할아버지들과 비슷한 노인이 자신에게 존칭을 쓰는 것이 불편했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한 것에 따르면 노인을 공경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시는 게 저를 편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겠습, 아니, 알았네.”
“감사합니다.”
양곤의 완곡한 태도에 촌장이 한 걸음 물러서 양보했다. 촌장이 보기에 양곤은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청년이었다. 당당한 체구에 순후한 눈동자를 가진 양곤은 겉보기에 이미 청년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의 미간이 유난히 반들거린다는 것이었다.
삼선도는 세 분의 신선이 사는 섬이었다. 노략질하던 해적들을 모두 막아 주었고 고기가 많이 잡히는 곳을 어부들에게 알려 주어 만선의 기쁨을 주는 마을의 수호신들이었다.
그런 신선의 손자인 양곤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양곤의 심성이 워낙 바르게 보였는지라 양곤의 말대로 보통의 청년으로 대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서 가세나. 식구들이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걸세.”
“네.”
두 사람은 잰걸음으로 촌장의 집으로 걸어갔다.
촌장의 식구는 아들 내외와 손자가 하나 있는 단출한 가족이었다. 아들은 어부였고, 며느리는 순박하고 친절한 여인이었다. 촌장은 늘그막에 얻은 손자를 항상 끼고 살았다. 사실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아이였다. 비록 차려진 것은 해산물로 된 단출한 밥상이었지만, 밥상에 둘러앉은 촌장 가족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양곤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금방 한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섬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들에 대한 생각에 양곤의 가슴 한쪽엔 아련한 아픔이 고개를 디밀었다. 그렇게 세상에 첫 발을 디딘 날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