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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2화 잠룡현신(潛龍現身)
다음 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치자 마을 청년들이 버려진 집의 보수를 완전히 마쳤는지 촌장이 양곤을 새집으로 안내했다. 자그마한 모옥은 깔끔하게 수리되어 손때 묻은 부엌을 제외하고는 새집과 같았다. 작은 뒤뜰도 있어 예전에는 각종 채소들을 가꾸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앞은 탁 트여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양곤은 처음으로 가져 보는 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감사합니다, 촌장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니 나도 기쁘구먼. 자자, 방으로 어서 들어가 보세.”
“네.”
방은 두 칸이었는데 각각 깔끔하게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바닥과 벽은 모두 손질을 해 깨끗했고 육각으로 제법 큰 창이 뒤편으로 나 있었다.
“옷을 둘 수 있는 장은 내가 구해다 줌세. 그 외에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게 이야기하게.”
“아닙니다. 제가 하나씩 장만하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게. 난 이만 가겠네.”
“네. 살펴 가십시오, 촌장님.”
촌장이 휘적휘적 떠나고 혼자 남은 양곤은 앞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떠올리고 구할 방도를 생각했다.
‘음. 책을 읽을 서탁과 책을 둘 책장이 필요하겠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처음 가진 양곤은 많은 것들을 머리에 떠올리며 자신의 짐을 가지러 촌장 댁으로 걸음을 옮겼다.
“곤 오라버니!”
“응?”
“히. 오늘은 바로 돌아보네.”
“오. 연이구나.”
“오라버니, 뭐 해?”
“응. 내 집이 생겨서 짐 옮기려고.”
“그래? 좋겠다. 나도 도와줄까?”
“그래. 도와주면 고맙지.”
양곤은 동생이 생긴 것이 처음이라 마냥 귀여웠다. 더구나 살갑게 대해 주는 여동생이니 더 좋았다. 요소연은 촌장 집으로 가면서 연방 재잘대며 양곤의 기분을 더 좋게 해 주었다. 양곤의 짐은 별로 없었다. 그저 입을 옷가지 한 꾸러미와 서책이 몇 권 있을 뿐이었다. 양곤이 옷가지를 싼 꾸러미를 들고 요소연은 서책을 몇 권 가슴에 안은 채 새집으로 돌아왔다.
“야. 집 좋네, 오라버니.”
“응. 나도 마음에 들어.”
양곤이 짐을 풀어 정리하는 동안 요소연은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부엌까지 다 돌아본 요소연이 돌아와 양곤의 곁에 쪼그려 앉았다.
“근데 너무 허전하다. 암 것도 없어.”
“새집이니까. 그래도 앞으로 하나씩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근데 밥그릇두 없네. 밥은 어떻게 먹으려구?”
“음. 그게 가장 큰 문제구나. 만들든지 구하든지 해야지.”
“오라버니, 돈 있어?”
“돈? 없는데.”
“돈이 있어야 물건을 사지.”
할아버지들이 그가 필요한 것을 모두 구해 주었기에 돈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하기야 섬에서야 돈이 있어도 쓸데가 없었겠지만.
책에서 읽은 금전에 대한 개념을 떠올린 양곤은 돈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돈을 구해야 되네.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지?”
“고기를 잡아야 돼. 아니면 농사를 짓든가. 아니면 산삼을 캐든가. 아니면…….”
양곤이 고민에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요소연이 작고 예쁜 입을 오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잠시 고민하던 양곤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약초를 캐다 팔면 되겠다.”
“무슨 약초?”
“그야 비싸게 팔리는 약초를 구해야지.”
“어디다 팔아?”
“음∼. 이곳에 의원이 있니?”
“아니. 의원은 저쪽으로 한∼참 가면 큰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있어.”
요소연이 손을 들어 서쪽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일단 약초를 구해서 의원에 가 보자.”
“근데, 어디서 약초를 구해?”
“산에서 약초를 구하지. 연아, 여기서 놀고 있어. 나 얼른 가서 약초 좀 구해 올게.”
“같이 가면 안 돼?”
“다음에 같이 가자. 당장은 돈을 마련하는 것이 급하니.”
“음∼. 같이 가고 싶은데……. 알았어. 다음에는 꼭 데려가야 돼. 알았지?”
“응.”
요소연이 깡충거리며 흔드는 손을 뒤로하고 양곤은 제법 멀리 보이는 산으로 걸어갔다.
마을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양곤은 수인을 맺고 축지법(縮地法) 주문을 외웠다.
“권서천지 급급여율령.”
양곤의 몸이 가벼워지면서 한 걸음에 이삼 장씩 이동하며 쏜살같이 앞으로 튕겨 나갔다.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한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의 빠른 움직임은 순식간에 산에 도착했다. 걸음을 멈춘 양곤은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산신님, 제가 세상에 이제 막 나와 돈이 필요합니다. 은덕을 베푸시어 좋은 약초를 구하게 도와주십시오. 삼수삼계도원수 지신벽력대장군 천지조화풍운신장 칙속칙속 엄엄급급 여율령.”
산신의 도움을 구하는 주문을 외운 양곤은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잠시 후 얼굴은 백발을 무성하게 기른 노인이지만, 몸은 잿빛의 털로 덮여 있고, 호랑이 꼬리가 달린 거대한 원숭이가 나타났다. 몸은 투명하게 어른거렸고 안광에는 녹색 빛이 나는 것이 전설상의 태봉(泰逢)의 모습으로 현신한 산신인 것 같았다.
태봉이 앞으로 조금 달려가다 양곤에게 따라오라 손짓을 하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울창한 수림을 헤쳐 나가는 태봉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았다. 양곤은 축지법(縮地法)을 풀지 않았기에 겨우 태봉의 움직임을 따를 수 있었다. 산의 깊은 곳에 다다른 태봉이 한 지점을 킁킁거리며 가리키더니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다.
양곤은 태봉이 사라진 지점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족히 오십 년은 된 듯 보이는 산삼(山蔘)이 세 뿌리나 모여 있었다.
“심봤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겠지?’
책에서 읽었던 대로 한번 고함을 지르고는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산삼을 캐 품에 안았다.
‘좀 더 좋은 약초를 주시지. 하긴 이런 곳에 인형설삼(人形雪蔘)이나 천년하수오(千年何首烏) 같은 영약은 없을 테고, 다른 약초야 별로 돈이 되지 않을 테니 산삼이 제격이긴 하지.’
“산신님, 고맙습니다. 음. 이게 돈이 좀 되겠지?”
양곤은 산을 내려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양곤은 다시 산을 내려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도착한 그는 다시 축지법을 풀었다.
“권서천지 급급여율령.”
마을에 들어서자 해변에서 놀던 요소연이 냉큼 달려왔다. 그녀의 뒤로 진흙투성이의 꼬맹이들이 우르르 따라왔다.
“오라버니, 벌써 다녀오셨어요?”
“그래. 잘 놀았니?”
“네. 얘들은 제 친구들이에요.”
요소연이 자신의 뒤에서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빛내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예쁜 입술을 움직였다.
“다들 반갑구나.”
“안녕하세요.”
합창하듯 인사를 한 아이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베어 물었다.
“영아, 좀 더 놀고 있어라. 다녀올 데가 있다.”
“응. 알았어요.”
같이 놀 친구가 많아서인지 이번에는 순순히 대답한 요소연이 아이들을 이끌고 다시 해변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양곤은 안으로 들어가 보자기를 챙겨 산삼을 곱게 쌌다.
세 개의 삼 중에서 한 개는 귀하디귀한 양각연절삼(兩脚連節蔘)이었다. 양각연절삼은 삼의 동체에 아들 삼들이 붙어 있는 삼으로 네 개 이상의 아들 삼이 붙어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최상급이었다.
삼을 싼 보자기를 가슴에 품은 양곤은 다시 요소연이 가르쳐 주었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삼을 팔아 생긴 돈으로 사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걷는 양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마을을 나서 한적한 곳에서 축지법을 펼친 양곤이 상산(象山)에 도착한 것은 갓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마을에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감상하던 양곤은 몇 사람에게 물어서 간신히 의원을 찾았다.
“계십니까?”
“누구시오?”
“여기가 의원님 댁 맞습니까?”
의원에 와서 의원님 댁을 찾는 청년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왕 의원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흠, 의원 댁이 맞네. 어디가 아파서 온 것인가?”
“치료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산삼을 팔까 해서 왔습니다.”
청년의 말에 왕 의원은 마침 육 부자가 몸보신을 위해 산삼을 구한다는 말을 들은 터라 얼굴이 활짝 펴지며 호들갑스럽게 손짓을 했다.
“어서 이리 오게. 그래, 얼마나 된 산삼인가?”
양곤이 성큼성큼 걸어가 품의 산삼을 꺼내 펼쳤다. 양곤은 제일 좋은 양각연절삼은 천으로 살짝 덮어 보이지 않게 했다. 이것은 따로 흥정해야 할 물건이었다. 비록 양곤이 세상에 처음 나와 세상 물정을 모르지만, 마뇌에게 배운 신산귀계(神算鬼計)가 쓸모없는 탁상공론의 학문은 아니었다.
“제가 보기에 뇌두(腦頭)의 형상으로 보아 오십 년 이상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십 년이란 소리에 눈이 커진 왕 의원은 조심스레 놓여진 두 뿌리의 산삼을 살펴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족히 오십 년은 된 듯 보였다. 하지만 거래는 이익이 많이 남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자신이 이익을 보자면 삼의 흠을 찾아야 했다.
“내피(잎)의 모양을 보면 그 정도는 아닌 듯한데…….”
“하지만 동체의 가락지를 보면 이 삼은 숲이 우거진 안정된 곳에서 자란 터라 잎이 적어진 것입니다. 오십 년 이상이 확실합니다. 다리도 두세 개나 되고 더구나 뿌리에 붙은 옥주(玉珠)들을 보십시오. 이 삼은 최상품입니다.”
청년이 산삼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것을 깨달은 왕 의원은 삼의 흠을 찾는 것을 단념하고 바로 가격의 흥정에 들어갔다.
“흠흠. 그래, 얼마를 원하시는가?”
양곤은 왕 의원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자신의 약점이 바로 시세였던 것이다. 정확한 시세를 알아야 흥정이 되는 것인데 정확은커녕 비슷하게도 몰랐다. 양곤이 잠시 머뭇거리자 왕 의원은 그의 약점을 깨달았다.
‘가격을 그냥 후려쳐?’
미끼를 하나 던져야겠다고 생각한 양곤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는 시세를 정확히 모릅니다. 하지만 의원께서 가격을 제대로만 쳐 주시면 이것보다 더 좋은 삼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가격이 너무 형편없다면 다음 물건은 다른 곳에 팔아야겠지요.”
‘잉? 더 좋은 물건이 있단 말인가?’
왕 의원은 양곤의 말이 미심쩍었다.
“안 믿으실지 몰라 제가 일단 한 뿌리 가져왔습니다. 물론 이 삼은 오늘 팔 삼이 아닙니다.”
양곤이 덮여 있던 양각연절삼을 드러내 보였다. 순간, 왕 의원의 눈이 엄청나게 커지며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 산삼만 있으면 벼슬자리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면 임자를 제대로 만나 팔면 만금부자도 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왕 의원은 욕심에 눈이 확 돌아갔다.
“이, 이것은 양각연절삼이 아닌가? 그것도 최상품일세그려.”
“네. 최상품 양각연절삼입니다. 이런 것은 황실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극상품이죠.”
“이것을 파시게.”
“오늘 팔 물건이 아니라 말씀드렸습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나. 그냥 파시게.”
“일단 두 뿌리의 산삼 가격을 쳐 주십시오. 제대로만 쳐 주시면 다음에 이것을 의원님께 제일 먼저 가져오겠습니다.”
“음∼. 그렇다면 알았네. 내 두 뿌리 다 사지. 금 백 냥을 쳐 주겠네.”
“의원님을 믿겠습니다.”
“지금 당장 그런 거금이 없으니, 내가 전장(錢莊)에 다녀오겠네. 조금만 기다리시게.”
일어선 왕 의원은 서둘러 대문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양곤은 처음 보는 의원의 내부를 천천히 살펴보며 어떤 약재들을 사용하는지 살펴보았다. 약장의 서랍마다 약재의 이름이 붙어 있는 터라 알아보기 쉬웠다.
“음. 이것은 해소(解消)에 좋은 약재고, 이것은 소갈(消渴) 병에 쓰는 약재군.”
광극에게서 의술을 배웠던 양곤의 머리에는 천하에 산재하는 모든 약재 목록이 들어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천혜지체의 몸이 아닌가. 약재만 대충 훑어보고도 이 지역에 주로 발병하는 병증들을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살아가자면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할 텐데 매번 산삼을 캐다 팔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을에 의원이 없으니 내가 의원을 열까?’
한편, 전장에서 돈을 찾은 왕 의원은 자신의 손에 들린 금원보와 전표를 보고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욕심이 생겼다.
‘그냥 확 뺏어 버려? 양각연절삼 한 뿌리면 내 팔자도 확 펼 텐데.’
심란한 마음으로 의원으로 걸어가던 왕 의원의 눈에 평소 알던 왈패들이 구석진 담장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욕심에 사로잡힌 왕 의원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왕 의원님 아니쇼? 웬일로 우리를 다 찾아오셨나?”
“자네들 지금 바쁜가?”
왈패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왈패들의 우두머리인 철구가 침을 뱉으며 느물거렸다.
“뭐, 바쁜 일이야…… 없는데 왜 그러시오? 칫.”
“의원에 젊은 놈이 한 놈이 있는데, 그놈이 귀한 약재를 가지고 있네. 그것을 빼앗아 가져다주면 내 금 한 냥을 주겠네.”
금 한 냥이란 말에 철구가 얼굴의 미소를 지우고는 왕 의원을 노려보았다. 난데없는 말이라 믿기 힘들었지만, 금 한 냥이면 한참을 쓸 수 있는 큰돈이었다.
“그 말 잊지 마시오.”
“걱정 말게.”
“잠시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거요. 가자!”
철구를 선두로 왈패들이 우르르 의원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왕 의원은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 팔자가 활짝 펴지겠군. 고생 끝. 행복 시작.’
왕 의원은 구석진 담벼락에 숨어 키득거리며 자신의 행운을 감사했다.
양곤은 의원에 있다가 갑자기 멀리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던 양곤이 펼쳐진 산삼을 갈무리하고는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자봉승천거 자난강지도 자생남녀귀 축생남녀귀 호아신변 화개일월 엄형불견 속지옴 급급여율령 훔.”
모습을 감추는 주술인 은형법(隱形法)이 펼쳐지자 양곤의 신형이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그의 몸은 주변에 완전히 동화되어 바로 곁에 있어도 찾을 수 없을 터였다.
철구는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의원 대문을 발로 걷어차며 요란스럽게 들어왔다.
“야이…… 잉? 아무도 없잖아.”
처음부터 으름장을 놓아 기세를 잡으려 고함지르며 들어왔는데 왕 의원이 있을 거라 했던 놈이 보이지 않고 떨어진 낙엽만 바람에 구르고 있었다.
“그러게요. 쥐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요?”
“흩어져서 찾아봐. 어디 측간이라도 갔는지.”
“네, 형님.”
우르르 달려든 왈패들이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일하는 하인들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답만 얻을 뿐이었다. 은형술로 몸을 숨긴 양곤은 그들의 작태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누굴 찾는지는 몰랐지만, 왈패들의 분위기가 워낙 흉흉하기 때문이었다. 괜히 나서서 귀찮은 일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이놈의 영감탱이가 우릴 가지고 논 거야 뭐야!”
버럭 소릴 지른 철구는 왈패들을 이끌고 다시 왕 의원을 만났던 곳으로 달려갔다. 나머지도 허둥지둥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들이 의원을 떠난 것을 확인한 양곤은 다시 은형법 해제 주문을 외웠다.
“엄형불견 화개일월 호아신변 축생남녀귀 자생남녀귀 자난강지도 자봉승천거 속지옴 급급여율령 훔.”
다시 모습을 드러낸 양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굴 찾는 거지?’
이제나저제나 기다리고 있던 왕 의원은 철구 패거리가 자신에게로 오자 일을 다 처리한 줄 알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았다.
“그래, 물건은 회수했는가? 어이쿠.”
달려온 철구가 느닷없이 주먹으로 왕 의원은 눈두덩을 쳤다.
“있긴 누가 있다고 우릴 가지고 논 거요? 그래, 재밌었소?”
씩씩거리는 철구는 바닥에 웅크린 왕 의원의 몸통에 발길질을 했다.
퍽―
“윽.”
퉤―
“가자!”
침을 뱉은 철구는 왈패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한참을 웅크리고 있던 왕 의원은 숨을 고르고는 일어섰다. 그리고는 의원으로 내달렸다. 철구 일당이 저렇게 화를 냈다는 것은 산삼을 가진 청년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잘못하면 굴러들어 온 복을 발로 차는 격이 될 터였다.
‘가면 안 되는데. 산삼만 해도…….’
대문을 왈칵 열고 들어선 왕 의원은 청년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왕 의원의 눈두덩은 퍼렇게 물들어 있었고 옷은 흙투성이였다.
“자, 자네, 있었구먼. 다행이네.”
“아니. 의원님, 얼굴이 왜?”
“별일 아니네. 이리 앉게나.”
양곤은 아까 그 우락부락한 이들이 아마 의원을 찾았던 모양이라 짐작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왕 의원은 지은 죄라 있는지라 얼른 거래를 마무리 짓고 싶었다.
“자. 이게 금 백 냥 어치 금자와 전표일세.”
품속의 금자와 전표를 꺼내며 거래를 종용했다. 양곤은 품에서 두 뿌리의 산삼을 꺼내 건네주고는 금자와 전표를 챙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작은 무한낭에 집어넣었다. 제법 많은 양이었지만,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은 주머니가 금자를 모두 수납하는 모습을 보던 왕 의원은 다시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자넨 신기한 물건을 가지고 있구먼.”
“네. 할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겁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알았네. 다음에 꼭 다시 내게 오게.”
두 뿌리 산삼을 소중히 안은 왕 의원이 미소를 지으며 양곤을 배웅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탐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청년의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여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여긴 때문이었다. 자신은 지금의 산삼 두 뿌리만 해도 크게 이문이 남는 장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