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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의원을 나선 양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했다. 음식을 만드는 데 필요한 그릇들과 가재도구들, 그리고 서점에 들러 자신이 읽지 못했던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구입했다. 물건을 사면서 자신이 가진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실감했다. 제법 많은 물건을 산 양곤은 물건을 운반할 수레도 한 대 샀다. 그러고도 많이 남은 금자와 구입한 물건들이 가득 실린 수레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던 양곤의 눈에 여인들의 장식품을 파는 가게가 들어왔다.
‘음. 촌장 집 며느리와 요소연에게 줄 것을 살까?’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게에 들어서자 각종 보석들과 장신구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양곤을 유혹했다. 양곤은 무엇을 사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양곤이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보였는지 점원이 다가와 여러 가지를 보이며 자신의 상술을 선보였다.
“이것은 옥으로 만든 노리개인데 젊은 여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물건입니다. 이것을 선물하면 안 넘어오는 여인이 없지요. 헤헤헤.”
예쁘게 보이는 노리개를 들어 올리며 설명을 시작한 점원은 이것저것을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금가락지에 홍옥으로 장식한 물건인데 저희 가게에 하나뿐인 물건으로 이름난 명공이 제작한 반지입니다. 가격이 좀 비싸지만, 그만한 값어치가 있지요. 그리고 이것은 …….”
양곤은 점원의 말을 들으며 더 혼란스러웠다.
“에∼. 전 요만한 꼬마 계집아이와 젊은 여인에게 줄 것을 찾는데요. 이런 것은 좀 과한 듯한데.”
“그럼 이건 어떠세요?”
뒤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젊은 여인의 음성에 양곤은 고개를 돌렸다. 묘령(妙齡)의 여인이 미소를 지은 채 둥근 갑(匣)이 달린 노리개와 나비 모양의 노리개를 양손에 각각 들어 보였다. 양곤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자 여인은 노리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불로초 무늬를 선각(선으로 새김)하고 칠보를 올렸으며, 홍·남색 실로 매화(梅花) 매듭을 맺었고, 그 사이에 원형향갑과 산호구슬, 금실, 연두, 분홍, 노랑의 색실가락지를 낀 이건 원형향갑색동딸기술노리개라 해요.”
노리개에 사향(麝香)을 넣었는지 은근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건 남색·주홍색·금향색의 스물네 가지 실로 연봉매듭을 맺고 그 끝을 늘어뜨려 연봉 매듭 바로 밑과 끝에 흰색을 먼저 감고, 배색이 되는 남·연두·다홍·노랑·주홍색 등을 색 맞추어 감고 흰색 실을 감아 마무리한 다음, 나비 모양의 자줏빛 마노(瑪瑙)와 밀화 구슬을 단 나비방울술노리개라고 해요.”
깜찍하고 귀여운 요소연에게 잘 어울릴 듯한 노리개였다. 두 노리개를 받아 든 양곤이 입을 열었다.
“이게 모두 얼마나 하나요?”
여인은 살포시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점원에게 물어보세요. 전 가격은 잘 몰라요.”
그제야 손님임을 깨달은 양곤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점원은 두 젊은 남녀의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더니 가격을 일러 주었다. 값을 치르고 흐뭇한 마음으로 노리개를 들고 나오던 양곤은 입구에서 다시 그 묘령의 여인을 만났다. 기분이 좋았던 양곤은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좋은 선물을 골라 주셨네요.”
“마음에 드신다니 저도 기쁘네요.”
아까는 황망 중이라 몰랐지만, 동안의 깨끗한 얼굴이 눈에 확 들어오는 여인의 옆구리에는 소검이 달려 있었다. 또한 맑은 눈에서 조금 광채가 나고, 걸음걸이가 일정하고 균형이 잡힌 것을 보면 제법 오랜 수련을 거친 무인인 듯 보였다. 양곤은 세 할아버지들이 무공이 대단한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자신의 기세를 감출 수 있는 경지인 반박귀진(返撲歸眞)을 예전에 넘어선 터라 이렇게 ‘나 무인이오’ 하는 무림인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양곤은 눈에 호기심이 어리며 입을 열었다.
“소저는 무림인이신가 봐요?”
“네. 보타문(普陀門)의 문도예요.”
여인은 보타문의 문도일 뿐 아니라 보타문의 차기 검후(劍后) 후보 중 한 명인 여미려(予美麗)였다. 고아였던 여미려는 어린 나이에 당대 검후의 눈에 띄어 그녀의 직전제자로 들어갔었다. 여미려는 여리고 착한 심성 때문에 다른 후보들보다 경지가 약간 낮았다. 그녀의 고운 심성이 무공을 수련하는 데는 약간의 장애가 되었다.
벽에 막혀 무공이 잘 늘지 않자 요즘은 수련을 빼먹고 마을에 와 놀다 가곤 했다. 오늘도 보타문을 몰래 나와 마을에 들렀다 아까부터 유심히 보았던 청년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 말을 건 터였다.
여미려는 그가 얼른 자신의 이름을 밝혀야 자신도 이름을 알려 줄 것인데 이름을 밝히지 않아 속상했다.
“소협도 무림인이세요?”
“아닙니다. 아! 전 양곤이라고 합니다. 저쪽 작은 어촌에 머물고 있죠.”
자신을 소개하고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킨 양곤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 또래의 여인과 처음 만난 터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 왠지 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아! 양곤 소협, 전 여미려라고 해요.”
겨우 이름을 밝힌 여미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산다는 어촌을 언제 한번 찾아가 봐야지 생각한 그녀는 자신의 문파로 돌아갈 시간임을 깨닫고 아쉬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저 가봐야 돼요. 다음에 또 만나요, 양곤 소협.”
“네? 네. 안녕히 가세요.”
얼떨결에 대답한 양곤은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뛰어가는 여미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왠지 갑자기 가슴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에 묻히자 고개를 살며시 흔들어 상념을 떨친 양곤은 자신의 손에 들린 노리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노리개를 받고 즐거워할 요소연의 귀여운 얼굴이 떠올랐다. 물건이 잔뜩 실린 수레에 오른 양곤은 콧소리를 흥얼대며 자신의 집으로 수레를 몰았다.

해질녘이 다 돼서 수레를 탄 양곤이 어촌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요소연이 혼자 해변에서 놀다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우와. 오라버니,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
“그냥 이것저것 사다 보니 이렇게 많이 샀네.”
요소연을 냉큼 안아 수레에 태운 양곤은 자신의 집으로 소를 몰았다. 싣고 온 물건들을 모두 내린 양곤은 품속에서 나비방울술노리개를 꺼내 요소연에게 건넸다.
“요건 네 선물이다.”
“이야∼. 예쁘다.”
요소연은 노리개를 이리저리 뒤집어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양곤은 멀리서 촌장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네 도대체 어디서 뭘 했기에 하루 종일 볼 수가 없는가?”
“죄송합니다, 촌장님.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느라 상산(象山)에 다녀왔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은 다 구했는가?”
“네. 책자와 살림 도구들을 구했습니다.”
촌장은 이제 제법 사람 사는 집으로 변모한 그의 집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여튼 신선의 손자이니 그렇겠거니 생각한 촌장은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책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있는 동안 우리 아이들의 글 선생이 좀 되어 주게. 어촌에 사는 아이들이라 배울 기회가 없네. 최소한 자기들의 이름은 쓸 줄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 부탁하는 것일세. 해 주겠는가?”
“네, 촌장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직 할 일을 정하지 않았던 양곤은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세나. 저녁을 먹어야지.”
“네, 촌장님. 번번이 신세를 끼쳐 죄송합니다.”
“별 소릴 다 하는구먼. 신선님들께서 우리 마을을 지켜 주시기에 걱정 없이 사는 게 우린데 그런 소릴 하면 우리가 벌 받네.”
“네.”
촌장의 집에 도착한 양곤은 귀한 생선까지 올라와 있는 밥상을 보며 다시 한 번 고마움을 느꼈다. 어민들이 비록 고기를 잡지만, 어획한 것은 모두 팔아야 돈을 조금이라도 만질 수 있기에 자신들은 생선을 거의 먹지 못했다. 그런 귀한 생선을 자신을 위해 준비한 그들이 너무 고마웠다. 양곤은 품에서 촌장 며느리에게 주려 산 노리개를 꺼내 건넸다.
“제 작은 성의입니다.”
처음에 약간 주저하며 시아버지의 눈치를 보던 며느리가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함박 미소를 지으며 노리개를 받았다. 자신으로서는 처음 보고 처음 가지게 된 노리개였다. 거기다 노리개에는 사향이 은은히 풍겨 나오는 것이 한눈에도 고급 노리개가 분명해 보였다.
“고맙습니다, 도련님.”
“별말씀을요. 제게 베푸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양곤은 다시 촌장에게 자신이 쓸 약간을 제외한 금자를 모두 건넸다. 촌장이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이런 것을 바라자고 자네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네.”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건 이제 제게 필요 없는 것이니 가지고 계시다 필요한 곳에 쓰시는 게 더 낫습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저한테 아직 많이 있으니 염려 마십시오.”
양곤의 의지가 확고함을 느낀 촌장은 금자를 소중히 건네받았다.
“알았네. 내 잘 쓰겠네. 고마우이.”
“촌장 어르신, 얼른 수저를 드셔야 저희도 밥을 먹지요. 배가 등가죽에 붙었습니다.”
양곤이 너스레를 떨자 촌장은 미소를 지으며 수저를 들어 국을 한 모금 먹었다. 아들 내외도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못하며 식사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양곤은 촌장의 집을 나섰다. 하늘에는 보름이 다 되어 가는지 거의 둥근 달이 둥실 떠 만물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베푼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자신의 마음 가득 채운 기분이 베풂에서 오는 기쁨이라는 것을 깨달은 양곤은 두 팔을 벌려 가슴을 활짝 펴고 깊게 차가운 바다 공기를 들이마셨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아!”
저절로 그의 입에서 기분 좋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양곤은 삼선도가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들이 보고 싶었지만, 이제는 더 큰 성장을 위해 그리움을 참아야 했다. 그래도 오늘 느낀 이 뿌듯한 감정을 할아버지들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들, 저 잘할게요. 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켜봐 주세요.’


3화 사부지로(師父之路)


다음 날.
오랜만에 조금 늦잠을 자고 일어난 양곤이 마당으로 내려서다 동작을 멈추었다. 동네 꼬마들이 모두 모여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엥? 너희들이 이 새벽에 웬일들이냐?”
“형이 글 가르쳐 준다고 해서요.”
“형이 아니라, 스승님. 그렇죠?”
“스승님이 글 가르쳐 주는 게 맞아요?”
“맞아. 오라버니가 너희들 스승님이 되시는 거야.”
“맞아요?”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소리에 뒤쪽에서 모여드는 아이들을 막던 촌장이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말려도 이놈들이 말을 안 듣네그려. 잠 깨운 거 미안하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 이야기를 하셨기에 벌써 아이들이 몰려든 겁니까?”
어제저녁에 승낙했던 일이었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지잖은가. 그냥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 허허허.”
“촌장님도 참…….”
미소를 짓던 양곤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아홉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모여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양곤은 조금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지필 묵과 서책도 준비해야 하고 장소도 정해야 했다.
“어디서 가르칠지 장소도 정하지 못했는데…….”
“그냥 자네 집에서 가르치게. 좀 좁기는 해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게야.”
“네. 그럼 그러지요.”
촌장은 아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아직 식전이시니, 집에 갔다가 한 식경 후에 다시 오거라.”
“네.”
합창하며 대답한 아이들이 밀물에 놀란 게들마냥 흩어졌다. 촌장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고놈들이 배우고 싶긴 한 모양이네. 자. 아침 먹으러 가세.”
“네, 촌장님.”
휘적휘적 앞장서는 촌장의 뒤를 따라가며 양곤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를 고민했다.
식사를 마친 양곤이 집에 돌아오자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안녕하세요, 스승님.”
똑같은 인사를 하며 들어오는 아이들을 양곤은 반갑게 맞아들였다.
“너희들은 인사가 다 똑같으냐?”
“소연이가 가르쳐 준 거예요.”
“소연이네 집이 제일 부자거든요.”
“소연이네 아버지가 선주세요.”
“소연이네 집에는 없는 게 없어요.”
손짓 발짓 하며 제비처럼 지저귀는 소리에 양곤은 손을 들어 조용히 시켰다.
“알았다. 다들 조용히 해 봐라. 음∼. 글 배운 적 있는 사람 손!”
선주를 아비로 둔 요소연이 유일하게 손을 들었다.
“그래, 연이는 어디까지 배웠니?”
“천자문(千字文)요.”
“다 외웠니?”
“아뇨. 다 까먹었어요.”
요소연이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아이들이 와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다. 그럼 다 같이 천자문부터 배우기로 하자.”
양곤은 아이들의 집이 다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이 사 온 물건들 중에서 지필묵(紙筆墨)을 꺼내 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충분하게 사 온다고 사 온 것이지만, 자신이 혼자 쓸 생각으로 산 것이라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은 모자라니 두 사람이 같이 쓰도록 해라. 내일 내가 더 준비하마.”
“네.”
아이들은 목소리를 최대로 높이며 합창했다.
천자문 서책도 준비가 안 되었는지라 양곤은 자신 앞에 놓인 종이에 하늘 천(天) 자를 커다랗게 썼다. 그리고 새 종이에 거칠 황(荒) 자까지 여덟 자를 쓰고는 붓을 내려놓았다. 양곤이 글을 쓰는 동안 아이들은 신기한지 눈을 빛내며 그가 쓰는 글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이 여덟 글자를 배울 것이다. 내가 읽으면 다들 큰 소리로 따라 하거라.”
“네.”
다시 우렁찬 아이들의 대답이 나왔다. 양곤은 미소 띤 얼굴로 첫 글자를 크게 읽었다.
“하늘 천! 땅 지!”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
“넓을 홍! 거칠 황!”
아이들이 종달새마냥 영롱한 목소리로 따라 했다. 양곤이 하늘 천 자가 쓰인 종이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제 뜻을 말해 주마. 잘 듣고 기억하거라. 천지현황(天地玄黃)은 하늘은 위에 있어 그 빛이 검고 땅은 아래 있어서 그 빛이 누르더란 뜻이다. 알았느냐?”
“네.”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그냥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개중에는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지르는 개구쟁이도 있었다.
“우주홍황(宇宙洪荒)은 하늘과 땅 사이는 넓고 커서 끝이 없다. 즉, 세상의 넓음을 말한 것이다. 알겠느냐?”
“네.”
“다 알았다니 내가 확인해 보마.”
빙그레 미소 지은 양곤이 한 아이를 지목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심삼득이라 해요.”
양곤이 하늘 천 자가 써진 종이를 들어 보였다.
“그래. 삼득아, 한번 읽어 보아라. 이 글자가 무슨 자이냐?”
“하늘 천 자요.”
“오. 잘 아는구나.”
양곤이 칭찬하자 삼득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지며 기뻐했다. 그는 다시 다른 아이를 지목하며 땅 지 자가 쓰인 종이를 들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명현득이요.”
“현득아, 이 글자가 무슨 글자냐?”
“땅 지요.”
“잘했다.”
양곤은 아이들 하나하나 지목하며 이름을 물었고 글자를 물었다. 첫 시간이라 아이들이 모두 열심이었던지 틀린 아이가 없었다.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여러 번 글을 읽게 하고는 뜻을 깨닫게 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오시(午時)가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내일은 내가 서책을 구해 올 터이니 서책으로 공부하자꾸나. 그리고 나중에 시험 쳐서 성적이 좋은 아이는 특별한 선물을 줄 것이니 열심히들 하거라.”
“네∼에.”
선물을 준다는 소리에 아이들이 모두 목청껏 대답했다. 아이들이 받은 지필묵을 모아 주섬주섬 양곤에게 건네주고는 우르르 밖으로 놀러 나갔다. 요소연만 남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양곤을 쳐다보았다. 양곤은 그녀가 쳐다보는 이유를 깨닫지 못하다가 그녀의 상의에 달린 노리개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주 예쁘구나.”
그제야 귀여운 미소를 지은 요소연이 인사를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이 모두 나가자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앉은 양곤이 중얼거렸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다시 상산에 나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리라 생각한 양곤은 문득 어제 만난 소저가 생각이 났다. 그의 가슴이 쿵쾅거리며 빨리 뛰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양곤은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빨리 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거 주화입마 아냐?’
“훈장, 계시는가?”
“네? 네.”
대답을 하고 마당으로 나서니 촌장이 그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뭘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놀라나?”
“아닙니다. 잠시 딴생각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얼굴을 붉힌 양곤이 머리를 긁적였다.
“가세. 점심시간이네.”
“저, 촌장님, 전 지금 상산에 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좀 사려고요.”
“밥은 먹고 가야 할 게 아닌가?”
섬에 있으면서 하루에 두 끼만 먹었던 양곤은 점심은 별 생각이 없었다.
“상산에 가서 먹든지 하지요.”
“거리가 얼만데. 시간이 많이 늦을 텐데.”
촌장이 근심스런 얼굴을 지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굳이 그리하겠다면, 그리하게.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게나.”
“네.”
촌장이 다시 걸어가고 양곤은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마을 밖 한적한 곳에 이른 양곤은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권서천지 급급여율령.”
몸이 가벼워진 양곤은 쏜살같이 상산으로 날아갔다. 상산까지 겨우 일다경도 걸리지 않았다. 상산에 도착한 양곤은 책방을 찾았다. 천자문 책을 구입한 양곤은 지필묵을 좀 더 구입하고 객잔을 찾았다. 차를 마시고 싶은 생각에 객잔에서 파는 차 중에 제일 좋은 차를 주문했다.